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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협의 박물관 이야기 <36> 미국의 대학박물관들 - 미주리대학의 박물관, 하버드대학의 박물관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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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6월27일 09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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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협
  • 전남대학교 인류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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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연구관련 협의차 우리 대학과 자매결연을 맺은 미주리대학을 방문한 적이 있다. 미주리대학이 위치한 도시 컬럼비아는 끝없이 펼쳐지는 옥수수밭 평원 한가운데에 있는 인구 12만이 못 되는 작은 캠퍼스 타운(campus town)이다. 학생 3만 명, 교수 3천 명, 직원 13천 명이니 인구의 절반가량이 대학의 사람들인 셈이다. 미대륙 한복판의 작은 시골 도시 컬럼비아로 가는 길은 멀었다. 인천-시카고-컬럼비아로 연결되는 항공편을 택했는데, 시카고 오헤어공항에서 아주 작은 비행기로 갈아타는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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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일을 보는 가운데 습관대로 박물관 탐방에도 나섰다. 미주리대학에는 인류학박물관(Museum of Anthropology), 고고미술(考古美術)박물관(Museum of Art and Archaeology), 그리고 곤충학박물관(The Enns Entomology Museum)이 있었다. 인류학박물관에는 미국의 선사(先史)시대유물과 미국 중부 대평원(大平原)인디언 관련 유물을 중심에 두고, 그 외에 유럽의 구석기(舊石器)(Oldowan and Acheulean Stone Tools), 아프리카 유물(African Axes), 중국의 복식(服飾) 관련 유물 등으로 인류문화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전시실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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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학박물관은 놀랍게도 1874년에 설립된 역사가 오랜 박물관이었고, 6백만이 넘는 곤충표본을 소장하여 주요 대학의 연구박물관으로 손색이 없었다. 이는 아마도 대부분의 중서부지역 주립대학들이 지역의 중심산업인 농업 관련 연구에 집중투자 하며 출범했던 역사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고고 미술박물관은 일종의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왜냐하면, 소장 전시품의 내용이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 비잔틴의 유물을 포함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15세기에서 현대에 이르는 유럽과 미국의 수준 높은 회화까지 망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구 12만의 작은 시골 도시에 이런 수준의 예술품을 소장하고 전시하는 미술박물관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물론, 이는 대학이라는 존재가 교육과 문화 향유 기회 제공을 통해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는 한 단면일 것이다.

 

미주리대학의 고고 미술박물관에서 접한 고대 아시아 및 유럽의 유물은 어찌 보면 다른 박물관에서도 볼 수 있는 유물들이기에 여기서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대신, 그 많은 유물과 예술품들 속에서 특별히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작품은 지역사회와 관련 있는 내용을 담은 그림 몇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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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첫 번째는 1937년 디트로이트 포드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의 파업 과정에서 말을 탄 경찰이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었다. 그 당시 실제의 폭력적인 현장을 촬영한 지방지 기자의 사진 한 장이 시민의 정서가 노동자의 편에 서도록 만드는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바로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인근 지역 캔 사스 출신 화가로 사회적 현실주의를 추구했던 Jack K. Steele(1919-2003)이 작품으로 남긴 것이다. 작품명은 ‘The Battle of the Overpass’1938년 작으로 알려져 있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음습한 숲속으로 비밀스럽게 잠행하는 듯한 KKK단원들의 모습을 형상화하여 백인 극우 집단의 암약을 고발하는 작품과 흑인에 대한 린치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이 두 작품 모두 20세기 중반 미 중남부지역에 남아있던 KKK단과 인종차별의 문제를 부각한 사회적 발언의 성격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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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Louis Ribak(1902-1979)의 작품은 ‘Nocturne’이라는 제목을 달아 은유적 풍미를 더했고, 세 번째 Abert Pels(1910-1998)의 작품은 직설적으로 ‘American Tragedy’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네 번째의 작품은 미주리대학의 미술교수로 재직했던 Frederick E. Shane(1906-1992)의 작품으로, 1930년대 어느 주말 오후 미주리대학 인문학 교수들의 자유분방한 담소의 광경을 묘사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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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작품을 잘 들여다보면 노동, 인종, 지성과 같은 보편적 주제를 지역 현실과 결부시켜 사회를 향한 발언을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어, 대학미술관의 전시작품 선정 의도와 사려 깊은 안목을 헤아려보도록 만든다. 미주리대학의 미술박물관은, 그러한 점에서, 미대륙의 허허벌판 한가운데에서도 세계와 소통하며 사회적 발언을 쏟아 내는 역동적인 현장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우리에게 던진다.

