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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官)은 치(治)하라고 있는 것”? 글쎄요?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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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9월03일 12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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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철이 다가오니 그런지 나라 전체가 온통 요란한 정치 논쟁으로 밤낮을 지새고 있다. 그런 가운데, 최근 한 일간지(서울경제신문)가 흥미 있는 금융 관련 뉴스를 보도해 눈길을 끈다. 내용인 즉, 우리나라 금융 기업(국책, 시중, 지방 은행 포함) CEO 3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2%가 ‘관치(官治)가 여전히 과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울러, 정치권의 금융 개입도 매우 심각해서 ‘정치(政治)’의 폐해도 금융 기업의 자율 경영을 현저히 침해하고 있다고 응답했다고 보도했다. 

 

사실 우리나라 금융계, 특히, 은행 업계에 ‘관치’, ‘정치’ 논란이 일어난 게 어제 오늘 얘기는 아니다.

특히, 소위 ‘개발 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은행들은 정부 소유의 특수은행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상업은행들까지 은행 경영정책의 수립, 예산, 인사에서 자금의 조달 및 운용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그야말로 정부의 손 안에서 한시도 벗어났던 적이 없었다. 어느 출세한 관료는 뒤에 ‘관(官)은 치(治)하라고 있는 것’이라는 당돌한 말을 서슴없이 내뱉아, 지금도 가끔 인구에 회자되고 있을 정도이니 당시 상황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원래 은행을 포함한 금융 기업들은 업무 특성상, 국가 경제에 미치는 직간접의 광범한 영향력을 감안해서 정부가 시장 진입, 퇴출에서부터 일상 업무에 이르기까지 엄격하게 규제, 감독하는 것이 동서고금의 상례다. 자유시장경제의 모델이라고 일컬어지는 미국에서도 은행들은 다중적이고 엄정한 감독을 받는다. 감독 기구도, 연방준비제도(FRB),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통화감독청(OCC)에, 주(州) 단위 영업 허가인 경우는 해당 주 정부까지 나서서 각자의 영역에 대해 철저한 감독을 한다. 금융 메카로 불리는 영국의 경우도 더 심하면 심했지 이에 못지 않다. 

 

그런 까닭은 각종 금융기업, 특히 은행들은 타인(고객)의 재산을 위탁 받은 자금을 원자(原資)로 신용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레버리지(leverage)’가 엄청나게 큰 영역이다 보니 그만큼 엄격한 규제, 감독은 타당하고 일견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예금 수취의 합법성, 여신 취급의 준법 여부, 금리 책정의 규제 정합성 등은 물론, 경영 책임자의 자질 및 일반 직원들의 근로 조건 준수 등, 각 분야에서 엄청나게 세밀한 감독을 받게 된다. 한 마디로, 은행 등 금융기업의 업무가 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사(私)기업이라는 특성에서 그만큼 정부의 ‘관치(官治)’는 필요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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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관치 존재의 여부 문제라기보다, 관(官)이 치(治)함에 있어서 주어진 본연의 소임을 벗어나 불법 부당하게 개입하는 데 있는 것이다. 금융 서비스 소비자 이익을 보호하고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도록 유도한다는 목적에 맞게, 치(治)해야 할 것은 철저하게 치(治)하지 않고, 경영 자율을 보장하고 공정 경쟁을 확립하기 위해 치(治)하지 말아야 할 것은 과도하게 치(治)하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최고 경영층 선임을 비롯한 기업 지배구조 정립 문제로부터 출발한다. 

 

주총 때가 되면 가끔 보도되기도 하지만, 대표적인 어느 은행의 최고경영층 선임을 둘러싸고 벌어진 실제 내막을 잠깐 살펴보면, 우리나라 금융 기업, 특히 은행들의 지배구조 형성 과정이 얼마나 한심스러운지 금방 알 수가 있다. 정부 금융 당국은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다고 금융기업 경영 지배구조 구성의 모범 규준이라는 것도 만들고, 임원 선임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CEO 후보에 대한 평가 기준도 아주 탄탄하게 만들어 공표해 놓고 있다.

