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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 증거의 위법성 논쟁과 정경심 재판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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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12월30일 10시26분

작성자

  • 이상돈
  •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20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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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는 유죄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는 원칙은 1960년대 미국 대법원 판결로 확립된 형사절차에 있어서 중요한 원칙이다. 수사기관의 가혹행위 또는 불법적인 증거 수집을 막기  위한 원칙이며, 이에 위반해서 취득한 증거는 재판에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원칙으로 인해 형사피의자의 권익이 보호되지만 이로 인해 실체적으로는 유죄이지만 수사기관의 절차적 과오로 인해  피고인이 무죄 판결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원칙의 혜택을 받을 피고인은 가난한 사람일 것으로 생각되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않다. 가난한 범죄인은 국선변호사가 하자는대로 유죄를 인정하고 검사와 협상으로 형량이나 줄여보려고 하는 게 통상적이다.  

 

불법수집증거 배제의 원칙을 원용해서 재판에 제출된 유죄의 증거를 무효화시키기 위해선 비싸고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해야 한다. 그러니까 돈 많은 피고인이나 마피아 같은 조직 범죄 피고인이 이런 고상한 원칙을 동원해서 유죄 판결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즉, 사법적 정의를 세운다는 이 원칙도 현실에서는 불평등하게 적용되고 있다. 

 

위법수집증거 배제의 원칙은 미국은 1960년대부터 있어 왔는데, 우리는 1990년대에 들어와서 비로소 수용되었다. 이 원칙이 있었더라면 1970~80년대에 있었던 공안 조작 사건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미국을 30년 늦게나마 따라 가고 있음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유죄판결이 내려진 정경심 교수 사건에서 변호인들은 문제의 PC가 불법적으로 취득된 증거라고 주장했는데 1심 재판부는 이런 주장을 배척했다. 변호인측은 항소심에서 이 부분을 다시 다툴 것이라고 한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1심 재판부도 이 점을 신중히 검토하고 판결을 내렸을 것이나, 고등법원에서 어떤 판결이 나올지는 예단할 수 없다. 혹시나 만약에 고등법원이 문제의 PC를 검찰이 증거물로 획득한 절차가 잘못되어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시한다고 해도 1심 재판부가 밝혀낸 실체적 진실, 특히 디지털 증거라는 그 실체적 진실은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스탠포드 대학 로스쿨에 데보라 로드(Deborah Rhode)라는 유명한 원로 교수가 있다. 로스쿨 여자 교수로는 법조윤리라는 무거운 과목을 미국에서 처음으로 가르쳤고 이 분야에 책도 여러 권 펴낸 훌륭한 학자이다. 그녀는 로스쿨 2학년을 마치고 로펌에서 인턴을 했는데, 자기가 인턴을 한 변호사가 살인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을 다루고 있었다. 그 유능한 변호사는 증거법칙 위반을 파고 들어서 피고인을 무죄로 빼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살인자와 변호사는 너무 좋아서 껴안고 환호했는데, 그 모습을 본 로스쿨 2학년생 데보라 로드는 변호사의 길을 포기하고 사법적 정의를 가르치는 교수가 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위법수집증거 배제 원칙은 형사 피고인의 기본적 권리이고 법원도 그것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한 나라의 민정수석과 법무장관을 지낸 사람이 이 원칙을 형사피의자/피고인의 권리라고 법정에서 스스로 주장하는 모습을 보아야 하는 세상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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