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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주기와 힘 빼기: 긴장 문화와 이완 문화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9월30일 18시30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9시17분

작성자

  • 나은영
  • 서강대학교 지식융합미디어학부 학장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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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힘 주기와 힘 빼기: 긴장 문화와 이완 문화

 

 다들 너무나 힘을 많이 주고 있는 것 같다. ‘기필코’ 뭔가를 쟁취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 전체를 보는 안목과 균형 감각을 상실하기 쉽다. 주먹으로 모래를 더 많이 더 꽉 쥐려 할수록 모래는 더 많이 빠져나간다.

한국은 단기간에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어 내느라 지금까지 너무나 힘을 많이 주며 살아 왔다. 완전히 힘을 빼버리는 것도 문제가 되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지나치게 힘을 많이 주고 있는 부분을 풀어 여유를 되찾아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

 

긴장 문화와 이완 문화

한국은 긴장 문화다. 문화를 구분하는 여러 기준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집단주의-개인주의 차원이지만, 긴장-이완 차원도 매우 중요하다. 긴장 문화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늘 시간에 쫓기며 산다. 일을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고, 뭔가 더 노력하지 않으면 도태될까 두려워 끊임없이 일을 한다. 그러다 보니 시간의 여유를 얻기 힘들고, 마음의 여유도 찾지 못해 자기와 타인에게, 특히 타인에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행복감이 낮고 자살률이 높은 것도 이와 관련된 긴장 문화의 특성으로 나타난다.

반대로, 이완 문화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한결 느긋하다. 똑같은 축제일을 홍콩 사모님보다 필리핀 가정부가 더 즐겁게 보내는 이유도 필리핀이 홍콩보다 더 이완 문화에 가깝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는 홍콩 사모님이 더 여유로울지라도 심리적으로는 필리핀 가정부가 더 여유롭다. 긴장-이완 문화차원에서 한국은 필리핀보다 홍콩에 더 가깝다.

문화는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어 온 특성이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는다. 자원이 풍부하고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을수록 더 느긋한 이완 문화가 발전한다. 반대로, 자원이 부족하고 인구가 많을수록 더 빠듯한 긴장 문화가 발전한다. 옆에 있는 누군가를 물리치지 않아도 맛있는 과일들을 실컷 따 먹을 수 있는 환경이라면 당연히 이완 문화가 발전할 것이다. 반면에, 옆에 있는 누군가를 누르고 올라가지 않으면 희소한 자원을 쟁취할 수 없다고 느끼는 상황에서는 긴장 문화가 발전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전형적으로 부족한 자원에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다. 그래서 늘 경쟁이 심하다. 여기에 더하여, ‘내가 원하는 무엇인가를 얻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저 친구’ 또는 ‘정부’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바로 그 ‘저 친구’ 또는 ‘정부’에 분노의 화살을 돌리게 된다. 좌절로 인해 발생한 공격성이 그 좌절을 준 원인이라고 여겨지는 곳으로 향하는 것이다. 실제로 원인이 어디에 있는 지보다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행동이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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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도한 긴장의 부정적 효과

고무줄도 너무 당기면 끊어진다. 몇 년 전의 한 신문기사에 따르면, 학업 스트레스를 못 이겨 자살했다는 유명 외국어 고등학교의 학생이 어머니에게 남겼다는 유서 네 글자는 ‘이제 됐어?’였다. 그 학생은 어머니가 요구하는 학업 수준을 하나하나 달성해 갔건만, 그 어머니는 그 학생이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면 ‘이제 됐어.’라고 말하기보다 ‘그거 됐으면 이제 이거 해.’라고 끊임없이 요구했다고 한다. 그 학생은 어머니로부터 ‘이제 됐어.’라는 말을 얼마나 듣고 싶어 했을까. 끝없이 계속되는 어머니의 요구에 좌절한 나머지,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가 원하는 그 말을 들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이제 됐어?’라는 물음표 달린 유언을 작성하고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늘 긴장 속에 살아가는 사람은 한 마디로 ‘매일매일 비상!’이다. 몸과 마음의 상태가 계속 ‘비상!’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실제로는 비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교감신경계가 비상인 줄 착각하게 되는 일명 ‘공황 장애’까지 발생하는 경우도 생긴다.

물론 적절한 수준의 긴장은 필요하다. 긴장 수준이 지나치게 낮아도 의욕이 저하되어 최적의 수행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너무나 지루한 시골 길을 운전할 때는 졸음운전으로 사고가 나기 쉽고, 너무나 번잡한 곳을 운전할 때는 지나치게 신경이 날카로워져 사고가 나기 쉬운 것과 마찬가지다. ‘적절한 수준의 깨어있음’이 필요하다. 지나친 무관심도 문제가 되지만, 지나친 관심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뭐든 지나치면 문제가 되기 쉽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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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절한 힘 주기: 적절한 수준의 긴장 유지

‘적절한 정도’의 힘 주기는 매우 어려운 주문이다. 도대체 어느 정도 힘을 주어야 적절하단 말인가. 어느 정도 긴장해야 최적의 수행을 보일 수 있다는 말인가.

최적의 수행을 위해 ‘중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모 아니면 도’ 식의 흑백논리는 갈등을 양산할 뿐이다. 또한 ‘죽을 힘을 다해야만 겨우 살아남는다’거나 ‘죽을 힘을 다해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읽어, 이들에게 ‘능력껏 일하면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수긍이 갈 수 있도록 사회의 시스템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일시적인 금전적 지원으로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당장의 부정적 증상은 완화될 수 있으나 뿌리 깊이 잠재되어 있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문화적 특성이 장기적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었듯이, 현재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쌓여 있는 좌절과 불신, 부정적 정서와 냉소, 남 탓하기 등과 같은 만성적인 심리적 증상을 치유해 발전적인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해결책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도 장기적 안목과 화합적 시각을 견지해야 한다. 바짝 긴장하여 누군가를 적으로 돌리면, 그 적은 언젠가 부메랑이 되어 바로 자기 자신을 해치게 된다. 관용과 배려는 긴장을 조금 푼 여유로운 마음에서 시작되며, 이러한 여유로운 마음은 힘을 어느정도 뺄 때 가능해진다.

힘을 빼는 것, 마음을 비우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늘 긴장해 있어야 하는 문화 속에 빠져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란 혜민 스님의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잠시 멈추고 여유롭게 바라보아야만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단기간에 보란 듯이 성과를 올리겠다는 욕심을 내려놓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개인, 기업, 그리고 우리 한국인의 삶의 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는 데 차분히 힘을 쏟아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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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9월30일 18시30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9시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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