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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투기(投機)하면 ‘악덕자(惡德者)’로 응징하는게 옳을까?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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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10월18일 12시00분
  • 최종수정 2021년10월26일 03시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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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에는 세월이 암만 흘러도 사라질 줄 모르는 논쟁 거리가 몇 가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때만 되면 어김없이 등장해서 온 나라가 한 바탕 야단법석을 겪는 단골 이슈가 바로 ‘부동산 투기(投機)’ 문제이다. 그리고, 이제 바야흐로 대선 정치의 계절이다. 내년 3월 선거로 정권이 바뀌다 보면 자연히 많은 고위직 후보들에 대한 검증이 있을 것이고, 어김없이 당사자들의 ‘부동산 투기’ 시비는 또 다시 불거질 것이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는 일은, 남에게는 그렇게 악덕한 투기 행위를 질타하던 이들도 혹여 입장이 달라져 추궁을 당하면 그들도 역시 별반 다를 바 없는 투기자로 밝혀지곤 하는 경우가 허다하니 이젠 실소를 금하기도 지겹다. 

 

한편, 누구랄 것도 없이, 권력에 오르면 언필칭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겠다고 주창하며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막상 실효성 있는 ‘투기 해소’ 대책은 나오지 않고, 매번 다름없이 사회적 불화만 반복하는 딱한 사정이다. 그런 배면에는, 우리 사회가 그토록 증오하는 부동산 ‘투기’ 행위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는 탓도 크다는 소견이다. 오랜 세월을 두고, 때만 되면 혼란스러운 논란이 벌어지는 광경을 목도해 온 입장에서, 이 사회의 고질병 ‘부동산 투기’ 문제에 대한 외람된 소견의 일단을 피력하고자 한다. 

 

■ 우리 사회에서 ‘부동산 투기(投機; Speculation)’란 무엇인가?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투기 문제에 정부가 개입해서 규제하기 시작한 것은 1967년 무렵, 강남 일원의 개발을 앞두고 토지 양도 차익에 과세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부동산투기억제에관한특별조치세법(1974년 12월21일 폐지)’이 시초일 것이다. 당시, 과세 대상 지역 소재 토지 등을 매매하거나 보유하는 경우에, 일정 세율의 ‘부동산투기억제세’를 부과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 법률의 제정 목적은, 동 법에 명시한대로, 국가 부존 자금이 부족한 상황에서 비생산적인 부문으로 흘러들어가는 투기적 자금을 생산적인 부문으로 흘러가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 ‘부동산 투기’ 논쟁이 벌어지는 과정을 잘 들여다보면, 공박하는 측이나 당하는 측이나, ‘투기’ 행위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세워놓고 논쟁하는 것 같지가 않다는 느낌이다. 특히, 공직후보자들에 대한 청문 과정을 보자면, 부동산을 (많이) 가진 자에 대한 감성적 분노에 찬 집단적 질타에, 마치 중범죄라도 저지른 죄인 행색으로 방어에 급급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대개는 그렇게 한 바탕 논란을 벌이고는, 그냥 자리에 오르지만, 더러 공연히 한 자리 차지하려고 나섰다가 일가 망신을 당하고 물러서는 경우도 있다. 사실 이런 관행도 웃지못할 폐습일 뿐이다.  

 

그러면, 과연 부동산이건, 어떤 형태의 자산이건, ‘투기(投機)’ 행위가 그렇게 사회적 지탄을 받아야 할 악행(惡行)인가? 그렇다면, 어떤 것이 그렇게 나쁜 ‘투기’이고, 어떤 것이 용인할 수 있을 투자(投資)인가? 우리는 오랜 세월을 두고 똑같은 논란을 반복하고 있으나, 아직 이에 대해 공통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기준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는 최대한 냉정과 인내심을 발휘해서 이 문제를 보다 솔직한 자세로 성찰해 볼 시점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저기 찾아보니, 정부는 몇 달 전에도 관계부처 합동으로, ‘공정사회반부패정책협의회’ 명의로 된 소위 『부동산 투기근절 및 재발방지대책(2021.3.29)』을 공표했던 모양이다. 우선, 이에 대한 소감을 한 마디 밝히자면, 여기에도 역시 이전에 발표됐던 무수한 ‘부동산 투기’ 근절 대책들과 마찬가지로, 발표문 어디에도 무엇을 근절해야 할 대상인 ‘투기’ 로 정의하는 건지, 명확히 개념을 정해 놓은 게 보이지 않는다. 이는 정부 부처들이 법령에 준하는 주요 정책을 입안하는 입장에서 정책 집행의 대상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단히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사회가 그토록 망국적 사회악으로 증오하는 부동산 ‘투기’ 행위에 대해 아직 명확한 개념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그럼에도, 예를 들어, 무슨 인사철이 되어 어느 인물들이 등장하는 경우에는 이들을 향해 뭇 사람들이 나서서 누구는 ‘부동산 투기자’ 라고 지탄하며 엄중하게 징치하는 게 관행처럼 반복되고 있다. 이를테면, 이렇게 법에도 정해져 있지 않은 애매한 ‘죄목(罪目)’으로, 때로는 개인의 기본적 권리가 무참히 침해당하기가 일쑤다.   

