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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준 상처가 너무 크고 깊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6년10월30일 18시55분
  • 최종수정 2016년10월30일 22시39분

작성자

  • 김동률
  • 서강대학교 교수. 매체경영. 전 KD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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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고 유약했던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은 유년시절 아버지로부터 걸핏하면 “겁쟁이”란 말을 들으며 자랐다. 젊었을 때에는 파티도중 춤추던 댄스 파트너의 남자친구로부터 코피터지게 얻어맞고 유혈이 낭자한 채 끌려 다닌 아픈 기억도 있다. 존슨은 늘 자신이 약하고 강하지 못하다는데 불만이었고 또 자기의 그러한 성격이 타인에게 알려질까 내심 불안해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배심두둑한 사람처럼 행동해 왔다. 그런 존슨의 성격이 베트남 전쟁으로부터 미국을 끄집어 내지 못한 결정적인 배경이 된다. 존슨의 전기 집필자였던 도리스 컨즈의 주장이다. 전쟁을 두려워하는 겁쟁이로 비쳐짐을 극도로 꺼린 탓에 미군 철수시기를 놓쳤다는 분석이다. 

 

재선을 앞둔 소심했던 리처드 닉슨은 상대방 후보가 자신을 어떻게 공격해 올까 하는 걱정 때문에 잠 못 이룬 나날을 보낸다. 결국 그의 이 같은 불안한 성격이 라이벌 후보의 선거사무소를 한밤중에 뒤지는 ‘워터케이트’ 사건으로 발전되어 스스로 권좌에서서 물러나는 최악의 경우를 맞게 된다.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경우는 대조적이다. 그는 소아마비로 걷기에 몹시 불편했지만 오히려 자신만만함과 여유로 미국민들과 직접 대화해 가며 2차 대전 후 몰아닥친 경제적인 어려움을 성공적으로 극복해 나갔다. 매주 라디오를 통해 국민들과 소통하던 시간에는 미국인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거리의 차는 급격하게 줄었다고 한다. 이른바 노변정담 (fireside chat)을 통한 성공적인 대국민 소통 사례다.    

 

이처럼 성장기의 특별한 경험이나 개개인이 가지는 독특한 성격이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대통령의 자질과 성격을 둘러 싼 논쟁이 정신분석학적으로 이슈가 된 것은 그리 멀지 않다. 지난 1992년 미국의 부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성격을 공격하면서 부터 이 논쟁은 급속히 정가를 달구었다. 당시 현직 대통령이던 부시는 클린턴의 베트남 참전회피와 바람기 등등을 안주거리로 삼아 두고두고 씹어댔다. 그러나 경제상황에 더 무게중심을 둔 미국인들은 부시의 주장처럼 병역도 기피하고 허풍도 심한 클린턴에게 합중국의 운명을 맡겼다. ‘문제는 경제야’ (It's the economy, stupid) 라는 유명한 말이 대중들에게 회자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시기다. 

 

대통령의 자질과 성격을 둘러싼 논쟁은 4년 뒤인1996년 클린턴과 밥 돌 간의 대결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선거판세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공화당 후보였던 돌은 베트남 참전으로 불구가 된 자신의 한쪽 팔을 의도적으로 흔들어 보이며 병역 기피자 클린턴을 신랄하게 공격한다. 그럼에 불구하고 각종 여론조사는 대통령의 성격과 자질면에서 돌에게 약간의 우위를 줄 뿐, 정작 표는 클린턴에게 던져, 클리턴에게 재선의 영광을 안긴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 4년 동안 재임기간 중 클린턴이 거둔 정치적, 경제적인 성공에 유권자들은 더 무게를 실어줬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후보 때와는 달리 어떻게 살았느냐 보다는 어떻게 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느냐에 무게를 둔다.

 

박근혜 대통령을 보는 한국인들의 시각은 차갑다. 좋아하는 이보다는 증오에 가깝게 싫어하는 사람이 큰 폭으로 늘고 있다. 그를 싫어하는 배경에는 무엇보다 박대통령이 가지는 독특한 “캐릭터”나 “퍼스낼러티”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기 확신이 지나치게 강하고 소통이 쉽지 않다는 것은 비판자들이 주로 제기한 문제점들이다. 특히 작금의 최순실 사태에서 보듯이 국정을 비선에 의존하는 충격적인 잘못을 저질렀다. 이는 보통 사람들이 감내하기 힘든 성장기에서 오는 여러 가지 트라우마가 작용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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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은 재임하는 동안의 성과다. 대통령과 비선 실세, 청와대 비서실, 친박 의원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눈은 한겨울 얼음장이다. 사사건건 각을 세웠던 반대세력은 물론이고 그동안 굳건히 떠받치고 있던 보수층마저 등을 돌리는 지금의 사태는 위중하다.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 사면초가에 놓여 있는 지금의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보통사람들의 마음은 편치 못하다. 더구나 강력한 지지자들의 등을 돌리게 한 원인을 박대통령이 스스로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대통령이 희화화되는 국가는 쇠락하게 된다. 역사가 보여주는 엄중한 경고다. 대통령이 준 상처가 너무 크고 깊다. <ifs P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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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6년10월30일 22시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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