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변 경제학자’의 정책 체험기<14> 동아시아 통합과 동북아 경제중심-그 머나먼 길 > News 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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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변 경제학자의 정책체험기’는 공직생활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해외유학과 산업연구원 부원장,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국제무역연구원 원장, 그리고 주OECD대사를 역임한 이경태 박사가 겪은 주요 경제정책 결정과 집행과정의 뒷얘기들을 담은 연재물이다. 주로 정부 경제정책의 수단과 방법을 연구해 제공한 탓에 본인 스스로 ‘관변 경제학자’라는 수식어를 사용했지만, 그만큼 정책 이면사(裏面史)를 꿰뚫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정책당국자들에게도 많은 참고가 되리라 믿는다. 앞으로 20여회에 걸쳐 우리 경제발전의 주요 분수령이 된 정책과 사건의 자초지종은 물론 시사하는 바를 엮어나가고자 한다.<편집자> 

 

 ‘1998년 12월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김대중 대통령 “동아시아비전그룹 만들자” 제안 – KIEP 아이디어 제공이 밑바탕

 

1998년 7월경으로 기억되는데 청와대의 고위참모가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그의 사무실로 갔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이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는 정치지도자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동아시아에서 주도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지도자역할을 바라고 있다고 하였다. 그는 정부에서 무엇을 하면 좋은지 KIEP에서 아이디어를 개발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특히 12월에 열리는 아세안+3(아세안 회원국과 한·중·일 3개국) 정상회의에서 한국정부가 제안할 의미 있는 사업을 발굴해 달라고 했다.

 

연구원의 박사들과 토의를 거듭한 끝에 현인그룹을 구성해서 동아시아의 비전을 그려보는 것이 좋겠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져서 간단한 보고서를 만들어 그에게 보고하였다. 보고서를 만들 때 프랑스의 쟝 모네가 유럽의 통합을 위해서 독일의 석탄과 프랑스의 철강을 공동 관리하는 석탄철강공동체를 제안한 역사적 사실을 참고하였다. 즉 민간의 학자와 전문가, 기업가들이 모여서 쟝 모네와 같은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지고 동아시아에서도 유럽통합과 같은 지역통합을 이룩하여 평화와 공동번영의 길로 나아가자는 청사진을 만들어서 국가지도자들에게 제안하는 협의체를 구성하자는 것이었다.

 

그 후에 아세안의 10개 회원국과 한중일 정상이 참석한 회의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동아시아비전그룹을 만들자고 제안해서 채택되었다. 각국별로 두 명의 위원을 선정하기로 하였는데 한국에서는 한승주 전 외교부장관과 내가 선정되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비전그룹의 사무총장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물론 공식직함은 아니었지만 KIEP에 사무국을 설치하고 의제발굴과 회의지원업무를 수행하게 되었으니까 사실상 그런 셈이 되었다. 

위원들의 면면을 보면 학자, 연구원, 기업인, 문화인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사들이었고 전공분야도 경제, 안보, 사회, 문화 등이어서 종합적 관점에서 동아시아통합을 논의할 수 있었다.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복잡하게 얽힌 정치적, 안보적, 경제적 관계를 고려할 때 특정분야에 국한해서 논의를 전개하면 부문 간의 상호의존관계를 파악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되었던 것이다. 

 

의장은 공식적으로는 첫째 회의에서 선임될 예정이었으나 한국이 주도하는 회의이기 때문에 한승주 위원이 의장직을 맡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양해가 되고 있었다. 한승주위원과 나는 1999년 초에 아세안국가 중에서 싱가포르,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을 방문하였다. 방문국가에서 위원으로 선정된 인사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정부기관도 방문해서 앞으로의 성공적인 회의운영을 위한 협조를 부탁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구체적으로는 회의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사전협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었다.

