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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운용공사설립은 정답이 아니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6월11일 19시20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09시28분

작성자

  • 오성근
  •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메타정보

  • 31

본문

기금운용공사설립은 정답이 아니다

 

 국민연금기금은 기금운용원칙으로 안정성 유동성 수익성 공공성 독립성을 열거하고 있다. 기금운용의 기본은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운용실적을 유지하는데 두어야 한다. 영속적인 연금지급의무 때문이다. 또한 기금은 항상 질서정연한 입출금이 이루어지도록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유동성이 결여되면 큰 문제가 야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공공성과 독립성 또한 매우 중요한 원칙이다. 기금은 경제 및 산업발전 등 기금가입자에게 공적편익을 제공할 수 있는 사회투자자본이라는 성격도 가지므로 공공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운용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가입자의 이익을 해칠만한 사안에 대하여는 이를 배격할 수 있는 독립성을 갖추고 운용함으로써 가입자를 보호해나가야 한다. 기금은 안정성과 유동성이 확보되는 가운데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면서 공공성과 독립성을 지켜나가야 한다. 나무로 치면 안정성은 뿌리이고 유동성은 줄기이며 수익성은 가지라고 할 수 있고, 공공성과 독립성은 나무가 뿌리내리는 토양이라고 할 수 있다. 토양이 척박한데다 뿌리가 부실하면 줄기도 곧게 뻗지 못하고 가지도 마르게 되어 열매도 맺지 못한 채 고사해버리고 말 것이다. 요즘 근년의 부진한 기금운용실적을 근거로 기존의 기금운용시스템을 뜯어고쳐 공격적으로 기금을 운용하자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 위험천만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작년 가을 2013년 4.2%를 기록한 국민연금의 연간수익률이 세계 11대 연기금 중 꼴등이라고 시끄러웠다. 마치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기금성격도 모두 다른 세계연기금들과 별 의미도 없는 1년 단기운용성과를 비교하여 국민연금을 연일 매도하였다. 모르면 가만히들 있던지 한심한 일이었다. 기금운용 스타일은 기금성격마다 다르다. 기금성격이 다르면 운용목적도 달라지고 투자전략도 다를 수밖에 없다. 누구라도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기금을 운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국민연금도 그들처럼 공격적으로 기금을 운용하다 마이너스 30%가까운 연간운용실적을 기록하게 되면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있을까? 국민연금이 1년에 150조를 까먹었다고 해보라. 잘해보자고 한 일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내년을 기약하자고 조용히 넘어갈까? 온 나라가 뒤집힐 것이다. 쌓아올리는 것은 힘들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수익성을 앞세워 기금을 공격적으로 운용하는 것은 안정성 최우선확보라는 국민연금의 근본을 망각하는 일이다. 의욕에 앞서 국민연금의 근본정신과 기금운용목적을 뒤돌아보았으면 좋겠다. 기금존속기간동안 자산가치가 훼손되지 않을 수준의 적정수익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도록 안정적으로 기금을 운용해나가는 대원칙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고 무엇과도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작년 말의 기금평가보도 때문인지 근래 세간의 관심이 온통 기금의 단기성과에 쏠리면서 수익성제고를 위한 해결책으로 기금운용공사 설립논의가 갑자기 뜨거워졌다. 공사설립으로 기금소진문제도 해결되고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도 확보되어 시름이 모두 다 없어진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추계에 의하면 매년 기금자산가치가 훼손되지 않을 수준의 수익에 1%의 추가수익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30년 가까이 매년 계속 더해가야 겨우 4년 기금소진시기가 연장될 뿐이다. 이를 위해 전문가를 바삐 불러 모은다고 곧바로 전문성 높은 조직이 되는 것도 아니고 기대대로 성과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아무리 전문성이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꾸준한 성과를 올리는 일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어떻게 한 두 해도 아니고 30년 가까운 세월을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명실상부한 전문조직은 뛰어난 전략가의 지휘아래 오랫동안 집중력을 발휘하고서야 비로소 태어날 수 있다. 국민연금재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보험료율과 연금지급률이고 더불어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있음에도 국민연금제도 자체의 개편 없이 기금운용성과만으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생각이고, 섶을 지고 불로 들어가려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눈앞의 성과에 집착하면 전체가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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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법인설립의 주요논거는 기금수익률제고를 위한 경쟁 및 효율성제고에 있는 듯하다. 그러나 독립법인으로는 운용결과도 더 나빠지기 쉽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경쟁과 효율만을 앞세우면 안정성이 흔들리지 않을 범위 내에서 허용되어야 할 위험투자가 자칫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져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만 두면 나을 것을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려는 일이다. 