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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 경직성 완화의 또 다른 해법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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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12월01일 17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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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의 발목을 잡는 것으로 혁신을 가로 막는 규제와 더불어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꼽는다. 기업하기 어렵게 하는 요인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노동경직성이 단연 으뜸이다. 기업 활동은 기본적으로 부침(浮沈)과 변동요인(變動要因)이 있기 마련이며 외부적인 요인에 대한 대응력이 성패(成敗)를 가르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유제품 회사가 수년간의 누적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폐업 발표를 했다가 노조, 낙농가 등의 압력을 못 이겨 노조와 30% 감원에 합의하며 경영을 지속하는 것으로 선회했다. 그만큼 기업의 구조조정과 인력의 감축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이며 기업으로서는 오명을 뒤집어 쓸 위험이 있다. 필시(必是) 이 회사도 그런 연유로 폐업을 결정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2000년대 초 IT 버블이 꺼질 때 그 변화의 한 가운데 있었다. 여러 번의 반복적인 인수합병이 있었는가 하면 갑작스런 폐업이 있기도 하였다. 몸담았던 회사들 중 여럿이 이렇게 사라졌다. 실리콘밸리는 기업들에게 최대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공한다. 그래야 수많은 회사들이 쉽게 생기고, 닫고, 인수합병을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개인도 기업도 활발하게 이합집산(離合集散) 하고 있다.

 

기업이 병들고 망해가는데도 적자를 감수하면서 경영을 유지하라고 하는 것은 사업을 하고자 하는 자본가들에게는 최악의 환경이다.

최근 들어 테크기업들이 다시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잘 나가던 메타의 CEO인 쥬커버그는 편지 한 장으로 13%에 해당하는 1만1천명을 해고 했다. 가장 슬픈 순간이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해고된 직원은 16주 상당의 급여와 근속연수당 2주의 추가급여를 받는다. 우리 금융권이 명예퇴직 시 수 년치 급여를 지급하는 것에 비하면 냉혈적(冷血的)이다. 

규모는 작지만 트위터도 50%, 스냅도 20%로 훨씬 높은 비율의 해고를 했고 세일즈포스도 감원을 예고하고 있다. 테크기업의 종사자들은 IT 버블 붕괴 이후 20여년 만에 해고와 재취업 실패의 불안에 떨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이들은 이런 결정들을 받아 들인다. 그게 실리콘밸리의 문화이다.

 

노동유연성에 대한 우려는 기본적으로 해고, 감원, 구조조정 등으로 잃게 될 노동자들의 일자리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당장의 일자리 보전 만을 주목해 볼 일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보거나 크게 확대해 보면 기업 경영 환경이 나쁘다는 것은 일자리가 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리콘밸리에서 무자비할 정도의 감원을 받아들이는 것은 불안하기는 해도 그래야 불씨를 살릴 수 있고, 다시 모여 새로운 걸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킬 뿐 아니라 대내외의 변화에 대한 대응력을 떨어뜨려 기업의 생존을 위태롭게 한다. 그러니 기업으로서는 더 나은 환경을 찾아 해외 투자나 이전을 늘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노동자들을 지키고자 하는 환경이 일자리를 위축 시키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오죽하면 ‘노동자들의 파업보다 자본가들의 파업이 더 심각하다’는 말이 생겼겠는가.

 

더구나 능력과 무관하게 장기 고용을 보장하고 매년 임금 협상을 통해 임금을 수십 년 간 지속적으로 임금 인상을 시행한 결과 우리나라가 임금이 높은 국가가 되었다. 제조업 종업원의 평균임금이 우리보다 월등 높은 나라로는 미국, 독일, 스칸디나비아 3국, 베네룩스 3국, 호주 정도이며 20~30년 임금 인상을 못한 일본은 오히려 20% 정도 적다. 

 

노동유연성이 보장되는 나라들은 개별 일자리 별로 채용과 퇴직(사퇴이건 해고이건)을 시행하기 때문에 설사 총인력(TLR: Total Labor Resouce)은 변동이 없더라도 총인건비(TLC : Total Labor Cost)는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노동유연성이 국가적으로 필요하고 이로운 면이 많더라도 노동자들은 재취업의 기회가 불안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 따라서 정부는 자의든 타의든 이직한 노동자들이 다시 취업할 수 있는 시장을 확대하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당장 필요한 것은 일부 기업들에게 기부행위 등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노동시장을 변화시킬 물꼬를 트는 역할을 부탁해야 한다. 적어도 전경련에 속한 기업들이 동시에 수시채용을 시행하면 재취업에 대한 불안이 다소 해소될 것이며 노동시장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감원과 재취업이 원활해야 노동시장이 유연해 질 수 있다. 재취업박람회 같은 것도 시도해 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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