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일요일마다 대형마트에 가고 싶어요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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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10월25일 18시08분
  • 최종수정 2019년10월25일 18시08분

작성자

  • 한울
  • ifs POST 청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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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지난 이야기이긴 하지만 대형마트에서 종이상자 이용을 금지한다는 뉴스가 있었다. 장바구니 사용을 권장하기 위해 도입되었다는 내용을 듣자마자 담당자에게 진심이냐고 되묻고 싶었다. 예전부터 그랬다. 정부는 항상 대형마트에 대해서만 유독 불합리한 정책만 도입하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을 살리겠다는 취지로 여러 규제가 시행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월 2회 의무 휴업이다. 

 

오른쪽 다리가 가려운데 왼쪽 다리를 긁는 행정


대형마트의 고객을 전통시장으로 유도하겠다는 취지로 시행된 이 정책은 당연히 실패로 끝났다. 이유는 간단하다. 소비자들이 토요일에 대형마트에 가기 때문이다. 그때 미리 가서 물건을 넉넉히 사면 굳이 전통시장을 갈 필요가 없다. 가더라도 휴무의 적용을 받지 않는 편의점이나 중규모 슈퍼마켓을 선택한다. 전통시장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전통시장이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차라리 중대형 슈퍼마켓을 찾는다. 실제로 중소기업학회와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 교수 연구팀이 2018년 발표한 ‘상권 내 공생을 통한 골목상권 활성화 방안’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 50억 원이 넘는 대형 슈퍼마켓 점포 수는 2013년 대비 123% 증가했지만, 5억 원 미만의 소규모 슈퍼마켓 점포는 27.9% 감소했다. 

 

소비자는 편리한 쇼핑과 합리적인 가격을 추구한다. 따라서 정말 필요한 것은 전통시장이 자립하는 것, 혹은 편리함 대신 전통시장이 대신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더불어 영업 규제와 입점 규제를 철폐하여 대형마트가 다양한 혁신과 경영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부는 소비자의 수요에 따라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소비 흐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공급자의 편에서 분배와 정치적 구호를 내세워서도 안 된다. 대형마트의 혁신과 경영전략이 반복될수록 그 혜택은 소비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솔직하게 직면하고 인정해야 하는 것


더 나아가서 직관적으로 몇 가지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첫째, 필연적으로 전통시장은 재개편되어야 한다. 전통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마다 느끼는 불편함은 누구나 느낄 것이다. 카드결제를 거부당할 때도 있으며, 물건의 품질도 보장할 수 없다. 가격표가 없을 때가 많아 정가를 확인하기도 어렵다. 주차할 공간도 적다. 사실 이런 전통시장들은 자연스럽게 퇴출되거나 자립을 위한 노력으로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새로운 경쟁 속에서 도태를 두려워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언급하는 것을 나쁘게 본다면 그 피해는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오게 된다. 궁극적으로는 전통시장도 소비자에게 철저하게 외면받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제 혁신 없는 성장은 없으며, 도태와 아픔 없는 혁신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둘째, 유통의 흐름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대결로 바뀌었기 때문에 대형마트를 규제하는 것은 더더욱 무의미하다. 대형마트의 고객을 전통시장으로 몰아넣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주요한 소비수단이 된 온라인쇼핑으로 해외직구까지 손쉽게 할 수 있는 시대다. 이에 발맞추어 오프라인 매장이 제시할 수 있는 경쟁력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한 공간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오프라인에서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품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업 규제와 입점 규제는 대형마트의 발목을 묶고 있다. 규제 때문에 소비자는 일요일에 마트에서 쇼핑한 후 편안하게 카페에서 쉬거나 밥을 먹을 소비의 기회를 상실하고 있고, 대형마트는 창고형 대형마트를 확장하여 가격 인하를 도모하는 새로운 전략을 추구할 기회와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

 

셋째, 일자리와 경제를 견인하는 것은 결국 대형마트라는 사실이다. 대형마트 규제는 곧 대형마트와 거래하는 상인들,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도매로 사서 판매하는 소매업자들, 자영업자들, 그리고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들도 서민이다. 골목상권을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유통의 혁신을 가로막고 투자가 위축된다면 그로 인해 발생할 피해가 바로 이들에게 돌아간다는 이야기이다.

 

나 3년 전 역시 마트에서 일을 해봤다. 오전 7시부터 13시까지 근무했고, 14시까지 초과근무를 하게 되면 정확하게 1.5배의 임금임 추가되었다. 매주 5~7번 쉴 수 있었고, 오전에만 바짝 근무하면 오후에는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학교와 여행도 병행하며 일했다. 2주에 한 번씩 쉴 수 있어서 좋지 않았냐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 모르는 이야기다. 마트는 기본적으로 24시간 내내 정비와 진열이 이루어져야 하는 곳이다. 강제적으로 일요일에 쉬더라도 이는 변하지 않는다. 휴무 전 토요일, 월요일도 덩달아 바빴다. 무엇보다 매출이 줄어들고 최저임금문제도 맞물리면서 퇴직한 오전 근무자의 대체자도 뽑지 않았다. 일자리는 일자리대로 줄어들고 남아있는 사람은 더 힘들어지는 상황을 직접 겪은 것이다. 

 

전통시장의 몰락을 감수해야 비로소 결과가 보일 것


많은 이들이 전통시장의 콘텐츠 차별화를 통한 개성과 정체성 확보를 전통시장의 경쟁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콘텐츠 차별화는 어디까지나 관광의 차원에서 부수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문제다. 제일 중요한 문제는 상품에 대한 경쟁력 화보다. 대형마트나 온라인 시장만큼 경쟁력 있는 가격을 제시하거나, 가격 경쟁력이 어렵다면 품질로 승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이룰 수 없으면 자연적으로 도태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그 순간 혁신과 재성장이 시작된다. 사실 대부분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굳이 언급하지 않는다. 그게 이상했다. 한 번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간단했다.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가 크게 불편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정착된 대형마트 휴무 규제에 대해 말하게 되면 별난 사람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적당히 불편하니까, 나는 별난 취급 되기 싫으니까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전통시장의 도태는 자연스러운 결과이자 현상이며, 이것을 거스를수록 더 나은 부의 창출은 요원해진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는 함부로 설정된 공익을 명분으로 재산권과 개인이 영업할 권리를 박탈하는 경제적 폭력이기도 하다. 따라서 유통규제에 대한 철폐가 시급히 해결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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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10월25일 18시08분
  • 최종수정 2019년10월25일 18시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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