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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되는 여야 공천, 어떻게 봐야하나?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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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4년03월18일 00시48분
  • 최종수정 2024년03월18일 00시58분

작성자

  • 김형준
  • 배제대학교 인문사회대학 석좌교수(정치학),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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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 출마할 후보를 공식적으로 추천하는 공천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통상 한국 총선에서는 공정하고 개혁적인 공천을 한다고 평가받은 정당은 혁신 이미지를 선점해서 승리했다. 반대로 공천 파동과 내분을 일으킨 정당은 예외 없이 패배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당 공천에 대해 “혁신 공천을 넘어선 공천 혁명“이라고 자평했다. 이어 ”갈등은 혁신 과정의 불가피한 진통“이라고 했다. 또 국민의당 공천에 대해선 ”국정 실패를 책임지기는커녕 오히려 그 책임자들에게 국회의원 후보 공천장으로 꽃길을 깔아주는 패륜 공천“이라고 혹평했다.  

이에 대해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 위원장은 ‘형수 욕설, 배우 관련 의혹, 검사 사칭, 대장동 비리, 음주운전, 정신병원 강제 입원 등을 행한 “이재명이 이재명을 공천한 것이야말로 패륜공천"이라고 맞받아 쳤다. 정치권에서는 이재명 대표가 총선에서 ‘이기기 위한 공천’을 한 것이 아니라 사법리스크 방탄과 대권 쟁취를 위해 그동안 당의 주류 세력으로 군림한 친문 운동권 세력을 학살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 놓았다. 문화일보 허민 전임기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 세력에 대한 이 대표의 뿌리 깊고 회복 불가능한 ‘르상티망’이 친문학살 공천의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공천을 둘러싼 이런 정치 공방과 분석 속에서 여야 정당이 보여준 공천은 치명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첫째, ’시스템 없는 공천‘이다. 여야 모두 ‘시스템 공천‘을 언급했다. 시스템 공천의 핵심은 투명성, 객관성, 공정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공천이 밀실이 아니라 투명하게 이뤄지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인 평가 기준과 원칙이 적용되고, 당내 특정 세력이 차별받지 않고 공정하게 이뤄져야한다. 

과연 이런 기준에 따라 여야 공천이 이뤄졌는가? 대답은 부정적이다. ’법의 지배‘(Rule of Law)와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는 다른 개념이다. 법의 지배는 법이 행정. 입법. 사법 등의 모든 권력보다 상위에 있어 모든 국가 권력이 법에 복종해야 하는 원칙을 말한다. 이는 법치주의의 근간이다. 반면, ”법률로 규정하면 뭐든지 가능하다“는 '법에 의한 지배’는 진정한 법치주의가 아니다. 법을 통치자의 의사를 실현하는 도구나 수단으로 악용한다는 점에서 형식적 법치주의를 말한다.

 

마찬가지로 말로는 시스템 공천이라고 하면서 객관성이 결여된 기준을 만들어 특정 세력(인물)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그것은 시스템 공천이 아니라 시스템을 빙자한 사천에 불과하다. 민주당의 경우 그 정도가 훨씬 심했다.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비선 조직에서 특정 인물에 대한 불출마 권유를 하고, 공천 과정이 당 지도부, 공천관리위원회, 전략공천위원회,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 등 여러 조직으로 분산되어 어느 조직에서 주도하는지 명확하지 않았다. 누가 평가하는지도 모르게 평가가 이뤄지고, 하위 점수를 받은 당사자 차 구체적인 수치와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투명성이 결여됐다.

 

또한, 민주당은 현역 의원을 평가할 때 동료의원 평가와 당직자 평가가 포함된 '정성 평가‘가 활용됐는데 상당히 작위적으로 이뤄졌다.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에 찬성한 것으로 추론되는 비명 의원들은 하위 20%에 대거 포함되면서 공정성 시비가 불거졌다. 공천과 관련한 여론은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경제신문-한국갤럽 조사(2월22-23일)에 따르면, 공천 공정성에 대해 민주당의 공천에 대해 ‘공정하다’는 27%, ‘불공정 하다’는 53%였다. 반면 국민의힘의 경우 ‘공정하다’와 ‘공정하지 않다’의 응답이 40%로 동률을 기록했다. 

