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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여당의 민주주의 궤도 이탈 - 한 입으로 두 말하는 더불어민주당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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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06월23일 17시10분

작성자

  • 김형준
  • 배제대학교 인문사회대학 석좌교수(정치학),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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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안정은 국회 의석수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슈퍼 여당(176석)인 된 민주당이 의회 민주주의 궤도에서 탈선해 ‘일당 독재’의 위험한 길로 가고 있다. 지난 6월 5일 21대 국회를 53년 만에 사실상 단독 개원해서 국회의장(6선 박병석 의원)과 여당 몫의 국회 부의장(4선 김상희 의원)을 선출했다.

 

 그로부터 열흘 후인 15일 법제사법위원장을 비롯한 6개 국회 상임위원장을 단독으로 선출했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정치권의 어떤 사정도 국민의 생명, 안전, 민생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더 시간을 준다고 여야가 합의에 이를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상임위원장 선출 안건을 표결에 부쳤다. 박 의장은 강제로 6개 상임위에 야당 의원을 배정하기도 했다. 여야 합의 없이 상임위원장이 선출된 것은 1967년 이후 53년 만이다. 

 

 여하튼 1948년 제헌 국회 출범 이후 국회의장단과 상임위원장 선출이 모두 여당 단독으로 이뤄진 건 처음이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원 구성을 더는 늦출 수 없다. 법이 정한 날짜에 국회를 열고 일하는 것은 최소한의 책무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과거의 잘못된 관행이 아니고 국회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회의 오랜 관행상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법사위원장 자리는 야당이 차지해왔다. 따라서 “잘못된 관행은 반드시 고치고 과거와 달리 자신들이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엔 법사위원장 자리를 양보할 수 없다”는 여당의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지난 2008년 총선에서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은 153석, 통합민주당(민주당 전신)은 81석을 차지했다. 두 정당간의 차이는 72석이었다. 현재 민주당(177석)과 통합당(103석)간 차이(74석)와 비슷했다. 더구나, 친박연대 14석, 무소속 친박 연대 13석을 합치면 범여권 의석은 180석이었다. 그런데 당시 통합민주당의 강력한 반대로 원 구성까지 88일이나 소요됐다. 

 

민주당, 야당 땐 “법사위는 야당 몫”이라더니 이제는 “잘못된 관행 시정”

 

그렇다면 왜 그때 민주당은 국회법을 지키지 않았는가.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2009년 민주당 대변인 시절 “몇 되지도 않은 야당 몫의 상임위원장까지 독식해서 의회 독재를 꿈꾸는 것입니까?”라고 당시 여당을 비판했다. 

현재 중소벤처기업부 박영선 장관은 2012년 민주통합당 의원 시절 “집권 여당이 법사위를 장악하게 되면 검찰이나 법원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우려를 충분히 가질 수 있다”고 했다. 현재 당권 경쟁에 나선 우원식 민주당 의원도 지난 2012년 민주통합당 원내 대변인 시절 “견제와 균형이라는 국회 역할을 위해 법사위원장은 야당의 것이 맞다”고 했다. 

 

과거 야당시절 잘못된 관행의 주역이었던 여당이 이제부터 잘못된 관행을 고치겠다는 주장을 하면서 법사위원장을 가져오겠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여당이 힘을 가졌다고 자제하지 않고 힘으로 밀어붙이면 자신들이 주장하는 ‘일하는 국회’는 물 건너간다. 통상 힘 있는 여당이 관용을 베푸는 것이지, 힘없는 야당에게 양보하라는 것은 협치(協治)를 포기하는 것이다. 

 

집권세력의 ‘상호관용’과 ‘제도적 자제’가 민주주의의 근간

 

하버드대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는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에서 민주화 시대 이후'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선출된 지도자'가 독재자로 변화되는 모습을 설명한다.

 그들은 “규범이 무너질 때 민주주의도 함께 허물어진다”면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건 헌법과 같은 제도가 아니라 '상호관용(mutual toleration)'과 '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라는 규범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규범들이란 민주주의 보호막으로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상호관용'이란 정치적 상대를 공존의 대상, 즉 '사회를 통치할 동등한 권리를 갖는 집단'으로 간주하는 태도이다. 또 '제도적 자제'란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도 무리하게 힘을 사용하지 않는 정치적 신중함을 말한다. 그들은  상호관용과 제도적 절제를 민주주의가 궤도에서 탈선하지 않게 하는 '가드 레일'이라고 지목한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이 21대 국회 개원에서 보여준 행태는 바로 이런 규범들을 스스로 파괴하면서 의회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민주당 윤리심판원은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이 올해 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법안에 기권 표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최근 경고 처분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강제 당론은 무조건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꼰대 입장을 밝혔다. 국회의원의 소신을 징계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로 이를 정당화시키는 민주당의 행태는 민주정당임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국회의원 소신을 당론으로 강제하고 처벌하는 것은 반의회 · 반민주적

 

 무엇보다 의원의 소신과 양심을 당론으로 짓밟는 것은 헌법과 국회법을 위반하는 독재적 발상이다. 헌법에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제46조 2항)고 규정되어 있다. 국회법 제114조의2(자유투표)에서는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羈屬)되지 않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고 되어 있다. 