 

■ ‘투기’라는 ‘원죄(怨罪)’에 대한 징벌은 어디 못지않게 ‘엄중’ 


‘투기(投機; Speculation)’라는 용어의 뜻을 사전에 찾아보면 “시세 변동 같은 기회에 맞춰 투자나 매매를 하여 이익을 보려는 경제 행위” 를 지칭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런 의미에서는, ‘투기’가 일상적으로 평범하게 인식되는 ‘투자(investments)’와 어떻게 구분될 것인지, 도무지 명확한 기준을 잡기 어렵다. 따라서, 항상 논란이 생길 여지가 다분하고, 어느 게 선(善)이고 어느 게 악(惡)인지 구분도 어렵다. 

 

어떤 사람은 해당 자산을 장기적으로 보유하는 것은 투자이고, 단기적으로 보유하는 것은 투기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유 기간의 장단을 일률적으로 선을 긋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장기 보유를 예정하고 투자했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거나 가치가 급변해서 단기에 처분했다고 이런 행위를 ‘투기’로 판단하기도 어려운 문제다. 가치 투자의 귀재라고 불리는 그레이엄(Benjamin Graham)은 ‘철저한 분석을 통해, 투자 원금의 안정성, 적절한 수준의 수익을 기대하는’ 행위가 ‘투자’이고, 시장 심리나 분위기에 휩싸여 자산을 매입하는 것은 모두 투기(投機)라고 정의했다. 이런 정의대로라면, 사실 대부분의 일반 투자자들이 하는 주식/선물/부동산 등, 각종 형태의 자산을 보유하는 거의 모든 행위가 ‘투기’가 될 수 있다. 

 

투자(投資)냐, 투기(投機)냐를 가르는 다른 대안으로 대상물의 이용 및 관리 의사 유무로 구분하기도 한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이 기준이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투기를 단속하는 명분에 가장 근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예를 들면, 부동산의 경우, 특정 지역 아파트 가격 상승을 예상하고 살던 주택을 처분하고 그 지역 아파트를 취득하면 ‘투자’로, 기존 주택에 살면서 매수하면 ‘투기’로 보는 것이다. 주식의 경우에는, 배당금을 목적으로 매수하면 투자, 단순한 시세 차익을 노리고 매수하면 투기로 보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런 기준도, 해당 자산의 이용 목적 및 관리 정도가 소유하는 개인에 따라 다양해서 획일적인 경계가 지극히 모호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일반적 공감을 얻기는 대단히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따져보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삶을 영위하는 거의 모든 경제 행위들 가운데 ‘투기’가 아닌 것이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들의 일상은 가치가 담보되지 않은 경제 행위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늘 ‘투기’ 행위가 이어지는 것이다. 가장 첨예한 논란의 대상인 사는 ‘집’ 문제를 보더라도, 들어가 살 집을 한 채만 가지느냐, 수익을 노린 물건을 포함해서 여러 채를 보유하느냐는, 단지 보유 자산 선택에서 개인적 취향이 다를 뿐이지 별반 다름없는 의사결정을 하고 있는 셈이다. 예를 들어, 한강 변 아파트에 사는 것에 커다란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는 사람들은 수 십억을 투자해서라도 그런 지역 아파트에 살려고 할 것이고, 취향이 좀 다른 사람은 한적한 북한산 밑에 널찍한 주택에 살기를 원할 수도 있다. 굳이 한강변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은 그들의 취향일 뿐이다. 

