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상국 교수의 생활과 경제이야기 <76> 뿌리 없는 일부 의사결정권자들 때문에 국민들이 받는 억울한 고통 (무조건 서양처럼 하는 것이 진보인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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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11월20일 14시48분
  • 최종수정 2023년11월21일 13시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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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과 서양은 도덕과 전통 그리고 종교와 음식 등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이 차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그것을 부인하는 사람도 물론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할 때는 이런 근본적인 차이를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어느 한쪽을 따라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특히 그런 차이가 왜 생겼는가? 어느 것이 더 좋은가, 나쁜가? 또는 어느 것을 더 존중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은 그리 크게 하지 않는 것 같다. 이번 글에서는 그것을 한번 말해보고 싶다. 

 

특히 그런 차이 나는 것을 굳이 고치려 하지 말고, 그 차이를 인정하고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얼마나 현명한 일인가에 대해 말하고 싶다. 

 

지금은 안타까운 나라로 점점 변해가고 있지만 과거 중국은 매우 큰 나라였고 때로는 제법 힘도 센 나라였다. 우리는 그런 중국과 바로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때로는 그 눈치가 너무 과도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그 눈치를 보는 대상이 과거에는 중국이었다면 한때는 일본이었고, 지금은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양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필요 이상으로 이런 눈치를 보는 사대지향적 사람들의 마땅치않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그것은 곧 그들의 능력을 실제 능력 이상으로 과도하게 평가하고, 또 역으로 우리의 능력을 과소 평가하는 버릇이다. 이러한 성향은 상대국가 실력에 대한 냉정한 평가 없이, 그저 대국(大國)이니까? 앞서 가는 나라니까? 또는 아무런 깊은 생각없이 그저 외국이 멋있게 보이니까? 등의 이유인 것 같다. 이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지적한 “그저 외국이 막연히 멋있어 보이니까.”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수인 것 같다. 즉 외국의 행동이나 주장이 옳은가, 그른가를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저 그대로 따라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다는 뜻이다. 

 

내기 이번 글 “뿌리 없는 일부 의사결정권자들 때문에 받는 국민들의 억울한 고통”을 쓰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일반 국민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그래도 어느정도 이해 되지만,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입법과 국가정책을 세우는 국회의원과 공무원들이 이런 행동을 할 때는 정말 답답하고, 때로는 짜증 날 때가 많다. 사실 이 글도 오늘 아침(2023년 11월 19일) “개고기 먹는 것을 법적으로 금하겠다.”는 방송을 보고 그간에 참았던 말들을 해 보는 것이다. 

 

뿌리 없는 일부 의사결정권자들이 결정한 대표적인 몇가지 사실을 적어 보겠다.

① 중국어나 일본의 발음을 현지어로“만” 쓰게하는 행위 ② 행정동명을 없애고 도로명 주소를 쓰게하는 행위(한자표기, 영어표기, 우편번호를 6자리에서 5자리로 줄이는 행위 포함) ③ 한자 사용을 극력 억제하는 행위 ④ 시내 도로교통법규를 충분한 사전 공지 없이 서양식으로 바꾸는 행위 ⑤ 우리 생활과 밀접한 수백년 된 규칙을 함부로 바꾸는 행위 등이다.​ 

 

 

1. 중국어나 일본어 발음을 현지어로만 쓰게하는 행위

 

나는 이런 정책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도 궁금하지만 이런 터무니 없는 정책을 준비할 때 우리나라 언어관련 학회들은 도대체 어떤 대응 행위를 했는지가 더 궁금하다. 

 

우선 몇가지 중국 지명(地名)의 예를 들어 보겠다. 과거 우리나라 맞춤법에서 외국명 표기를 할 때 “외국의 지명이나 인명은 그들의 발음이나 『또는』 우리 발음을 『선택』하여 쓰도록 되어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것을 외국식 발음으로『만』 쓰도록 바꿨다. 자. 그러면 이런 변화가 우리 의식에 얼마나 제한된 결과를 가져오는지 살펴보자.​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들었던 모택동을 ‘마오쩌퉁’으로 읽는 것은 만(萬)에 하나 좋다고 치자. 그러나 별로 잘 알지도 못하는 이름을 현지 발음으로만 기록하는 것이 얼마나 부적절한지 살펴 보도록 하자. 