 

하지만 이런 규정이나 제도적 장치들은 실제로는 소기한 바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무실(無實)한 허울에 불과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선임되는 당사자가 무소불위의 실력을 휘둘러 사실상 ‘셀프 연임’을 반복하는 과정을 정당화해 주는 편의(便宜) 도구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이런 해괴한 일이 벌어지는 배경은, 다름 아니라, 선임 대상이 되는 회장님 스스로가 바로 자신을 선임하는 인사들을 자의(恣意)로 뽑아 앉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마치 어느 나라 독재자가 자신이 지명한 대의원들이 자신을 최고영도자를 뽑는 것과 닮은 상황에서 아무리 엄격한 제도나 장치를 만들어 본들 아무 소용이 없다. 

 

해마다 때만 되면 각 은행들은 최고경영책임자 선임위원회를 구성하나, 이 위원회가 선임될 당사자가 지명한 인사들로 구성되는 마당에, 어느 누가 나서서 자신에게 쥐어 준 꿀단지를 마다하고 의기 있게 ‘공정한’ 선임을 주장할 것을 기대할 수가 있을까? 여기에다 혹시 관(官), 정(政)의 입김이 들어가기라도 하는 날이면, 이제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적당히 나누어 주고 받는 상황이 벌어질 것은 빤한 노릇이다. 그렇게 되면 사정은 최악을 연출하게 된다. 빤한 일이나, 이제 감독하는 자도 감독을 당하는 자도 그들이 내편이고 나 또한 그들 편이 되어 무한 공생하는 저질 로맨스가 형성되고, 이런 구도가 오래 계속되기라도 하면, 만사 불문, 영예로운 3연임, 4연임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지금 이 사회가 이렇게 혼탁하고 질서가 흔들리는 게 어디 성경책이 부족하고, 도덕경이 실종된 탓인가, 아니면 범죄를 처벌할 법규가 모자라서 그렇길 한가, 그도 아니면 학교에 도덕 교육시간이 모자라서 그렇길 한가? 아무리 진선진미한 규율을 정해두고,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어도, 실제로 사안에 임하는 당사자들이 타인을 두려워하고 자신을 경애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모든 게 부질없고 헛된 몽상일 뿐이다.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일신의 영달을 위해 부당한 연줄을 찾아 쫓아다니는 일에 골몰하고, 솔선해서 근신해야 할 관(官)이 치(治)라는 명분을 앞세워 음으로 개입하거나, 아무런 상관도 없는 정(政)이 나서서 권력으로 암암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관행(?)이 횡행하는 상황에서는, 백약이 무효하고 어떤 공정 노력도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다. 지금까지 반복해온 수 많은 사례들이 여실히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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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일상 업무에 대한 감독 문제다. 금융 감독 당국은 그렇게도 많은 인력과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며 매년 추상 같은 업무 검사를 시행하고 있음에도, 시도 때도 없이 각종 비리가 불거져 나오고, 가끔은 대형 ‘게이트’로 엄청난 충격을 주는 까닭은 바로 관(官)이 치(治)하라는 일은 게을리하고 치(治)하지 말라는 일에 골몰하는 불법, 부당한 처사를 자행하는 폐습이 만연한 때문이 아닐까 한다. 여기에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기업 최고 경영책임자들의 선임에서부터 관•정과 불법 부당하게 결탁되는 원초적인 부정 구조가 작용할 개연성이 다분하다.   

 

게다가 밖으로 드러나는 불법, 부당 사례는 어쩌면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소위 거대 권력과 결탁해서 저질러지는 ‘거악(巨惡)’일수록, 교묘히 덮어져 넘어가다가 별 수 없이 은행들이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고, 속으로 골병이 들다 보면, 종국에는 패망의 길로 들어선다. IMF 위기 당시 그 때까지 겉으로는 멀쩡하던 은행들이 막대한 규모의 부실여신 대손(貸損)을 견디지 못해 줄줄이 넘어갔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 부류의 기업들이 마지막까지 연명하는 과정에는, 필유곡절(必有曲折), 내막에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는 깊은 사연이 숨어 있을 터이다. 

 

