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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기자의 유쾌한 명상체험기-‘쉐우민 이야기’ <1> 미얀마 첫날의 기억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06월24일 19시42분

작성자

  • 김용관
  • 동양대학교 교수(철학박사), 전 KBS 해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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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들어가며

  최근 들어 세계적으로 명상 붐이 일고 있다고 한다. 세계가 좁아질수록 인간의 삶이 복잡하고, 팍팍하고, 변화무쌍해져서 삶의 좌표를 잃어버리는 사람이 많은 탓일 게다. 생활이 번다하면 번다할수록 각자의 삶을 돌아볼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나 역시 그랬다. 잃어버린 삶의 좌표를 찾고 싶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가?’, 

 이런 내면의 질문들이 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꽤 오랫동안 제 나름대로 참선수행을 해왔지만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고양이가 쥐를 잡기 위해 쥐구멍 앞에 앉듯’, 마음을 하나로 모아 열심히 화두를 들다가 시절인연이 닿으면 언젠가는 확철대오 하리라는 믿음을 참 오랫동안 지니고 있었다. 

그런 믿음에 회의가 일어날 쯤이면 묘하게도 한 번씩 수행의 체험이 얻어졌다. 형언할 수 없는 마음의 평화나 기쁨 같은 심리적 상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체험조차도 확실한 것이 아니었다.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경계였고, 해석되지 않는 우연일 뿐이었다. 조사의 어록이나 선사들의 설법은 그저 ‘열심히 화두를 참구하라’ 뿐이었다. 시원하게 가르침을 주는 스승을 만나지 못한 건 본인이 박복한 탓이었을 게다. 수년 전 열반하신 스승이 못내 그리웠다.  

 

  그럴 때 나는 위빠사나 명상과 만났다. ‘쉐우민 심념처’, 위빠사나 명상 중에서도 내게 인연으로 다가온 수행법이었다. 쉐우민 센터에서 수행법을 배워온 한국 스님들과 우연히 만나 그 법에 대해 들었다. 법공양판 쉐우민 법문집을 탐독하며 독학으로 수행법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제 나름대로 결론은 내렸다. “해 봄직 하다”고. 위빠사나에는 인간의 마음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고, 무엇보다 깨달음으로 가는 ‘수행의 로드맵’이 있었다. 

  본격적으로 해 보고 싶었다. 벼르고 별러 쉐우민 센터를 찾은 건 2015년 1월이었다. 그리고 연속 세 번의 겨울을 미얀마에서 보냈다. 미얀마의 겨울은 선선하다. 혹독한 한국의 겨울을 피해 갈 수 있다는 건 수행이 주는 최고의 보너스였다. 수행처에서 만나는 세계 각국 요기들과 만나는 재미 역시 쏠쏠했다. 이제 그 3년의 기억을 되살려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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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 you hungry?”

  한 겨울 한 밤중 서울을 출발해 1박2일 만에 도착한 여름나라 미얀마. 양곤 공항의 첫 인상은 20여 년 전 개혁개방 직후의 베이징 공항과 흡사했다. 맨 처음 한 일은 환전. 찢어지거나 구겨지거나 접히거나, 도장 찍히거나, 낙서가 돼 있는 돈은 일체 받지 않는다는 주의사항에 겁먹고 준비해온 백 달러 짜리 샛빳빠 한 장을 내고 10만3천 짯(미얀마 화폐의 환율을 우리 돈과 거의 같음. 그래서 짯은 원으로 이해해도 무방함)을 받았다. 천 짯 짜리 백장 뭉치가 생소했지만, “천 짯 지폐가 가장 쓰임새가 많아서겠지” 라고 내 나름대로 이해한다. (공감능력이 넘 흘러넘쳐서 내 인생은 늘 피곤하다. ㅎㅎ) 

 

