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세종의 정치리더십-외천본민(畏天本民) <72> 진정으로 행복한 나라 Ⅰ.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은 국가의 책무이다.<하>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3년05월19일 17시10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메타정보

  • 2

본문

I.4 구휼 제도를 완성하다.

 

굶는 사람에 대한 애절한 연민과 관심으로 끊임없이 관료들을 독려하고 대책을 촉구한 결과 세종 27년 8월 획기적인 구휼정책을 수립하게 된다. 그동안 정부의 구휼정책의 여러 문제점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다음과 같았다 ;

 

   (i) 구제곡식을 나누어 줌에 있어서 가난한 사람과 부자에 대한 구별이  

    없고 또 농사의 작황에 대한 차등적용도 없기 때문에 구제정책의 실질적 

   인 효과가 가난한 사람이나 농가에 상대적으로 작을 수밖에 없었다.

 

   (ii) 가뭄이나 홍수 등으로 구제곡식을 받아간 사람들이 그것을 제때 

   제대로 갚지도 않고 또 지방수령들도 이를 예사로 알고 태만히 여기기 

   때문에 국고가 날로 피폐해지고 있다. 또 국가가 이를 독촉할 때에는  

   지방관들이 너무 가혹하게 독촉하여 원성이 자자해지기도 하다. 결국 구  

   제곡식의 회수관리(환상,還上)가 제대로 되지도 않고 백성은 백성대로 원  

   망만 늘어나 민생과 국고가 동시에 피폐해진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내놓은 정부의 근본적은 다음과 같다.

 

    (i) 정월 이전에는 절대로 구제 환상곡식을 나누어 주지 말 것 : 

     굶는 백성에게 가장 시급할 때 공급해야 진제효과가 극대화된다.

 

    (ii) 환상곡식을 줄 때에도 목면이나 정포 혹은 동전과 같은 물건을 바치   

      고 곡식을 받아가되 다만 시세보다 1말 높게 값을 쳐주고 가을이나

     겨울에 쌀로 베나 동전을 사고자 하는 경우에는 시세보다 쌀 두 말을  

     더 쳐 줄 것 : 쌀이 귀한 철에는 물품을 시세보다 1말 더 비싼 값으로   

     쳐서 사주고 반대로 쌀이 흔한 철에는 쌀을 시세보다 더 비싼 값으로  

     쳐서 사줌으로써 ‘쌀값과 쌀 공급을 동시에 안정시킨다는 ‘상평책’    

     을 도입한다는 것이다. 이 때 시세는 감사에게 물어서 결정하며 이를  

     호조에 보고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목면이나 정포와 같은 베를 사들이  

     는 경우에는 반드시 포의 끝자락에 도장을 찍어 나중에 고증의 근거를  

     남겨 둠으로써 부정을 예방하였다.  

 

    (iii) 구제곡식을 배급하는 시기와 갚을 시기에는 농사의 작황과 백성의 

     재산 정도에 따라 차별을 두어 배급하도록 할 것 : 작황과 재산 정도에  

     따라 탄력적으로 진제를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작황과 재산에 따른 차등 진제]

 

구제곡식을 받는 경우 재산이 가장 적은 하등호는 작황이 가장 나쁜 하등년에는 1월부터 관청으로부터 쌀을 대출받을 수 있으며 중등년에는 2월부터, 그리고 상등년에는 3월부터 미곡을 대출할 수 있게 했다. 재산정도가 가운데인 중등호의 경우에는 하등년에는 2월부터, 중등년에는 3월부터 미곡을 대출받을 수 있으나 상등년에는 미곡을 대출받을 수가 없다. 재산이 가장 많은상등호의 경우에는 하등년에 3월에만 미곡을 대출받을 수가 있고 중등년이나 상등년에는 미곡을 대출받을 수 없다.

