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상국 교수의 생활과 경제 이야기 <46> 아이들의 얼굴 변화가 무엇을 의미할까?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3년03월26일 09시31분
  • 최종수정 2023년03월26일 10시03분

작성자

메타정보

  • 15

본문

언제인가 가까운 친구 가족들과 단기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나이 들어 간 여행이기 때문에 밤 문화라는 것은 없었고, 거실에 모여 차를 마시며 환담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다 한 친구 부인이 자기 남편이 너무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아무런 취미도 없고, 집에 오면 그저 밥 먹고 텔레비전 보는 것이 집에 와서 하는 일의 전부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분위기가 남편‘들’에 대한 성토 아닌 성토의 시간이 돼버렸다. 그러다 나에게도 질문이 떨어졌다. “김 교수님은 취미가 뭐예요?” “어, 글쎄요.”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내 취미가 뭐지?’ 고등학교 때 생활기록부 취미란에 한참 고민하다가 ‘등산’이라고 썼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친구들도 취미란에 ‘등산’ 또는 ‘독서’가 대부분이었다. 어찌 보면 우리 세대는 그만큼 개성 없이 자란 세대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여행이 끝난 후에도 한참 동안 나는 나의 취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의 취미가 뭘까?’ 별로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다. 나는 운동도 좋아하지 않는다. 축구, 농구, 탁구, 골프 모두 다 아니다. 보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축구는 우리나라 팀이 일본과 싸울 때만 꼭 본다. 그것이 전부다. 다만 야구 경기만은 열심히 보는 편이다. 야구 경기 규칙을 조금 아는 편이어서 벌집 6각형을 그려가며 투구 종류 등을 분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옛날 일이다. 지금은 운동경기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바둑도 아니고, 등산도 아니며, 걷는 것도 아니다.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운다. 그 흔한 당구도 치지 않는다. 내가 봐도 정말 한심한 사람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나는 상당히 바쁘고, 하는 일이 많으며, 쉬는 일은 있어도 무료한 법은 없다. 나처럼 무취미한 사람이 심심하지 않다니 이건 참 신기한 일이다. 내가 봐도 신기하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나의 취미는 무엇일까?’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나도 제법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식물을 좋아한다. 특히 꽃을 좋아한다. 우리에게는 장미이지만 장미의 종류는 너무너무 많다. 향기가 유난히 강한 장미, 유난히 기품이 있는 장미, 꽃 색이 유려한 장미 등 수없이 많은 장미가 있다. 

 

나는 과학에도 관심이 많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왜 그럴까?’를 고민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왜 단풍이 들까?, 왜 단풍은 여러 색일까? 같은 종류 나무인데도 왜 바로 옆 나무와 단풍색이 다를까?’ 등등. 이렇게 생각하니 나는 취미가 많은 사람이었다. 다만 취미가 다른 사람들과 유사하지 않을 뿐이었다. 

 

이제 누가 나에게 나의 취미를 묻는다면 나는 당당히 『호기심』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밖의 취미가 하나 더 있다면 그것은 ‘그냥 아무거나 주의 깊게 쳐다보는 것’ 곧 『관찰』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람들은 자기와 관계있는 것에는 큰 관심이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리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나도 나와 관계있는 것에 더 큰 관심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나와 관계가 있고 없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그것의 『일상적이지 않은 정도』가 나에게는 중요한 점인 것 같다. 어느 땐가 친구가 나에게 “자네는 ‘특이하다.’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것 같아.”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잘 몰랐지만, 이제는 ‘아, 그래서 그 친구가 그런 말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호기심』『관찰』 이 두 가지가 나의 취미라는 결론이다. 그런데 나의 오래된 관찰 버릇은 나에게 많은 것을 얻게 해준 것 같다. 

