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상국 교수의 생활과 경제 이야기<50> '천석이 고황에 든' 친구들과의 2박 3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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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4월24일 20시00분
  • 최종수정 2023년04월24일 19시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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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고문(古文)이라는 수업이 있었다. ‘춘향전, 심청전’ 같은 소설이나, 옛시조들을 당시의 글과 문체로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별로 인기 있는 수업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인기가 없지도 않은 그렇고 그런 수업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수업을 꽤 좋아했던 것 같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나에게 그 옛 작품들에서 풍겨 나오는 멋스러운 단어와 4·3조, 4·4조의 운율이 특히 내 마음을 끌었던 것 같다.

 

유명한 유산가(遊山歌) 한 구절을 소개하겠다. 높이 떨어지는 푹포수와 폭포 밑에 흐르는 개울을 이처럼 재미있게 묘사할 수 있을까? 

 

화란춘성(花欄春城)하고 만화방창(萬化方暢)이라.

때 좋다 벗님네야, 산천경개(山川景槪) 구경 가세.

죽장망혜(竹杖芒鞋) 단표자(單瓢子)로 천리 강산을 들어를 가니,

만산 홍록(滿山紅綠)들은 일년일도(一年一度) 다시 피어

춘색(春色)을 자랑노라.

 

(중략)

 

원산(遠山)은 첩첩(疊疊), 태산(泰山)은 주춤하여,

기암(奇岩)은 층층(層層), 장송(長松)은 낙락(落落)이 구부러져,

광풍(狂風)에 흥에 겨워 우줄우줄 춤을 춘다.

층암 절벽상(層岩絶壁上)

폭포수(瀑布水)는 콸콸,

수정렴(水晶簾) 드리운 듯,

 

이 골 물이 주루루룩, 저 골 물이 솰솰,

열에 열 골 물이 한데 합수(合水)하야

천방져 지방져 소쿠라지고 펑퍼져,

넌출지고 방울져, 저 건너 병풍석(屛風石)으로

으르렁 콸콸 흐르는 물결이 은옥(銀玉)같이 흩어지니,

...

곧바로 짐작할 수 있듯이 높은 산에서 떨어진 폭포수가 폭포 밑 바위에 부딪혀 하얀 포말을 이루며 솟구쳤다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다시 합수라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다. ‘그 누가 이렇게 폭포수 떨어지는 모습을 이처럼 생동감 넘치게 묘사할 수 있을까?’ 의심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여러 고전에서 계속해서 반복되어 나오는 또 하나의 다른 문구가 있었다. 바로 “천석이 고황에 들어….”라는 표현이다. 시귀(詩句)에도 자주 나오고, 무엄하게 임금님께 올리는 상소문에도 나온다. 이황(李滉) 선생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의 첫 번째 시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료.

   초야우생(草野愚生)이 이렇다 어떠하료.

   하물며 천석고황(泉石膏肓)을 고쳐 무엇하리요.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랴?

   시골에 묻혀 사는 어리석은 사람이 이렇게 산다고 해서 어떠하랴?

   더구나 자연을 버리고 살 수 없는 이 내 마음을 고쳐서 무엇하랴?)

 

뜻은 바로 이렇다. 천석(泉石)은 말 그대로 우물과 돌이다. 즉 산수자연(山水自然)을 뜻한다. 고황(膏肓)의 고는 심장의 아랫부분을 뜻하고 황은 횡경막의 윗부분을 뜻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부분에 병이 생기면 고치기가 매우 힘든 고질병이 된다고 한다. 요즘 말로 고치면 심한 ‘난치병’이다. 그러니까 “천석이 고황에 들어..."의 표현은 "세속에 물들지 않고 자연에 살고 싶은 마음이 이제 더 이상 고칠 수 없는 고질(痼疾)병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임금님께서도, 관직을 주겠다고 나를 다시 부르지 말기를 바랍니다.”의 뜻이 된다. 

 

친구 간의 편지나 시조에 이런 말이 들어가면 “나는 이제 세상 모든 명리를 떠나 시골에서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다네.”의 뜻이 된다. 그리고 천석고황의 다음 구절은 대부분 “술이 익었으니 놀러 오시게나. 또는 찻자리 하기에 딱 좋은 시기가 되었으니 놀러 오시게나.”로 끝이 난다. “어이 친구들 세상사 다 잊어버리고, 우리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술이나 차를 마시는 자리를 내가 마련했으니 다들 오셔서 자리를 빛내 주시게.”의 뜻이 된다.