 

사람의 이름 특히 지명(地名)은 절대로 함부로 짓지 않는다. 거기에는 그 지역의 역사가 들어있거나 풍치가 들어 있고, 아니면 그 지역의 특성을 잘 나타낼 수 있도록 이름을 짓는다. 좋은 예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주 방문하는 중국의 장가계와 칠채산 그리고 만리장성을 들어 보겠다.​ 

 

(1) 장가계(張家界)의 예

 

지식백과사전에 나온 장가계의 설명이다. “장가제는 후난성 북서부 우링산맥 중앙에 있는 도시로, 츠리현과 쌍츠현 등을 포함하며, 과거에는 대룡이라는 도시였다. 1988년에는 텐쯔산과 함께 주요 자연풍경구로 지정되었다(지명부분만 골라 적었음).” 이런 설명을 읽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장가계를 직접 방문하기 전에 도대체 얼마나 그 곳에 대해 상상할 수 있을까? 더욱이 이런 설명을 눈으로 읽지 않고, 스피커로 들었다면 과연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글자로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것을 스피커로 들었다면 더더욱 이해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이것을 과거처럼 우리 말로 적어보겠다. 

 

장가계(張家界)는 호남성(湖南省) 북서부 무릉산맥(武陵) 중앙에 있는 도시로서, 자리현(慈利)과 상식현(桑植) 등을 포함하며, 과거에는 대용(大庸)이라는 도시였다. 1988년에는 천자산(天子山)과 함께 자연풍경구로 지정되었다. 

 

자 그럼 이 글을 읽는 우리가 무의식 중에“마음”속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가를 살펴보자.

 

​첫째; 보통 사람이라면 알지도 못하는 중국 지명을 읽는 것 보다는 우리 말로 읽는 것이 이해하지 못해도 훨씬 더 편안할 것이다.

 

둘째; 그리고 조금만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자도 표시된 명칭에서 몇가지 의미를 바로 파악할 수 있다. ① 호남성(湖南省)이라고? 아, 그럼 동정호의 남쪽이네! 남쪽에 있는 도시니 따뜻하겠구나. 옷을 좀 얇게 입어도 되겠다. ② 무릉산맥 가운데에 있다고? 오, 잘 모르지만 무릉도원의 중앙에 있다면 말할 것도 없이 경치가 좋겠구나. ③ 상식(桑植)현이 있다고? 그럼 과거에는 뽕나무를 많이 심었겠네! 그러면 비단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이겠다. 마누라 비단 스카프라도 하나 사야겠다. ④ 천자산(天子山)이라고? 야, 이름에 천자(天子)라는 말이 있다면 무릉도원처럼 예쁘기도 하지만, 동시에 산세가 매우 위엄이 있겠구나?​ 

 

이름만 듣고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상상해 낼 수 있는가?

 

⑤ 게다가 이름이 장가계(張家界), ‘장씨네 세계’라고? 그럼 옛날에 어떤 장(張)씨와 관계되는 역사가 숨어있겠구나.

 

그럼 장가계의 간단한 역사를 살펴보자.​ 

 

장가계는 한고조 유방의 책사였던 장량(張良)이 터를 잡은 곳이다. 그리고 지상의 무릉도원이라는 평을 받을만큼 경치가 아름다울뿐 아니라, 산의 기개도 매우 웅장한 곳이다. 장가계, 무릉도원, 천자산이라는 이름이 그대로 함축되어 있는 명소다. 이름은 이처럼 많은 것을 포함하는 중요한 것이다. 조금만 살펴보면 그 이름 하나에서 그 지역의 역사와 경관을 너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장자제는 후난성 북서부 우링산맥 중앙에 있는 도시로, 츠리현과 쌍츠현 등을 포함하는 도시다.” 라는 설명에서 도대체 이런 내용을 추론해 낼 수 있을까?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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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예를 하나 더 들어보겠다. 아마 이 예가 더 마음에 와닿을 것이다.