서울 지역의 경우, 민주당은 불공정(62%)이 공정(24%)을 압도한 반면, 국민의힘은 공정(47%)이 불공정(39%)보다 앞섰다. YTN-엠브레인퍼블릭 조사(3월2-3일)에서도 공천 평가에서 국민의힘이 ‘잘했다’는 긍정평가는 44.6%, 민주당은 32.7%였다.

 

주목할 것은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국힘 공천에 대한 긍정 평가는 87.7%, 부정 평가는 5.1%에 불과했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에서 민주당 공천에 대한 긍정 평가는 61.7%인 반면, 부정 평가는 25.1%였다. 이런 조사 결과는 국민들이 보기에 민주당 공천이 상대적으로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죽하면 민주당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에 합류한 김부겸 전 총리가 민주당 공천에 대해 “투명성, 공정성, 국민 눈높이라는 공천 원칙이 잘 지켜졌는가에 대해서 많은 국민들께서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겠는가? 한마디로 민주당이 민주적이고 공정한 정당 공천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째, 공천 과정이 각 정당의 당헌․당규에 의해 지배된다. 헌법 제8조 제2항은 “정당은 그 목적․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정당의 공천과정에 대해 공직선거법 제47조20에서는 정당은 민주적 절차에 따라 공천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정당법 제2조21에서는 정당을 정의함에 있어서 공직선거의 후보자 추천을 중요한 개념 요소로 삼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공직 후보자를 선출하는 규정은 오직 당의 당헌․당규에만 의존하고 있다. 

 

공직선거법에서는 정당의 공천에 관한 구체적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전권을 갖고 있는 당 대표 또는 비대위원장이 소수자로 구성된 공천심사위원회 구성을 통해 공천 과정을 실질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 정당의 당내 민주주의의 요청과 정당의 헌법상 지위나 기능 및 정당 공천의 공직선거에서 중요한 요소로서의 역할을 고려하면, 정당의 공직후보자 추천은 공직선거법, 정당법 등의 규율을 받아야 한다. 

 

미국의 경우, 1903년 위스콘신 주에서 프라이머리 형태의 예비선거제도를 도입하면서 모든 선거에 관한 규정은 주법으로 정했다. 독일의 경우도 연방의회의원 선거 지역구 후보자 공천에 관해서는 독일 연방선거법 제21조29에 규정하고 있다. 정당 공천의 공정성과 절차적 민주성을 강화하고, 정당 공천에 관한 결과의 예측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조치였다. 독일의 법률은 정당 공천에 있어서 연방선거법에서 정당 공천에 관한 당원총회나 대의원회의의 개최기간 및 장소 및 참석인원, 투표결과 등에 관한 상세한 규정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 공천에선 이런 규정이 없다. 

 

셋째, 여론조사 경선에 의존한 공천이다. 전화 방식 경선은 무엇보다 민의 왜곡의 위험성이 있다. 공직선거법상 정당의 당헌·당규 또는 경선후보자간의 서면합의에 따라 당내경선을 여론조사로 대체할 수 있다. 현재 거대 정당은 당원과 국민들이 참여하는 전화 방식 경선을 통해 후보를 결정한다. 국민의힘은 서울 강남 3구를 제외한 수도권에서 당원 20%·일반국민 80% 경선을 실시하는 기준을 발표했다. 민주당은 ‘권리당원 50%, 일반 국민 50%’로 경선을 하도로 규정했다. 