 

며칠 전 이런 친구들과 물산이 풍부하여 과거부터 옥토(沃土)라고 불렸던 진도(珍島) 여행을 다녀왔다. 당연히 매우 즐거웠다. 그런데 이 친구들은 정말 나쁜 친구들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진도여행’이 아니라, ‘진도 걷기 여행’이었다. 그것도 무식하기 짝이 없다. 하루에 20~30km 걷는 것은 매우 정상적인 걷기이고, 저녁을 먹고 난 한밤중에도 4km 떨어진 숙소까지 시골길을 걸어가자는 데는 참으로 할 말이 없었다. 겨우겨우 설득하여 “시골길은 가로등이 없어서 위험하다. 또 야행성 들짐승도 있다. 그리고 여성회원들도 있는데 사고가 나면 어떠하겠느냐?” 온갖 협박과 감언이설로 겨우 설득하여 차를 이용하기로 결정하였다. 아! 그때 내가 얼마나 힘들었던고...

 

그런데 이제사 생각하니 나의 설득에 의해 걷는 것을 포기한 것이 아닌듯하다. 

아마 자기들도 저녁을 먹어서 약간 기분 좋은 피곤함에 취해있는데 걷는 것이 조금 싫은 순간에 내가 차를 타고 가자고 설득하니 ‘울고 싶은데 때려준다.’는 말이 있듯이, 마치 큰 인심이나 쓰듯이 타고 가기로 결정한듯하다. 

아마 이것이 더 사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에잇, 숭악하고, 나쁜 친구들 같으니라고!

 

사실 이 클럽은 대부분 나이가 많은 사람들로 구성되어있어 서로를 대하기가 너무 편한 사람들이다. 자기들 실수와 단점을 스스로 말하면서 ‘킥킥’ 대거나 아니면 상대방이 실수를 지적하면 “그것이 아니라...”로 시작하는 뻔한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또 한 번 자지러지게 웃음바다가 된다. 그리고 각자각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 특기대로 음식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진도 안내도 하니 더 할 수 없이 편안하다. 나의 역할은 설거지를 하는 것인데, 진도홍주에 취해 그만 내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불만없는 것이 우리 모임의 특징이다. 다만 구태여 지적하자면 술 못 먹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나에게 홍주를 강권한 자칭 ‘양자역학 박사’가 전적으로 책임을 질 일이라고 생각한다.

 

진도는 옥토이기도 하지만 정말 보물섬이다. 볼거리가 너무나 많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역시 ‘운림산방(雲林山房)’이었다. 소치 허련의 만년지거(晩年之居)이기도 하고, 동서양에서도 매우 드문 5대째 화업(허련, 미산, 의재, 남농, 임전 등)을 이어가는 허씨가문의 산실이기 때문이다. 국가지정명승 제80호로 지정까지 되었으니 이제는 허씨 가문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이 되었다. 

 

첨찰산을 뒷배경으로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 숲(雲林)을 이룬다고 하여 운림산방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소치선생이 앉아 그림을 그린 마루 앞에서 운림지를 내려다본다. 천방지원(天方地圓)의 원칙에 따라 네모진(方) 호수(天) 한가운데에 땅을 뜻하는 작은 둥근 섬(地圓)을 만들었다. ‘하늘은 네모지고 땅은 둥글다.’는 원칙은 대부분의 우리나라 옛 선비들이 호수를 만들 때 따르던 관습이다. 경회루도 그렇고 창경궁도 그러하며 강릉의 선교장도 그렇다. 

 

그리고 둥근 섬에 심는 나무는 소나무 아니면 석류, 그것도 아니면 배롱나무(목백일홍)를 많이 심는다. 운림산방에는 배롱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다만 시기가 일러서인지 배롱꽃은 아직 피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드넓은 파란 잔디 정원과 듬성듬성 놓여있는 수석(壽石, 水石)은 보기에 너무 좋았다. 명석은 아니지만, 오히려 적당한 크기와 형상 그리고 수수한 맛이 운림산방에는 오히려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그런데 돌의 색이 전부 푸르스름한 바다에서 태어난 돌인 것으로 보아, 외국에서 수입한 돌이 아니라 진도태생 돌인 것 같아 안도의 숨을 쉬었다.