 

한승주 위원은 교수로서 동아시아의 여러 지역포럼에 참여하였고 거기다가 외교부장관을 역임하였기 때문에 교분이 두터운 인사들이 많아서 대화가 원활하게 이루어 졌다. 그들은 한국이 동아시아통합을 위한 중요한 회의를 주도적으로 개최하는 것에 대해서 환영한다고 했고 비록 위원들이 민간인 신분이지만 정부가 임명하였고 회의의 진행과정에서 정부와 긴밀히 소통하는 반관반민(半官半民 : 1.5 트랙) 성격이기 때문에 나중에 나올 보고서가 정부의 정책으로 채택될 수 있는 기회의 창이 열려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비전그룹(의장 한승주 전 외교장관) 최종보고서, 2001년 10월 정상회의에 보고

동아시아공동체(East Asian community)형성…통합보다 협력증진에 초점

 

아세안 국가들은 한국, 중국, 일본 중에서 한국에 대해서는 경계심이 거의 없었다. 중국은 엄청난 인구와 높은 경제성장으로 경제대국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중이었으므로 과거 역사에서 중국이 종주국으로 행세하던 시절의 좋지 않은 기억을 되살릴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말 할 필요도 없이 대동아공영권을 표방하면서 동남아국가들을 침략하던 제국주의의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에 반해서 한국은 부정적인 역사의 유산이 없었고 빈곤국에서 선진신흥국으로 도약한 국가로서 아세안 국가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나라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한국이 동아시아통합을 주창하는 데 대해서 환영하였던 것이다. 중국역시 일본이 주도하는 것 보다는 한국이 주도하는 것이 마음 편한 것이었고 마찬가지로 일본의 입장에서도 중국보다는 한국이 편한 상대이었다. 

 

이러한 사전 협의과정을 거쳐서 마련된 회의운영 방침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비전그룹은 동아시의 경제, 정치, 환경, 사회문화 분야의 긴밀한 협력을 위해서 구체적이고 단계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한다.

둘째, 비전그룹은 2001년 아세안 플러스 3개국 정상회의이전까지 5회 만나고, 최종보고서를 작성하여 정상회의에 보고한다. 첫 번째와 마지막 회의는 서울에서 개최한다.

 

비전그룹은 동아시아지역의 협력증진방안을 제시하겠다고 했으며 통합방안을 제시하겠다는 표현은 의도적으로 쓰지 않았다. 동아시아 각국의 상이한 역사적 배경, 경제적 격차, 종교와 인종의 다양성, 이질적인 체제와 가치 등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을 무시하고 유럽이 걸어온 통합을 지향한다는 것은 무리인 점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부 위원들은 장기적 비전으로서 통합을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으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동아시아국가들은 지역통합을 심화시키기 위해서 주권을 일부라도 양보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 주권의 양보는커녕 주권행사에 대해서 제약을 받을 의사도 없었다. 그들에게 국가주권은 신성불가침이었다. 민족주의가 공고히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통합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동아시아 비전그룹은 다섯 번의 회의를 거쳐서 최종보고서를 작성하여 2001년 10월 아세안 플러스 3개국 정상회의에 보고함으로써 그 임무를 완수하였다. 최종보고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1997년의 동아시아 외환위기는 동아시아국가들이 유사한 위기를 사전예방하고 위기발생 시에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지역협력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자각을 일깨워 주었다.

 

둘째, 동아시아 비전그룹은 동아시아공동체(East Asian community) 형성을 비전으로 제시한다. 동아시아공동체는 집합적 노력을 통해서 평화, 번영, 진보를 이루어 나가며 무역, 투자, 금융을 포함하는 경제협력이 촉매 역할을 수행한다.

 

셋째, 동아시아공동체는 다음 목표를 지향한다.

 -지역 내 국가들 간의 갈등을 예방하고 평화를 증진한다.

 -무역, 투자, 금융, 개발의 분야에서 더욱 긴밀한 경제협력을 달성한다.

 -환경보호와 지배구조개선을 위한 지역협력을 원활하게 추진하여 인간안보(human       security) 를 향상시킨다.

 -교육, 인적자본개발을 강화하여 공동번영을 증진시킨다.

 -동아시아공동체의 정체성을 함양한다.

 

‘자유무역지대 설치’ ‘금융협력재원 마련’ ‘교육기금 설치’ 등 각국 정상에 별도건의

 

넷째, 정상들에게 다음 사항을 건의한다.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를 설치한다.

 -동아시아의 자조적 금융협력재원을 마련하고 지역금융 감시기능을 강화하여 IMF     기능을 보완한다.

