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진구 기자가 메모한 여의도의 모든 것<6> 금도가 없는 사람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3년09월25일 16시40분
  • 최종수정 2023년09월28일 17시08분

작성자

메타정보

  • 2

본문

“탈락 안 했다니까 왜 탈락했다고 쓴 거야.”

“탈락까지 통보했지만 구제됐다고 썼잖아. 그게 왜 탈락했다고 쓴 거라는 거야?”

“에이….”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통합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과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에는 개혁공천 바람이 불었다. 양쪽 다 상당히 많은 현역 의원들을 공천에서 탈락시켰는데,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한나라당은 진정한 의미의 개혁공천이라기보다는 주류가 된 친이계가 친박계를 쳐내는 성격이 강했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라 실세로 공천을 좌지우지한 이재오, 이방호 의원의 위세는 정말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오죽하면 당시 박근혜 전 대표가 “이렇게 잘못된 공천은 처음 본다. 이런 식의 공천으로는 앞으로 선거가 끝나더라도 당이 화합하기 힘든 상황이 올 것이다. 누군가 잘못된 상황에 대해 책임져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라고 했을까. (이랬던 친박이 자신들이 권력을 잡은 2016년 총선에서는 이보다 더 무도한 공천학살을 벌였다. 어이가 없다는 게 이런 걸 거다.)

 

  반면 민주당은 대선에서 500만 표 이상 큰 표 차이로 졌고,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는 위기감이 팽배했기 때문에 개혁공천에 더 가까운 쪽은 이쪽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불행히도 대선이 끝난 지 불과 넉 달 후에 총선이 치러졌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민주당의 개혁공천이 선거 승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민주당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전 대한변협 회장)의 칼날은 무시무시했다. 금고 이상의 형 배제 원칙에 따라 과거 비리 전력이 있는 사람들은 사정없이 날렸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홍업, 마찬가지로 김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안희정에 이어 막판에는 신계륜 당 사무총장 겸 총선기획단장까지 탈락시켰다. 그날 마침 국회 본청 민주당 사무총장 방에 그와 함께 있었는데, 탈락 소식을 듣고 그가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신 사무총장은 당시 손학규 당 대표가 사무총장으로 임명한 사람이다. 공천 탈락 결정 직후 손 대표는 ‘아니, 당 사무총장을 탈락시키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며 대로했지만 결정을 바꿀 수는 없었다.)

 

  여담이지만 당시 안희정은 공천 배제 후 공심위 결정을 승복하며 다음과 같은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다만 한 가지 부탁드립니다. 환향녀가 조선에 돌아올 때 한강 상류 홍제천에서 목욕하면 모든 것을 새롭게 출발할 수 있도록 했다는 옛날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는 하루도 깎아 주지 않은 감옥 생활을 했습니다. 3년여의 근신 생활을 했습니다. 사면복권도 마다하고 일체의 공직에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런 저의 노력이 '환향녀의 홍제천' 같은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공심위는 아직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 존중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번의 공천심사 대상자 탈락 결정이 저에게는 마지막 홍제천이 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언젠가는 저에게도 기회가 열리길 간절히 원합니다.>

 

  정치는 정말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랬던 그가 충남도지사에 당선되면서 유력한 대선 후보군으로까지 떠올랐으니까. (그 후의 모습은 우리가 다 아는 대로다.) 아무튼 당시 공천에서는 ○○○ 의원의 낙마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는 이름보다 영문 약자로 더 많이 불렸는데,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과 열린우리당 당 의장 등을 지냈다. 개인적으로 자주 본 사이는 아니지만 참으로 인품이 훌륭한, 정말 괜찮은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공천 탈락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할 때는 뭣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는지 이해가 안 됐다. 원인은… 공천 평가 방식 때문이었다. 

 

  민주당 공심위는 개혁공천을 천명하며 구체적인 평가 배점 기준을 제시했는데, 100점 만점에 법안 처리 건수(30점), 본회의(20점)·상임위(20점)·의원총회(20점) 등 출석률 60점, 당직·국회직·정부직 역임 10점 등이었다. 문제는 ○○○ 의원의 17대 국회 4년간 대표법안 발의 건수가 0건이었다는 점이다. ○○○ 의원 측근들은 “(○○○ 의원이) 당 의장, 장관 등을 하느라 바빠서…”라고 옹호했지만, 좀 궁색했다. 이해가 안 가서 똑같이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산업자원부)과 당 의장을 지낸 정세균 의원에게 당신은 어땠냐고 물었는데 그는 “난 그래도 (의원만 할 때의) 절반은 냈지”라고 했다. 어쨌든 이게 문제가 돼 공심위 안에서 논란이 크게 일었는데, 어느 날 ○○○ 의원이 이 문제 때문에 결국 공천에 탈락했다는 제보를 받았다. 그의 공천 탈락은 그 자체로 엄청난 뉴스라 확인 과정이 좀 더 필요했는데, 이 과정에서 내가 취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 의원 측근들에게 알려졌다.