 

9fd6f3a9548dd304c9a8ee99c94653d2_1681962 

 

대출받은 곡식을 다시 되갚는 환상의 경우에도 빌릴 경우와 같이 재산 상태와 농사의 작황에 따라 차등을 두어 갚게 하였다. 특히 쌀로 다 갚는 것이 아니라 작황 및 재산 상황에 따라 차등하여 쌀과 동전 혹은 베로 나누어 갚게 하였다. 예를 들어 농사가 매우 잘되어 상등년인 경우에는 상등호나 하등호나 예외 없이 모두 쌀로 갚아야 했다. 그러나 농사가 중등 년인 경우에는 재산이 많은 상등호는 모두 쌀로 갚아야하지만 중등호는 갚아야 할 쌀의 2/3만 쌀로 갚고 1/3은 전포로 갚아도 되었다. 하등호는 반을 쌀로 반은 전포로 갚도록 했다. 농사가 가장 안 된 하등년의 경우에 상등호는 1/3을 전포로 갚고 2/3를 쌀로 되갚아야 하며 중등호는 쌀과 전포를 반반씩 갚으면 되었고 하등호는 모두를 전포로 갚아도 되었다. 전포의 가치가 대체로 하락했으므로 쌀보다는 동전 또는 포화가 갚기에 유리했기 때문에 이런 상환조건을 제시한 것이다.

 

9fd6f3a9548dd304c9a8ee99c94653d2_1681963


I.5 진제에 대한 당부와 처벌

 

[감사에 대한 진제 당부]

 

백성에 대한 구제는 지방에 있는 현장 관리들이 하는 것이므로 이들이 어떻게 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세종은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세종이 궁궐 안에서 신경을 써서 열심히 정책을 만들더라도 현장에 있는 감사 수령 혹은 그 아래 도사경력들이 잘 해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현지에 있는 최고 책임자 감사와 새로 부임하는 관리 한명 한명에게 철저하고 진심 어린 진제를 당부하였다. 충청도 감사로 가는 유계문에게 세종은 이렇게 부탁했다.

   “내가 가뭄을 우려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경이 잘 알고 있다.  내 뜻을 잘
   깨닫고 각자 직책을 각별히 수행하도록 하라. 근래에 가뭄에다 비가 오
   지 않으니 기근이 거듭하여 발생하고 있다. 궁핍한 사람에게 진휼하는 
   법은 이미 시행되고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창 
    고를 열어 곡식을 나누어주는 일이 시급한 것은 아니므로 적당하다고  
   판단될 때 실시하라. 그리고 농잠을 권면하여 민생을 풍족하게 하라   

    (憂旱恐懼 卿悉知之 體予此懷 恪修爾職 近來旱乾不雨 飢饉荐臻 

     故賑恤窮乏 己曾行移 然來歲之事 未可知也 發倉賑濟勿爲太急 

     量宜施行 且勸農桑 以厚民生 : 세종 8년 4월 16일)” 

 

함경도 지역으로 주민이 옮겨가는 바람에 텅 비게 된 용성과 길주 땅에 경상, 전라, 충청, 강원 네 도의 백성과 아전을 이주시키기로 결정한 세종은 그 도감사에게는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이동할 때 춥고 굶주려서 넘어질까 두렵다. 호송하는 관리들이 극진히

    보살펴 구제하여 굶고 춥지 않도록 하고 만약 병든 자가 있다면 특별히  

    가호해서 사망자가 나오지 않도록 함으로써 내 뜻에 부합하도록 하라.  

    (恐有遷徙之際 飢餓寒凍 以致顚仆 其令押領守令等務盡護恤 毋使飢寒 

    如有得病者 益加護恤 毋致殞命 以副予意 : 세종 19년 1월 4일)”

 

충청도 관찰사 정인지에 대해서는 좀 못 미더운 데가 있었다. 경전과 역사(경사,經史)에는 밝았지만 현장 행정에는 미숙하다고 느낀 세종은 특별히 충청감사 정인지에게 여러 번 진제를 잘 하라고 지시했던 터였다. 이번에는 은밀히 조사관을 파견할 뜻을 넌지시 비치면서 당부했다.

 

   “도내 전체의 기근 상황을 내가 연속으로 사람을 보내 방문하여 파악

    하려고 한다. 경도 내 뜻을 잘 알아 다시 마음과 힘을 다해 널리 살펴

    보고 두루 구하여 한 사람도 재난에 걸려 사망하지 않도록 하라. 만일

    급박한 일이 발생하면 수시로 보고하라.