의회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동등한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에 구속력 있는 법을 제정하는 회의체다. 따라서 독립적인 헌법 기관인 국회의원을 당론으로 강제하고 처벌하는 것은 반의회적이고 반민주적이다.

 

 ‘일하는 국회’가 되겠다고 다짐한 21대 국회가 시작부터 파행으로 문을 열게 된 것에 대한 절대적인 책임은 여당이 져야 한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여당이 단독으로 상임위원장을 선출하자 “국회의 존재 이유는 야당이 있을 때 발휘되는 것이고, 균제와 균형이야 말로 국회의 존재 원리”라며 “민주당이 앞으로 잘못 간다면 그 출발점은 오늘이며, 오늘은 한국 정치를 황폐화하는 첫 출발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21대 국회는 당분간 여당의 의지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커졌다. 당장 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한 ‘평등경제, 공정경제’ 실현을 위한 각종 입법 활동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상법, 공정거래법, 금융그룹감독법) 3개 법안은 민주당 총선 공약이자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라며 "21대 국회에서는 (입법을) 완성하겠다"고 입법의지를 강조했다. 

 

 또한 민주당은 대기업의 이익을 협력 업체와 나누게 하는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 촉진법', 기업규제 금융 규제법 등의 발의를 예고하고 있다. 여당의 한 최고위원은 공개적으로 윤석열 검찰총장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모든 사회와 조직에는 행동 규범이 있는 데, 성문화된 법만이 아니라 불문율(informal rule)이 영향을 준다. 의회 불문율이란 의회 과정에서 의원들의 행위를 규제하는 성문화되어 있지 않은 행동규범이다.

 

21대 국회, ‘대화와 타협’ ‘상생과 상호존중’의 생산적 불문율 만들어 가야  

 

 이와 같은 불문율은 의회 과정을 질서 있게 조작해 주는 중요한 요인이다 (김종림ㆍ박찬욱, 1985). 특히, 의회 정치의 제도화는 의회 기능의 활성화, 다변화, 효율화되는 과정인 데 ,이를 위해서는 생산적인 불문율의 발달이 필수적이다. 성숙한 의회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는 미국 정당과 의회에서는 크게 초선의원의 수습기간에 대한 불문율(apprenticeship), 선임자 특권에 관한 불문율(seniority rule), 상호호혜에 관한 불문율(reciprocity rule), 의원 상호 예의에 관한 불문율(the rule of personal courtesy), 의원 긍지에 관한 불문율(institutional patriotism), 의정업무에 관한 불문율(the rule of legislative work) 등의 다양한 수평적 불문율을 갖고 있다. 

 

특히, 미국 의원들은 대통령제하에서 의회의 본질적인 기능은 여야 구별 없이 행정부를 견제하여 궁극적으로 국정 운영의 안정을 가져오는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반면, 한국 의원들에게는 이러한 상호 호혜적ㆍ수평적 관계에 대한 인식이 부재하고 국회와 정당은 지시ㆍ복종의 수직적인 불문율만을 갖고 있다. 결과적으로 상호 존중보다는 상호 비난의 불문율이 형성되어 있다. 21대 국회가 일하는 국회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대화와 타협, 상생과 상호예의와 같은 생산적 불문율을 조속히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미국은 1970년대 일명 ‘한센 위원회’(Hansen Committee)를 설치해 강도 높은 의회 개혁에 나섰다. 여기에서는 국회의장 권한과 역할 강화, 국회 소위원회 활성화, 상임위원장의 선출에서 실질적인 경쟁 제도 도입, 상임위와 소위위원회 국민 참여 등을 제도화시켰다. 

대한민국 국회가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전대미문의 코로나 사태, 북한의 도발과 위협 속에서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 의회 민주주의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 위기 신호를 놓치고 있는지 모른다.

 

 현재 우리는 1987년 민주화이후 공룡 여당 출범이후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국회를 경험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의회 민주주의를 살리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여야 합의로 내려온 의회 규범을 지키고 미국 의회와 같은 생산적인 불문율이 만들어야 할 것이다. 단언컨대, 국정 안정은 국회 의석수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집권 세력의 제도적 자제와 관용이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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