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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이란 관계 정상화 합의의 함의와 향후 중동 정세 전망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3년05월09일 12시00분
  • 최종수정 2023년05월09일 11시09분

작성자

  • 성일광
  • 고려대 중동·이슬람 센터 정치·경제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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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초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가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 2016년 관계 단절 이후 7년 만이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 이란-사우디 중재를 성공시킨 것이다.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를 전략이 아닌 전술적 차원의 일시적 봉합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그 이상의 함의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중동 정세는 물론 미국-중국 전략경쟁 관점에서도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다.

 

사우디의 정상화 배경

 

우선 사우디와 이란 양국이 전격 정상화에 합의한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우디는 시리아 내전 불개입과 ‘미국의 중동 떠나기’란 정책이 시작된 오바마 정부 시절부터 미국에 실망했다. 이보다 앞서 2003년 미국의 침공으로 이라크가 붕괴하자 사우디는 미국에 불만을 표시했다. 이란과 균형을 유지하던 이라크의 붕괴는 군사 대국 이란이 역내 헤게모니를 쥘 기회였고 사우디에 큰 위협이었다. 미국은 사우디 안보를 보장하겠다고 왕실을 안심시켰으나 미국의 정책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미국은 사우디에 최신 무기를 제공하지도 않았으며 예멘 반군 후시의 드론과 로켓을 완벽히 막지도 못했다. 

 

​미국은 중동에서 발을 빼면서 안보 측면에서 이스라엘이 걸프 국가를 도우면서 미국의 역할을 일부 대신해주길 바라고 있다. 2020년 바레인과 UAE가 이스라엘 관계 정상화를 약속한 아브라함 협정을 체결한 중요한 이유는 안보 측면에서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 미국이 걸프국가와 친미국가인 이집트와 요르단을 규합해 중동판 나토를 조직하려고 시도한 것은 친미아랍국가의 안보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이었지만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사우디가 미국과 ‘헤어질 결심’을 한 결정적 이유는 2019년 아부 카이크와 쿠라이스의 아람코 정유시설이 드론과 순항미사일의 공격을 받은 충격적인 사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배후는 이란이며 예멘의 후시 반군과 이란의 합작으로 결론 내렸다. 사실 아람코 정유 시설 공격 이후 사우디만 놀란 게 아니라 걸프지역 모든 국가와 이스라엘마저 충격에 빠졌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드론과 순항미사일 기술이 뛰어난 것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실전에서 작전능력은 별개라고 보았다. 이스라엘은 아람코 공격 이후 연일 이란의 운용 능력에 놀라움을 표시하고 드론과 순항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방어 체계를 갖출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란의 의도는 아람코 시설 공격을 통해 사우디를 압박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무기는 물론 운용 능력을 알리는 기회로 삼은 것이다. 

 

사우디가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란의 손을 잡은 다른 중요한 이유는 바로 작년 새로 출범한 이스라엘 정부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최장수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는 새로 집권하자마자 UAE에 이어 사우디와 관계를 정상화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하지만 극우 정당이 연정 상대로 참여하고 있는 네타냐후 정부의 행동은 사우디로 하여금 일찌감치 기대를 접게 했다. 올해 초 네타냐후 총리의 UAE 방문을 앞둔 시점에서 극우파 국가안보장관 이타마르 벤그비르(Itamar Ben-Gvir)가 성전산을 전격 방문하면서 방문 일정은 취소되었다. 게다가 또 다른 극우파 재무장관 베짤렐 스모트리치(Bezalel Smotrich)는 ‘후와라’라는 팔레스타인 마을에서 테러리스트가 나와 이스라엘 주민을 살해했다는 이유로 이 마을을 없애야 한다고 발언해 국내외의 공분을 샀다. 극우파 장관들의 연이은 강경 발언과 행동은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를 더 멀어지게 했다.

 

사우디가 이스라엘에 실망한 더 중요한 이유는 이스라엘의 외교력 부재다. 사우디가 이스라엘에 기대를 건 것은 네타냐후 총리가 냉랭해진 사우디 미국 관계를 중재해 바이든 대통령이 무함마드 빈살만(MbS)을 사우디의 실권자로 인정해 주고 사우디 안보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사법부를 약화시키는 법안을 추진 중인 네타냐후는 바이든이 공개적인 반대를 표하자 내정간섭이라며 반발하면서 양국 관계가 서먹해졌고 사우디를 도울 여력을 상실하였다.


