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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뮤지컬, 꼭 위험한 도전이어야만 하는가?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3월27일 20시43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2시37분

작성자

  • 박명성
  • 신시컴퍼니 대표, 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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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뮤지컬, 꼭 위험한 도전이어야만 하는가?

 

  오는 7월, 조정래 선생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창작뮤지컬 <아리랑>을 무대에 올린다. 광복 70주년이라는 의미도 있고 우리의 브랜드가 될 수 있는 창작뮤지컬을 만들어야 한다는 프로듀서로의 사명감도 있다. 프로듀서로서의 욕심도 한 몫을 했다. 이외에도 이 뮤지컬을 만드는 크고 작은 이유가 있다. 

그런데 내가 이 작품을 만든다고 했을 때 열에 아홉은 기대보다는 걱정을 더 많이 했다. 원작 소설의 탁월함, 광복 70주년, 창작뮤지컬의 중요성 등에 공감하지만 재정적으로 너무 위험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해외에서 이미 무대에 올려졌던 작품을 그대로 가지고 오는 경우라고 해도 우리 관객들에게 보이기 전까지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러니 모든 것이 최초인 작품에 수십억 원의 제작비를 투자하는 것은 여간 위험한 일이 아니다. 이렇게 위험하고 힘든 도전을 우리 컴퍼니에서 한다고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창작뮤지컬이 이렇게 위험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기 위해서다. 대형 창작뮤지컬을 제작할 때 기대보다는 걱정을 더 많이 듣는 현실이 공연계뿐 아니라 우리 문화 전체를 위해, 그것을 향유하는 우리 국민들에게 좋은 일인가 묻는 것이다. 

 

  뮤지컬뿐 아니라 공연계 전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뮤지컬 시장의 규모가 3천억 원이라고는 하지만 관객 수의 증가율보다 작품 수의 증가율이 더 가팔랐다. 대형 창작뮤지컬이 위험하고 무모한 도전이 되지 않으려면, 나아가 공연문화가 풍성해지려면 이를 즐기는 관객이 많아져야 한다.

 

 공연계의 문제를 말할 때, 어디에서 시작해도 그 끝은 관객의 수로 수렴된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국민을 관객으로 모실 수 있을까?

먼저 공연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연한 기회에 생애 처음으로 뮤지컬을 본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작품에 감동을 받았다면 그는 뮤지컬 관객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수준 낮은 작품을 봤다면 그는 오래도록 뮤지컬에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작품의 질을 떨어뜨리는 대표적인 행태가 준비 안 된 아이돌 스타의 기용이다. 아이돌이라고 뮤지컬 무대에 서지 말라는 법은 없다. 훌륭한 뮤지컬 배우로 거듭 난 사람들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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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훈련되지 않은 사람을 단지 인기 스타라는 이유만으로 캐스팅하는 것이다. 거기다 더 많은 팬을 끌어들이기 위한 장삿속으로 한 배역에 여러 명을 캐스팅하기도 한다. 놀랍게도 한 배역에 4-5명까지 캐스팅 하는 경우도 있었다. 단일 공연에서 여러 배역을 다수 캐스팅으로 진행하면 공연이 무대에 올라가기까지 한 번도 전체 합을 못 맞춰보고  공연이 시작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런 공연을 본 관객의 실망감을 생각하면 고개를 들기 어렵다. 

 

  한편으로는 국내 컴퍼니들 간의 경쟁도 거품을 키우고 있다. 해외 작품을 유치하기 위해 과도한 경쟁을 하다 보니 라이선스 비용이 올라갈 수밖에 없고 그만큼 수익창출이 어렵게 된다. 결국 우리 스스로 우리의 목을 죄고 있다.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경쟁 보다는 혁신적인 작품을 만들고,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드는 경쟁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모두가 살아남는 경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관객의 수를 늘리려면 공연계의 노력과 함께 정부의 문화 정책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연극은 수십 년째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학로극장이 문을 닫았고 삼일로 창고극장도 내년에는 문을 닫는다고 한다. 연극인들이 키운 대학로에서 연극인들이 쫓겨나고 있다. 연극을 하려면 평생 벼랑 끝의 삶을 살 각오를 해야 한다. 공연문화가 풍성해질 수 없는, 국민들이 문화를 향유하는 삶을 살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정부 들어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 증액으로 문화융성을 위해 애쓰고 있지만 공연 현장에서는 체감하는 게 더디기만 하다. 늘어난 예산은 어디엔가 집행되고 있겠지만, 공연문화와 관련된 예산은 기초순수예술을 지원하는 데 보다 더 집중적으로 투자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극, 무용, 전통, 오페라, 클래식 등의 기초순수예술을 접한 사람들이 많아져야 이들에 비해 산업적인 특성이 강한 뮤지컬도 발전한다. 기초순수예술이 활성화되어야 문화산업도 성장할 수 있다. 아직은 여건이 어려운 만큼 창작뮤지컬도 기초순수예술의 범주에 넣고 동일한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형 창작뮤지컬 제작이 돈이 아니라 상상력의 문제일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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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투자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현재 투자를 받는 컴퍼니는 완벽한 ‘을’이다. 불리한 조건의 투자를 받다보니 작품을 업그레이드시키기가 어렵다. 문화체육관광부나 콘텐츠진흥원이 정부차원의 뮤지컬 발전기금을 조성하고 모태펀드를 활성화하여 좋은 콘텐츠, 기발한 이야기만 있다면 무대에 올릴 수 있는 투자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몇몇 가수들이 외국에서 인기를 끌고 몇몇 배우들이 헐리우드에 진출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긴 하되 문화강국이 되었다는 증거로 삼기에는 부족하다. 우리나라를 진정한 문화강국이라고 말하려면 누군가의 해외 진출이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문화를 향유하는 삶을 살고 있을 때라야 가능하다. 동네 작은 술집에서 한 편의 연극이, 무용이, 오페라가 안주가 되는 때라면 우리 문화 브랜드의 해외 진출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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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2시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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