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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거수의 디자인 시선 < 16> “서울의 색? 정책의 오판”: 색은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 축적되는 기억의 자산이자 아이덴티티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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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5년04월30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5년04월28일 13시30분

작성자

  • 김거수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산업미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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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그동안 많은 훌륭한 정책들을 제시하며 ‘디자인 도시 서울’이래 크게 성장시켜왔다. 그러나 때로는 큰 의미 없는 사업을 추진하기도 한다. ‘서울의 색’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색은 시각적 자극을 넘어, 도시의 정체성을 감각적으로 재현하고, 문화의 깊이와 역사를 축적하는 기억의 매개체다. 뉴욕의 노란 택시, 런던의 빨간 이층버스와 같이 오랜 시간 반복적 노출과 사회적 공감대를 통해 형성된 색만이 그 ‘도시의 색’이 될 수 있다. 유구한 전통과 철학, 자연적 환경을 활용한 충분한 인식의 동의를 통해 비로서 색은 도시의 아이덴티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 ‘산토리니’나 포르투갈 ‘포르투’처럼 도시가 아름다운 색으로 기억될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도시의 색을 설정한다는 것은 단순한 선택이나 선포가 아니다. 합리적인 논리, 공감 가능한 스토리텔링, 그리고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자발적인 수용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즉, 도시의 색을 지정하기 위해서는 그 도시만의 독특한 정서적, 문화적, 역사적 맥락이 준비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현재 서울은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고 있는가?

 

색을 정하는 도시, 정하지 못하는 전략: 무리한 정책과 오판

서울시는 색이라는 강력한 도시 자산을 다루는 데 있어, 보다 신중했어야 했다. 과거 필자는 서울시가 발주한 '서울의 색 개발' 프로젝트 기술평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수억 원대 용역비가 투입된 프로젝트로 기억하는데, 발표된 내용은 논리적 설득력이 극히 부실했고, 비약과 추상적인 주장만이 가득했다. 이미 프로젝트 발주 자체가 논리와 전략 없이 잘못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시에도 필자는 서울의 환경에서 '서울의 색'을 서울의 아이덴티티로 만들겠다는 행위가 무모함에 가까운 시도라고 판단했었다. 따라서 꼭 서울의 색을 지정해야 한다면, 색의 표현 공간을 서울을 대표하는 상징적 장소 몇 곳으로 한정하고, 단색이 아닌 2가지 이상 최소한의 ‘배색’(color combination)을 활용할 것을 자문했다. 최소한 색의 각인 효과와 차별화된 인지적 고유성이라도 확보할 수 있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담당자들은 이에 대해 뚜렷한 수용의 태도나 실질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2년 정도 지났을까? 디자인 관련 학회에서 또다시 '서울시 고위 디자인 관계자가 '서울의 색'이라며 한강에 비친 노을빛을 보여주며 '스카이 코랄'(그냥 분홍색이다)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있게 발표했다. 낙동강, 동해안, 서해안의 노을빛도, 심지어 어린 딸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도 분홍색인데, 갑자기 한강에 보편적인 노을빛을 규정해 서울의 색이라 주장하니, 도시 정체성에 대한 지나치게 안일한 감성적 접근이 아닐 수 없었다. ‘서울 노을이 아름답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무엇보다 이 색을 서울 시민들이 인지하고 공감하며 지지해 줄 수 있을지가 가장 걱정이 됐다.

 

그래서 필자도 자신 있게 질문했다. "저 색을 발표하면 언제까지, 서울 시민 몇 퍼센트가 인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까?" 당황한 듯 서울시 고위 디자인 책임자는 15% 정도라고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다. 그러나 이 수치의 정량적 근거는 없었다. 900만 명이 넘는 서울 시민에게 어떤 주제나 대상을 인지시키려고 한다면, 수십억, 어쩌면 수백억 원 이상의 광고·홍보 예산이 필요할 수 있다는 현실적 계산을 과연 해 보았을까? 서울시가 그러한 막대한 투자를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가? 서울시 슬로건조차 대다수 시민이 모르는 현실에서 말이다. 그리고 15%도 인지 하지 못할 서울의 색을 왜 서울 시민 전체의 색으로 규정하는가? 논리적 모순이며 시민에 대한 무책임이자 정책적 오만이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더 놀라운 것은 ‘매년 색을 바꿔서 발표’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한 해는 분홍, 다음 해는 초록. 그렇게 색을 바꾸면 시민들의 기억 속에 무엇이 남을 수 있을까? 애써 축적해도 모자랄 색의 경험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셈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내일부터 서울의 색은 초록입니다"라고 선언한다고 해서 시민들이 동의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오만이다. 도시의 색은 단순한 홍보나 선언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시민의 삶 속에서, 장시간 누적된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정착되는 것이다.

 

더구나 서울은 포르투나 유럽의 고도(古都)처럼 색을 절제하여 사용하는 도시가 아니다. 이미 전 세계 모든 색이 넘쳐나는 다채롭고 복합적인 도시다. 이런 환경에서 서울을 단일 색으로 규정하려 한 시도 자체가 애초부터 무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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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5,000만 파운드(약 950억원)을 축구팀에 지불해서 구매한 파란색

색은 물론 잘만 투자하면 막대한 유익을 가져다주는 고부가가치 상품이고 강력한 브랜딩 전략 수단이 되기도 한다.  삼성전자가 5,000만 파운드(약 950억 원)를 투자해 구매한 파란색은 단순한 색을 넘어선 대성공의 상징이 되었다.