 -선린, 상호신뢰, 연대의 기반위에서 지역 내 정치관계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규     범, 절차, 기제를 발전시킨다.

 -새로운 세계질서구축과정에서 동아시아의 목소리를 크게 내고 역할을 증대한다.

 -지역 내 선진국이 중심이 되어서 빈곤퇴치프로그램을 설치한다.

 -초등교육, 문맹퇴치, 직업훈련 강화를 위해서 동아시아교육기금을 설치한다.

 -정부와 비정부 대표들로 구성된 동아시아 포럼을 만들어서 지역협력을 논의한다.

 

회의에서 공동체의 영문표현인 community의 첫째 알파벳인 "c"를 대문자로 표기하는 문제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대문자로 표시하자는 위원들은 동아시아가 궁극적으로 EU수준의 통합을 지향한다는 의지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East Asian Community’가 고유명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European Community’처럼 말이다. 여기에 반대하고 소문자로 표시하자는 주장은 동아시아공동체가 유럽의 높은 수준의 통합을 지향하는 것은 동아시아의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는 비현실적 꿈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유럽의 역사는 통합과 분열이 반복되어 온 데 반해서 동아시아는 통합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유럽은 로마에 의해서 통일되었다가 로마 멸망이후의 혼란기를 거친 후에 다시 프랑크제국이 오늘날의 프랑스, 독일, 이태리지역을 통일하였다. 그 후 재차 분열과 혼란을 겪다가 근대에 들어오면서 다수의 국민국가들이 형성되었으나 1, 2차 세계 대전의 대살육극이 일어났다. 2차 대전 종전이후에 유럽 국가들은 옛날 팍스로마나시대의 평화체제를 복원하기 위해서 무력이 아니라 다수 주권국가의 동의에 의한 통합을 이루어 내고 있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동아시아는 역사상 통합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비록 중국이 종주국으로서 주변 약소국들과 조공관계를 맺고는 있었으나 일본과 동남아시아국가들은 조공관계에서도 제외되어 있었다. 또한 유럽에 비해서는 참혹한 전쟁의 참화가 덜했기 때문에 유럽수준의 지역통합을 이루어 내어야 한다는 강력한 절실함과 공감대가 부족하였다. 여하튼 대문자 “C" 사용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소문자를 사용하기로 결정되었다.   

 

“금융자본시장의 높은 수준개방”의견엔 중국이 강력 반대…“통화는 경제주권의 상징” 

 

회의에서 토의가 길었던 또 하나의 분야는 금융자본시장개방과 협력이었다. 일부 위원들은 무역에서 자유무역지대의 설치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금융자본시장에서도 높은 수준의 국경개방이 요망된다고 주장하면서 심지어는 유로와 유사한 동아시아 공통통화의 출범을 장기비전으로 제시하자고 제안하였다. 여러 나라가 유보적 입장을 표명하였는데 특히 중국이 강하게 반대하였다. 

 

휴식시간에 나는 중국인사에게 그 연유를 넌지시 물었더니 대답인즉 한국이 외환위기를 비켜가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가 자본시장을 조급하게 개방하여 외국 자본이 자유롭게 들어왔다가 일시에 빠져나간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통화는 경제주권의 상징이기 때문에 절대로 단일 지역통화의 도입에 찬성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말이 틀렸다고 반박할 수가 없었다. 최근 이태리, 그리스, 스페인 등이 재정위기로 경제가 침체되는데도 불구하고 금리를 내릴 수도 없고 평가절하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중국대표의 우려가 지나친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융위기예방과 해결을 위해서 지역통화기금을 설치하는 의제에 대해서도 열띤 토의가 있었다.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 일본이 아시아통화기금(AMF)을 설치하자고 제안했으나 미국의 반대와 중국 등의 모호한 입장 때문에 무산된 적이 있었다. AMF설치안이 다시 의제에 올랐는데 중국은 강력하고 독자적인 권한과 기능을 가진 기구설치를 주장하였고 일본은 IMF와 보완적으로 작동하는 기구설치를 주장하여 결국 일본 측 주장이 반영된 합의가 이루어 졌다. 그 후에 중국이 AIIB(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를 설립한 것을 보면서 나는 중국이 IMF에 대항하는 AMF를 의중에 두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 보았다. 

