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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1세기 호곡장론(好哭場論), 좋은 울음터와 감정 대리인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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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01월03일 20시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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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놓아 울어보기 좋은 곳, 호곡장(好哭場)

연암 박지원이 사절단의 일원으로 청나라의 수도 연경으로 향할 때의 일이다. 박지원이 광활한 요동 벌판을 마주하고 처음 내지른 탄성은 바로 좋은 울음터다. 가히 한바탕 울어볼 만하구나.”(好哭場 可以哭矣)였다. 옆에 있던 정 진사가 이 좋은 장관 앞에서 웬 울음 타령이냐라며 반문하자 박지원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사람들은 칠정(七情, 희노애락애오욕) 중에서 '슬픔()'만이 울음을 내는 줄 알지, 칠정 모두가 울 수 있는 줄은 모르오. 울음은 지극한 감정이 터져 나오는 것으로, 천지(天地)에서의 우레에 비할 수 있는 것이오. 참된 울음은 갓 태어난 아이가 어미 배 속에 있다가 탁 트인 넓은 곳으로 빠져나오며 거짓 없이 감정이 다 하도록 참된 소리를 질러 보는 것과 같소. 나도 이곳에서 꾸밈없는 울음을 울어보고 싶구려.” - 열하일기(熱河日記), 도강록(渡江錄)-

 

고등학교 시절, 문학 교과서에 실린 호곡장론을 처음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그 내용이 너무 인상 깊어 몇 번이고 다시 읽어 6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나 또한 눈물이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슬퍼서 눈물을 흘리는 경우보다 그 외의 이유로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책의 한 구절에 감동을 받았을 때, 뿌듯한 마음을 느꼈을 때, 한 과업을 끝내고 아쉽고 후련한 감정을 느꼈을 때 등등 어떠한 감정을 온전히 느낄 때 오히려 눈물이 난다.

필요한 때에 적절히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능력은, 건강한 마음가짐으로 다음 할 일에 집중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난 뒤, 예전처럼 울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 입학 후 기숙사나 원룸에서 생활하며, 우연히 옆방에서 들려오는 작은 울음소리를 들을 때가 있었다. 크게 울 수가 없어 베개에 얼굴을 묻고 숨죽여 우는 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이 울 만한 곳이 점점 사라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울 여유조차 없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일 듯하다. 나날이 좁아지는 취업 시장과 치열한 입시 경쟁, 사회생활을 경험하며 맺는 어려운 인간관계와 압박들은 나를 비롯한 또래 청년들을 그야말로 펑펑 울고 싶게 만들 정도로 가혹하다. 하지만 그런 감정들을 하나하나 느끼고 되짚는 것 또한 사치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거센 경쟁의 장으로 자신을 밀어붙일 때가 많다. 힘든 한 해를 보냈지만 올해 들어 한 번도 속 시원하게 울어본 적이 없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나 또한 내 감정에 솔직하게 굴어본 때가 아득하다고 느꼈다.

 

사라지는 호곡장과 감정 대리인

울만 한 곳이 사라진다는 것은 현대인이 감정을 적절하게 해소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것과도 의미가 통할 것이다.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의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19에서는 감정 대리인이 올해의 키워드로 언급됐다. ‘법정대리인과 유사한 어감을 가진 감정 대리인은 자신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모든 대상을 뜻한다. 이러한 대상이 많아지는 것을 감정의 외주화 현상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감정대리인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 유형인 감정대행인은 말 그대로 감정을 대신 느껴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대상을 뜻한다. SNS에서 유행하는 대신 화내주는 페이지’, 자신은 구매하기 힘든 명품들을 쓸어 담듯 사와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유튜브 명품 하울 영상’, 시청자의 유사 연애 감정을 이끌어 내는 패널형 연애 프로그램등이 그 예시다. 두 번째는 감정대변인으로, 가장 상업성이 높은 유형이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세련된 형태로 대신 표현해주는 대상을 뜻한다. 가까운 예시로 카카오톡의 이모티콘이 있다. 누구나 조금 어색한 사이의 상대방과 대화할 때 이모티콘으로 대답을 대신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감정 표현을 구현하느냐가 이모티콘 인기 순위를 가르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카페나 펍에서 찾아볼 수 있는 네온사인 글귀도 유사한 사례다. ‘행복한 일은 얼마든지 있어와 같은 감성 문구 아래에서 찍은 사진 한 장으로 본인이 느끼고자 하는 기분을 대신 표현하는 것이다. 마지막 유형은 감정관리인이다. AI 스피커를 활용해 감정 큐레이션을 제공하거나, 본인의 감정을 관리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소위 힐링을 주는 심리 상담 서비스가 성행하는 현상과 관련이 깊다.

 

탈감정사회가 온다

현대인의 복잡한 감정을 다양한 방식으로 대리 해소해준다는 장점으로 인해 감정대리인이 우리 사회의 한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마냥 긍정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어떤 대상을 통해 감정을 대리하여 표시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그 대상 뒤에 나의 진짜 마음을 숨긴 채 감정의 본질을 억제한다는 의미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퇴직서 작성이나 이별 통보와 같이 온갖 종류의 껄끄러운 감정 표현을 대신해 주는 서비스들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감정의 외주화가 결국에는 탈감정사회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스테판 G. 메스트로비치는 <탈감정사회>라는 저서에서 탈감정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저자에 의하면, 현대 사회의 대중은 문화산업에 의해 만들어진 광대한 범위의 유사 감정을 느끼지만, 사실 그것은 기계적으로 대량 생산된 자본의 산물을 소비하는 것에 불과하다. ‘여론의 반응에 합류하여 적절한 상황에서 분노하고, 슬퍼하고, 웃음을 보이는, 서로에게 있어 광대와 같은 일상이 지속되어야 사회적 관계의 원활한 유지가 가능한 사회에서 감정의 알맹이는 ()’, 떨어져 나가버리고 그 피상적인 껍질만이 상호 교환되는 것이다. 지인의 SNS 게시물에 하트를 눌러 호의를 표시하고, ‘좋아요!’라고 엄지를 내미는 이모티콘 하나로 대답을 대신하며, 힘든 일이 있으면 카카오톡 배경 사진 내리기를 누르는 일상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자발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설명하는 일과 멀어지고 있다. 어설픈 감정들이 사회적으로 생산되고, 떠돌고, 소비되는 셈이다.

 

21세기 호곡장론, ()의 외연이 넓어지기를

연암 박지원은 넓은 요동 벌판을 보고 호곡장이라 칭했다. 비단 넓은 땅덩이만을 호곡장이라 칭해야 한다는 법은 없을 것이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오직 나만이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그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터 또한 나만이 어딘가에 세워둘 수 있는 것이다. 그 터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본질적이고 자발적인 감정들이 생기를 돋워냈으면 좋겠다. 글을 쓰고 말을 하고 무언가 소리를 내서, 한바탕 울어보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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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01월03일 20시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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