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개혁, 그 끝나지 않은 꿈을 위하여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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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100여 일간의 노사정 대화가 막을 내렸다. 한국노총이 4월 8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협상결렬을 선언함으로써 더 이상 노사정 대화가 이어지지 않고 있다. 노사정위원회 김대환 위원장은 노사정대타협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하였다. 그리고 고용노동부는 노동시장개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에서 그간의 논의를 바탕으로 정부 주도의 개혁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리하여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대화와 타협의 꿈은 스러지고 마는 것인가? 그렇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우리나라의 사회적 대화를 위한 토양은 척박하다. 기업별 노조가 중심이어서 중앙조직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취약한데다, 사회적 대화의 이슈는 노동계의 양보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대타협에 합의한 노총의 지도부가 조합원들로부터 비난을 감수하거나 신임을 잃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여건에도 우리나라의 사회적 대화의 역사는 경이롭다. 민주화 시대의 노동입법,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고통 분담, 일자리 창출을 위해 사회적 대화와 노사정 대타협이 이룬 성과는 산별 노조를 바탕으로 강력한 중앙조직을 가진 서구 나라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이번의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노사정 대화도 그 성과를 가벼이 볼 수는 없다. 노사정은 지난해 12월 23일 ‘노동시장구조개선의 원칙과 방향’에 합의하였다. 이 합의에서 노사정은 노사관계의 3대 현안과제(통상임금 범위, 근로시간 단축, 정년 연장),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사회안전망 정비를 우선 논의과제로 삼아 금년 3월말까지 마무리하기로 하였다.
이들 우선 논의과제는 19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노개위)의 그것에 버금가는 것이다. 노개위가 민주화 시대의 노동기본권 신장을 중심으로 한 집단적 노사관계 쟁점을 주로 다루었다면, 이번에는 개별 근로자의 일과 관련된 노동시장 쟁점이 주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노사정은 집중적인 논의를 통해 3대 현안과제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견 접근을 이루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노총은 3월 31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5대 수용불가 사항(①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및 파견대상 업무 확대, ②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 단계적 시행 및 특별 추가 연장근로, ③ 정년연장과 함께 임금피크제 의무화, ④임금체계 개편, ⑤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을 정하고, 정부와 사용자 측이 이 과제를 철회하지 않으면 합의할 수 없다라는 입장을 정하였다. 그러나 정부와 사용자 측은 한국노총의 수용불가 사항들이 이번 노동시장 개혁의 핵심이라고 보고 이들을 포함시키기를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결국 협상은 결렬되고 말았다.
그러나 노동시장 개혁이 여기에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또한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가 무력해지고 무용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이를 위해서 이번 대화의 성과를 어떻게 살려나갈 것인지 고심해야 한다. 또한 앞으로의 사회적 대화의 성공을 위해서 이번의 실패 경험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지 바둑판을 복기하듯 뒤돌아보아야 한다.
첫째, 이번 노사정 대화는 ‘왜 노동시장 개혁인가?’라는 질문에 대의와 명분을 먼저 제공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노동시장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보다는 쟁점을 둘러싼 긴장관계가 초반부터 대화를 지배하였다. 과거 성공한 대타협을 돌아보면 1998년 2월에는 경제위기 극복, 2004년 2월에는 일자리 창출이라는 대의명분으로 공감대를 튼튼히 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노와 사의 양보와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번에도 협상 막판에 절박한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하고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을 위해 노동시장 개혁이 불가피함을 역설하였으나 시기적으로 늦었다. 더구나 협상 초반에 정부는 고용의 경직성 완화가 노동시장 개혁의 핵심이라고 언급하여 노동계로 하여금 협상 초부터 긴장감과 의구심을 가지고 대화에 임할 수밖에 없도록 하였다.
둘째, 이번 협상은 패키지 딜을 시도하였다. 이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수 많은 과제가 포함되어 있고, 과제에 따라 노와 사에게 유·불리가 다르기 때문에, 여러 과제를 묶어서 패키지로 합의하는 것이 합리적인 전략이라 하겠다. 그러나, 지난 해 12월 23일 기본합의에서 정한 우선과제 전부에 대한 합의를 시한 내에 이끌어내려 한 것은 과욕이었다고 보여 진다. 기간도 짧았고 노동시장 개혁에 대한 대의명분에 기초한 공감대가 취약한 상황에서 모든 과제에 대한 패키지 딜은 무리였다고 평가된다. 차라리 단계적 패키지 딜 전략을 택하였으면 어떠하였을까? 즉 우선 의견접근이 상당히 이루어진 3대 현안과제와 사회안전망 정비에 대한 1단계 합의를 하고, 이를 통해 2단계 합의를 위한 공감대와 에너지를 확보해나가는 것이다.
셋째,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하는 정부의 컨트롤 타워가 적정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번에 추진한 노동시장 개혁은 국가 대개혁과제이다. 산업화와 민주화에 이어 국가발전을 위한 수십 년 만의 대개혁이다. 이런 정도의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강력한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때로는 필요한 자원을 동원하기 위해, 때로는 부처간 이견을 조율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협상을 주도한 노사정위원회에 이번 협상의 중요성에 걸맞는 컨트롤 타워 권한이 부여되었는지 돌이켜보아야 한다.
이제 노동시장 개혁은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지난 실패의 경험을 자산으로 성공하기 위한 전략을 가다듬어야 한다. 그리고 노든, 사든, 정부든 소득 5만 달러의 일류 선진국으로 도약하기를 소망한다면, 양질의 일자리를 대량으로 창출하기를 원한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적 루저로 낙인 찍히고 힘겹게 노동하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단한 노동 삶이 개선되기를 바란다면 노동시장 개혁을 위해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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