  다음 순서...  택시를 타야지... 공항 출입문을 나서자마자 택시기사들의 호객행위가 반갑다. 그렇지. 택시비를 흥정해야 한다지... “쉐우민!”, 외쳤더니 바로 응답이 온다. “에잇 싸우센!”. “응? 아~ 8천원. 듣던 것보다 싸네? 오케이 렛츠 고” 공항에서 벗어나는 길은 공사 중. 먼지가 풀풀 날리는 비포장 길을 따라 시가지로 들어선다. 30-40분을 갔을까. 도착했다는데... 웬걸 시내 한 복판 아파트 단지 같은 곳이다. 열대 밀림의 숲 속 한적한 사찰을 연상하고 있던 내 마음이 잠시 산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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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심 “아하~ 그럴 수도 있겠구나. 미얀마는 불교국가이니 생활이 곧 불교라서 승속이 이렇게 명실공히 함께 섞여 있나보네” 쯤으로 생각한다. 기사에게 명상센터 오피스를 찾으랬더니, 한참을 오락가락하며 이리 묻고 저리 헤맨다.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단지를 몇 바퀴를 돌고 나서야, 내게 말한다. “양곤에는 두 곳의 쉐우민이 있다고들 한다”고. 황당. 그래도 뭐 별 수 있나? 택시에서 내리는 순간 국제미아가 되고 말텐데. 그래 가자. 다른 한 곳의 쉐우민으로. 

 택시기사는 설명한다. 이곳에서 한 시간 남짓 더 가야한다. 그래 얼마주면 되니. 2만짯? 가자! 줄게. 기사는 열심히 어디론가 운전해 간다. 나는 느긋하게 눈에 펼쳐지는 광경을 즐긴다. 사람, 차, 거리... 생소한 그만큼 눈이 즐겁다. 우연히 주어진 시간이 여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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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 기사양반이 생뚱맞게 내게 묻는다. “아 유 헝그리?” “노 프로브럼” 나는 대답한다. 이제 가까이 왔음 직한데... 묻고 묻고 또 묻고 그렇게 어렵사리 도착한 쉐우민 국제 명상센터. 서툴게 2만 짯을 헤아려 내밀며 수고했다고 말하는 내게 기사가 힘들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아 임 베리 헝그리.” 아차! “아 유 헝그리?”는 나를 배려해 던진 질문이 아니었구나. 자신이 점심도 못 먹었다는 말이었는데. 명쾌한 내 대답이 얼마나 야속했을까? 어차피 정해진 시간도 계획도 없는데, 초면이지만 함께 점심 먹을 수도 있었는데...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은 어렵다. 말 뿐 아니라 정황과 인격까지 고려돼야하는 것이기에. 

그렇게 나는 쉐우민 숲속 명상센터에 왔다. (돌아갈 때 명상센터에서 공항 가는 택시를 불러 탔는데, 택시비는 7천 짯이었다. 그래도 묘하게 억울하거나 괘씸한 마음은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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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폼 치마 

  미얀마의 보통사람들은 남녀 할 것 없이 ‘론지’라는 치마를 입는다. 론지는 아마 지구상 존재하는 치마들 가운데 가장 단순한 형태가 아닐까 싶다. 론지는 그냥 두 겹의 통짜 천조각일 뿐이다. 디자인도, 사이즈도, 허리춤을 조이는 고무줄도 아랑곳없다. 하반신을 이 천 가운데 끼우고 허리 한 쪽을 고정시킨 뒤 다른 쪽을 조이고, 반대쪽도 마찬가지로 조인 뒤 양쪽에서 남은 천을 교차시켜 돌돌 말아서 괴춤에 우겨넣으면 끝.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남자는 정면 배 쪽에, 여자는 측면 허리 쪽에 매듭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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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쉐우민 생활은 이 치마, 론지로부터 시작됐다. 요기(Yogi 그곳에선 수행자를 이렇게 부른다)들은 론지를 입어야 한다. 바지가 속세의 표징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지리의 동서와 인종의 흑황백에 관계없이 요기들 모두 치마 차림이다. 패스포트를 저당 잡혀 등록을 한 뒤 개인 보급품을 받았다. 침대 시트와 베개 커버, 그리고 모스키토 네트(모기장)... 론지는 오피스에서 구입하는데 윗도리 하얀 티셔츠 포함 9천5백 짯. 갈아입어야 하니 2장씩 만9천 짯. 차암~ 싸다. 

