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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약과 환삼덩굴 -자연과 문화에 대한 단상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4월17일 21시20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1시24분

작성자

  • 서순복
  • 조선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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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작약과 환삼덩굴

 

 화순의 화학산 각수바위 밑에 농사를 지으면서 산지도 벌써 10여년이 되어 간다. 겁이 없어 덤벼든 귀농, 아니 농사가 생계수단이 아니므로 귀촌이 더 적합한 표현일 것 같다. 교실 한 칸 자리 폐교에 둥지를 틀고 꿈을 키우면서 살아왔다. 어떻게 하면 농촌에 희망을 지필 수 있을까 하는 거창한 꿈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 울음소리가 끊어진지 오래된 시골마을에 어떻게 하면 문화를 매개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하는 소박한 생각을 해왔다. 

 

 우리 동네는 노인분들만 주로 사시고, 내가 제일 젊은 편이다. 동네 분들을 모시고 작은 음악회도 해보고, 방학 때는 도덕경 등 고전공부도 하고, 연구자들이 함께 모여 세미나도 시도했다. 외국인들을 상대로 한국문화를 알리기 위해 무료민박을 5-6년 정도 해봤다. 밥도 해주고, 주변 문화명소도 안내해 주고, 절밥도 먹게 하고, 차 문화도 접하게 하고, 천연염색도 해보게 했다.

 

  시골생활에서 제일 힘든 게 잡초와의 싸움이다. 잡초도 약초라는 것은 알지만, 그 끈질긴 생명력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동내 어르신들은 “크라목손 탁 때려버려”하시며 농약을 하라고 하지만, 큰 맘 먹고 귀촌한 것은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자 함인지라, 농약을 안치니 잡초는 무성할 수밖에 없었다. 작약을 심은 지 올해 5년차가 된다. 4년만 되면 수확할 수 있는데, 제대로 돌보지 않은 탓에 약초로 쓰는 뿌리의 생육이 왕성하지 못해 올해까지 두기로 했다. 뿌리를 튼실하게 하려면 작약 꽃을 따주어 영양분이 뿌리로 가게 해야 한다는 것도 최근에서야 알았다. 봄에 풀을 몇 번 매주었는 데도 한 여름 장마철에 가보지 않았더니 잡초(환삼덩굴)가 작약을 질식시킬 정도로 밭을 온통 뒤덮어 버렸다. 그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농사를 포기했다. 그런데, 그 다음해 봄철 밭에 가보니 기적처럼 작약의 새순이 일렬로 행군하는 병사들처럼 올라오는 것을 보고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의 위대함 앞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인간은 비록 실수하고 때로 포기도 하지만, 자연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목화를 심은 적이 있는데, 장마 때 밭둑이 터져서 쑥대밭이 된 적도 있다. 시골 삶이 편리하지는 않아도, 아침의 맑은 공기와 새소리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된다. 닭을 풀어놓으면 수탉의 깃털은 어찌나 멋있는지. 겨울 눈 속 마늘과 시금치는 시련을 견디고, 새 봄이 되면 싱싱한 푸르름을 선사한다. 한 겨울의 시련과 새 봄 환희의 역설은 자연이 주는 인생 공식이 아닌가 싶다. 공자도 자신은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生而知之者)이 아니고,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學而知之者)이라고 했다지만, 고난과 시련의 학습효과를 통해 인생의 깊이와 넓이가 더 영향을 받지 않나 싶다(困而知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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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저수지 위의 작약밭(환삼덩굴에 휩싸이기 전의 모습)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인 우리나라의 고난 현실. 이제 분단 70년이 가까워진다. 역사상 천여 차례에 가까운 외침에도 나라를 지켜온 우리 민족. 전후 폐허를 딛고 부존자원이 빈약한 나라에서 세계 10대 무역대국의 반열에 오른 우리 대한민국. 사무엘 헌팅턴은 그의 저서 <문화가 중요하다> 서문에서 아프리카 가나와 대한민국을 비교하면서, 소득수준이 비슷했던 두 나라가 어떻게 지금에 이런 큰 차이가 났는지 그 이유를 문화에서 찾았다. 김구 선생은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서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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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다행히도 귀농·귀촌 가구 수는 2001년 880호에서 점차 증가하여 2013년에는 3만 2,424가구(가구원 수는 5만 6,267명)로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농업 농촌에 대한 2014년 국민의식 조사 결과〉에 의하면, 도시인들이 농업 및 농촌의 가치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고, 은퇴 후, 귀농·귀촌하고 싶다는 도시인들의 이유가 건강한 생활(50.1%), 자유로운 생활(21.4%)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제는 농업도 문화다. 농업경쟁력 차원의 논의와 더불어, 농촌의 가치와 잠재력을 찾아내 이를 실현하기 위한 문화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는 농촌을 다양한 문화를 발산하는 생동하는 창조 농촌으로 변화시켜 나가자는 것이다. 창조농촌에는 창조인력, 혁신환경 조성, 주민의 자발적 참여가 필요하다. 예술가들이 들어와 농촌의 폐가 빈집을 문화적으로 재생하고, 밭두렁을 맨발로 걸으며 아이들의 상상력과 감성을 기르고, 문화를 활용한 6차 산업화 전략을 통해 문화와 관광을 연계하는 문화관광산업 활성화, 문화와 생태를 연계하는 체험 콘텐츠 개발, 문화와 스토리텔링을 연계한 장소 및 농산물 브랜딩, 문화와 농업을 연계한 경관농업, 문화와 숲을 연계한 숲 문화 치유 프로그램 등이 개발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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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4월17일 21시20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1시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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