 

나는 가끔 ‘지방자치제도’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가질 때도 있다. 하지만, ‘지방자치제도’는 실(失)도 있지만 득(得)이 더 많은 제도라는 생각한다. 그러나 산불이 자주 나는 어느 지방만은 예외라고 말하고 싶다. 더욱이 산불이 난 후 자연을 빨리 회복시킨다며 기존 나무를 뿌리까지 뽑아 버리고 새나무를 심는 것을 보면 화나는 것을 지나 그 무지함에 소름이 끼친다. 산불이 나면 대부분은 나무의 거죽(표피)은 타지만 속심과 뿌리는 그대로 살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타서 죽은 나무들도 비 올 때 흙이 내려가는 것을 잡아주고, 그 자체가 비료가 되어 다른 나무들을 살리게 한다.

 

그래서 산불 난 지역을 되살리는 대원칙은 『손대지 않고 그대로 놔두는 것』이다. 보통 3년 후면 생태계가 복원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지방에서 며칠 전에 또 산불이 났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또다시 나무들을 베어내고 다시 심기를 한다는 그 지방의 결정이다. 낙산사의 화재로 그 많은 문화재를 태워 먹고, 고성지방에서 산불이 난 후 뿌리는 살아있는 나무까지 뽑아 버리고 새 나무를 심어 십여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백골 같은 흰색 땅이 지금도 드러나 있다. 그런데도 또 산불이 났다. 그리고 다시 살아있는 나무와 죽은 나무를 잘라내고 새 나무를 심는다고 한다. 

 

그 지방자치단체가 스스로 맨발로 나서서 ‘자기 지역 황폐화 작업’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위대한 점은 자기의 실수를 깨닫고 그것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 지방자치단체는 그 짓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것이다. 아주 나쁘게 말하면 ‘산불이 났다는 것을 핑계로 예산을 받아내어 불필요한 사업을 벌이고, 사복을 채우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이처럼 심한 표현을 쓰는 것은 내가 그 지역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왠지 짝사랑의 서글픔 같은 느낌이 든다. 언젠가 그 지역 공무원들을 교육하는 기회가 있었다. 나는 그때 “여러분이 쉽게 생각하는 소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자동차 한 대 보다 더 큰 자산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 개발을 위한다고 나무를 자를 때 여러분 손가락을 자르는 듯이 계획하십시오.”라는 말을 여러 이유를 들어가며 강조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흔한 나무가 왜 그리 중요하느냐?”라는 질문도 없었고, 심하게 말하면 내가 강의한 수많은 지방자치단체 중에서 가장 집중도가 떨어졌던 단체였다. 

 

더욱 한심한 것은 그 지방 단체장이 ‘중국의 매판적 자금을 들여와서 도내에 카지노와 테마파크 놀이장’을 만들겠다는 발표였다. 너무 많은 반대로 결국 취소되었지만 이런 정도까지 앞 못보는 사람이 어떻게 도지사가 되었는지 지금도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자연은 귀중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미래 우리의 후손으로부터 빌려 온 것이다. 이 아름다운 자연을 가능한 훼손하지 않고, 후손들에게 넘겨주는 것은 우리의 권한이고, 우리의 자랑스런 의무다.』 

 

제발 그 지방자치단체는 산불예방에 더욱 힘쓰고, 불난 지역을 다시 녹화한다는 미명 아래 기존 나무들을 뿌리째 뽑아 버리는 상식 밖의 우둔한 행동을 자제하기 바란다. 그 지역의 아름다운 산수는 우리 국민 모두의 자산이다. 그 지역만의 자산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후손들의 자산이다.

 

운림산방을 구경하고는 다시 세월호 추모관과 모세의 바닷길 그리고 용장산성(龍藏山城)과 벽파진(碧波津) 그리고 트롯 가수 송가인 마을을 방문하였다. 

 

세월호 추모관의 가슴이 뻥 뚫려 있는 노란 조각상은 젊은 자식들을 잃은 부모들의 마음을 정말 잘 표현한 작품이었다. 내부에는 그때 희생된 젊은이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 다시는 이런 허무한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안전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대를 잔뜩 가지고 간 모세의 기적은 보지를 못했다. 시간 때가 안 맞아서인지 그만 바다가 열리다가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진도 바다가 어디로 도망가는 것은 아니니 다음 기회로 미루면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바닷길을 빨리 열어 달라는 신나는 농악 행렬과 그 사이를 못 참고 아직 열리지도 않은 바다를 장화를 신고 뛰어 들어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조바심이다. 그런데 어떻겠는가? 그것도 우리인 것을... 나도 장화를 살까 하고 잠시 머뭇거렸지만 참기로 하였다. 다행이다. 5천원을 아꼈기 때문이다. 

