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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경제팀의 오산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4년11월26일 20시48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1시17분

작성자

  • 국중호
  • 요코하마시립대 경제학 교수

메타정보

  • 27

본문

최경환 경제팀의 오산과 과오
씩씩한 최경환
전임 현오석 경제수장이 맥못춘 이미지가 있었다면 지난 7월 들어선 최경환 수장은 씩씩한 이미지가 있습니다. 10월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선량(選良)들 앞에서 한 ‘나라살림 꾸리기’ 포부(2015년도 예산안 대통령 시정연설)에서 돈풀기로 적극재정을 하겠다 천명한 것도, 최경환 경제팀의 씩씩함이 스며들었기 때문일 겁니다. ‘정부마저 지갑을 닫아버린다면 저성장의 악순환에서 헤어나기 어렵다’는 인식이지만, 제풀에 꺾일 것입니다. 심통부리기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그렇다는 말입니다.
 
일본을 조롱하면서도 따라가는 한국
베이비붐 세대가 퇴직을 맞이하고 게다가 젊은이들 고용흡수도 어려우니만큼 생산력이 저하되고 성장률이 떨어짐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파이(GDP) 키우기가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뜻합니다. 파이 축소로 정치적 공격을 당하더라도 질높은 삶으로 이끌겠다 선언할 때입니다. 용감하게 시인하고 이해를 구함이 솔직하다 할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박대통령으로 하여금, ‘적시에 투입한 재정이 마중물이 되어 경기가 살아나고, 세입이 확대되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된다면, 우리 재정의 기초체력은 강화돼서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를 줄여갈 수 있을 것’(위 시정연설)이라 선언하게 만들었습니다. 오산(誤算)입니다.
 
‘불황 때는 나랏빚을 내어 돈을 풀어대고 경기가 좋아지면 빚을 갚으면 된다’는 게 케인즈 경제이론인지라 위 마중물 견해는 케인지언 부류에 속합니다. 전시(戰時)나 대공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외쳤던 선진국 정부정책은 나랏빚만 늘렸을 뿐 실패로 끝났습니다. 설령 빚을 내 경기가 좋아지더라도 자기업적을 드러내려는 정치의 속성상 빚 줄이기를 꺼려하기 때문입니다. 케인즈 이론에는 정치가의 이기심을 억제할 장치가 없다는 뜻입니다. 국중호의 『호리병 속의 일본』에서 말하듯, 빚 내어 쓸 때는 적극적이고 갚을 때는 소극적이 되는 ‘빚내기과 빚갚기의 비대칭성’이 정붓빚을 불어나게 합니다. 일본이 대표격입니다. 1990년대초 거품경제 붕괴 후 돈을 풀어댄 일본을 한국이 조롱하면서도 따라가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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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덜이 우려된다
제가 심히 우려하는 것은 빚덩이가 엄청 큰 일본은 그리 쉽게 주저앉지 않겠지만, 일본보다 빚덩이가 훨씬 작은 한국은 거덜나기 쉽다는 점입니다. 일본은 민간의 돈주머니가 두둑한데 우리는 곳간이 비어있기 때문입니다. 거품이 붕괴된 이후의 일본경제를 흔히들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말합니다. 꺼진 거품 살린다고 빚낸 돈을 퍼부으며 안간힘을 썼지만 죽은 자식 고추만지기였습니다. 명백한 나라정책 실패지만 곱씹어 생각하면 20년 이상 늘려온 정부의 빚더미를 가계 여유돈(금융자산)이 버텨주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일본 정붓빚이 1200조엔인데 가계가 꼬박꼬박 모아온 돈은 무려 1500조엔이 넘습니다. 한국 돈으로 물경 1경 4천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숫자입니다. 지금도 매년 20조엔 이상 정붓빚이 늘어나지만 벌어놓은 돈이나 해외자산이 많아 한동안 버틸 수 있습니다. 은행은 가계가 맡긴 돈을 어떻게든 굴려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일본정부가 빚문서(국채)를 실컷 남발한 것도 주체못한 은행돈을 소화시켜야 했다는 속사정이 큽니다. 일본 가계는 이처럼 돈이 남아도는데 우리는 가계부채가 1000조원을 넘었다고 합니다. 빚쟁이들한테 내몰려 길거리로 내앉을 판입니다. 
 