 

언젠가 매우 유명한 지혜로운 분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우리나라가 앞으로 매우 잘 될 것으로 봅니다.” “왜요?” “요즘 어린아이들 얼굴을 보세요. 얼마나 잘 생겼어요? 옛말에 나라가 잘되려면 태어나는 아이들이 얼굴이 깨끗하고 잘 생겨진다고 했어요. 요즘 어린아이들의 얼굴이 얼마나 예쁘게 생겼습니까?”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아이들의 얼굴이 귀엽고 예뻤다. 초등학교까지는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웬일인지 모르지만, 내가 관찰한 바로는 그 예쁘고 깨끗한 아이들의 얼굴이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면서 점점 변하는 것 같다. 

 

취미란에 ‘등산과 독서’라고 쓰던 세대는 어린아이나 나이 든 어른이나 큰 차이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이 든 태는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요즘 일부 어린아이들의 얼굴에는 순진하다기보다는 이기적인 얼굴, 금방이라도 공격적으로 변할 것 같은 얼굴, 때로는 얄팍한 얼굴까지도 보인다. 도저히 어린아이 얼굴이 아니라 어른 얼굴 같은 얼굴도 있다. 청년이 되면 벌써 얼굴형이 『정해져』 버린 얼굴들이 상당수 보인다. 특히 텔레비전에 나오는 탤런트의 얼굴에는 그런 모습이 자주 보인다.

 

너무 이른 때에 변하는 아이들의 얼굴 모습이 무엇 때문인지 궁금하다. 아마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다. 지나치게 강조되는 경제(돈)의 중요성, 독서와 점점 멀어지는 교육 환경, 내편 네편으로 너무 확연하게 갈라지는 사회 행태, 기다리기보다는 지금 당장 결과를 보려는 자세, 더 큰 먼 이익보다는 눈앞의 작은 이익에 매달리는 자세 등.

 

그러나 이 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력은 매스컴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 분야 이외의 분야는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당연히 자기가 모르는 분야는 주위 전문가들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읽기보다는 보는 것에 익숙한 현세대는 시각적 매체에 더 큰 영향을 당연히 받는다. 나 또한 TV를 많이 보는 사람이다. 내가 TV를 통해 얻는 정보량은 다른 어떤 매체보다 훨씬 더 많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시각 매체를 통해 얻는 정보의 질에는 너무 많은 차이가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 TV 방송에 대해 몇 가지를 제언하고 싶다.

 

첫째는 대담자의 질에 대한 의견이다.

 

상당수 프로그램에서 대담자들의 대부분이 인기 있는 탤런트들인 경우가 많다. 물론 탤런트가 문제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문지식을 전달하는 프로에서조차 엉뚱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것은 문제점이 아닐 수 없다. 차라리 그 프로에 맞는 아나운서나 진지한 시민들을 질문자로 내세우는 것이 훨씬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둘째는 전문가의 선택에도 좀 더 신중함을 구했으면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전문가가 아닌 전문가가 나오는 경우가 있고, 다음은 전문가를 선택할 때 여러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함께 초청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인기가 많은 건강과 경제 관련 프로는 전문가마다 상당히 다른 의견이 존재한다. 그러나 어느 한쪽 주장만을 전문가로 초청하면 사실은 굉장히 왜곡되고, 이런 왜곡이 몇 번 방송되면 그다음부터는 그 왜곡이 정설이 되어 그와 다른 의견을 가진 전문가는 오히려 이상한 존재가 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특히 소금 섭취량 문제, 혈압 문제, 탄 음식과 건강 관련, 기후 변화 등 우리 생활에 너무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안들에서 우리와 외국 전문가들과의 의견에는 너무 큰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셋째는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그 한계치를 어느 정도 『정량화』해서 전달하기를 바란다.

