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진해의 주유천하> 월북(越北)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0년09월28일 12시00분
  • 최종수정 2020년09월28일 12시18분

작성자

  • 김진해
  • 경성대학교 예술종합대학장

메타정보

  • 11

본문

월북을 밥 먹듯이 하는 친구가 있었다. 얼마나 자주 밥을 먹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요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다시 예술대학원 도예과에 진학 한 친구다. 흙의 화공학적 공부를 한 후 예술가의 길로 접어든 선배다. 객기 부리던 시절 우리는 비가 억수로 오던 어느 날 인사동 막걸리 집에서 거나하게 술을 마셨다. 통금(通禁)이 있던 때다. 근처 여관에 가서 자야했지만 그날따라 우리는 택시를 대절해서 그의 집으로 달렸다. 

경기도 마석 산중의 집은 잠을 잘 수 있는 작은 슬래브 단칸방이 있었고 그 옆 비닐하우스가 도자 작업실이었다.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그는 군대 시절의 얘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물론 그는 성공적인 도예가의 길을 걷다가 홀연히 사라져 남방불교의 승려가 되었고 얼마 전 입적(入寂)했다.

 

달빛 없는 칠흑의 어둠을 틈타 그는 휴전선을 넘어 우리 측 공작원을 북에 데려다 주고 다시 돌아오는 임수를 띈 특수요원 출신이었다고 털어 놓았다. 선배의 말을 뻥이라고 해도 좋고 사실로 믿어도 좋다.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닐 법도 한 것을 나는 경험한 바 있다. 언제가 그와 술을 마시던 중 건달 두 세 명과 시비가 벌어진 적이 있다. 눈 깜작할 틈도 없이 그의 발차기와 주먹에 덩치 좋은 사내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지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실제 그의 모습은 전혀 예술가 같지가 않다. 짧게 깍은 머리에 어깨는 딱 벌어져서 마치 헤비급 권투선수 마이크 타이슨을 연상시킨다. <실미도> 사건이 있었던 걸 보면 우리도 북에 파견할 특수부대원들을 훈련시킨 건 분명한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과거 남북관계는 지금보다 훨씬 경직되고 내일이라도 북한이 쳐들어올 것 같은 공포감이 여러 번 있었다. 미 푸에블로호 납북사건, 1.21 청와대 습격사건,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아웅산 테러사건 등과 대통령 선거 즈음 나돌던 북측의 남침 위기설 등이다. 당시 야권에서는 안보를 정권 유지의 도구로 이용한다고 강한 비난을 늘 했었던 것 같다. 박정희 시대와 비교하면 지금은 아주 화해 무드다. 한때는 현대그룹의 금강산 관광개발로 남쪽이 북한 구경을 할 기회가 있었지만 나는 금강산 구경의 기회를 놓쳤다. 내 주위의 미국 시민권자나 영주권자들이 북한을 드나드는 것을 본 적이 있었고 나는 그들이 빨갱이들이라 생각했었다. 그런 레드 콤플렉스에 젖어있던 나에게 북한은 항상 위협적 존재였고 적이었다.

 

해수부 소속 어업지도선 공무원이 월북을 했단다. 적어도 군(軍)의 발표는 그러했다. 한쪽에서는 월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군은 왜 그를 월북자라고 굳이 우기는 걸까? 자진 월북하다 총 맞아 죽었다고 발표하면 자신들의 책임이 면피가 될까? 자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이 손 놓고 있었다는 비난이 두려워서인가? 

한심한 처사다. 일전에 국회에서 모 장관이 “소설 쓰고 있네” 라고 해서 입방아에 오른 적이 있다. 실은 “시나리오 쓰시네요”라고 해야 더 맞는 말이다. 소설 보다는 시나리오가 허구를 더 잘 표현하기 때문이리라. 진짜 이번엔 “시나리오 쓰고 있네”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 북남이 서로 장단을 맞추고 있나? 각본대로 발표가 나올 것 같다. 각본은 사실이 아니니 믿을 수가 없지 않나.

 

탈북자들이 한국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와 북한의 실상을 얘기 한다. 한편으로는 한국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탈북자들이 재입북 하기도 한단다. 우리 쪽에서 월북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이번 어업 지도선의 공무원을 군과 정부에서 자진 월북자로 몰고 가는 이유가 궁금하다. 자진 월북이라고 치자. 

생명 존중은 좌우익 불문이다. 어느 쪽이든 살인이나 약탈, 강간, 인권유린 등 금수 같은 범죄를 저지르면 안 된다. 군은 지켜만 볼 뿐 보호하지 못했고 북은 보란 듯이 그를 살해했다. 총살 화형이 전 세계 언론을 타자 며칠 후 그들은 미안하다며 그러나 정당한 절차에 따라 죽였다는 내용을 전했다. 

북의 전통문을 대한민국의 국가안보실장이 대독하는 모습이 가관이다. 웃겨도 한참 웃긴다. 김정은의 말을 왜 우리 안보실장이 대신 읊조리나? 바다 위에서 허우적대는 인간을 향해 총을 난사하고 불태워 없애는 북한은 괴뢰집단인가 국가인가? 거꾸로 묻는다. 자국민 보호 하나 못하는 이 나라도 국가냐? 

<ifsPOST>

 

 김진해(金鎭亥)는 누구?

1993년 영화 '49일의 남자'로 데뷔한 영화감독이자 현재 경성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로 예술종합대학장을 맡고 있다. 연세대학교와 뉴욕테크대학원 (MA)을 졸업하고, 미주 중앙일보 기자·오로라픽쳐스 대표이사·홍익대학교 조형대학 우대겸임교수 등을 거쳤다. ‘디지털 시네마’ ‘시나리오의 이해’ ‘메가폰을 잡아라’ '문화는 정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11
  • 기사입력 2020년09월28일 12시00분
  • 최종수정 2020년09월28일 12시18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