 

(2) 칠채산(七彩山)의 예

 

“치차이산은 간쑤성, 장예시에 있는 붉은색 사암지대다. 딘샤디마오의 대표적 지형이다.” 아, 정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럼 이 말을 우리 말로 바꿔 보겠다.

 

“칠채산(七彩山) 은 감숙성 장액시에 있는 붉은색 사암(砂巖)지대다. 단하지모(丹霞地貌)의 대표적 지명이다. 

 

이름에서부터 벌써 색깔 냄세가 진동한다. ① 칠채산이라고? 일곱가지 색깔이 있는 산? 오, 무슨 무지개빛 산인가? ② 단하지모(丹霞地貌)라고? 그럼 빨간색이 가장 많겠구나. 그리고 일곱가지 색이 마치 안개(하, 霞)처럼 영롱하게 서로 어루러져 있는 땅인가 보다. 가보지 않고 이름만 들어도 칠채산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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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말 왜 이런 식으로 이상하게 맞춤법을 개정했는가?

 

정말 답답하다.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그리고 어떤 정책자가 이런 터무니 없는 결정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입법예고가 나왔을 때 언어 관련 학회에서는 어떤 대응을 했었는지도 궁금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현지 발음만을 사용하도록 결정되었고, 착한 국민들의 상상력은 제한당해 버렸으며, 더욱이 국민들의 알 권리는 자연스럽게 제압당해 버렸다.

 

정말 이 맞춤법 결정은 반드시 빠른 시간 내에 과거와 같이 ① 사용자의 의견에 따라,  또는 ② 필요에 따라, ③ 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

 

끝으로 이런 결정을 한 당국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고 싶다. “당신이 만리장성을 다녀왔다고 합시다. 그럼 친구들에게 어디를 구경하였다고 말하겠습니까? ‘완리창청’ 다녀왔다고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완리창청이라는 발음을 모르니까? 음음음 어디 다녀왔어, 라고 어설픈 웃음과 함께 말하시겠습니까?”​ 

 

국민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은 반드시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학자들의 의견도 경청해야 한다. 이미 결정을 해 놓고 거기에 동조하는 학자들만을 모은 후 “충분한 학계의 의견을 들었다.”라고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의 『고유』한 발음이 있는 한자어는 반드시 우리식의 발음을 할 수 있도록 고쳐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것은 일본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2. 행정동명을 없애고 도로명 주소를 쓰게하는 행위

 

나를 짜증나게 하는 가장 대표적인 예 중에 하나다. 정말로 “서양처럼 하는 것이 진보라고 생각하는 일부 공무원들 행동의 극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한자어 발음을 현지음만으로 쓰게 하는 것과 거의 동일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지역명과 동(洞) 명칭은 그 고장의 역사, 그 지역의 특성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명칭만을 들어도 대강 그 지역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지역문화 자료』에 소개된 몇개를 소개하겠다. 구룡마을(아홉마리의 용이 승천하였다는 전설), 회룡리(용이 다시 돌아왔다는 전설), 용당포(용이 승천하며 만들었다는 연못), 지리산의 뱀사골(이무기가 용이 되지 못하고 안타깝게 죽었다는 골짜기), 여우골(여우가 색시로 변해 동네를 너무 어렵게 만들었다는 전설), 호무골(호랑이가 샘물을 마시고 춤을 추었다는 마을), 봉계마을(천 마리의 닭으로 지네를 없앴다는 전설), ‘목포의 눈물’ 노래의 삼학도(세 마리의 학이 하늘로 올랐다는 전설), 창왕이 신돈의 아들이라고 해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는 ‘살창리’ 등이다. 금방 짧은 설명만을 들어도 쉽게 그 지역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지역명 중에서도 가장 압권은 우리나라 해안가 곳곳에 있는 ‘매향리’(埋香里, 매향동, 매향안 등)라는 지역명이다. 매향은 말 그대로 향을 묻었다는 뜻이다. 바닷가에서 향나무를 묻는 행위는 일종의 신앙행위였다. 향나무가 오래되면 물에 가라앉는 침향(沈香)이 된다고 한다. 침향은 향 중에서도 최고의 향이다. 그래서 이 어려운 시대가 빨리 끝나고, 새롭고 편안한 미륵세상이 도래하기를 기원하면서 향을 묻는 매향행사를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행위를 한 장소를 매향리, 그리고 그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해 매향비를 새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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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든 우리나라의 지명은 절대로 허투르게 이름 붙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서양풍을 따서 무슨무슨 로(路, Street)라고 이름을 고친다는 것이다. 이유는 기존의 동명으로는 길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때도 GPS가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어려웠는지 잘 모르지만 천여년 가까이 내려온 우리 이름을 순식간에 ‘싸그리’ 바꿔 버렸다.