 

이 지적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는 항상 좋고, 항상 나쁜 것은 없다. 콜레스테롤도 어느 수치 이상이면 문제이고 어느 수치 이하여도 문제가 된다. 탄 음식도 마찬가지다. 서양에 가면 탄 스테이크를 버젓이 내 놓는다. 우리나라 일부 건강 전도사처럼 삶은 고기만을 먹고 탄 고기를 먹지 말라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인지 모르겠다. 탄 음식이 건강에 나쁠 수가 있지만 그것 때문에 건강이 나빠지기 위해서는 하루에 수백 개의 탄 스테이크를 먹어야 한다는 기사도 읽은 적이 있다. 

 

어느 정도일 때 건강에 나쁜가를 반드시 전문가에게 말하라고 요구하기 바란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할 수 없는 전문가는 내가 생각하기에 단연코 진정한 전문가가 아닌 무늬만 전문가일 수 있으니 초청하지 않기를 바란다. 

 

정말 한심하게 나트륨(Na)과 소금(NaCl)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건강 전문가로 나오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방송국 내에서 프로그램을 평가할 때 시청률 평가와 함께 전문가 그룹으로 구성된 제공된 『지식의 정확도』를 점검하는 방법도 권해 보고 싶다.

 

넷째는 우리나라 프로에는 너무 화내는 장면이 많다는 사실이다. 

 

나는 연속극, 수사극, 역사극 등을 가끔 보는 편이다. 그런데 끝까지 보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극 본래의 주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화내고, 상대방을 무시하고, 속이고, 나무라는 대사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과감히 한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수사극이나 역사극이나 우리나라 극과 서양의 극에서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화내고 격한 말이 나오는 횟수를 비교해 보았으면 한다. 아마 ‘10대 1’도 넘을 것이다. 

 

그들의 프로는 스토리가 중요하다. 얽혀진 사건의 배후를 찾아내는데 시간 대부분이 할애되고 그 실타래가 풀리면서 사건이 해결된다. 주인공이 화낼 시간이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프로의 상당 시간은 질투와 시기, 일방적으로 한 편이 화내고 다른 한쪽은 슬퍼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잠깐만 보아도 어떻게 이 극이 종료될 것인지 너무 쉽게 짐작이 된다. 재미가 없다. 그러니 작가들은 시청자들을 『감정적』으로 자극하기 위해 사건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시기와 질투 그리고 화내고 슬퍼하는 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재미있는 제안의 하나로 우리 프로와 외국프로 간의 시기, 질투, 화내고 슬퍼하는 시간을 비교해 보기를 권해 보고 싶다.

프로의 시청률을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지만 그 프로를 만드는 PD의 식견과 지식의 정도를 의심하게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다섯째는 사실(事實, 史實)에 대한 왜곡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그칠 것을 권하고 싶다.

 

과거에 프로그램을 평가할 때는 반드시 사실과의 연관성과 정확성이 중요한 평가 대상이었다.  상업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으므로 어느 정도의 왜곡과 첨가는 방송프로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줄거리는 진행하는 『과정』에도 사실과 크게 어긋나서는 안 된다. 물론 동일한 역사적 사실일지라도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근간이 변해서는 안 된다. 

 

더 긴 이야기는 필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나친 왜곡과 흥미 위주의 작은 사실(事實, 史實)이 오히려 주제가 되는 역사극은 자제하였으면 정말 좋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여러번 강조하였지만 우리 사회에서 TV의 역할은 아무리 경시해도 너무 중요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TV를 포함한 영상 매체가 그만큼 중요하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사회적 책임도 크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 TV 프로를 보는 부모와 그들에게서 보고 배우는 자식들 즉 어린아이들, 우리의 미래가 알게 모르게 영향을 너무 깊게 받는다는 사실이다. 

 

너무 일찍 변해버린 아이들의 얼굴을 관찰할 때마다 정말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어린아이 얼굴들은 청명(淸明)함을 간직하고 있다.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다. 그 청명한 모습이 오랫동안 미래에도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우리나라 미래의 모습이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ifsPOST>

 

 

15
  • 기사입력 2023년03월26일 09시31분
  • 최종수정 2023년03월26일 10시03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