 

KIEP, 매년 13개국 동아시아 연구원장 초청회의 개최… 동아시아 협력분위기 띄우려 노력

 

김대중 정부는 비전그룹의 건의를 동아시아협력증대의 구체적 성과로 잇기 위해서 후속조치를 강구하였다. 건의사항별로 구체적 사업을 구상해서 아세안 플러스 3개국의 실무급 회의와 장관급 회의에서 논의하고 정상회의의 의제로 올리는 방식으로 추진하였다. 

나는 매년 동아시아 연구원장 회의를 개최하여 동아시아 협력분위기를 띄우려고 노력하였다. 아세안 10개국과 한중일 3국의 공공연구소 소장들을 초청하여 매년 한국에서 회의를 개최하여 협력방안을 토의하였다. 정부는 이 사업을 위한 예산을 기꺼이 지원하여 주었다.

현재 시점에서 평가하여 보면 동아시아자유무역지대창설을 위해서 포괄적 경제파트너십협정(RCEP: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의 협상이 진행 중이다. RCEP협상에는 아세안회원국과 한국, 일본, 중국이외에 인도, 호주, 뉴질랜드도 참여하여 동아시아의 범위를 넘어서서 확대되었다. 협상속도가 느리고 개방의 수준이 만족할 만하게 높을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지만 비전그룹의 건의가 실천에 옮겨지고 있는 것이다.

지역금융협력에서는 치앙마이이니시어티브에 의해서 각국이 출연하여 기금을 설립하였고 금융외환위기가 발생하면 긴급자금을 수혈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었다. 동 기금의 규모는 확대되고 있고 IMF로부터 독립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자금한도를 설정하는 등의 제도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동아시아의 정치정세는 아직도 갈등구조가 온존하고 있고 평화정착으로 가는 길은 멀고 불확실해 보인다. 한중, 한일, 일중, 중국과 아세안간의 관계가 모두 불안정하고 역사 갈등과 영토분쟁이 오히려 증폭되는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더해서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다툼은 동아시아의 정치, 안보상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비전그룹 보고서에서는 경제협력이 촉매제가 되어 정치, 안보협력을 견인하겠다는 희망을 담았지만 아직까지 경제협력의 제도화가 만족할 만한 성과를 보이지 않고 있고 정치와 안보협력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것이 나의 평가이다.

 

동아시아통합을 꿈꾸는 인사들은 은연중에 유럽통합에서 영감을 얻으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 다르다. 유럽은 석탄철강공동체에서 출발해서 자유무역지대를 출범한 이후에 단일통화를 실현하였고 유럽중앙은행을 설립하여 통화정책을 이관하였으며 대외통상교섭권도 EU에 양도하였다. EU는 국가 간 협력기구를 넘어서서 자체적인 주권을 행사하는 초국가기구로 진화하여 왔다. 

그러다가 2011년 이후에 그리스, 이태리, 스페인, 포르투갈 등에서 재정위기가 발생하고 그리스의 EU 탈퇴움직임 등으로 더욱 수준 높은 초국가기구로의 진화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영국이 EU를 탈퇴하기로 결정하면서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고 앞날이 불확실해 졌으나 은행동맹, EU예산 등 통합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 추가적인 조치도 이루어지고 있어서 유럽통합의 원대한 이상은 현재진행형이다. 

 

동아시아협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이 동북아 협력이다. 아세안국가들은 동아시아협력의 주도권을 자기들이 쥐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이른바 ‘ASEAN Centrality’ 이다. ASEAN의 지역통합이 먼저 시작되었고 한국, 중국, 일본이 합심해서 동아시아협력을 주도할 수 있는 리더십이 부재하다는 점이 그 배경이었다. 그러나 경제력으로 보면 한중일 3국은 아세안과 비교해서 다윗을 압도하는 골리앗의 힘을 가졌다. 그러니 한중일 3국이 합심하면 다윗역할을 자처하는 아세안을 넘어서서 동아시아통합을 주도할 수 있고 그렇게 되어야만 진정한 동아시아 시대가 열릴 수 있다고 본다. 마치 유럽통합과정에서 독일과 프랑스가 협력했기 때문에 통합의 장애물들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이치이다. 