  

지극히 이론적으로만 본다면, 투기(投機) 행위의 사회적 역할을 보는 견해도 천차만별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고르게 (가격 변동의) 리스크를 지기 싫어하고 안정된 거래만을 추구한다면, 자기가 들어가 살 집을 짓는 것 외에 주택을 지을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주택 건설업자이건, 기존 주택 원매자이건, 이들 모두는 향후 가격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감수하며 신축하거나 보유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시장에 주택 공급은 확대될 수가 없을 터이다. 

 

■ “가치 변동을 헤지(hedge)하지 않은 자산 보유는 모두 '투기'”

모든 인간은 일정한 재산을 보유하며 삶을 영위한다. 대개는 자신이 과거에 얻은 소득의 일부를 축적한 것이고, 행운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은 부유한 선대로부터 물려받기도 한다. 그리고, 누구는 재산을 현금으로 쌓아 두기도 하고, 누구는 귀금속이나 골동품을 사서 장롱 속에 넣어두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누구는 토지 등 부동산을 매입한다. 따라서, 재산 축적 과정에서 불법 부정한 행위가 없었다면 자산을 어떤 형태로 보유할지는 정부를 포함해서 남들이 왈가왈부할 게 아니다. 

 

그리고, 어느 경우가 됐던, 일정한 재산을 보유하는 사람치고, 지고지순의 경지를 이룬 성인군자가 아니면, 자신이 보유하는 재산 가치가 높아지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할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터이다. 그리고, 시장에서 모든 재화의 가치는 항상 변하게 마련이고, 그런 상황에서, 어떤 이는 심성이 소심하여 향후 가치가 하락하는 것이 두려워 은행 예금 등 안전한 자산을 선택하는가 하면, 배짱이 두둑한 사람은 가치 하락 위험을 무릅쓰고 가치가 오를 것 같은 대상을 찾아 투자한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그래도 가치가 하락할 것이 염려되어, 보험을 드는 심정으로 소위 ‘헤지(hedge)’ 수단을 택한다. 가치 하락 리스크를 부담하기 싫어서 기대 이익을 제한하며 원천적으로 리스크를 상쇄 혹은 회피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전적 의미로 ‘투기(speculation)’란 일반 재화, 유가증권, 부동산 등을 구입하는 사람이 장래에 해당 자산의 가격이 현재 구입하는 가격보다 오를 것을 기대하며 매입(투자)하는 모든 행위를 총칭한다. 중요한 것은, 지금 자산을 취득하는 투자자가 기대하는 가격이 언제쯤, 그리고 얼마나 오를 것으로 기대하는지, 등은 ‘투기(投機)’ 여부를 판별하는 정확한 기준이 될 수가 없다. 먼 장래에 오를 것을 기대하는지, 조금만 오를 것을 기대하는지는 오로지 그 투자자의 전략일 뿐이다. 

 

이렇게 보면, ‘투기자(投機者; Speculator)’란, 금융 자산이건, 부동산 등 고정자산이건, 향후 시장은 자신이 판단한 방향(상승)으로 진행될 확율에 걸고, 가격 하락 위험을 무릅쓰고 자산을 보유하는 사람들이다. 지금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은 바로 이런 투기자들이 끊임없이 시장으로 몰려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원천적으로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왜 사람들이 그토록 시장으로 몰려드는가, 하는 시장 환경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두 말할 필요 없이 사람들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려드는 것은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는, 시장 안정적 ‘균형 가격’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는 반증이 된다는 증거이다. 

 

가격이 오르니 투기자들이 몰려들고, 또 다시 가격은 더욱 상승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는 시장이 작동하는 기본 정리(定理)다. 여기에, 공급을 옥죄는 규제 조치들이 계속되면 이런 현상은 더욱 빠른 속도로, 더욱 큰 폭으로 움직일 것은 뻔하다. 그래도, 이 정부는 시장을 한번 이겨보겠다는 일념으로, 공급을 제한하는 조치들을 쏟아내며, 투기하는 사람들을 마치 ‘범인’ 색출하듯이 때려잡을 궁리만 한다. 그러니 시장이 안정될 리 없고 집 한 칸 못가진 사람들의 장탄식은 늘어갈 뿐이다. 가격 상승을 우려한다면 시장 참가자들이 향후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일방적 기대가 형성되지 않도록 공급을 확대하는 것 외에는 묘방(妙方)이 없다. 

