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최협의 박물관이야기 <1> 미국스미소니언 산하 ‘국립자연사박물관’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0년10월24일 18시00분
  • 최종수정 2020년10월20일 15시51분

작성자

  • 최협
  • 전남대학교 인류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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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도에게 <자연사박물관>은 최고의 학습현장이다. 운 좋게 나는 1972년에는 대학원 학생인턴으로, 그리고 1996년에는 풀브라이트연구자로 두 차례 세계최대인 이 자연사박물관에서 학습과 연구의 기회를 가졌다. 1846년에 설립된 미국 국립자연사박물관은 모든 종류의 박물관 포함하여 그 규모와 방문객수에서 세계 최대와 최고를 자랑하며, 매년 48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을 맞는 매우 인기 높은 박물관이다.

 

<자연사박물관>의 인류학 소장품은 <미술박물관>과는 달리 고가의 미술품이 아니라 한 사회의 문화를 보여주는 일상용품이나 민속품이 주류를 이루는데, 이곳의 한국관련 소장품들은 19세기 말 한국에서 활동했던 인사들(외교관, 선교사, 상인, 일반인 등)이 기증한 물건들부터 박물관의 학예사들이 현지조사를 하며 수집한 물건 등 매우 다양하다. 1969년에는 아시아담당 학예관 Dr. Knez가 한국에 와서 김해의 농촌마을에서 인류학조사를 하며 여러 물품을 구입해 2년 뒤인 1971년 워싱턴의 박물관에서 <한국농촌사회의 변화>라는 주제로 기획전시를 열었다(아래의 흑백 사진). 

 

미국자연사박물관에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Dr. Knez 같은 분들의 노력이 있어 지금까지 <한국전시실>이 마련되어 유지되어왔는데, 근래에 미국도 박물관의 재정이 어렵다는 소식이 들려 약간 걱정이 된다.

<자연사박물관>에는 인류학 이외에도 식물학, 곤충학, 광물학, 고생물학, 해양학 등 여러 학문분야의 부서들이 있고, 소장품이 무려 1억 4천만점이 넘어 인근 버지니아에 <연구지원센터>를 따로 지어 유물보관과 연구 활동을 지원한다. 

 

1996년 내가 박물관에 머물 때 와싱턴시의 박물관과 버지니아의 지원센터를 가는 셔틀버스를 타고 매일 출퇴근(?)을 해야 했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소장품 중에는 요강부터 고무신, 조선말의 의복, 대바구니, 통발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잡다한 물건들이 포괄되어있었다. 랜 기간에 걸쳐 수집된 다양한 물건들을 망라해 보고 있노라면 그 당시의 생활상이 어렴풋이 머리 속에 그려지는 경험을 했다. 이때의 자료를 바탕으로 논문을 작성하여 <미국인류학회>와 <Korea Journal> 에 발표한 기억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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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협은 누구?

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을 전공하고 미국 켄터키 대학교에서 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남대학교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문화인류학회 회장, 대통령자문 21세기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부시맨과 레비스트로스>, <다민족 국가의 민족문제와 한인사회>(공저), <호남사회의 이해>(편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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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10월24일 18시00분
  • 최종수정 2020년10월20일 15시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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