대개의 경우,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단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내부적으로는 엄청난 반발과 저항이 일어나지만 어찌어찌 해서 그냥 저냥 지나가기 일쑤다. 가령, 어떤 대기업이 여신 지원이 끊기게 될 처지에 도달하면 그 때부터는 가히 사생결단하는 자세로 은행과 대결을 벌이게 된다. 그리고, 은행들이 이런 존속 가치가 이미 없어진 부실기업들을 껴안고 고심하던 끝 무렵에는 거의 예외 없이 최고 경영층과 외부 ‘관치’, ‘정치’ 원흉들이 결탁해서 연명 수단을 두고 실무진을 압박하는 수순으로 들어간다. 그러다 더 이상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면 모두 어쩔 수 없이 손을 놓는다. 그 후에는, 그 동안 추가된 긴급 지원 자금이 더해진 부실여신은 고스란히 은행 손실로 남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이제는 기억도 희미해진 모모한 재벌기업들이 도태되는 과정에서도 이런 죽음을 앞둔 음모의 과정은 여지없이 되풀이됐고, 이면의 기막힌 사연들도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의 막대한 혈세도 싱크 홀처럼 빨려 들어가고 만 것이다. 이쯤 되면 누구나 당연한 의문을 머리에 떠올릴 것이다. 그렇게 깐깐하고 치밀한 은행원들이 어찌해서 그렇게 어처구니 없은 일 처리를 할까 하고 말이다. 짐작이 갈 만한 사례는 무수히 많지만, 한 사례를 들자면, 어느 은행장은 ‘ㅎ’ 모 그룹이 통째로 넘어가기 직전까지도, 당시 정권 실세를 들먹이며 ‘앞으로 6개월은 끄떡없으니 대출 품의를 올리라’고 호통쳤다는 일화도 있다. 물론, 이런 상황이 되면, 실무자들은 도장을 찍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피신하기도 하고, 우스운 얘기로, 대출을 거부한다는 표시로 도장을 거꾸로 찍기도 했었다. 

 

누대 정권은 언필칭 금융개혁을 기개(氣槪) 높이 외치고, 은행 산업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부르짖어 왔다. 어느 물정에 어두운 지도자는 서울을 유수의 ‘국제금융센터’ 도시로 육성하겠다는 허황된 몽상을 꿈꾸기도 했다.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 금융 분야 국제경쟁력 수준이 경쟁국들 가운데 최하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단언(斷言)컨데, 겉으로는 호기에 찬 청사진을 내걸고는 정작 뒤로는 이에 역행하는 야합(野合)과 비행(卑行)을 서슴치 않는, 이런 후진적 행태가 지금까지 아무런 변혁의 유인(誘因)도 없이 마냥 흘러왔기 때문이라고 본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일단 정권을 장악한 권력 집단에게는 금융 분야만큼 군침이 도는 영역도 없을 듯하다. 그래도 전에는 아무리 정권 실세들이라 해도 그나마 남의 일을 가지고 은밀하게 내시(內示)하며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요즘 드러나는 것들을 보면, 이제 권력자들이 대놓고 은행에 기대서 자신의 이권을 챙기는 사례가 빈번하다. 최근 일어난 것 몇 가지만 봐도, 라임 사태니, 옵티머스 사태니 해서, 아직 본격적으로 내막이 밝혀지지도 않았으나, 연루된 당사자들이 권력 심층부의 언저리에 직접 맞닿아 있다는 느낌은 농후하다. 

 

최근에는 청와대 대변인까지 지냈다는 모 인사가 시내에 있는 탐나는 가게 집을 매수하려고 은행에서 수십억 규모의 대출을 받아 문제가 되자 자리에서 물러났다가, 이번엔 버젓이 의원님 행세를 하고 있다. 정말로 가관이다. 얼핏 생각해 봐도 웬만한 중소기업도 이런 규모의 대출을 받으려면 여간 어려운 게 아닐 텐데, 하고 생각하니, 이런 어처구니 없는 경우가 일찍이 어디 또 있었을까 싶다. 이런 것 또한 관(官), 정(政)이 치(治)하는 본분을 한참 벗어난 불법 부당한 개입일 뿐이다. 

 

이렇게 관(官)이나 정(政)이 은행 등에 불법 부당한 개입을 통해 사익을 취하려고 권력을 행사했다면 이는 바로 은행 자산의 원천인 예금자들의 재산을 축내는 범법 행위다. 그리고, 그로 인해 해당 금융 기업에 손실을 끼쳤다면, 주가 상승 및 많은 배당을 기대했던 주주들, 안정된 원리금 상환을 기대했던 자금 대여자, 그리고 세금을 거두어 들이는 정부 등,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정당하게 기대하는 가치를 불법하게 훼손하는 악덕 행위일 뿐이다. 반면, 번연히 불법한 줄 알면서 압력에 굴하거나 영합해서 부당한 업무 처리를 강제하는 최고경영자는 공정하게 업무를 수행할 본분을 저버리고 은행 자산을 훔쳐내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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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나라 금융 산업의 고질인 ‘관치’의 병폐는 무엇보다 금융 기업들의 최고 경영층을 구성하는 절차에서부터 발원한다. 찾아보니 몇 해 전에 금융위원회가 소위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 방향”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 가운데, 금융기업 CEO 선임에서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 CEO가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임원추천위원회에 사외이사의 참여 비율을 늘리는 방안을 발표했던 모양이다. 혹시 지금도 금융 당국은 그런 강력한(?) 장치를 마련해 두었으니 이제 은행들은 아무런 문제없이 공정하고 효율적인 임원 선출이 이루어지고 있으리라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어느 금융그룹을 살펴봐도, 그룹 최고 경영자는 여전히 그룹 내 각 임원 선임을 빠짐없이 장악하고 있고, 심지어 일부에서는 ‘셀프’ 선임(연임)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관행처럼 굳어가고 있다. 