 

  그날 저녁이었다. 민주당 당직자와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 의원 측 사람들에게 전화가 쇄도하기 시작했다. 요지는 탈락하지 않았으니 기사를 쓰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분명히 대표법안 발의 건수가 너무 적어 과락으로 탈락한 걸로 아는 데 만약 아니라면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고 했지만 제대로 설명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면서도 필사적으로 기사가 나가는 것은 막으려고 했다. 급기야 공심위 참관인 격인 한 인물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내가 집요하게 묻자 결국 “과락으로 탈락할 뻔했지만 플러스(+) 알파로 구제됐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플러스 알파가 뭐냐? 배점 기준에 그런 건 없는 걸로 아는데”라고 물었더니 한참을 주저주저하다가 “당 기여도”라고 했다.

 

  나는 처음에는 ‘당 기여도’란 항목에서 굉장히 높은 점수를 받아서 법안 발의 부분에서 까먹은 점수를 만회한 거라 생각했다. (사실 이것도 순간적인 착각이었다. 과락이었으니까) 그래서 “당 기여도는 배점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따로 정해진 점수는 없다”라고 했다. 정리하면, 과락으로 탈락이었는데 ‘당 기여도’라는 마법의 항목으로 살아난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탈락 통보까지 했다가 구제된 것으로 안다) 어찌 됐든 공천 탈락은 아니니 처음 보냈던 대로 기사를 내보낼 수는 없어서 그날 밤 기사를 엄청나게 고치느라 혼이 나기는 했다. 

 

  여의도 사람들에게는 ‘지켜야 할 선’이 없다. 말을 뒤집는 건 ‘지켜야 할 선’축에도 못 든다. 공심위에 속한 사람이, 심사과정에서 벌어진 일을, 자신들이 모시는 거물 정치인에 관한 안 좋은 기사를 막기 위해 기자에게 알려준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일까. 아마도 그 기사 때문에 혹시나 여론의 후폭풍이 불어 결과가 다시 무효화 되는 일이 벌어지는 걸 막기 위해서였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더라도 공천심사와 관련된 사람이라면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오죽하면 공심위 대변인을 했던 ‘시골 의사’ 박경철이 나중에 언론 인터뷰에서 “토시 하나 안 틀리고 안에서 한 말이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라고 했을까. 그리고 또 하나,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명색이 국회의원이 어떻게 4년간 대표법안을 한 개도 안 낼 수 있냐는 것이다. 만약 어떤 선거 출마자가 “국회의원이 되면 임기 내내 대표법안을 한 개도 안 내겠습니다”라고 한다면 우리는 뭐라고 생각할까. 

 

  어찌 됐든 기사는 대폭 수정할 수밖에 없었고, 관련 내용은 “공심위는 이날 ○○○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공천 문제로 당초 원칙에서 다소 물러난 상태다. ○ 전 의장은 ‘의정 활동 점수는 낮지만 대안이 없다’라는 이유로 우여곡절 끝에 공천됐다. 하지만 공심위가 ○ 전 의장 측에 탈락 사실까지 통보했다가 이를 번복한 것은 상당한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라는 딱 3줄만 남았다. 그리고 나는… 그다음 날 기사가 나간 뒤에도 ○○○ 의원 측 사람들에게 엄청난 항의 전화를 받았다. 요지는 “탈락이 아니라는데 왜 탈락했었다고 썼느냐”였다. 공심위 박경철 대변인도 “오보”라며 “○○○ 의원은 의정활동 등에서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라고는 했는데, 아마도 공심위 원칙이 후퇴했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아서 편을 들어준 게 아닌가 싶다. 왜냐면 총선이 끝난 뒤 공심위 박경철 대변인은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공심위가 ○○○ 의원에게 서류심사 최저점을 준 것을 놓고 신계륜 사무총장이 ‘너무 막 나가는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으니까.

 

 “저는 그것도 ‘공심위 흔들기’ 작업의 일환이라고 봅니다. 사실 ○○○ 의원은 장관과 당 의장 생활을 하면서 의정활동 점수가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어요. 최저점이 나온 게 오히려 당연한 거죠. 점수 기준으로만 보면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최저점이 나온 게 장관이나 당 의장 활동에 충실했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우리는 ○○○ 의원과 한명숙 의원처럼 입각했던 사람들은 의정활동 성적 부진자 배제 원칙에서 제외하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공심위 내부에서도 갈등이 심했죠. 밤을 새우며 토론한 끝에 입각한 사람들에 대해선 예외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가까스로 ○ 의원의 명예를 회복시킨 게 누군데, 참 어이가 없습니다. 신 총장이 그런 내용을 다 알면서 그런 얘기를 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워요.” 

<ifsPOST>  

 ※ 이 글은 필자가 지난 2023년 8월 펴낸 책 “여의도에는 왜 정신병원이 없을까” <도서출판 북트리 刊>의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편집자>​​

 

 

 ​ 

2
  • 기사입력 2023년09월25일 16시40분
  • 최종수정 2023년09월28일 17시08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