 

당시에도 ‘우리의 역사를 없애버리는 행위’라는 엄청난 반대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몇 명의 공무원에 의해 사무실 내(內)에서 이미 결정된 사항을 바꿀 뜻은 전혀 없었다. 다만 그들이 내세운 변명은 “우리도 그런 위험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도로명을 지을 때 그런 점을 깊이 고려하겠다.”는 것이었다.

 

과연 그럴까? 역사적 이름이 남아있는 경우는 아마 1%도 채 안 될 것이다. 지금 주소를 보면 ‘무슨무슨 로 752길’로 백단위거나, 심지어 내가 관찰한 길 중에는 ‘무슨무슨 로 몇 천길’하는 천 단위까지 있었다. 그 몇천 단위라는 도로명에서 얼마나 많은 역사와 애사(哀史)와 사건이 사라졌을까? 가슴 아프다. 더욱이 웃기는 것은 버젓한 아파트 이름이 있는데도 그 아파트 이름이 도로명에서 빠진 것이다. 무슨무슨로 무슨무슨길 몇 번지이지, ‘삼성아파트’ 108동 207호가 아니다. 나중에는 괄호를 넣고 아파트 이름을 다시 적도록 변화되었지만 정말 이렇게 생각 없이 정책을 바꿨을까? 하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내가 미국 유학 갔을 때 가장 이상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아파트 주소에 아파트 이름이 버젓이 있는데도 아파트 이름을 적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똑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정말 깊이 생각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외국에서 하는데로 따라하는 것이 선진화라고 생각하고,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그대로 『해버리는 것인지』 정말 알 수 없다.​​ 

 

 

3. 또 하나의 기막힌 예는 우편번호의 숫자를 줄이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우편 번호는 과거에 6단위였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글자로 쓴 주소가 잘못되어도 우체부 아저씨들은 대충 올바르게 편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우편번호가 5단위로 줄었다. 아니 더 많은 집들이 지어지고, 더 많은 도시가 개발되는데 우편번호 숫자를 6개에서 5개로 오히려 줄여버린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런 황당한 일이?

 

이것도 아무런 생각 없이 미국의 예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미국의 우편번호가 바로 5자리다. 그래서 또 아무런 깊은 생각없이 그저 외국 특히 미국의 예를 따른 것이다. 세상은 더 커지고, 더 복잡해지는데 말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은 그 넓은 땅에 5자리 숫자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5단위 우편번호에 3단위를 더해 8단위로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이제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하다. 5단위를 그 이상으로 더 늘릴 것인지, 아니면 바꾼지가 얼마 안되어 다시 바꾸기가 민망하여 그대로 둘 것인지 궁금하다.