 

■ ‘투기 이익’은 상대방이 회피하려는 리스크를 감수하는 대가(代價) 


아마도, 우리 역사상 스릴 넘치는 ‘투기’ 행위의 원조는 조선시대 박지원(朴趾源)의 소설에 나오는 허생(許生)이라는 인물이 아닐까 한다. 백면서생이던 이 인물은 마누라 등살에 떠밀려 단돈 일만 냥을 빌려서 몫이 좋은 농산물을 매점매석(買占賣惜)하는 방법으로 큰 돈을 벌었다. 반면, 요즘은 돈 많은 다수 개미 ‘허생’들이 암묵적 담합인 군집 행동으로 아파트값을 천정부지로 끌어 올린다. 이 두 사례는 규모의 차이가 월등히 크기는 하나, 방법론에서는 별반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개개의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설령, 한 투자자가 집을 두 채, 세 채씩 가지고 있다 해도 수천만호를 헤아리는 우리나라 주택 수에 비하면 이를 매점매석으로 볼 수도 없을 것이고, 시장 가격 형성에 하등 영향을 미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 향후 아파트 가격이 오르리라는 ‘암묵적 믿음’이 확산되면 허생(許生)의 매점매석 행위와 다를 게 없는 효과가 나타난다. 이런 시장 구도에서는 공급을 제한하면 할수록 가격은 오를 뿐이다. 이것이 시장 작동의 원리다. 그리고, 이것이 어떤 대책도 효험 없이, 무한정 오르기만 하는 우리 주택시장의 속사정이다.

 

각설하고, 전형적인 ‘투기’ 혹은 ‘투기자’의 역할을 한 번 기억해 보면, 봄철에 배추 재배 농부는 수확철에 배추 가격이 얼마가 될지 아무런 확신 없이 배추 모종을 심다. 이 농부 입장에서는 지금 시점에서 경작 비용에 적정 이익을 보상하는 수준의 배추값을 미리 확정해 두면 안심하고 농사일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참에, 중간 수집상이 나서서 수확철에 배추값을 얼마로 쳐주겠다고 약속해주면 고마울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 때, 이 수집상은 가을에 배추값이 일정 수준 이상 오를 것을 예상하고, 실제로 그 이하로 내려갈 리스크(확율)를 감수하는 ‘투기’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약정하는 가격 이상으로 상승할 ‘가능성’을 포기하며 하락 ‘리스크’를 회피하려는 농부와 상호 보완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다른 영역에서도, 비록 시장 특성에 따라 다양한 상황이 나타날 수는 있으나, 대체로 투기(投機)에 대한 이론적인 인식 방향은 이렇다. 이것이 시장에서 작동하는 투기의 순(純)기능이다. 문제는 실제로 우리 사회에는 아파트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믿음이 거의 ‘신앙에 가까운 확신’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문제의 근원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처음 세워진 게 1960년대초라고 알려져 있으나, 그 이후, 경제 위기가 있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아파트 가격이 내려간 적이 거의 없다. 그러니, 이 사회에 부동산(아파트) 불패 신화마져 굳어진 것이다. 

 

문제는, 일부 서민들은 날이 새면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내집을 마련할 엄두를 내기는 커녕, 앞으로도 영원히 내집 한칸 마련하지 못할 것같은 불안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애써 노력해도 생전에 도저히 내집에 들어가 살아볼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상황이 문제다. 여기에, 정부는 당장 아파트 값을 때려잡을 생각에 골몰하고, 시장을 옥죄는 규제들만 쏟아내고 있으니 가격은 덩달아 오르기만 한다. 쉽게 말해서, 토지 공급이 자연적으로 한정되어 있으니, 적당한 지역 건축 용적율을 두 배 쯤 올리면 아파트 공급량은 단순히 두 배로 늘어날 것인데 말이다. 두 배가 모자라면 세 배로 올리면 될 것이다. 단독주택 지역에 30층 마파트를 지으면 주택 공급은 30배로 늘어날 것 아닌가? 