이란의 정상화 배경

 

이란이 중국의 제안을 받아들여 사우디와 정상화를 한 배경은 사우디의 경우보다 훨씬 단순하다. 미국의 제재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란은 중국의 경제협력이 절실한 만큼 중국의 제안을 거절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올해 초 달러 대비 이란 리알이 30% 올랐고 최근 몇 년 동안 물가 상승률이 매년 50% 이상 뛰어올라 서민들의 경제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중국과 이란은 2016년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체결했으며 2021년 3월 테헤란에서 향후 25년 동안 경제·안전보장 외 여러 분야에서 연대를 강화하는 내용의 포괄적 협력 협정에 서명했다. 이 협정을 통해 중국은 이란으로부터 안정적으로 원유와 가스를 공급받는 대신 4000억 달러(약452조원)를 이란에 투자하기로 했다. 중국은 25년에 걸쳐 이란 금융·에너지·항만·철도·5세대 이동통신(5G) 부문에 투자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하지만 포괄적 협력 협정을 체결한지 2년이 지났지만 가시적인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이란은 또 작년 9월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상하이 협력 기구(SCO) 가입 의사를 밝혔고 사우디도 올해 3월 동참 의사를 밝혔다.

 

중국은 작년 12월 시진핑 주석이 중동을 방문하면서 중국의 영향력을 과시한 바 있다. 시 주석은 사우디는 물론 UAE, 쿠웨이트와 카타르 등 10개국 정상들과 정상회담을 개최하면서 아랍권과 관계 확대에 공을 들였다. 이란으로서는 아랍권과 협력을 확대하는 중국을 붙잡을 필요가 생긴 것이다. 이처럼중국과 협력할 다양한 요인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사우디와의 관계 개선은 다른 순니 아랍국가와의 관계 개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인 만큼 이란은 사우디를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사우디-이란 관계 정상화, 역내 데탕트의 변곡점

 

사우디와 이란의 화해는 중동 지역 갈등을 완화시켜 데탕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순니와 시아, 왕정과 혁명 정권, 친미와 반미 등의 차이를 보이면서 대치해왔던 사우디와 이란의 화해가 역내 화해과정에 변곡점이 된 것이다. 우선 시리아를 둘러싼 중동의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 2011년 시리아는 반정부 시위에 나선 자국민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러 아랍연맹의 회원 자격을 잃었다. UAE는 작년 3월 아랍국가로는 처음으로 시리아의 독재자 아사드를 가장 먼저 초대해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후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를 둘러싸고 아랍국가 간 의견차를 보여왔지만 사우디-이란 관계 정상화 이후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사우디는 지난 4월 파이잘 메크다드 시리아 외무장관을 자국으로 불러 양국관계 개선을 타진하고 5월에 사우디에서 열릴 아랍연맹 회의에 아사드를 초대할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모든 아랍국가가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를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여전히 아사드의 복위를 반대하고 있으며 카타르와 모로코 역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시리아는 ‘가난한 자의 코카인’이라고 불리는 저가 마약 캡타곤의 최대 생산지로 사우디와 UAE에 마약을 공급하는 배후이다. 아사드 가문이 직접 운영하며 마약을 판매해 국가통치자금으로 이용해 왔다. 아사드는 걸프국가에 더는 캡타곤을 밀매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아랍연맹 복귀를 노리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UAE와 터키는 시리아와 리비아 내전에서 대리전으로 충돌했지만 10여년간의 냉각기를 접고 관계를 정상화했다. 작년 초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UAE를 방문하면서 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었다. 터키와 이집트도 다시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다. 리비아와 시리아 내전에서 서로 다른 진영을 지지하면서 소원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데탕트 물결에 동참했다. 터키와 사우디도 2018년 사우디 출신 언론인 카슈끄지 암살 사건이라는 대형 악재를 뒤로하고 관계 개선에 나섰다. 바레인과 카타르는 2017년 사우디와 UAE 등이 대카타르 제재를 가하면서 관계가 악화하였다가 2021년 초 카타르 제재가 해제되면서 외교 관계 복원을 위해 접촉을 시작했다.