기금수익률을 높이려면 기금특징상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조급증을 버려야 한다. 현재 기금의 장기연평균수익률은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근래 연간수익률이 지속적으로 하락추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걱정들이 많은 것 같다. 큰 원인은 기금투자자산 중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채권의 수익률이 계속 하락해온데다 기금규모증가로 인한 희석효과가 겹친 때문이다. 기금은 이를 이미 10여 년 전에 예상하고 포트폴리오 재편을 통해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노력중이다. 그러나 기금수익률추세가 역전되어 안정궤도에 들어서려면 더 기다려야 한다. 기금특성상 재편속도가 빠를 수 없는데다 위험투자에 따른 효과가 전체수익률에 반영되기 위해서는 오르내리는 위험자산의 가격 때문에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솥뚜껑을 자주 열면 밥이 설익는 법이다. 위험투자로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오랜 인내가 필요하다. 거대기금의 수익률은 하루아침에 뒤집힐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더구나 지금 세계적인 투자환경은 몹시 불확실한 상황이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발발이후 세계경제상황은 아직도 혼란스럽기만 하다.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하기에는 이른 것 같다. 앞날에 대한 불안으로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어 물가가 하락하고 성장이 침체되는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는 나라도 많고 통화전쟁까지 일어나고 있다. 미국이 홀로 위기에서 탈출한 듯 보이지만 아직은 취약해보이고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금융위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진행 중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정부 기업 가계 경제주체 모두 선제적인 구조조정으로 위기의 근본원인인 초과공급과 수요부족을 치유하여 성장엔진을 다시 살려내는 것이 위기돌파의 핵심인데도 양적완화라는 미봉책으로 일관해와 시장에 유동성은 넘쳐나지만 실물경제회복은 요원하기만 하다. 최근의 세계적인 주가상승은 초과유동성으로 인한 거품이 아닌지 우려하는 전문가가 많다. 과거 근 20년 만에 원상회복되었던 1929년 대공황을 떠올리며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그래서인지 근자에는 약세시장에 베팅하는 투자전문가가 늘고 있고 앞날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투자환경의 불확실성 말고도 독립법인으로는 기금운용의 근간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연금의 징수 운용 지급은 앞뒤가 서로 맞물려있는 연쇄고리로 하나의 완결된 전체다. 연금보험료가 들어와 기금으로 머물다가 연금급여로 나가는 연쇄고리상의 자금흐름은 기금이 자산이면서 동시에 부채라는 것을 보여준다. 기금운용은 근본적으로 징수-운용-지급이라는 연쇄고리내의 한 기능일 뿐이다. 이 연쇄고리에서 이탈된 기금운용은 있을 수도 없고, 거꾸로 연쇄고리가 사라진 기금운용은 존재할 수 없다. 말하자면 기금운용은 징수-운용-지급이라는 통일된 전체 안에서 작동해야 된다는 말이다. 기금운용의 모습이 어떠할지는 이 연쇄고리 안에서 드러날 수 있을 뿐이다. 들어와 머물다 나가는 자금흐름을 착오 없이 관리해야 하는 자산부채관리는 기금운용의 대전제이고 기금운용의 시작이자 끝으로서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제도는 결국 우리의 지식과 무지, 그리고 희망과 두려움이 결합되어 태어나기 마련이지만 선후경중을 가리지 못한 채 지엽말단에 매몰되어 근본을 무너뜨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금운용공사 설립으로 운용부분이 연쇄고리에서 이탈되면 자산부채관리체계가 허물어져 기금운용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리게 된다. 징수와 지급상황을 모른 채로는 자산구성이 어려워 기금운용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 얼마가 들어와 언제 얼마가 나갈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서야 어떻게 언제 얼마를 매입하여 얼마동안 보유하다 언제 얼마를 매각할지 정확히 결정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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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기금은 나날이 커가고 분산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길은 아득히 멀고 파도는 높기만 하다. 기금운용체계 개편은 가입자 모두를 싣고 갈 기금운용의 기본 틀 ‘노아의 방주’를 만드는 일이다. 대홍수에도 견딜 수 있도록 단 한 방울의 물도 새지 않게 치수대로 정확히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일까?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일의 요체는 크고 어려운 일을 생각하기 전에 작고 쉬운 일부터 정성들여 하는 것이다. 무언가 크고 어려운 일부터 생각하는 것은 눈앞의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잘못이다. 크고 어렵게 새로이 일을 벌일 것이 아니라 지금의 기금운용시스템을 고쳐 쓰면 된다. 그대로 해나가되 약간만 손질하면 된다. 기금운용공사 설립은 정답이 아니다. 맞지 않는 옷이다. 거대기금이라고 무슨 별다른 운용시스템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영국이 나라가 커서 세계를 제패했는가? 조그마한 불씨 하나가 온 숲을 태우는 법이다. 가입자보호라는 기금운용목적을 뚜렷이 정립하고 이를 구현할 올바른 지배구조를 갖춘 다음 기금운용의 철학 이론 실천체계를 바로 세워 기금을 운용해나가면 될 일이다. 무엇하자고 큰 문제없이 운영해오던 기금운용시스템을 허물고 확실하지도 않은 위험한 선택을 하려고 애쓴단 말인가. 장고 끝에 악수두지 말아야 할 텐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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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6월11일 19시20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09시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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