 

또 하나, 관치 문제와는 좀 다른 시각이지만 우리 금융계, 특히 은행들에 철통 같은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는 일종의 병폐로 지적할 필요가 있는 것은, 바로 ‘순혈(純血)주의’ 문제다. 이런 오래된 순혈주의 신앙은, 조직 내부의 경쟁 분위기를 고취하고 부단히 경영 혁신을 이뤄갈 바탕을 근본부터 말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런 구습에 젖어 있다 보니, 우리 정부도, 부실 경영으로 파탄 난 한 상업은행을 엄청난 규모의 재정 자금을 쏟아 부어 살려 놓고는, 다음에 경영 책임을 맡길 최고경영자로 바로 그런 경영 파탄의 책임을 져야 할 당시 임원진에서 다시 선임하는 아이러니도 태연하게 연출했던 적이 있다. 이는 감각 상실증도 정도를 넘어서는 문제였다. 

 

관치가 됐건, 정치가 됐건, 외풍을 막고 기업 경영의 본령을 지켜야 할 최고경영자가 오히려 자신의 영달을 위해 불나방처럼 관(官)을 쫓고, 정(政)에 기웃거리고 있다면, 병폐의 근원은 바로 그들 자신에게도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얼마 전 한 국책은행장이 집권 세력의 모임에 나타나 참석자들을 향해 만수무강을 외치는 광경이 보도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아직도 건재한 모양이다. 이런 조직의 업무 처리가 어떻게 돌아갈지는 묻지 않아도 짐작이 갈 만하다.  

 

이제, 우리 금융계의 고질인 ‘관치(官治)’ 논란에 답은 정해져 있고, 그건 대단히 쉽고 단순한 일부터 시작한다. 우선, 관(官)이건, 정(政)이건, 그리고 금융 기업 경영층이건, 모든 이들이 스스로 제 직분을 엄정하게 지키기만 하면 하등 어려움이 없이 이루어질 수가 있다. 무엇보다도, 현 금융 기업 경영책임자들은 혹시 밖에서 들어오는 부당한 압력이나 지시를 자신의 직(職)을 걸고 거절해 본 적이 있는지, 아니면, 자신의 입신 양명을 위해 마지못한 척 받아들이거나, 나아가 이들과 결탁하려고 애써 노력한 적은 없는지 통렬히 반성해 볼 일이다. 한 은행이 운명을 다하기 직전에, 혹자가 “은행장 셋은 죽어야 이 은행이 바로 설 것” 이라고 일갈했다던 전후 사정을 가슴 깊이​ 잘 새겨서 음미해 볼 일이다. 

 

이번 조사 결과, 우리 금융 CEO들 중에 열에 아홉이 관치(官治), 정치(政治)를 걱정했다고 하나, 이들은 그에 앞서 자신들의 지나온 행적을 다시 한번 진솔하게 자성해 볼 것을 권한다. 지금 금융 산업 전반에 닥쳐오는 전례 없이 엄혹한 도전 환경은 날로 험난해지고 있다. 혹여, 이에 대비한 기업 혁신 및 장기 비전을 세우는 일은 뒷전에 두고 타락한 관(官), 정(政)과 결탁하거나, 권력에 연줄을 대려고 기웃거리고 있다면, 금융 개혁이니, 경쟁력 향상이니 하는 것은 단지 공소한 허언에 불과할 뿐이다. 지금까지 걸어온 발자국을 보면 앞으로 어디를 향해 걸어갈 지 짐작할 수가 있다. 지금 같아선 한 마디로, 갈 길이 멀다. 그리고, 멀어도 한참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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