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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불통” 정치의 비극적 종말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3년11월17일 18시13분
  • 최종수정 2023년11월17일 21시28분

작성자

  • 김광두
  • 국가미래연구원 원장, 남덕우기념사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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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얘기는 수감된 이후에 전해 들었다. 도대체 어떤 영문으로 김 대표와 연결이 안 됐는지 몰라 화가 났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소위 ‘옥새 파동(2016.3.24. 20대 국회의원 공천 관련)’을 앞두고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가 박 대통령에게 면담이나 통화를 요청했다는 것에 대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최근 밝힌 내용이다.( 박근혜 회고록. 2023.11.15. 중앙일보)

 

“진영 장관이 사표를 내기 전 내게 면담 요청했다가 불발됐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언론을 통해 접했는데, 나는 그런 요청을 전달 받은 적이 없다. 그 때 직접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끝내 남는다.”

 

역시 2013년 9월 30일 진영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의 자진 사퇴에 관해서 언급한 내용이다.( 박근혜 회고록, 2023.11.16., 중앙일보.)

 

총선을 앞둔 중요한 시기에 집권 여당의 당 대표가 공천에 관한 의견을 전달하고자 대통령과 면담을 신청했는데, 대통령은 면담 신청이나 전화 연결 요청 사실을 몰랐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내각에서 보건복지 업무를 책임지고 있던 장관이 기초연금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고자 대통령과 면담을 요청했는데 그런 요청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니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정치와 행정에 관한 주요 소통 라인이 얼마나 폐쇄적이고 몇몇 측근에 의해서 소통이 막혔는지 잘 보여주는 “탄핵당한 대통령”의 때늦은 한탄(恨歎)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런 높은 “불통의 장벽”을 누가 세워 놓았을까?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가 아니었을까?

 

“임금의 신뢰를 얻어 수시로 임금께 뜻하는 바를 말씀드릴 위치에 있는 자가 말을 제대로 하면 그 직에 있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것이고, 말을 한번 잘못하면 죄를 받는다고 한다면 아무도 바른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어찌 두려운 일이 아닙니까?” (조선 세종대왕 시대, 집현전 부수찬 하위지가 세종에게 바친 글)

 

세종 시대에 “고약해”라는 별호를 가진 호조 참판이 있었다. 그는 한성 부윤과 대사헌을 지낸 사람으로 언사가 바르고 강직하여 곧장 직언을 잘하였다. 이 사람이 세종의 어떤 정책에 대해서 강하게 반론을 제기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왕조시대의 왕에 대한 예의범절을 크게 벗어났다.

 

세종은 신하들과 토론을 즐겨 했다. 본인 생각을 설명하고 신하들과 의견을 교환했다. 그런데 “고약해”가 세종에게 고약하게 대들었다. 왕의 말을 듣는 도중 중간에 끼어들기도 하고, 왕이 여러 사례를 들어 설명하면 자기는 하나의 사례를 들면서 “왕이 틀렸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경(卿)은 내말을 자세히 듣지도 않고 감히 말하는구나. 끝까지 똑똑히 들어라!”고 세종이 말하는데도 “고약해”는 자기 주장만 되풀이 하면서 “임금에게 크게 실망했다”는 말까지 했다. 왕정 시대에 이런 일이!

 

세종은 분노했다. 그에게 벌을 주고 싶었다. 그러나 세종은 귀를 열고 “고약해 사건”에 관한 의견을 들었다. 이때 집현전의 “하위지”가 올린 글을 세종은 수용했다. 세종은 불공(不恭)한 죄만 물어 일시적으로 “고약해”를 정직 처분했다가 후에 복직은 물론 승진까지 시켰다. 이런 왕의 열린 자세가 있었기에 신하들의 창의성이 빛을 발할 수 있었고 세종은 균형 잡힌 국정 운영을 할 수 있었다.

 

“내가 박근혜와 전화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는데, 한 달이 지나도 연락이 없어!”

 

어느 날, 고 남덕우 교수님이 박근혜 대통령후보 시절에 나에게 하셨던 말씀이다. 나는 소통 라인에 있는 사람을 통해 곧바로 연결해 드리도록 한 적이 있었다. 선거 캠페인의 과정에서 그녀를 도와 많은 중요한 역할을 했던 분들이 이런 류의 경험을 하소연하는 것을 나는 많이 들었다.

 

대통령 박근혜의 실패는 바로 이런 “불통” 정치와 행정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녀에게 누구든 대드는 것을 매우 싫어했고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녀와 직접 소통하는 것을 꺼려했다. 때문에 그녀의 주변에는“고약해”는 물론 “하위지”같은 사람이 없었다. “불통”은 그녀의 주변을 짙게 감싸고 있었다.

 

“꼭 대면(對面)보고를 해야 하나요?”

 

그녀가 대통령 재직 시절 어느 기자 회견에서 한 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실패는 바로 이 “의식 구조”에서 비롯된 것으로 평가한다.

 

현시점에서도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정치지도자들, 그리고 권력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잘못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권력이 없을 때는 겸손했던 사람들도 권력에 취하면 권위주의의 높은 불통 장벽을 주위에 높게 쌓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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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23년11월17일 21시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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