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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백수오 논란의 정체: ‘짝퉁’이 ‘원조’를 ‘가짜’로 만들어버린 사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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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6월08일 18시34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09시33분

작성자

  • 이덕환
  •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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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백수오 논란의 정체: ‘짝퉁’이 ‘원조’를 ‘가짜’로 만들어버린 사연

 

 백수오 탓에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 버렸다. ‘몸에 좋은 것은 확실한데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수준의 황당한 주장에 선뜻 자신의 건강을 통째로 맡겨 버리는 소비자의 무책임한 인식부터 부끄러운 것이다. 자신의 건강과 재산과 자존심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지키겠다는 의지는 찾아볼 수가 없다. 무책임한 벤처‧식품기업에 휘둘리고 있는 식약처도 부끄럽다. 국민의 보건과 안전을 지켜줄 전문성과 사명감은 실종된 상태다. 우리 사회의 진짜 부끄러운 민낯은 따로 있다. ‘전통’의 굴레에 얽매여 현대 과학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는 전통의학과 식품과학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동의보감에는 백수오가 없다

  백수오는 흔히 ‘동의보감’의 처방으로 알려져 있다. 갱년기 여성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백수오 건강기능식품을 개발했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벤처 기업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전문가와 언론이 그렇게 소개를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동의보감은 우리 사회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고 신뢰하는 전통 의서다. 동의보감의 위력은 실로 엄청나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동의보감만 들먹이면 만병통치의 명약으로 둔갑해버린다. 2009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면서 그 위력은 더욱 강화됐다.

  그런데 동의보감에서는 ‘백수오’(白首烏)를 찾아볼 수 없다. 1610년 의성(醫聖) 허준이 편찬한 동의보감에서 식물성 생약재를 소개한 ‘탕액편의 초부(草部)에 등재된 367종(種)에는 백수오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동의보감을 들먹이는 전문가들이 사실은 동의보감을 한 번도 확인해보지 않았던 셈이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의 홈페이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동의보감 원문의 6쪽 분량의 목록만 살펴보았더라도 그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동의보감에도 오류가 있다

  동의보감의 탕액편 초부에는 ‘하수오’(何首烏)라는 약재가 있다. 중국에서 인삼‧구기자와 함께 ‘3대 전통 명약’으로 알려져 있는 바로 그 하수오다. 그런데 ‘江原道名온죠롱黃海道名새박불휘’라는 동의보감의 기록이 묘하다. 하수오의 기원식물을 강원도에서는 ‘은조롱’으로 부르고, 황해도에서는 ‘새박뿌리’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오늘날 국립수목원의 공식 명칭으로는 ‘큰조롱’이라고 부르지만 흔히 ‘은조롱’이라고도 부르는 박주가리과의 시난쿰 윌포르디이를 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큰조롱은 제주도를 포함한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고유‧자생 식물이다. 국립수목원에 따르면 그렇다. 압록강이나 두만강 접경을 제외한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식물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하수오를 대량으로 재배‧생산했거나 하수오가 중국과의 주요 교역 물품이었다는 기록은 없다. 흰 머리를 검게 만들어준다고 알려진 진짜 하수오가 우리나라 고유 식물인 큰조롱에서 유래된 것일 수가 없다는 뜻이다.

  중국 정부가 발행한 ‘중화인민공화국약전’에서 ‘하수오’로 소개하는 약재는 중국과 우리나라 모두에서 자라는 마디풀과에 속하는 ‘하수오’(학명: 팔로피아 물티플로라 또는 폴리고눔 물티플로룸)의 덩굴줄기를 말한다. 우리 식약처가 발행한 ‘대한민국약전외한약(생약)규격집’에서는 ‘수오등’(首烏藤) 또는 ‘야교등’(夜交藤)이라고 부른다. 붉은 색깔과 고구마 줄기 모양의 하수오 덩굴줄기와 흰색의 도라지 모양에 가까운 큰조롱의 뿌리는 누구라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흔히 등산로 입구의 주점에서 볼 수 있는 ‘하수오주’(酒)에 들어있는 붉은 덩어리가 바로 진짜 하수오다. 결국 동의보감의 기록은 명백한 오류인 셈이고, 그런 오류를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정말 부끄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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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백수오로 둔갑해버린 큰조롱

