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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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범죄,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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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5월24일 17시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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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이 39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식에 참석해 “학살의 책임자, 암매장과 성폭력 문제, 헬기 사격 등 밝혀내야 할 진실이 여전히 많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8년 3월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1980년 광주 5·18 민주화운동 당시 국가권력에 의한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따른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암매장 사건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규명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특별법 제정 후 1년이 지난 지금, 진상조사규명위원회가 출범조차 못하고 있다. 

 

국가범죄와 과거사 청산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범죄는 존재할 수 없다. 국가범죄란 국가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유린 행위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정부범죄, 인권범죄, 국가에 의해 조종된 범죄나 중대한 인권침해 등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부당한 공권력을 행사한 군부세력은 국가범죄의 명백한 가해자다. 계엄군의 시민학살로 인한 사망자 및 부상자, 후유증으로 인한 사망자, 구속과 고문 피해자, 실종된 행방불명자들은 국가범죄의 무고한 피해자다. 그러나 2001년 대법원은 5·18 피해자 등 국가배상청구를 기각했다. 1995년 내란혐의 등으로 고소·고발된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롯한 신군부 인사들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처분은 잘못된 검찰권 행사이지만, 위법하지는 않기에, 국가는 고소인 등에게 손해배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판결의 요지이다. (대법원 99다17302) 

 

한국은 근현대사에서 정치적·역사적으로 격변을 겪은 나라다. 그러나 그에 비해 한국의 과거사 청산작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과거사를 청산하는 작업은 우리 사회의 아픈 기억을 들춰내어 아직 낫지 않은 상처를 자극하는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사의 아픔은 시간이 지난다고 하여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사는 더욱 고착화되며, 시간이 지체될수록 그것을 바르게 정리할 기회가 줄어든다. 과거사 정리는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불행을 치유하는 데 목적이 있다.

 

과거사 청산의 원칙 

 

1) 진실규명

과거사는 올바른 방식으로 청산되어야 한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광주시민 대학살은 독재정권의 가장 가혹한 탄압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올바른 청산은 우리 사회가 국가범죄를 처벌하고 바로잡으며 되풀이하지 않게 할 본보기가 될 것이다. 과거사 청산의 가장 중요한 첫 단계는 진실규명이다. 희생자와 유가족 그리고 국민들은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에 따른 진상조사규명위원회 출범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  39년이 지난 지금까지 광주학살이라는 국가범죄 희생의 양적·질적 규모에 대한 국가 차원의 공식 조사가 발표된 적이 없다. 계엄군의 시민에 대한 최초 발포와 책임자 및 경위, 집단학살지 및 암매장지의 소재, 행방불명자의 규모 및 소재 등에 대한 진상 규명이 시급하다.

 

2) 책임자 처벌과 피해 배상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상 규명은 책임자에 대한 처벌로 이어져야 한다. 독재에 협력했던 세력이나 헌정파괴자 그리고 국가범죄자들이 아직도 정치계에서 유력한 세력으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최초 발포 명령 지시자, 헬기 사격 명령자 등에 대한 철저한 진위조사로 가해자를 가려내고 이에 대한 처벌이 반드시 내려져야 한다. 책임자 처벌과 더불어 피해자에 대한 배상도 이뤄져야 한다. 지금까지 국가범죄의 불법행위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배상책임은 회피해왔다. 현행법상 유가족들이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각각의 사건에 대한 개별· 집단 소송밖에 없다. 올바른 과거사 청산을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을 통해 포괄적이고 일괄적인 배·보상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국가는 과거에 행한 불법행위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그 책임을 지며 사회적 정의를 회복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3) 회복과 정신계승

국가폭력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은 금전적인 차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치료적 배상을 통한 피해 회복도 중요하다. 5·18의 정신적 충격과 육체적 고문으로 인한 정신질환 사례가 상당히 많이 보고되고 있다. 국가폭력의 경험 및 목격으로 인한 정신질환에 대한 증명 책임이 시민에게 떠넘겨져서는 안 된다. 시민의 증명 책임 완화, 국가의 반증의무 강화를 통해 국가범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은 국가가 져야 한다는 원리를 분명히 해야 한다. 

 

과거사 청산의 마지막 단계는 정신계승이다. 가해자에 대한 상징적 처벌이나, 피해자에 대한 금전적·치료적 배상은 국가범죄에 대한 완전한 청산이라 할 수 없다.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과 그 의의에 대한 올바른 교육과 재확인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5·18 민주화운동을 부정, 왜곡, 날조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대응해야 한다. 국가도 범죄의 주체이자 수단일 수 있다는 점을 의식화하여야 하며 이에 대한 국가 공동체의 지속적인 반성과 사과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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