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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공간’의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 드루킹 1심 판결과 네이버의 선택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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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2월05일 17시05분
  • 최종수정 2019년02월05일 17시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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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치와 불화(不和)했던 인터넷은 언제 정치와 화해(和解)하는 길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인가. 설 명절 직전인 지난 1월말,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터넷 정치에 관한 뉴스 두 개가 우리에게 전해졌다. 

 

우선 1월 30일,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의 1심 재판이 선고됐다. 19대 대선 등을 대상으로 댓글 조작을 한 혐의를 받는 '드루킹' 김동원 씨가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김경수 경남도지사도 드루킹 일당의 댓글 조작에 가담한 공모관계가 인정돼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아 법정구속 됐다. 

물론 1심 재판의 결과이고 2심과 3심이 남아 있지만, 1심 판결문에 담긴 내용은 그 자체로도 충격적이다. 파장도 컸다. 김 지사와 드루킹은 항소했다. 여당은 ‘재판적폐 대책위’를 만들고 "양승태 적폐 사단의 조직적 저항이자 보복"이라며 사실상 '재판 불복'을 선언했다. ‘법관 탄핵론’까지 제기했다. 야당은 지난 대선의 정당성을 거론하며 공세에 나섰다.

재판 불복, 대선 불복, 삼권분립 침해 문제에 대한 논의는 일단 미뤄두고, 여기서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터넷 정치라는 근본문제에만 집중해보자.

 

‘최악의 특검‘이라는 비판을 뒤집고 ’살아 있는 권력‘을 잡는데 성공한 허익범 특검은 이번에 재판부로부터 자신이 제기한 공소사실의 대부분을 인정받았다. 공소내용은 다시 보아도 충격적이다. 드루킹 일당은 2016년 12월∼2018년 3월 네이버를 포함한 포털 3사의 기사 8만 여개에 달린 댓글 140여만 개에 대해 부정한 방법으로 9천900만여 건의 공감, 비공감을 클릭했다. 그리고 이중 김 지사가 공모한 것이 8천800여만 건이라고 특검은 주장했다. 1심 재판부가 이런 내용을 대부분 받아들인 것이다. 수십, 수백도 아닌, 무려 8만, 140만, 9천900만이다.

 

"포털 사이트의 업무를 방해한 것에 그치지 않고 온라인상 투명한 정보교환과 건전한 여론 형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선거에서 왜곡된 여론을 형성해 위법성이 중대하고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

 

이런 재판부의 질타가 아니더라도, 이번 드루킹 특검의 1심 재판 결과에 담긴 내용은 한국 민주주의를 뿌리에서부터 위협하는 인터넷 댓글 조작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앞으로 2심과 3심 재판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최소한 우리의 민주주의 제도에 이런 ’치명적인 취약점‘이 존재하고 있다는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이 급소를 공략해 선거에서 부당한 이득을 보려는 시도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 유혹을 어느 정당이, 어느 정치인이 이겨낼 수 있겠는가.

 

1월 31일,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의 1심이 선고된 다음 날, 국내 넘버원 포탈 네이버 관련 뉴스가 전해졌다. 네이버가 4분기 실적 발표 자리에서 “베타테스트 중인 네이버 신규 앱을 구버전에서 함께 쓸 수 있도록 2월 초에 iOS용 듀얼 앱을, 4월쯤엔 안드로이드용 듀얼 앱을 공개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처럼 네이버가 현재의 구버전과 준비 중인 신버전을 함께 쓰는 ‘듀얼 앱’을 내놓겠다고 발표하자, 일각에서 네이버가 ‘편집권을 내려놓겠다’는 뉴스 정책을  후퇴시킨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네이버는 지난해 10월 모바일 개편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뉴스 편집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밝혔었다. 그리고 올해 상반기 중에 독자의 선택권을 강화하고 네이버의 뉴스 취사선택을 포기하는 신버전 앱을 내놓겠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기존의 구 버전도 함께 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힘으로써 뉴스 편집을 계속 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물론 신버전 앱 출시로 인한 고객의 불편과 혼란을 고려한 네이버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렇더라도 편집권을 포기하는 신버전 앱만으로의 전면 전환을 언제까지 시행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일정을 밝히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사실 네이버는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 근본적으로 ‘뉴스 소비 공간의 포탈 집중화’를 개선해야 한다. 이번 드루킹 1심 재판 결과에서 ‘민주주의의 적’들의 존재와 우리 정치 과정의 취약점이 분명히 드러났으니,  제2, 제3의 드루킹들이 댓글 조작을 지금처럼 손쉽게 할 수 없도록 네이버가 앞장 서서 인터넷 환경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초집중되어 있는 뉴스 소비 공간을 지금처럼 그대로 두어서는, 또 등장할 다른 드루킹들의 댓글 조작 시도를 기술적으로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독자가 포털의 뉴스를 누르면 해당 언론사로 넘어가서 기사를 읽고 댓글도 달게 하는 아웃링크 시행을 포함해, 현재의 뉴스 소비 공간의 집중을 완화시켜야 한다.

 

지난 1월 30일과 31일 전해진 두 개의 뉴스. 우선 여당이든 야당이든, 진보든 보수든, 정치권은 김 지사의 최종심 결과와는 관계없이 이번 1심 재판 결과 드러난 한국 민주주의의 치명적인 취약점을 없앨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시행해야 한다. 

 

네이버도 격동의 시기에 ‘애매함의 정책’에 안주하려 하지 말고, 자사의 공간이 인터넷 댓글 조작 일당에 악용되어 민주주의의 근본을 훼손하고 공동체를 혼란에 빠뜨리지 못하도록 선제적이고 적극적으로 뉴스 소비 공간 개편에 나서야 한다. 핵심은 조작 시도 방지를 위한 ‘댓글 공간’ 전면 개편이다. 

그래야 한국의 정치도 살 수 있고, 네이버를 포함한 한국의 인터넷 비즈니스도 번영할 수 있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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