 

다음 방문처는 용장산성(龍藏山城)과 벽파진(碧波津)이었다. 

사람들이 자주 찾는 지역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운림산방과 함께 가장 감격스러운 방문지였다. 

 

용장산성은 강화도가 함락된 후 배중손을 중심으로 한 항몽 세력들이 제주도로 가기 전 3년 동안 머물렀던 산성이다. 왕온을 새로운 왕으로 새우고 항몽활동을 벌렸다. 성벽의 길이가 40여리를 넘고, 성 내 건물 배치 등이 개성 궁터인 만월대를 모방하였다고 한다. 몽골군대의 압력이 너무 강하여 삼년밖에 버티지 못했지만, 성곽의 규모와 가람배치로 볼 때 장기전을 준비한 성터라는 것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강화도를 점령한 몽골군에게 무릎을 꿇고 하수인이 되면 더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겠지만, 끝까지 고려의 국맥을 이어가고자 하는 그들의 의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준 용장산성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애잔한 느낌을 더 해주는 것은 계단 옆 한 자락에 쌓아놓은 기왓장들이었다. 스러져 가는 옛날의 영화를 보여주는 그 기왓장에도 장식무늬가 새겨져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분명히 급하게 만든 궁궐을 위해 더 급히 만든 기왓장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와일지라도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게 만들고 싶은 고려장인들은 거기에도 장식을 집어넣은 것이다. 비색청자의 여의두문 비슷한 문양을 보며 고려장인에 대해 슬프면서도 애틋한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용장산성 아래에는 ‘고려항쟁충혼탑’이 세워져 있어 외세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항전한 삼별초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굴욕적인 평화와 편안함을 구하지 않고, 민족의 자주정신과 꿋꿋한 기상을 느끼고, 만질 수 있게 해주는 용장산성이었다. 

 

다음 방문지는 벽파진(碧波津)이다. 

오 벽파진!! 

물이 깊고 파란 파도가 넘실대는 곳, 이순신 장군의 충혼이 서려 있는 곳!

 

우리말에는 푸르름을 뜻하는 말이 참으로 많다. 청(靑, 淸, 晴, 菁, 碃, 凊 등) 그리고 비(翡)와 벽(碧)도 있다. 한자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아 이 한자들의 뜻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 조상들은 푸르름을 너무 잘 이해하고 각각의 경우에 맞는 한자를 찾아 쓰셨다는 사실이다.

 

벽파진의 벽을 한자로 쓰면 '碧'이다. 이때의 '碧'은 푸른색이 짙을 때 사용한다. 즉 ‘짙푸른 파도가 있고, 군인들이 주둔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왜 여기서 벽일까? 아마 두가지 뜻이 있을 것이다. 첫째는 수심이 깊다는 뜻이다. 흘수선이 깊은 함선이 들어오기 위해서는 바다가 깊어야 한다. 진해와 제주도 강정 등이 그래서 해군기지로 선정된 것이다. 햇빛은 일곱가지 무지개색이 있다. 하지만 물이 깊어지면 다른 색들은 쉽게 물에 흡수되고 푸른빛만 남게 된다. 그래서 깊은 물은 푸른색을 띠게 된다. 물이 바위에 부딪혀 멍든 것이 아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청파진이라고 하지 않고, 벽파진이라고 한 것이다. 아마 내 생각에 진도가 서남해안에 있지 않았다면 청파진이라고 이름 지어졌을 것이다. 벽파진은 어떤 이유에서 지어졌을까 상상의 날개를 펴본다.

 