 

우리집은 공무원이 많은 집안이다. 나의 부친께서도 공무원이셨고, 나의 작은 아버지 그리고 대부분의 공부를 한 친척들은 공무원이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도 행정고시를 치르라고 강권하셨다. 어떻든 그런 이유에서 나는 공무원들 세계를 어느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부친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정말 근면성실하고, 국가관이 뚜렷한 분들이다.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보다는 항상 공익을 우선으로 생가하시는 분들이었다. 한번은 부친께서 근무하는 도청 건물에서 불이 났다. 그 소식을 듣자 아버지께서는 ‘신발을 신지 않고 뛰어 나가셨다.’ 나는 이런 부모님을 보고 자랐다.

 

그런데 요즈음, 깊은 생각없이 그저 외국의 것을 그대로 모방하면 그것이 선진화라고 생각하는 듯한 행동을 볼 때마다 정말 안타깝다. 나는 지방 공무원들 강의를 상당히 많이 한 편이었다. 그러나 일부 공무원들, 나이가 많지 않은 일부 공무원들, 특히 일부 특정 지자체 공무원들의 태도를 보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뛰어나고 근면한 분들이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생각할 때 과거와는 상당히 다르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 이것은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4. 우리말을 영어로 표기할 때의 문제다.

 

나는 언어학자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 말과 영어는 ‘교착어’와 ‘굴절어’로 서로 뿌리가 다른 언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우리말 대한민국이라면 대, 한, 민, 국이다. 각 음절은 고유의 뜻이 있다. ‘대’는 크다는 뜻이고, ‘한’은 한(韓)민족이라는 뜻이며, 민은 사람, 국은 나라다. 그래서 대한민국이라는 말에는 ‘한민족이 새운 큰 나라’라는 뜻이다. 비록 4개의 짧은 음절이지만 그 안에는 4개의 단어가 들어있다. Korea와는 너무 다르다. 그리고 우리말은 연음(리애송)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영어는 연결발음을 하는 언어이기 때문에 단어를 연결해서 써도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우리말을 연결해서 쓸 때 얼마나 우스운 일이 발생하는가를 보자. 우리가 ‘한강’을 Hangang 이라고 쓴다. 그리고 읽는 사람들이 ‘한강’이라고 발음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우리는 ‘한강’이라고 읽는다. 그러나 한강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Hangang을 읽어 보라고 하자. ‘한강’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아마 ‘행앵’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용인(Yongin)도 마찬가지다. 용인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은 99% 없고, 아마 ‘욘진’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왜 HanGang, YongIn(YongYin) 이라고 쓰지 않는가? 왜 굴절어와 교착어로 서로 뿌리가 다른 언어를 음절별로 구분하지 않고, 연음해서 쓰는가? 호남고속도로를 가다보면 ‘이인’이라는 도시가 있다. 영어로는 ‘Iin’라고 쓰여있다. 이것을 누가 ‘이인’이라고 발음할까? 틀림없이 ‘인’이라고 읽을 것이다. 미국인들이 영어로 이율곡을 쓸 때 ‘YiYulGok’이라고 쓴다. 누가 읽어도 ‘이율곡’이다. 그러나 우리는 ‘행앵, 욘진, 인’이라고 쓰고, ‘한강, 용인, 이인’이라고 읽기를 바란다.​

 

 

5. 개고기를 먹는 것이 그렇게 야만스러운 행동인가?

 

최근 또 하나의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 개고기를 먹지 못하게 입법 행위를 하겠다는 일부 인사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개를 애완용으로 키우는데 그런 (예쁜)개를 어떻게 먹느냐?”는 것이다. 정말 한심한 사람들이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나라 개 육식 문화를 거들먹 거리며 문제를 던진 최초의 사람은 불란서의 브리지드 바르도(BB)라는 육체파 여배우였다. 이유는 지금 우리나라 일부 국회의원들이 주장하는 “그 (예쁜)개를 어떻게 먹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들의 음식문화는 그렇게 인간적인가? 불란서 최고 요리 중에는 ‘뿌아그라’라는 요리가 있다. 그것은 오리에게 기름진 음식을 잔뜩 먹이고, 움직일 수도 없는 아주 좁은 공간(케이지)에 가두어 키운다. 그리고 거위의 간(肝)이 기름으로 부을대로 부으면 그 간을 꺼내 요리해 먹는 음식이다. 내가 보기에는 정말로 잔인하고도 잔인한 요리다. 그런데 그런 요리는 괜찮고 우리의 개 육식 문화는 나쁘다는 얘기인가? 그리고 가냘픈 애완견은 우리의 먹는 대상도 아니다.