 

DJ정부 “동북아 경제중심 선언” 이어 노무현 정부 “동북아시대위원회 설치”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협력을 강조하면서 동북아시대를 열어나가자는 국정 아젠다를 가지고 있었고 대통령 자문기구인 동북아시대위원회를 설치하였다. 그런데 동북아협력구상은 애당초 한국이 동북아의 경제중심이 되겠다는 구상에서 출발하였다. 동북아 경제중심은 한국의 경제력을 키워서 동북아의 중심국가로 우뚝 서겠다는 한국중심의 국가 아젠다이고, 동북아협력은 다른 나라와의 협력을 통해서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 오겠다는 국제적 아젠다이니까 서로 관련성은 있어도 다른 것이었다. 

 

동북아경제중심은 2002년 1월에 김대중 대통령이 대한상의 신년인사회의 연설에서 한국이 동북아시아의 물류-비즈니스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 것이 그 출발점이었다. 그 배경에 나의 역할이 있었다. 나는 OECD로 부임하기 직전인 2001년 11월에 청와대 고위비서관에게 한국의 동북아비즈니스중심구상을 전달하였다. 그 모델은 싱가포르였다. 싱가포르가 다국적기업의 아시아지역본부를 다수 유치하여 경제의 국제화를 고도화하고 크나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것을 보고 한국이 지정학적 이점을 활용하고 규제개혁 등 비즈니스하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서 다국적기업의 동북아본부를 유치하자는 구상이었던 것이다.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던 중국시장을 겨냥하는 다국적기업들이 한국에 지역본부를 설치하고 중국진출의 거점으로 활용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한국의 통신, 주거환경이 중국에 비해서 월등하다는 점도 활용할 수 있었다. 나의 건의를 듣고 나서 그 비서관은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했고 다음해 정초의 대통령 연설문에 포함되었던 것이다.

 

‘동북아 경제중심구상’ 다음 정권 계승 안 돼…“국가 정책이 5년 지나면 폐기되는 현실 안타까울 뿐”

 

동북아 경제중심구상은 다음 정권에서 계승되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어도 국가발전을 위해서 계속되어야 할 정책은 분명히 존재하는데 대부분의 정책이 5년이 지나면 폐기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지금 한국경제의 앞날에 대한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현실에서 보면 동북아경제중심과 같은 중장기 비전을 설정하고 국력을 모아서 추진해 나가는 꿈이 없다는 것이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ifs POST>  

 

  <시리즈 순서>

1. 관치금융과 금융자율화

2. 중화학공업의 돈줄, 국민투자기금

3. 급진적 대외개방이냐?, 점진적 대외개방이냐?

4. 반도체산업은 민간주도로 꽃피었다

5. 개혁-개방초기의 중국을 가다 

6. 대우조선을 파산시킬 것인가? 구제할 것인가?

7. 재벌의 업종전문화: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가 되었다 

8. 삼성에게 상용차생산을 허용할 것인가?

9. 첨단산업발전법 제정의 무산

10. 한국의 에너지과소비의 원인을 규명하다

11. IMF 외환위기 이야기

    ➀ 위기를 예측하지 못하다

    ➁ 대미설득과 금융정책

    ➂ 구조조정에 얽힌 일화들

12. OECD대사 시절의 한국논의

    ➀ 한국은 개도국이 아니다

    ➁ 좌절로 끝난 김대중정부-OECD 대북협력 시도 

    ➂ 한국은 노동탄압국인가?

13. 한국을 둘로 쪼갠 한미 FTA 협상

    ➀ 통계조작소동으로 날밤을 지새우다

   ➁ 미국경제식민지 괴담의 실체를 파헤친다

   ➂ 광우병파동과 촛불데모

14. 동아시아 통합과 동북아 경제중심 - 그 머나먼 길 

15. 한국의 개발경험 전수 : 에티오피아

16. 연재를 끝내며

 

※이 시리즈의 목차는 사정에 따라 가감될 수 있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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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3-06 17:00:00 최종수정 2019-03-06 12: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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