우리나라 해안선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해안선이 들쭉날쭉 복잡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서해와 남해는 깊고 넓은 갯벌이 잘 발달 되어 있어,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오죽 유명했으면 자연보존협약 중 하나인 람사르(Ramsar)회의가 우리나라에서 열렸고, 순천만을 미래 인류 유산으로 지정해 줄 것을 요청받을 정도였다. 그래서 지금은 ‘순천만 국가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면 왜 우리나라에 갯벌이 잘 발달 되었는가를 살펴보자. 우리나라는 지질학적으로 노년기에 해당된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높은 산과 들에 있던 많은 물질이 깎이고 깎여 바다로 운반되었고, 그것들이 퇴적되어 만들어진 것이 바로 남해안과 서해안의 갯벌이다. 즉 갯벌은 유구한 역사의 산물인 것이다. 혹자는 갯벌 1cm가 쌓이는데 약 100년이 걸린다고 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벽파진의 벽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갯벌이 많으면 당연히 진흙 성분의 부유물이 많고, 따라서 바닷물은 뿌열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동해바다의 시원한 푸른빛과 남, 서해안의 탁해 보이는 바닷물 색이 서로 다른 이유다. 그러나 벽파진의 바다색은 다른 인접 지역의 바다보다는 조금 푸른 빛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바닷물이 깨끗하여 벽(碧)이라는 이름을 얻지 않았을까 혼자서 쓸데없는 생각을 해보았다. 동해 용왕님이 들으셨으면 분명히 큰 소리고 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갯벌이 많이 섞인 바다는 풍요의 바다다. 왜냐하면 갯벌에는 수많은 영양분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넓은 갯벌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넘쳐나기 마련이다. 영양분이 많으니 고기 맛도 좋다. 동해는 물이 맑고, 온도가 차고 풍랑도 세다. 그러니 동해에 사는 물고기는 운동량도 많고, 살이 단단하다. 당연히 횟감으로 최고다. 

 

그러나 서해안은 바다도 낮고, 따뜻하며 풍랑도 세지 않다. 그러나 영양분은 풍부하다. 그러므로 남해안과 서해안의 물고기는 그쪽 사람들처럼 유유자적하다. 영양분이 많아 살은 쪄있지만, 살결이 단단하지 않다. 횟감으로는 별로다. 그러나 탕(湯)은 최고다. 이런 말을 한번 지어보았다. ‘동회서탕(東膾西湯)’이라. 동해는 회요, 서해는 탕이라. 사전을 찾아보았다. 이런 단어는 없다. 그러니 내가 처음이다. 많이 애용해 주시기 바란다. 

 

그런데 여행 맛의 절반은 무엇일까? 특히 나이 들어 하는 여행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단연코 『맛있는 음식』이다. 남도하면 음식 아닌가? 역시 이번 여행에서도 남도 음식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일학식당의 간재미회무침, 엄마손식당의 병어조림과 반말린 서대 그리고 굴포식당의 복요리는 나의 진도여행을 너무 맛있게 만들었다. 

 

우리 시골말에는 음식 맛을 평가할 때 ‘괴미(개미, 계미)가 있다, 없다.’ 라는 말을 사용한다. 괴미가 있다는 말과 맛있다는 말은 상당히 다른 말이다. 괴미는 맛있는 것과는 다르게 ‘깊은 맛이 있고, 그 음식의 고유한 맛’을 잘 살렸을 때 쓰는 말이다. 일반 대갓집(大家나 宗家)이나 오래된 식당에서 가끔 느낄 수 있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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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괴미라는 표현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분석도 해보았다. 무엇이 괴미를 만들까? 거기에는 몇가지 요인이 있는 듯하다. 첫째는 소금이다. 3년을 훨씬 초과한 소금, 그 소금으로 만든 간장과 고추장 그리고 간장을 다시 오래 발효시킨 진간장을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음식 고유의 맛을 살려내는 ‘법도(法道)’에 따라 음식을 만드는 것이다. 

 

음식이란 빨리 빨리도 만들 수도 있지만 우리 음식에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그 음식만의 조리법이 따로 있는 경우가 많다. 버스터미널에서 가까운 일학식당의 칠게장은 정말 반가웠다. 먹자마자 그것은 법도대로 만든 음식이었다. 그래서 주인아주머니를 불렀다. “이 칠게장은 무슨 간장을 사용했나요?” 아니나 다를까 그 대답은 정석적인 답변이었다. “진간장을 사용하였고, 간장을 달여 식힌 후 게에게 붓는 것을 세번하였다.”는 것이다. 맞다. 이것이 바로 법도(法道)대로 만든 게장이다. 

 

이렇게 만든 게장은 대부분의 식당에서 나오는 한번 휘딱 끓여 내놓는 게장이나, 끓이지도 않고 양념만 잔뜩하여 게에 부어놓는 간장게장과는 맛이 전혀 다르다. 아직도 진도에는 이런 방식이 살아있고, 이런 맛이 살아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진도를 방문하는 또 다른 이유다.

 

진도여행은 조금 더 폭넓게 말하면 남도의 남해안 여행은 나에게 남다른 맛이 있다. 조금 찬찬히 옛것을 살펴보고, 조금 더 찬찬히 옛 역사를 되새김질하며, 조금 더 기꺼이 아름다운 맛까지 즐길 수 있으니, 이 아니 행복한 여행이 아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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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23년04월24일 19시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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