일본은 스톡, 한국은 플로
‘한일 경제사회의 특징 차이가 무엇인지?’라는 물음을 20여년 일본에서 지내며 또 한국을 오가며 품어왔습니다. 이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꺼내야 할 때인가 봅니다. ‘아! 이거다’하고 제가 내놓은 답은 일본은 ‘스톡(stock: 쌓임)’ 사회, 한국은 ‘플로(flow: 흐름)’ 사회라는 차이입니다. 스톡경제가 일본이고 플로경제가 한국입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마냥 쌓여가는 곳이 일본입니다. 현대에 들어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역사적으로 자신이 처해진 데서 그저 시키는대로 주어진 일을 하여 왔다는 배경이 있습니다. 좋은 쪽으로 힘을 발휘하여 나타난 스톡이 기술축적이고 그 대가가 노벨상이고 그렇습니다. 반대로 나쁜 쪽으로 보면 어떤 일이든 징그럽도록 바꾸기 어렵다는 병폐가 있습니다. 족쇄가 차여있는 일본입니다.
 
한국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우선 건드려 봅니다. 나쁜 것을 금세 바꾸어 좋은 쪽으로 이루어내기도 하지만, 좋은 것을 건드려 긁어부스럼도 잘 냅니다. 최경환 경제팀을 바라보는 적잖은 염려는, 우리의 들떠 있는 플로 속성을 다잡지 못하고 허둥대는 모습입니다. 발을 땅에 대려면 스톡의 안정성을 이용하는 지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일본과의 파이프가 꽉 막혀 있습니다. 배알이 꼴리더라도 일본 열도에 대롱을 꽂아 이들의 스톡을 활용하는 어른스러움이 있어야 할진대 일본이라면 부르르하는 악감정이 앞서 있습니다. 박대통령의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 나온 일본외교는 너무도 딱딱하며, 최경환 경제팀의 마인드에는 ‘스톡일본 이용’이란 메뉴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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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최경환 경제팀은 국민들을 향해 ‘묵묵하고 진득하게 일하면 보람을 느끼는 사회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라는 메시지를 전하지 못합니다. 명경지수(明鏡止水)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도 떠오르고 그 아이디어가 좋은 상품이나 서비스로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 때 비로소 ‘창조경제’의 꽃이 피어날 텐데 관조할 겨를을 주지 않고 풍파를 일으킵니다. 물이 고요하다 하여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요. 깊은 연못을 파 큰 물고기가 살도록 하여야 할 터인데 지금의 경제운영은 얼마 고이지 않은 물을 퍼내게 하며 연못조차 마르게 하는 듯합니다.
 
대통령 계신 푸른 기와집에 울타리가 높게 처져 외딴섬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정곡을 찌르는 듬직한 신료들보다,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염려 놓으십시오’를 연발하는 능란 정치인이 득실한가 봅니다. 잡으려 잡으려 해도 일자리를 잡지 못한 젊은이들이, ‘우린 지쳤어요. 이젠 안 속아요’라며 던지는 한마디가 가슴에 아려옵니다. 현 경제팀은 가뜩이나 어려운 젊은이들의 어깨 위에 빚더미를 올려놓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살기가 버거워 결혼이나 아이낳기도 겁이 납니다. 젊은이들의 원망이 두렵고 태어나고 싶었을 아이들한테 벌받을까 저어됩니다.
 
최 장관이 저를 향해 우린 잘 하고 있으니 ‘너나 잘해’ 라며 면박을 줄지도 모릅니다. 그 말에 움츠러들지 않고 미약하나마 한일 파이프 만들기에 한자락 힘을 보태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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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4년11월26일 20시48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1시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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