 

종종 ‘부동산 불패’ 신화를 얘기하나 이것도 장기적으로 보면 대단히 리스크가 큰 투자 행위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이야 전세계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대세 상승기라고 하지만, 주위를 살펴보면 정반대인 경우도 종종 눈에 띈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1980년대 말 희대의 자산 버블 붕괴로 부동산 가격이 몇 분의 1로 폭락한 뒤, 지금도 그런 수준에 머물고 있다. 불패 신화를 쫓는 사람들이야 대세 상승 기조가 영원할 것으로 기대할지 모르나, 보다 합리적인 사람들이 차츰 정상에 도달하고 있음을 감지하기 시작하면 사정은 크게 달라질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렇게 보면, 지금 아파트 가격 폭등이 멈추지 않는 것은, 아파트 공급을 원천적으로 가로막는 정부의 규제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일찍이 포드(Jerald Ford) 미국 대통령은 ‘가장 좋은 규제는 가장 적은 규제’ 라고 설파했다.  

 

■ “지금이야말로 부동산 투기에 대한 인식을 대전환할 때다” 


2020년 11월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주택소유통계’에 따르면 2019년 11월 기준, 우리나라 총 주택 수는 1,813만호, 그 중 개인 가구가 소유한 주택은 1,569만 건이다. 한편, 우리나라 일반 가구 총 2,034만 가구 중에서 주택을 소유한 비율은 56.3%이고, 가구 당 주택 소유 비율은 1.37호로 나타났다. 이들 주택 소유자 가운데, 1건만 보유한 사람은 84.1%, 2건 이상을 보유한 사람은 15.9%에 이르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아직도 일반 가구들 상당 수는 복수 가구가 한 집에 함께 살기도 하고, 이들 가운데 많은 경우에는 전월세 등 임차 형태로 살고 있는 형편이다. 

 

이를 감안해 보면, 정부의 주택 정책의 제일의 초점은 이들 잠재적인 주택 수요자인 무주택 임차 거주자들이 내집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임이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 지금처럼 시장에 공급이 제한돼 있어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사라지지 않는 한,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줄을 설 것은 당연하다. 그러면 언제쯤 되어야 이런 주택 수요 폭주(輻輳) 상황이 잠잠해질 것인가? 이에 대한 답도 지극히 간단하다. 현 상황에서 가격이 충분히 오르거나, 공급이 대폭 확대되어 초과 수요를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어야 멈출 것이다. 

 

이제, 우리는 부동산 문제에 대해, 특히 ‘투기’라는 행위에 대하는 인식을 대전환해야 할 시기라고 본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근간은 일반적 행동 규약인 법률이다. 그리고, 지금은 이 법률에서 정하지 않은 감성적인 ‘죄목’으로 투기자들을  속수무책으로 매도하는 관행을 다시 냉정하게 성찰해 볼 시점이라고 본다. 냉정해야 한다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용인해야 할 합리적인 경계를 획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률에 정한 세금을 완납하고 거래한 부동산을 보유하는 경우에, 단지 아파트 가격이 갑자기 올라 한 채에 수 십억이 나간다고 한들, 그들을 과연 증오하고 응징할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것인가를 냉철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아울러, 정부는 어떤 부문의 주택 가격 상승에 크게 신경을 쓰고 걱정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있다. 어느 동네에 가보면 한 채에 수백억씩 나간다는 호화 궁궐같은 주택들이 즐비하던데, 이런 주택들 가격에 대해서는 왜 분노하지 않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정의감에 충만한 일부 논자들은 이러한 논리를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나, 고가의 호화주택 가격이 수 십, 수 백억을 하던, 거기서 또 얼마가 더 오르건 그들끼리의 놀음으로 치부하고 그냥 놔두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법에 정해진 거래 및 보유 관련 세금만 착착 거둬들이면서 말이다. 

 

우리가, 그리고 정부가, 지금 가장 걱정하고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은, 한강변에 즐비한 아파트들 가격을 때려 잡는 것보다, 언젠가 들어가 살 집 한 칸을 마련하겠다는 희망마져 잃어가는 다수의 무주택 서민들에 대한 대책이다. 이를 위해서는, 그들에게 언젠가는 내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근구 저축하려는 희망을 놓지 않도록 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것이 제일이다. 한 마디로, 시장을 억눌러 고가 아파트 가격을 낮추어 보려는 억지 정책을 버리고, 시장에 순응하며 진정한 정부의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방향으로 사고를 전환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렇게 해서 언젠가, 주택 가격이 구조적으로 하락할 수도 있다는 인식이 시장에 널리 자리잡도록 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본다. 