  동의보감에 하수오의 기원식물로 잘못 소개된 우리나라 고유‧자생 식물인 큰조롱도 생약재로 활용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큰조롱의 뿌리를 말린 생약재의 정체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물론 약재의 모습이 ‘진짜’ 하수와는 달랐지만 동의보감의 기록을 믿고 ‘짝퉁’으로 활용된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중국 백수오’의 ‘짝퉁’ 역할도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 식약처가 발행한 ‘대한민국약전외한약(생약)규격집’에도 그렇게 등재되어 있다. 

  문제는 진짜 백수오의 정체다. 백수오는 현재의 ‘중화인문공화국약전’에는 빠져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중요한 생약재는 아니라는 뜻이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는 데이터베이스에서도 ‘白首烏’라는 약재가 소개된 의서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중국 전통의학(中醫學)의 의서 중 일부에서 백수오에 대한 기록이 있다는 주장은 많다. 중국 백수오의 기원식물이 바로 중국 전역에서 자생하는 이엽우피소(異葉牛皮消, 학명: 시난큼 아우리쿨란툼)‧격산(隔山)우피소‧태산(泰山)우피소라는 문헌도 많은 모양이다.

  어쨌든 우리가 ‘가짜 백수오’라고 폄하하고 있는 이엽우피소가 중국의 ‘원조’ 백수오의 기원식물일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는 우리 백수오의 기원식물인 큰조롱이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백수오 건강기능식품 논란 덕분에 ‘짝퉁’ 백수오 노릇을 해왔던 큰조롱이 ‘원조’ 백수오인 이엽우피소를 ‘가짜’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식약처가 큰조롱에서 유래된 백수오를 등재하게 된 과정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1894)의 ‘적하수와’와 ‘백하수오’의 정확한 정체가 무엇인지도 과학적으로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큰조롱의 대체물질로 도입된 이엽우피소

  더욱 흥미로운 것은 중국 백수오의 기원식물인 이엽우피소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1990년대 초였다. 농촌진흥청의 자료에 따르면 그렇다. 영주 지방의 농민이 중국의 이엽우피소를 재배 기간이 3년이나 되는 큰조롱의 대체작물로 도입해서 본격적으로 재배를 시작했다고 한다. 농진청에 따르면, 2006년에는 ‘백수오’를 재배하던 농민의 90퍼센트가 이엽우피소를 재배하고 있었다. 이엽우피소는 1년만 기르면 뿌리가 충분히 자라기 때문에 농민들에게는 매력적인 대체작물일 수밖에 없다. 지금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약재 시장에서 전혀 다른 식물인 이엽우피소의 뿌리가 고유‧자생식물인 큰조롱의 뿌리로 둔갑해서 유통되는 문제를 인식한 농진청은 식물의 작명 권한을 가진 산림청 산하 국립수목원에 요청하여 중국에서 도입된 이엽우피소에 ‘넓은잎큰조롱’이라는 우리말 이름을 지었다. 소비자원‧식약처‧전문가‧언론이 모두 국립수목원이 결정한 우리말 이름을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25년 이상 넓은잎큰조롱을 재배해왔던 농민들의 입장이 난처하다. 식약처가 식품이나 약용을 활용하는 것을 승인해주지 않은 탓에 넓은잎큰조롱은 우리 사회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식약처가 전통 의학적으로도 근거가 분명하지 않은 큰조롱을 짝퉁 백수오로 둔갑시켜놓고, 정작 원조 백수오인 넓은잎큰조롱의 활용 가능성은 차단을 해버린 것이다. 제도적으로 아무 쓸모가 없는 넓은잎큰조롱의 재배를 방치해왔던 농진청의 입장도 궁금하다. 우리 전통의학에 대한 본격적인 정리가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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