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고시원 화재, 숫자로 보는 ‘피해 불평등’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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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권은 곧 생명권이다
빈곤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 가난은 쉽게 보이는 것들이었다. 골목길을 지나 산동네를 올라가면 달동네가 나왔다. 판자촌들이 모여 있는 가난의 주거지는 우리 곁에 있었다. 반면, 지금은 가난이 드러나지 않는다. 말끔한 도시의 건물에 새겨져 있는 고시원에, 원룸에, 찜질방 한 편에 힘든 몸을 좁게 누인 사람들이 숨어 존재할 뿐이다. 실체하는 형상에서 비가시적인 모습으로 변하면서 가난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가난은 언제 어디에나 있지만 더 이상 그 모습을 쉽게 찾지 못하는 이유다. 비가시적인 빈곤이다 보니 사회적 관심이 적고 정책적인 우선순위에서도 배제되면서 신(新)주거 빈곤이 생겨났다. 국일 고시원의 화재 는 주거의 사각지대가 커지면서 발생한,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르는 ‘사건’이다.
79, 73, 63, 58, 56, 54, 35... 서울시 종로구 고시원 화재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나이다. 화재로 희생된 사람들을 비롯해 탈출한 생존자들은 대부분 외국인 유학생, 일용직, 기초생활수급자 등 사회취약계층의 사람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화재가 난 건물은 왜 고시원이며, 왜 종로의 중심지였는지, 그곳에서 왜 불이 났는지. 왜 고시원과 저렴한 여관에서 화재와 인명피해가 발생하는지. 왜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는지, 죽음이 증언한다.
종로, 고시원, 피해자
고시원, 종로, 일용직과 저소득층의 피해자들. 우리가 이 참사를 겪으며 다시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하는 것들이다. 우선 고시원은 보통 보증금이 없고 임대료가 저렴하다. 일반 원룸과 달리 별도로 부담해야 하는 공과금이 없는 경우가 일반적이고 최소한의 식사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저렴한 비용이 이들을 고시원을 이끌었다.
종로는 서울지하 1,2 호선의 역세권인 동시에 종로 3가나 서울역 주변 밀집해 있는 인력사무소와 거리가 가깝다. 일용직 노동자는 새벽에 일어나 최대한 빨리 인력사무소에 도착해야 한다. 대부분 일을 배정해 주는 과정이 선착순이기 때문에 인력 사무소와 가까운 곳에, 그리고 용이하게 도착할 수 있는 곳에 거처를 정해야 한다. 교통비도 아끼며 인력사무소와의 좋은 접근성으로 빠르게 도착하는 곳을 찾다 보니, 그 끝에는 종로 국일 고시원이 있었을 것이다. 국일 고시원의 화재 사망자들이 대부분 일용직 노동자였던 이유도 일터를 매번 옮겨 다녀야 하는 작업 환경 속에서 ‘경제적’으로 최선을 선택의 결과가 고시원이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고령자들이었다. 도심 고시원 입주자의 평균 나이가 36.4세인 반면 피해자가 대부분 50대와 70대였던 이유는 노인고용 문제에 있을 것이다. 심각한 노인빈곤 속에서 계속해서 노동을 해야만 하는 노인의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종로 고시원의 화재 피해자 나이가 평균 고시원 거자주의 나이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옥고, 주거의 사각지대
전국적으로 228만 가구가 최저 주거기준 미달이나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에 살고 있다. 그 중 고시원과 같이 집의 형태가 아닌 곳에서 살고 있는 가구는 약 38만 가구로 추정된다. 고시원은 일반적인 주택이 아니다. 주거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열악한 거처인 비주택의 유형 중 하나이다. 비주택에는 거리, 노숙인복지시설, 비숙박용 다중이용업소, 쪽방, 비닐하우스촌, 고시원, 여관 등이 포함되는데 이 중 고시원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적은 비용으로 주거를 해결하려는 ‘주거취약계층’이 고시원에 몰린다. 최근 주거환경을 개선한 ‘고시텔’ 등의 시설이 확대되고 있지만 이들이 주로 찾는 곳은 전통적 개념의 저렴한 고시원이다.
고시원의 주거환경은 열악하다. 거주자들은 ‘감옥’에 비유한다. 자기 몸 하나 누이기 힘든 좁은 공간, 식사·배변 등 기본적인 의식주 생활을 모르는 사람들과 공유해야 하는 어려움은 흡사 감옥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고시원은 과거 사법시험 등을 준비하던 고시생들이 최소한의 의식주만 해결하며 공부를 하기 위해 살면서 그 이름이 붙여졌다. 주로 대학 주변이나 노량진·신림동 같은 고시학원 밀집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이후 사법고시 등이 폐지되고 ‘고시’의 개념이 옅어지면서 고시원을 찾는 사람들의 부류도 달라졌다. 지속적인 경제 불황과 취업난, 1인 가구가 증가하며 대도시 내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주거지를 찾는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나 취업준비생, 특히 일용직 근로자들이 고시원으로 몰렸다.