 판매하는 론지는 시기별로 색깔과 무늬가 달라서 입고 있는 치마 색깔만으로 그 요기가 수행처에 온 지 얼마나 됐는지 점칠 수 있다. 나와 같은 시기에 온 요기들은 모두 짙은 갈색 론지를 입고 있다. 염색기술이 열악한 듯, 세탁할 때 마다 붉은 물이 엄청나게 빠져서 색깔이 옅어지는데, 그래서 고참일수록 빛바랜 론지를 입는다. 갈색이 아닌 녹색 계열의 론지를 입은 요기들은 왕고참들이다. 이 왕고참들이 론지를 입는 모습은 그야말로 예술이다. 현지인 못지않다. 현지인 요기들은 집에서 가져온 론지를 입기 때문에 각양각색이어서 이방인들과 쉽게 구분된다. 

 

  난생 처음 치마를 입어본다.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 허리띠도 고무줄도 없이... 오피스 여직원들이 그런 나를 보고 재밌어 한다. 보다 못해 거들어 주다가 급기야 노끈을 갖다 준다. 허리에 노끈을 묶고 오피스를 나서는 모습이 영락없이 영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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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 메이트 

  2인1실. 대학의 기숙사 같은 분위기. 내가 머물 처소다. 몽크가 아닌 남성 요기들이 지내는 건물은 A와 B, 두 개 동이다. 여직원이 ‘B-12'라고 표기된 열쇠를 건네주면서 처소가 오피스 바로 옆동 2층이라고 알려준다. 열쇠를 열고 들어가니 양쪽으로 침대가 두 개. 비어있는 침대가 내 몫이다. 관심의 초점은 룸메이트. 군대 내무반 못지않게 정갈하게 정리된 침구, 침구 위에 단정하게 접힌 티셔츠, 각 잡힌 책들...  “앗! 강적이다. 자칫 피곤하겠구만.” 불현 그런 생각이 든다. 

  지난밤 지친 몸을 빈 침대에 싣고 두 세 시간. 비몽사몽지간에 드디어 룸메가 나타난다. 약간 작은 체구에 짙은 눈썹, 커다란 눈, 그리고 콧수염을 길렀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그가 말한다. “유 머스트 비 코리안”, 나도 화답한다. “유~ 제패니스, 안 츄?”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를 너무 잘 안다. 룸메와 나는 그렇게 처음 만났다. 룸메의 고향은 몇 해 전 원전사고가 났던 후쿠시마 부근 소도시, 50 갓 넘은 총각, 직업은 카투니스트. 주로 명상을 주제로 만화를 그린다. 그동안 낸 카툰집은 모두 7권, 일본에서는 안 팔리고 홍콩에선 좀 팔린다고. 명상에 관한 한 단연 고수. 14년 전 처음 미얀마에 명상하러 왔고, 그동안 미얀마의 명상센터 이곳저곳을 모조리 섭렵했다. 마하시, 참메, 빤디따라마, 고엔까... 쉐우민에는 이번이 다섯 번 째. 지난 해 9월 와서 올 7월까지 머물 예정이라고. 그와 나의 공용어는 브로큰 잉글리시. 문법도 어순도 따질 것 없다. 단어의 나열만으로 의사소통 100%. 그야말로 ‘염화시중의 영어’라고나 할까? 간 사람과 온 사람의 면면, 센터 행사, 대중공양의 메뉴, 그밖에도 나의 궁금증을 푸는 많은 정보들이 그 언어로 소통된다. 

 

  그는 하루 두 차례 법당에 공양물을 올리는 소임을 맡고 있다. 왕고참들이 하는 일. 식사를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을 거슬러, 오랜 기간 센터에서 수행해 야윈 용모의 서양요기가 앞서고 그 뒤를 콧수염을 기른 룸메가 각각 공양물을 받쳐 들고 지나가면 식사개시를 알리는 커다란 목탁이 울린다. 그는 여성 수행자 한 사람이 새로 올 때까지 센터 유일의 일본인이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그는 분개하듯 말한다. “일본사람들은 수행에 관심이 없다. 일본의 절들은 비즈니스일 뿐이다.” 선을 서양에 처음으로 소개했던 스즈끼 다이세츠의 나라, 백 년 전 팔리어 경전을 자국어로 번역했던 나라, 일본에서 온 그가. 혹시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되는 건 아니겠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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