    (凡道內饑饉之狀 予欲連續遣人訪問 卿亦體予之懷 更殫心力 廣察周救 

    毋使一民罹於死亡 如有急迫 隨則啓達 : 세종 19년 1월 7일)” 

 

세종 25년 함길도 평안도 지방에는 대단히 심한 가뭄이 들었다. 이 지역은 축성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백성들이 더 고통스러웠다. 함길도 감사 정갑손이 축성을 중단하자고 요청할 때 황보인에게 명하여 직접 가서 현지 상황을 가서 보고 결정하라고 갔던 황보인은 축성을 단행했고 그 해 가뭄으로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다. 세종은 황보인을 호되게 질책했다. 

 

   “그 백성들이 굶어 죽은 것을 경도 들어서 알지 않는가. 어찌 깊이 생각하지 않고 가볍게 움직여 백성을 동원하여 큰일을 벌였는가. 또 축성군인들이 오고 갈 때 부역을 할 때 필시 곡진하게 배치하여 굶는 사람이 없도록 했겠지만 저렇게 뒹구는 사망자가 나왔으니 이것은 각 고을의 실농자인가. 아니면 축성군인으로 도중에 양식이 떨어져 굶어 죽은 자인가. 그 굶어 죽은 자의 상태와 숫자와 유망 가호의 수와 곡식이 여 문 정도와 각 관의 창고에 비축된 쌀, 콩의 많고 적음과 감사수령의 직무 근만자세를 상세히 보고들은 후 급히 보고하라. 경도 구황의 방법을  다듬어 보고하라. (其民之飢餓死亡 卿得聞之歟 豈不熟計而輕易動衆 以興  是役乎 且於築城軍往來之時 赴役之際 意必曲盡布置 勿令飢死矣 然此輾  轉而死者 是各官失農丐乞之人歟 抑築城軍在途乏糧而餓死者歟 其餓死者  之狀及死亡之數 流亡家戶有無 禾穀結實之狀 各官所儲米豆多少 監司守令  賑濟勤慢 備悉聞見馳啓 卿亦救荒之策 磨勘以啓 : 세종 25년 9월 22일)”

 

[진제 소홀에 대한 처벌]

 

세종은 백성을 제대로 진제하지 못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벌할 것임을 여러 번 밝혔다. 경차관을 수시로 보내어 감사 수령의 직무를 감시하기는 하지만 미리 그 사실을 알아차린 지방관들이 사실을 은폐하거나 사람을 매수하여 입을 막고 증거를 인멸해버리니 적발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경차관을 예고 없이 몰래 보내었으며 진휼을 잘하지 못하여 사망자가 발생하게 한 관리는 공신자손 여부를 불문하고 3품 이상은 중앙에서, 4품 이하는 현장에서 과죄하여 처벌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감사의 업무 평가도 관할 수령의 잘못과 연계하여 처벌하도록 하였다(세종  19년 1월 13일).  

 

죽은 자가 발생하는 것에 대한 세종의 문책의지는 확고했다. 그것이 굶어 죽는 것이든 병들어 죽는 것이든 사람이 죽는 것에 대한 잘못은 반드시 묻겠다는 것은 세종의 치세동안 내내 흔들리지 않는 철칙이었다.

 

   “만약 한 사람이라도 죽게 된다면 엄벌을 내리며 용서하지 않겠다. 

    (若有一人致死 抵罪不貸 : 세종 26년 3월 16일)”    

 

진제소홀에 대한 확고한 문책원칙에 따라 많은 사람이 처벌을 받았다. 덕천군수 최세온은 관청물건을 40관(약150kg)을 횡령했고 진제곡식을 17관(63.75kg) 빼돌렸다. 세종은 최세온의 목을 베었다(세종 6년 8월 15일). 아사자가 발생하는 경우 곤장 90대 혹은 100대를 맞고 파직되었다. 공신의 자손이면 감형되었지만 벌금으로 형벌을 대신할 수(속죄,贖罪)는 금지되었다.

 

9fd6f3a9548dd304c9a8ee99c94653d2_1681963

 

9fd6f3a9548dd304c9a8ee99c94653d2_1681963
9fd6f3a9548dd304c9a8ee99c94653d2_1681963
9fd6f3a9548dd304c9a8ee99c94653d2_1681963
9fd6f3a9548dd304c9a8ee99c94653d2_1681963
<ifsPOST>

2
  • 기사입력 2023년05월19일 17시10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