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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kyo Watch] 미·일 무역협정 체결의 이면(裏面)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9년10월17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9년10월16일 10시44분

작성자

  • 이지평
  • 한국외국어대학교 특임강의교수

메타정보

본문

“WTO의 차별적 지역무역협정 기준 충족 못해” 논란

 

지난 9월 25일에 미일 양국 정상은 무역협정(‘일본과 미국합중국간의 무역협정’)에 최종합의하고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내년 대선을 고려하는 미국 트럼프 정권으로서는 일본 농업시장의 개방으로 농가의 지지 확보가 급한 상황이었는데, 사실 양국은 지난 4월부터 협상을 개시한지 5개월 만에 합의에 도달했다. 협정 내용은 △ 공업품 △ 농산물 △ 디지털무역 규칙 등 3개 분야로 구성되고 있다. 

 

일본정부는 이번 협상을 당초 ‘미일물품협정(TAG : Trade Agreement on Goods)'이라고 해 왔으나 미국 측에서는 이러한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으며, 최종 결과도 서비스 분야를 포함한 무역협정이 되었다. 다만, 이번 협정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인정하고 있는 차별적인 지역무역협정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규칙 위반이라는 비판이 일본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WTO에서는 차별적 대응으로 인한 역외국의 피해보다 협정으로 인한 무역확대 효과를 높여서 역외국에게도 간접적인 혜택을 주기 위해 무역협정은 거의 모든 품목을 포함하고 상당히 자유화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규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미일 양국이 체결한 협정에서는 양국무역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자동차와 그 부품이 제외되었으며, 자유무역협정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스즈키 동경대학 교수는 ‘이번 합의는 명백한 WTO 위반이며,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대책에 일본이 가담한 것이며, 전후 구축해 왔던 세계의 무역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鈴木宣弘, 日米貿易協定はWTO違反 : 國會承認は違法, 2019.10.3,  https://www.jacom.or.jp/column/cat647/). 

 

일본은 미국이 자동차 관세를 25%로 올리겠다는 위협을 가하는 가운데 이를 피하겠다는 목적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으로서는 이번 협상에서 미국이 이탈하게 된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방자협정)의 조건을 기준으로 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CPTPP에서는 자동차 관세를 30년간에 걸쳐서 철폐하기로 했으며, 미국의 보통자동차 2.5%, 대형차 25%의 관세 인하가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은 후퇴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으로서는 CPTPP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의 축산물 시장에서 미국 농가는 관세율이 떨어진 호주 등의 경쟁국에 비해 열세가 된 상황의 개선이 시급했다. 트럼프 정권의 지난 번 선거의 기반이 된 미국 중서부 지역의 농가 지원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번 미일 무역협정에 따라 일본의 쇠고기 관세율이 38.5%에서 2033년까지 9%로 인하하게 되는 등 돼지고기, 치즈, 와인, 올렌지 등의 관세가 CPTPP 협정만큼 인하하게 된 것은 미국 측의 성과가 컸다고도 할 수 있다. 

 

일본정부는 쌀의 관세율을 현행 341엔/1kg를 유지하고 CPTPP협상 과정에서 미국에게 제시되었던 연간 7만톤의 무관세 물량 한도도 이번에 제공하지 않게 된 것을 성과로서 강조하고 있으나 과거와 달리 미국산 쌀의 대일경쟁력이 약해져 이미 존재하는 미국산 쌀에 대한 관세 혜택 수입의 연간 한도 물량도 채우지 못한 상황이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일본 쌀 시장의 개방을 강하게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미국의 쌀 생산지는 트럼프의 선거 기반이 될 수 없는 캘리포니아) 이를 일본정부의 성과로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글로벌 무역 질서상의 ‘보호주의와 무역부진’ 효과 발생 우려

 

이번 미일 무역협상은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해 왔던 일본정부 입장에서 보면 분명한 후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1위, 3위 경제대국의 무역협정이 초라한 내용에 그친 것은 앞으로 신흥국 등의 무역협정을 견제하는 데에서도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 각 지역에서 역외 국가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저수준의 무역협정이 남발되는 계기가 될 경우 세계 무역 질서상의 보호주의와 무역부진 효과가 발생할 우려도 있다.

 

단, 이러한 비판을 우려해 일본정부는 이번 협정을 WTO가 인정하고 있는 ‘중간협정’ 성격의 것이라고 주장해, 협상 막바지에서 후속협상의 여지를 포함하기 위해 주력했다. 또 미국정부는 자동차에 관한 추가 관세 인하 협상을 거절하는 자세가 강하며, 이미 일본이 농산물을 양보해 협상 카드가 한정된 상황에서는 어려움도 있다. 그리고 WTO가 인정하는 중간협정은 추가 협상 기간이나 계획, 일정 등이 구체적으로 정해야 하지만 이번 경우는 그러한 내용이 공표되어 있지 않아서 WTO의 취지와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추가 협상이 이루어질 경우 일본의 서비스 시장 개방 확대, 각종 규제 완화 등에 대한 미국 측 요구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또한 일본 야당 측에서는 이번 미일협정에 의한 무역확대 효과, 경제적인 효과가 무엇인지를 추궁하자 일본정부는 신속하게 분석해서 결과를 제시하겠다는 답변에 그쳤다. 미일무역협정과 같은 큰 정책에 있어서 그 경제적 효과를 사전에 계량 분석, 정성적 분석 등을 통해 검토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우리나라에서도 그러한 신중한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본정부의 이번 자세는 미숙한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무역 규칙 합의는 주목해 볼만

 

다만 이번 협정에서 주목되는 것은 디지털 무역 규칙에 관해서 미일이 합의했다는 점이다. 디지털 산업이나 국경을 초월한 데이터의 취급에 관한 국제적인 규칙을 선행적으로 만들려는 의미가 있다. 전반적으로 보면 디지털 무역의 자유화 방향을 강조하면서 미국 IT업계에게 혜택이 많은 결과가 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번 협정에서 디지털 데이터, 컨텐츠의 다운로드에 대해 국경을 초월한 과세나, 금융을 포함한 각종 데이터를 현지에 보존해야 한다는 의무화(서버를 현지 국가에 두어야 한다는 규제 등) 정책을 금지하는 규정이 CPTPP 보다 엄격해졌다. 또한 기업에 대해 양국 정부는 자국 시장을 무기로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소스코드 등의 공개를 요구하면 안 된다는 규정도 포함되었다. 기업의 자유로운 디지털 사업 및 무역활동을 촉진하여 중국 등 신흥국을 포함한 각국의 규제를 견제하려는 의미는 적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보호주의가 강화되어 가는 세계경제의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WTO의 활성화가 필요하지만 뉴라운드 등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번 디지털 무역을 포함해서 지적재산권 등 각종 개별 현안에 대한 글로벌한 규칙을 합의해 나가려는 분야별 접근방식을 다방면에서 착실히 추진하고 성과를 축적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ifsPOST> 

  • 기사입력 2019년10월17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9년10월16일 10시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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