 

미국의 대학 중에서 가장 훌륭한 박물관 체제를 갖춘 곳은 아마 하버드대학일 것이다. 하버드에는 박물관(museum)의 명칭을 사용하는 거대한 기관이 일곱 개에 달하고 박물관 기능을 갖는 기구를 포함하면 그 숫자는 더 늘어난다. 하버드대학의 박물관 중 가장 널리 알려진 하버드 미술박물관(Harvard Art Museums)은 사실은 포그 박물관 (Fogg Museum), 부시-라이징거 박물관(Busch-Reisinger Museum), 아서 M. 새클러 박물관 (Arthur M. Sackler Museum)이라는 세 개의, 콘텐츠를 달리하는, 박물관으로 구성되어 있어 유럽의 명화에서부터 아시아의 희귀작품에까지 이르는 세계적 수준의 컬렉션을 자랑한다.

 

그 외의 박물관은 고대 근동의 하버드 박물관(Harvard Museum of the Ancient Near East), 하버드 자연사 박물관(Harvard Museum of Natural History), 비교 동물학 박물관(Museum of Comparative Zoology), 지구 지질학 박물관(Mineralogical and Geological Museum), 워렌 해부학 박물관(Warren Anatomical Museum), 피바디 고고학/민족학박물관(Peabody Museum of Archaeology and Ethnology)인데, 모두 관련 학문 분야에서의 연구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점에서 대학 교육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 박물관 중에서 마지막의 피바디박물관이 인류학박물관으로, 나에게는 좋은 추억의 장소로 기억되는 곳이다.

 

1987-88년 나는 하버드 옌칭연구소(Harvard-Yenching Institute)의 초청으로 1년간 하버드에 머물렀다. 그 당시는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이었고 한국에서는 소련이나 중공의 자료를 쉽게 접할 수 없던 시기였다. 그래서 해외 거주 한인사회 연구를 시도하던 나는 소련과 중국 자료가 풍부한 하버드 옌칭연구소에 연구과제를 냈었고, 그것이 선정되어 1년 동안 자유롭게 와이드너(Widener Library)와 옌칭도서관을 드나들며 자료수집에 열중했다. 

 

그런데 미국의 연구지원은 선발은 꼼꼼하게 하지만 일단 선정이 되면 아무런 제약을 가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학자의 양심을 믿고 연구자의 자율에 모든 것을 맡겨 하버드에서의 일 년은 참으로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았던 것 같다. 한 달에 두 번 가졌던 콜로키엄과 세미나 후 하버드스퀘어 맥줏집에서의 환담,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료검색에 지쳐 가면, 교정(校庭)을 거닐어 여러 박물관을 돌아보던 일들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박물관 중에서는 옌칭연구소 바로 건너편에 있던 피바디박물관을 제일 많이 드나들었다. 피바디박물관은 인류학과건물 바로 옆에 자리해 마치 친정집처럼 느껴졌다. 1866년에 설립된 피바디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의 인류학박물관으로 소장품이 140만 점을 넘어 세계 거의 모든 지역의 인류학적 자료가 모여있기에 두고두고 다녀도 싫증이 나지 않는 곳이다.

 

마침 연구소에서 잡아준 아파트가 대학에 붙어있어 시간이 나는 주말이면 당시 유치원 다닐 나이였던 아이들을 데리고 박물관에 가곤 했다. 아마 아이들이 놀면서 배우기 가장 좋은 장소가 박물관이 아닐까? 여하튼 하버드에서 지낸 일 년은 그 많고 다양한 박물관들 때문에 지루함을 모르고 지낸 세월이었다. 박물관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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