 

삼성전자는 색의 의미와 가치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2005년부터 2015년까지 약 10년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구단 첼시 FC의 공식 유니폼 스폰서로 활동하며 총 5,000만 파운드(약 950억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당시 영국 축구 역사상 가장 높은 금액의 스폰서십 계약 중 하나로 평가되었다. 당시 첼시는 ‘드록바’(Drogba)를 중심으로 프리미어리그 최정상을 달리던 팀이었고, 매 경기마다 도시 스포츠 신문을 비롯한 방송 매체는 첼시의 파란색 유니폼과 함께 가슴에 새겨진 'SAMSUNG' 로고를 헤드라인으로 노출하고 있었다.

 

삼성전자는 챌시 팀의 파란색 유니폼을 통해 글로벌 팬들에게 삼성전자의 파란색 브랜드를 각인시키려 했고, 실제로 드록바와 첼시팀에 열광하는 팬들의 열정적인 사랑을 삼성전자 모바일폰과 TV 제품 홍보에 효과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삼성전자는 2005년 79조였던 매출을 이 계약 이후 영국 시장에서만 5년 만에 155조로 두 배 이상 성장시켰으며, 계약이 만료된 2015년 매출은 200조가 됐었다. 홍보 10년의 첫 단추가 바로 1000억도 안되는 저렴한 비용으로 구매한 파란색이었던 것이다.

 

삼성의 사례에서 봤듯이 색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특정 색을 소유하고 선점하기 위해서는 기존 색의 연상 이미지를 밀어내고 대체할 만큼 천문학적인 비용을 효과적으로 투입해야 가능한 일이다. 코카콜라의 빨간색, 네이버의 초록색 역시 하루아침에 공짜로 얻어진 것이 아님을 모두가 알고 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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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팬톤’(PANTONE)이 아니다: 색을 다루는 무게와 책임

다시 서울의 색으로 돌아가 보자. 서울은 ‘팬톤’과 같은 색채 전문 기관이 아니다. 색은 도시의 유전자와 같은 언어다. 팬톤은 전 세계 디자이너와 기업들이 주목하는 색채 권위 기관으로, '올해의 색'을 발표할 때 세계 패션, 화장품, 자동차, 가구 산업까지 실질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독보적 존재다. 팬톤은 오랜 시간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투자해 색을 정의하고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권위를 구축해왔다. 

 

반면, 서울은 팬톤이 아니다. 색에 대한 주체성, 논리, 인프라, 활용 전략이 모두 부재한 상태에서, 단순한 홍보성 이벤트로 색을 지정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경솔한 일이다. 한강 다리와 남산, DDP에 분홍 조명을 비춘다고 해서 서울의 색이 될 수는 없다. 색은 표현의 일관성과 지속성이 필수이며, 기능성과 감성을 통합한 전략적 설계가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도시의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내년에는 새로운 '서울의 색'을 충분한 논리 없이 또 발표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색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색은 대화가 되어야 한다. 일방적인 선언은 기호일 수는 있어도, 언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서울의 색, 꼭 사용해야 한다면: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래도 써야 한다면 색을 특정 대상 포인트로 한정해, 스토리와 함께 전략적으로 활용해 보면 어떨까?

서울이 정말 '서울의 색'을 사용하고자 한다면, 의욕에 넘친 감성적 선언이 아니라 철저한 전략과 준비가 필요하다. 색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도시를 조심스럽고 치밀하게 설명하는 언어다. 기억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활용 플랫폼과 지속적인 스토리텔링이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

 

대만 타이베이의 사례를 보자. 타이페이 어느 장소에나 보인다고 하는 최고층 타이페이 101빌딩 꼭대기 조명은 매일 요일에 따라 7가지 무지개 색으로 순차적으로 변한다. 이 단순한 장치가 시민들에게 하루의 리듬과 감각을 체험하게 하고, 공간과 감정을 공유하는 도시적 소통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7일이라는 작은 주기가 1년, 10년, 100년 동안 반복될 것이다. 그러면서 타이베이 시민과 세계 각국 방문객들의 기억 속에 도시 스토리로 자연스럽게 축적되는 것이다.

 

서울 역시 색을 활용하려면 타이페이 사례처럼 특정 접점에 경제적 가치와 상징성을 연결하여 리듬처럼 일관되게 적용하고, 장기적인 브랜딩 전략으로 구축해야 한다. 서울과 같이 다양한 색이 넘치는 도시에서 단색이 아닌 ‘배색을 통해’ 상징적 공공시설물, 교통수단, 공공자산 등에 치밀한 계획아래 창의적 전략을 세우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며 경제적일 것이다.

 

색은 일관성과 지속성, 기능성과 감성의 통합적 설계를 통해서만 도시 정체성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선언이나 일시적 조명 변경으로는 색이 기억될 수 없다. 도시의 색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쌓이고 경험이 축적되며 시민들의 자발적 공감을 통해 길러져야 한다.

 

서울시는 시민의 삶과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견되는 색을 존중하고 키워나가야 한다. 색은 감정이며 기억이고, 도시의 언어이자 시민의 정체성이다. 서울의 색은 어느날 갑자기 '만들어져 선포되는 것‘이 아니다. '길러지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 서울에 필요한 것은 '색을 발표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서울의 색을 찾기 위한 깊이 있는 연구와 축적의 시간'이다. 도시의 색은 조급함이 아니라, 깊은 성찰과 진정성 있는 시간 속에서만 탄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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