 

사우디와 이란이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한 이후 바레인과 카타르는 대사 관계를 복원하기로 합의했다. 시리아와 리비아 내전이 완전히 종식되지 않았지만, 중동에 불고 있는 데탕트 물결은 이전보다 안정화되는 분위기와 무관치 않고 대결 구도의 중심국가인 이란과 사우디가 정상화에 합의하면서 가속화되는 모양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고민과 걸프의 아시아화

 

사우디-이란 관계 정상화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심각한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중국의 외교적 승리가 보내는 신호는 미국은 이제 중동의 유일한 조정자가 아니라는 경고음이다. 중국은 이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중재에도 관심을 보이며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미국-중국 전략경쟁 구도에서 중국을 중동에서 떼어내려는 미국의 전략은 일단 실패했다. 최장수 사우디 외무장관 사우드 알파이잘(Saud al-Faisal)은 이미 오래전 미국-사우디 관계는 가톨릭 혼인이 아니라 무슬림 혼인이라며 사우디는 미국과 이혼을 원하는 게 아니라 두번째 혼인을 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리야드는 또 ‘저유가를 대가로 미국이 자국의 안보를 지켜 준다’는 오래된 패러다임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무함마드 빈살만(MBS) 왕세자는 사우디가 역내 헤게모니 국가로 거듭나 국제 정치에서 독자적인 역할을 해내길 원하며 이 목적을 향해 하나씩 실천해 가고 있다. 미국은 최소한 역내에서 중국과 공존하는 새로운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사우디-이란 정상화로 가장 우려가 깊은 국가는 이스라엘이다. 안보 측면에서 이란과 사우디를 위시한 순니 아랍국가와의 데탕트는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스라엘은 사우디와 손잡고 여러 순니 국가와 함께 이란을 고립시키려는 전략이 큰 장애물을 만났다. 이스라엘의 고민이 더 깊어지는 이유는 사우디와 관계를 정상화한 이란의 자신감이 과감한 행동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자신감에 충만한 이란이 4월 헤즈볼라와 하마스를 부추겨 가자, 레바논과 시리아 등 세 개의 전선에서 자국을 공격하는 작전을 계획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란이 언제든 기회가 되면 헤즈볼라나 하마스를 이용해 자국과 전면전을 노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보고 있다.

 

사우디-이란 정상화는 분명 매우 중요한 변화지만 관건은 화해 관계가 얼마나 지속하느냐에 달려 있다. 암초는 곳곳에 널려 있다. 핵협상이 해결되지 않으면 미국과 이란 관계가 회복되지 않아 역내 긴장감은 지속할 것이다. 이번 합의로 예멘 내전을 종식하기 위한 협상이 진행 중이지만 만약 예멘 반군 후시의 로켓이나 드론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다시 사우디 영토를 침입해 피해를 준다면 양국 관계는 미궁에 빠질 수 있다.

 

 또 하나의 변수는 이란핵 문제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내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길 기대하고 있다. 네타냐후는 트럼프 대통령이라면 이스라엘의 이란핵시설 타격을 승인해 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이란핵 문제가 내년 대선까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이 군사적 수단을 이용할 가능성은 더 커지는 셈이다. 이스라엘이 만약 이란핵 시설을 타격한다면 하마스와 헤즈볼라 그리고 시리아의 친이란 조직이 동시에 이스라엘을 공격할 것이며 이란이 직접 이스라엘을 타격할 수도 있다. 이란은 또 주변 아랍국가와 미군 기지를 공격할 가능성이 크다. 이루 설명하기 어려운 심각한 혼돈이 초래될 것이 분명하다.

 

사우디-이란 관계 정상화는 일시적 봉합 수준을 넘어 양국 간 경제협력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러시아가 전쟁 중인 틈을 타 중국이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빈자리를 채우며 먼저 치고 나가고 있다. 걸프 지역이 중국의 영향력 아래로 완전히 편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미국이 아닌 중국의 외교력이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걸프 지역은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과도 점점 협력을 확대하고 있는 만큼 걸프지역의 ‘아사아화(Asiani zation)’가 시작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사우디-이란 관계 정상화는 중국의 부상과 걸프 국가의 외교 다변화가 맞아 떨어진 산물이다. 걸프국가는 어느 한 국가에 치우치지 않고 필요하다면 정적과도 손을 잡는 유연성을 보여주고 있다. 다극화로 가는 걸프 지역, 우리에게도 분명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끝>

  

 ※이 글은 세종연구소가 발간하는 [정세와 정책 2023-5월호 제30호]에 실린 것으로 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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