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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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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해의 주유천하> 밀양(密陽)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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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11월07일 17시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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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해
  • 경성대학교 예술종합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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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밀양(密陽). 밀(密)의 한자어 풀이는 ‘빽빽하다. 조용하다. 그윽하다. 깊숙하다’ 이런 뜻이 있다. 말뜻대로 밀양은 조용하고 깊숙하고 그윽하고 양지바른 고장이다. 국문학자 P의 안내로 밀양 명례성지를 방문했다. 명례성지는 성 신석복 마르코를 기리기 위한 성당이다. 성당 건축을 승효상이 하고 임옥상이 두상을 조각했다. 

콘크리트로 지은 성당은 웅장하지 않았다. 약간 높은 동산의 지형을 그대로 살려 있는 듯 없는 듯 땅과 조화를 이룬다. 아래로 낙동강이 흐르고 있어 평온한 느낌이다. 그리고 아늑하다. 생긴 땅의 모양을 훼손하지 않고 낮게 지은 성당은 조용하고 겸손하다. 소금장수 신석복이 박해를 받아 순교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명례성당이 만들어졌다. 동네 이름도 멋있다. 명례(明禮). 밝고 예절 바른 동네. 

 

명례에서 차로 10분 밀양역 가까운 거리에 예림서원(禮林書院)이 있다. 점필재 김종직의 사액서원이 자리 잡고 있다. 정남향의 예림서원은 들머리 건물의 이름이 독서루(讀書樓)다. 책 읽는 누각이라는 뜻이다. 책 읽고 공부하는 게 선비다. 본청 강당이 구영당(求盈堂)이다. 학문을 구해 차고 넘치라는 뜻일 게다. 뒤편으로는 유교 전통에 따라 제사 지내는 사당 육덕사(育德祠)가 정양문(正養門) 뒤편에 있다. 올바른 것 즉 도나 인덕을 양육한다는 뜻이다.

 유생들이 기숙하며 공부하는 숙소가 좌우 양편에 있다. 돈선제(敦善齋)와 직방제(直方齋)다. 두 건물 모두 착함과 바름을 간직하며 학문에 매진하라는 뜻일 것이다. 예림(禮林)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김종직의 학풍은 예(禮)가 기본이다. 소학(小學)을 근간으로 인간관계의 예의범절을 중시한다. 예의가 상실된 우리 사회에서 다시금 김종직의 예(禮)를 되새긴다.

 

무오사화(戊午士禍). 1498년 연산군 4년 훈구파 유자광(柳子光) 등이 사림파(士林派)를 제거하면서 거두 김종직을 부관참시(剖棺斬屍)한 사건이다. 그런데 유자광은 왜 반대파의 숙청을 단행했을까? 어느 날 서당에 가니 유자광의 현판이 걸려있자 김종직이 그것을 뜯어내어 박살냈다고 한다. 이에 앙심을 품고 복수를 벼르던 그가 조의제문(弔義帝文)의 사초를 빌미삼아 김종직의 후학들을 능지처참하는 피의 복수를 벌인 것이다. 

문제가 된 조의제문이란 김종직이 세조(수양대군)의 단종 왕위찬탈을 비난하며 지은 글이다. 중국의 초황제 의제가 신하인 항우에게 죽임을 당한 것을 빗대어 세조를 비난한 것이다. 앙심을 품으면 무슨 일이든 못하랴.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성정은 변하지 않나보다. 

당시는 글 하나로 죽임을 당하던 시절이었다. 요즘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니 글 쓸 자유가 있으나 반대파로부터 보복 당하는 것은 지금도 여전하다. 재야 논객 진중권의 비판 한 마디에 당(파) 전체가 나서 공격하지 않나.

 

현 정부는 촛불 시민의 힘으로 탄생했다. 그들 세력들이 부정과 부패를 전방위로 저지르고 있다. 더 캐봐야 알 수 있으나 ‘라임.옵티머스 사태’가 보통 사건은 아닌 듯이 보인다. 그들이 다시 엎어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예언자라서가 아니라 역사에서 교훈을 얻자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이조시대에는 선비의 목숨이 임금 손에 달려있었다. 사헌부, 의금부가 있어 죄를 묻는다고는 하지만 어명을 어찌 거스를 수 있겠는가. 그러니 임금의 말 한 마디가 법이었다. 

21세기 한국이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통령이 입법, 사법, 행정부와 검찰을 쥐고 있으니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죄가 결정될 것이다. 지나친 해석인가? 지나치고 얼토당토않은 소리인지는 두고 보면 판명이 날 것이다. 무오사화 500년이 지난 지금 정권이 바뀔 때 마다 국가의 권력이 교체되는 것을 당파 싸움과 사화(史禍)의 연장선상이라고 해석하면 무리인가? 자신들과 생각과 이념이 다른 인재들을 한 번이라도 등용한 정권이 있는지 의심스럽기에 하는 말이다.

 

소금장수 신석복이 포졸들에게 잡혀 대구로 이송될 때 그의 친인척들이 포졸들에게 돈을 주어 석방시키는 시도를 했었다. 성 마르코가 말한다. “포졸들에게 단 한 푼도 주지마라”. 그의 풀어헤친 두상 조각 받침대에 이렇게 새겨져 있다. 

요즘 한국 사회에 뇌물이 횡행하는 모양이다. 그것도 최고 권력기관인 청와대, 검찰, 국회, 금감원 등 전방위에 걸쳐 로비가 있었던 모양이다. ‘철저히 수사하라’ 이런 말이 도대체 먹힐 건가? 국민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나물에 그 밥이니 더 이상 뭘 기대할 것인가. 

그들끼리 뇌물주고 돈 먹고 튀고 자신의 죄를 전가하니 가관이 아니다. 이런 시국에 밀양에 가길 잘했다. 김종직의 절개(節槪)와 예(禮)를 다시금 생각한다. 인간 근본인 예를 숭상하는 김종직 선생을 기리며, 썩은 관리들에게 절대 뇌물 주지 말라는 교훈을 남기고 순교한 신석복 성인을 다시 되새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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