 

앞서 소개한 소설 속 허생(許生)도 당시에는 기발한 발상으로 투기해서 큰 돈을 거머쥐기는 했으나, 혹시, 예상과 달리 가을 수확철에 농작물들이 대풍이 들 것을 잘못 예상했다면 그는 필경 쫄딱 망해서 평생을 더 큰 마누라 구박 속에 살았을 것이 분명하다. 당시에는 농산물 가격 하락 리스크를 헤지(hedge)할 수단이 만무했기 때문이다. 지금, 정부의 정책 담당자들을 비롯해서 부동산 투기자들을 포함한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이런 교훈을 깊이 심어주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 “저주(詛呪)와 질시(嫉視)가 한 나라의 경제 발전을 가로막는다” 


얼마 전 신(新)자유주의 경제 이론을 추구하는 경제이론가들 논단에 “시기(猜忌)가 국가 경제 발전을 어떻게 파괴하는가?(Why Envy Can Destroy Economic Progress; Lipton Mathews)” 라는 제목의 논설이 실렸다. 이 논자는 한 나라의 잠재적 성장 가능성을 나타내는 요인으로 문화적 요인을 강조했다. 그리고, 일단의 경제 이론가들의 연구 결과를 인용해서, 한 나라의 문화적 속성이 그 나라 경제 활동에 반영된다는 사실을 실증했다. 특징적인 것은, 인간의 ‘시기(猜忌)와 질투(envy)’라는 속성이, 선진 사회에서는 발전적으로 발현되어, 자신의 경쟁 상대들이 이룩한 성과에 촉발되어 더 많은 교육, 사업, 투자를 유발하는 동인(動因)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후진 개발도상국에서처럼, 이러한 시기와 질투가 자칫 파괴적 동인으로 작용하면, 오히려 경제 및 사회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유능한 경제 주체들이 이런 파괴적 시기와 질투를 회피하기 위해 생산을 꺼리게 되고, 생산성을 저락시켜, 당연히 물질적 번영도 제한을 받게 된다는 지적이다. 결국, 궁극적으로는 ‘회복 불가능한 손실(deadweight cost)’을 가져오게 마련이라는 결론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투기’ 행위를 그렇게 사회악으로 응징할 요량이라면, 혹시 가진 자들에 대한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혀 법에도 없는 투기라는 죄목으로 선동적으로 몰아가며 감성적으로 응징할 것은 아니다. 이에 앞서서 ‘불법 투기’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법률로 획정하는 일이 우선이다. 예를 들어, 공무 담임자가 내밀한 정보를 불법으로 취득하고 이를 이용해서 투기했다면 이런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법에 정한 절차에 따라 일벌백계하면 될 일이지, ‘투기’ 행위만을 이유로 흡사 집단 응징하는 식으로 대처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부동산 투기를 증오하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그런 지탄을 받는 사람들, 어느 누구를 불문하고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빠짐없이 ‘투기’ 이익을 향유하는 게 사실이라면, 다른 사람들이 혹여 공직 후보에 나서기라도 하면 부동산 투기를 들춰내 악덕한 사람으로 폄훼하고 응징하려는 것은 너무 위선적이고, 집단적 내로남불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머지않아 새로운 집권 세력이 들어설 것이고, 그러면 공소(空疏)한 ‘부동산 투기’ 논란은 재연될 게 뻔하다. 이번에도, 과거의 희한한 관행을 올바르게 계도하지 못하면, 이 사회는 자기 이외의 모든 주체들에 반목하는 파괴적 관행을 벗어날 수가 없고, 궁극적으로 사회 발전을 저해할 것이다. 새로 들어서는 정권은 사회 전체가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투기’에 대한 합리적 판단 규준을 서둘러 정립해서 개별 주체들의 경제 활동에 폭넓게 투영될 수 있을 방도를 마련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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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10월18일 12시00분
  • 최종수정 2021년10월26일 03시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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