 

그런데 경선 여론조사에서 전화면접 방식보다 응답률이 낮은 음성자동응답(ARS) 방식에 의존함에 따라 당내 시비가 끊이지 않고 공천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많았다. 지역구 경선처럼 모집단이 상대적으로 작고 95% 이상이 응답하지 않는 ARS 조사에서 특정 후보자에 의해 적극적 응답자가 동원된다면 조사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또한, ‘개딸’ 등과 같은 강성 지지층은 적극적으로 조사에 응하기 때문에 해당 집단의 극단적 정치 성향이 조사 결과에 과대하게 반영될 수 있다. 민주당 경선에서 핵심 친명(친이재명)계 27명이 전원 생존했고, 현역의원 평가 '하위 10%·20% 통보'를 받은 비명(비이재명)계 핵심 의원들(10명) 전원이 경선에서 친명계 원외 인사에게 패배한 것도 이런 조사 방식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여론조사 경선의 또 다른 문제점은 유권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지역구 발전을 위해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 보다 오직 승리할 수 있는 후보만 찾는 승리 지상주의에 빠지기 쉽다. 결국 정책 경쟁은 사라지고 인기투표 방식으로 후보가 선정된다. 

 

넷째, 졸속․벼락 공천이다. 정당의 공천은 일반 국민과 정당의 민주적인 내부조직을 바탕으로 모든 당원의 참여 하에 당원의 의사가 최대한으로 반영될 수 있는 방법으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상향적인 절차에 의해서 이뤄줘야 한다. 그런데, 한국 정당들은 총선 약 2달 전에 공천심사위원회를 구성해 번개 불에 콩 구어 먹듯이 지극히 짧은 기간에 공천을 마무리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충분한 심사숙고를 통해 좋은 공천이 이뤄지기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여야 모두 막말과 망언, 역사 왜곡 등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발언을 한 인사들에 대해 부랴부랴 공천을 취소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 이유는 바로 졸속․벼락 공천 과정에서 부실하게 검증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다섯째, ‘우회상장 공천’이다. 자력으로는 힘든 정당과 세력들이 비례 통합 위성정당을 통해 국회에 진출하는 길이 열렸다. 민주당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은 지난 3월 3일 창당 이후 민주당, 진보당, 새진보연합, 연합정치 시민회의로부터 비례대표 후보를 추천받아 심사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반국가 세력으로 인정해 정당 해산 결정을 내린 통합진보당의 후신인 진보당 인사, 대한민국 정체성이 의심되는 인사들을 당선권에 배분함으로써 국회 진입의 길을 터주었다. 더불어민주연합은 17일 ‘종북·반미 논란’이 불거졌던 진보당 추천 후보 3인(정혜경·전종덕·손솔)에게 각각 5번과 11번, 15번을 부여해 모두 당선권에 배치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 내에서 “정당 지지율 1%에 그치는 진보당을 위해 민주당이 과도하게 원내 입성용 레드카펫을 깔아주고 있다”는 비판마저 나왔다. 

만약 이들이 국회 입성에 성공하면 제22대 국회는 격렬한 이념 논쟁의 장으로 변질될 수 있다. 조직학 이론에서는 구성원에 대한 ‘잘못된 선택’(adverse selection)과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결국 조직을 망친다고 지목한다. 잘못된 충원은 무책임과 무능력으로 연결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후진적인 공천 시스템에 의해 선출된 후보들이 당선 후에 자신의 소신과 양심에 따라 의정 활동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국민이나 자신의 지역구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당 지도부의 눈치를 보며 충성맹세를 하면서 국회 파행과 극단적인 대결 정치에 앞장서기 때문이다. 이것이 국회에 대한 국민 불신과 혐오를 부추기는 핵심 요인이 되었다. 지난해 한국갤럽 조사(10월 22-24일) 결과, 2020년부터 지금까지 21대 국회 역할 수행에 대해 국민 10명 중 8명이 ‘잘못했다’고 평가했고, ‘잘 했다’는 13%에 불과했다. 바로 공천 후보에 대한 잘못된 선택이 몰고 온 재앙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번 총선에서도 공천 때마다 반복되어 온 ‘공천 학살, 밀실 공천,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공천 등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한국의 민주주의와 정당정치를 훼손시키는 이런 불량 공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현명한 깨어있는 유권자들의 올바른 선택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국민들이 총선에서 결코 어리석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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