왜 그들인가, 왜 그들이여만 했는가
사회는 자연재해나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건강 문제 혹은 인명 피해가 생기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자연재해의 피해는 평등하지 않다. 고급주택의 아파트보다 고시원에서 발생하는 화재가 더욱 빈번한 이유는 고시원 거주자들에게 주어지지 않은 안전의 보장과 주거권, 나아가 부족한 사회자본 때문이다.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은 생애 과정 측면과 삶의 조건 측면에서 많은 요소를 포함한다. 세계보건기구는 특히 아동기 환경, 공정한 고용과 괜찮은 근로 환경, 주거 환경, 보편적 의료보장을 포함한 사회보장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국일 고시원에 거주하던 피해자가 일용직 노동자가 아니고, 일정하게 고용된 형태의 정규직 노동자였다면, 그래서 바뀌는 작업 환경에 따라 기업에서 제공하는 주거 공간이 있었다면 그는 고시원을 ‘집’으로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의 건강은 좀처럼 주목받지 못한다. 몸은 사회를 기록한다.
쉽게 보이지 않는 빈곤인 만큼 그 곳이 거주자들을 보호하는 법은 미비했다. 2007년에 지어진 건물, 좁은 방에서 겨우 경우 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정부의 고시원에 대한 관리 감독 및 규제는 부실하고 소홀했다. 해당 건물은 과거에 지어져 스프링클러 장치가 없었고 자동경보설비등 정도만 갖춰진 상태였다. 정부지원 차원에서 스프링클러 장치를 지원했지만 고시원 건물주는 이를 반대했다. 건물주의 ‘건축적 효용성’에 비해 중요한 문제인 ‘거주자들의 생명권’을 위해 설치를 강요하고 규제하는 법은 부재하다.
미국에서는 카페 테이블 배치도 평면도로 만들어 승인을 받는다. 1∼2년 주기의 검사에서 테이블이 하나라도 늘어나면 벌금 및 영업정지 처분을 받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건물의 사용 과정에서의 관리를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건물을 건축하고 준공을 허락하는 과정도 느슨할 뿐만 아니라 건물의 용도를 관리하는 시스템도 미비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관습이 이번 종로 화재 사고의 본질이다. 서울시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작년 주거복지 로드맵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 10월24일에는 ‘취약계층 고령자 주거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참사에 미리 대비라도 한 듯이 국일고시원과 같은 주택 이외의 거처에 거주하는 가구에 대한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바탕을 두고 마련한 것이었다. 공공임대주택과 주거급여 대상자를 확대하고 주거환경 개선을 지원하는 다양한 정책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최저주거기준이나 비주택 거주자, 홈리스 문제를 어떤 기준과 원칙에 따라 해결할 것인지는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최저주거기준 개선안으로 면적 기준을 개선하고 일조량이나 층간소음 등을 반영하겠다고 밝혔지만, 114만에 이르는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를 언제까지 얼마나 줄일지에 대해 목표나 실행프로그램은 없다. 또한 이번에 참사가 빚어진 노후 고시원과 쪽방을 공공리모델링하거나 매입해서 활용하는 사업이 제시되어 있지만, 안전이나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를 폐쇄하거나 개선이행을 명령하는 ‘분명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공공이 노후 고시원이나 쪽방을 매입해서 리모델링한 후에 임대하는 시범사업도 건물소유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강행할 방법이 없다. 특히 쪽방촌의 경우 개별적인 집수리나 리모델링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필지 형태나 건물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소규모라도 집단적인 정비가 필요한데 여전히 집수리나 리모델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다같이’ 고민해야 한다
전국 6%, 서울시 7.4%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공공임대주택 비중을 고려할 때 지속적으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열악한 주거 환경 거처에 살고 있는 수많은 홈리스와 주거빈곤자들의 주거수준 향상을 위해 명확한 목표와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쪽방촌이나 노후 주거지에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과도하고 폭력적인 재개발, 뉴타운사업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보전과 관리 중심의 도시재생사업에 치중하면서 방치되고 있는 불량주거지가 너무 많다. 사실상 중단된 주거환경개선사업이나 새뜰마을사업처럼 노후 주거지를 정비하는 방안들을 도시재생사업과 결합시켜야 한다.
문제는 주택시장의 안정성을 넘어 주거권을 보장하는 정책의 전환이다. 지역단위에서 공공임대주택, 주거급여, 취약계층 지원사업, 주민공동체 지원사업 등이 주거권 보장이라는 큰 틀에서 연계되어 추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단위에서 주거복지센터, 주거약자지원센터, 공공임대관리센터, 도시재생지원센터 등이 협력하는 거버넌스가 구축되어야 한다.
고시원과 같은 사회취약계층을 위한 대체 주택이 부동산 투자자들의 욕망에 그대로 노출되는 현 상황에 대한 해결책이 우선이다. 노동자의 현실을 고려한 공공주택, 주거권이 생명권임에 대한 명시화와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나가야 할 것이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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