 

음식문화는 그 나라 고유의 역사적 배경에서 태어난 것이다. 문화에 따라서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을 ‘가타부타’, ‘하라. 하지 말아라.’ 라고 말할 성질은 절대 아니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세상에는 소고기 먹는 것을 엄금하는 나라(거의 살인죄에 해당)도 있고, 돼지고기 먹는 것을 터부시하는 나라도 많다. 그럼 이 다음에 그런 나라가 힘을 잡고 “소고기를 먹지 말아라. 돼지고기를 먹지 말아라.”하면 우리는 그대로 해야 하는가?

 

​개육식을 금지하자는 국회의원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다. “당신의 그런 주장이 정말 충분한 검토를 거치고 난 행동인가? 당신이 그런 주장이 더 많은 표를 얻는데 도움이 되겠는가? 아니면 일부 사람들이 말만을 듣고 한 경망스런 행동으로 오히려 당신에 대한 표심을 잃게 하겠는가?”

 

개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도 자기의 권리이고, 개고기를 먹는 사람도 분명한 자기의 권리다. 그리고 수천년을 내려온 우리의 전통이다. 국회의원 일개인이 어떻게 수많은 사람들이 즐겨먹고, 수천년 동안 내려 온 전통을 ‘옳다, 그르다, 된다, 안된다.’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얼마 전 국회청문회를 보면서 정말 기절할 것 같은 광경을 보았다. 어느 정당의 젊은 여성의원이 어느 장관에게 질문을 하였다. 그러자 장관이 “대법원 판결에 의하면...”이라고 답변을 시작하였다. 그러자 그 젊은 의원은 끝까지 듣지도 않고 말을 가로채면서 “아니 대법원 판결이면 다 입니까?”라는 것이 아닌가?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면 뭐가 최고인가? 삼권분리의 민주국가에서 국회의원의 권한은 대법원의 판결보다도 더 우선하다는 말인가? 

 

나는 정치권의 얘기는 가급적 언급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지만, 정말 어떤 경우에는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친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인 상식과 그 『직위에 걸맞는』 적정수준의 지식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디서부터 이런 행동이 태동했는지 모르겠다. 정치의 좌우대립이 격화되고, 능력없는 사람들이 인기세를 몰아 지위가 높아지고, 무조건적인 충성도와 재정적 능력이 공천의 주요 기준이 되고, 무엇보다 상대방의 주장을 『비판할 능력이 없으면』 ‘빨갱이’라고 무조건 몰아붙이는 것이 일상화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더욱이 사회의 평균 지식수준이 낮아지면서 생긴 일반적 병폐인 듯하여 더욱 마음이 심란해진다. 내가 그저 생각나는 대로 주장해 보고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하는 무책임한 행동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다. 

 

과거에는 무관의 제왕이라는 언론의 냉철한 중간자적 자존심과 비판이 있었고, 공부한 사람들도 자기만의 지조가 있었으며, 특히나 법관은 법과 자기의 양심에 따른 판결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공익(公益)이나 공심(公心), 국익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나의 성향(性向)이나 나의 취향(趣向)이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걱정이다.

 

​우리 대한 배달민족의 어마어마한 역량이 이런 행동들에 의해 좀 먹어 들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물론 이런 성향이 있더라도 우리 대부분의 국민들은 건전하고, 진취적인 기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기상을 펼치지 못하게 될 우려가 있어 걱정이다. 

 

그러나 우려는 우려일 뿐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싶다. 

 

 

(‘도로교통법규’ 관련은 우리생활과 워낙 밀접하고, 또 언급할 내용도 많아 별도의 글로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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