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상국 교수의 생활과 경제 이야기 <66> 국가 경제발전에 도움이 안 되는 경제학자 이야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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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9월10일 21시06분
  • 최종수정 2023년09월10일 20시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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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나에 대한 얘기다. 나는 경제학자라고 부를만한 사람은 못된다.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기는 하다. 그러나 글 제목을 그렇게 쓰는 것은 너무 제목이 길어질 것 같아 그냥 학자라고 썼으니 넓은 이해로 넘어가 주시기 바란다.

 

얼마 전에 친구 교수와 함께 우스개 농담을 한 적이 있었다. 주제는 “경제학을 공부한 우리가 국가 경제발전에 얼마나 기여를 했을까?” 하는 조금 웃기는 내용이었다.

 

<< GDP와 GNP는 어떻게 다를까? >>

 

경제발전을 표시할 때 가장 흔히 쓰이는 지표는 GDP다. 『국내총생산, Gross Domestic Product』라고 번역할 수 있겠다. 국내총생산은 ‘① 한 나라 영토 내에서 ② 일정 기간 동안에 생산된 ③ 모든 최종생산물과 서비스의 ④ 시장가치의 합(合)’이다. 이 값은 ‘한 나라 영토 내에서 일정 기간 동안 생산된 ⑤ 부가가치의 합’과 동일하다. 

 

국민총생산(GNP: Gross National Product)은 ‘① 한 나라 국민이 ② 일정 기간 동안 생산한 ③ 모든 최종생산물과 서비스의 ④ 시장가치의 합’이다. 이 두 개념에서 가장 큰 차이는 GDP가 영토 중심의 개념이라면 GNP는 생산 주체인 국민의 국적이 중심 개념이라는 점이다.

 

조금 헷갈리는 이 두 개념을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GDP는 생산자가 우리나라 사람이든 외국사람이든 우리 대한민국 땅에서 생산된 것이면 GDP에 포함된다. 여기에 비해 GNP는 생산자가 반드시 우리나라 사람이어야 하고, 국내에서 생산하든 외국에서 생산하든 상관이 없다. 즉 우리나라 국적을 가진 사람이 생산한 것이면 GNP에는 포함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와 국가 간에 상호투자가 없고, 단순히 자국에서 생산한 상품을 서로 수출입만 한다면 GNP와 GDP는 같은 값이 된다. 그러나 현 세상은 그렇지 않다. 국가와 국가 간에 상호투자를 많이 한다. 우리나라의 현대, 삼성이 베트남, 인도, 미국에 투자하고, 미국과 같은 외국기업들도 우리나라에 투자를 많이 한다. 그렇기 때문에 GDP와 GNP는 상당한 차이가 생기게 된다.

 

<< 그러면 왜 GNP 대신 GDP를 쓰는가? >>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 외국인이 생산하는 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도 얼마 전 까지 GDP를 사용하지 않고, GNP를 사용하였었다. 그런데 상호투자가 빈번해짐으로써 좀 묘한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삼성과 현대가 베트남에 공장을 지었다고 하자. 그러면 거기서 생산된 물건들은 틀림없이 GNP에는 해당이 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면 조금 다른 기분이 든다. 왜냐하면 우리기업들이 생산할 것일지라도, 외국에서 생산된 물건들이 우리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외국기업들이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상품보다 경제적 효과가 크지 않다. 

 

그 이유를 설명해 보겠다. 베트남에 새운 우리나라 반도체 공장이나 자동차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베트남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월급을 받아 우리나라에 와서 돈을 쓰지 않는다. 그들은 베트남에서 물건을 사고 밥도 먹으며 영화도 본다. 즉 그 상품을 생산한 기업주의 국적과는 무관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받은 월급은 그 나라에서 소비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미국인 회사인 화이자에서 근무할 지라도 나는 미국에 가서 돈을 쓰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텔레비전도 사고 냉장고도 사며, 가족들과 함께 외식도 한다. 

 

결국 소유자 기업인의 국적과는 무관하게 돈이 써지는 장소(국가)에 경제적 효과가 더 크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결국 어느 나라 경제가 성장하는데 더 큰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GDP이기 때문에 그 나라 경제발전의 지표로 GDP를 쓰는 것이다. 

 

그러면 GNP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인가? 아니다. GNP도 매우 중요하다. GNP가 높은 나라는 기술력이 좋고 경쟁력도 높기 마련이다. 그리고 외국에서 생산되었을 지라도 그 부가가치는 언젠가는 결국 시간을 가지고, 그 기업의 소유국가로 돌아오기 때문에 결국 GNP도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다만 정확히 계산하기도 어렵고, 단기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GDP가 훨씬 크기 때문에 GNP 대신 GDP를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 나는 왜 GDP 증가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일까? >>

 

다른 사람의 소비와 나의 소비는 어떤 차이가 있어 그런 말을 들었을까? 이 점에서 친구 교수와 익살스런 논쟁이 있었다. 친구의 말이다. 


첫째; 김 교수는 기술발전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GDP 증가를 위해서는 기술 발전이 가장 중요하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으로 신상품도 생산되고, 원가도 줄일 수 있으며, 생산성도 올라 갈수 있기 때문에 GDP 증가에서 신기술의 발전은 지극히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내가 신기술 상품을 사는 것을 거의 보지 못 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와 『테슬라 전기자동차』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내가 한 말은 “몇 년 후 배터리를 10분 내에 80% 충전이 가능하면 그때 전기자동차를 사겠다.”라고 얘기 했었다. 기억력이 비상한 친구는 그 얘기를 하면서 “전기자동차를 먼저 사주지 않으면 어떻게 그런 고도의 기술이 지속적으로 발전될 수 있겠느냐? 기술 발전이 있으려면 얼리버드(신기술 제품을 먼저 사주는 사람들, Early Birds)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그런 사람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100% 맞는 말이다. 

 

나는 신기술 발전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인가 보다. 얼리버드들에게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옛날에 신기술 ‘벤처투자 기업정책’을 만드는데 약간의 기여를 했다는 것으로 위로 받기로 하였다.


둘째; 소비하는 량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도대체 김 교수는 낭비하는 법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 말에는 나도 크게 반론을 제기했었다. 우선 “교수 월급이 많지 않고, 그리고 일부를 저축하고 나도 나머지는 소비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내 대답에 그 친구는 또 이렇게 응수했다. ‘김 교수가 사는 것은 ① 사치품(명품)은 거의 없고, ② 산 물건을 너무 오래 쓰며 ③ 골동품과 같은 이상한 것을 사는데 돈을 많이 쓴다.’는 것이었다.

 

아, 이것은 경제학적으로 정말 난해한 문제다. 우선 사치품이 GDP 증가에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명품과 사치품의 구분』은 간단하다. 상위 1%의 소득자에게는 명품이지만, 그런 소득이 없으면서 그런 상품을 구매하면 그것은 사치품이 된다.) 예를 들어 수입명품 300만 원짜리가 백화점에서 1,000만원에 판매되었다고 하자. 분명히 300만원은 해외로 나갈 것이고, 700만원은 국내에서 생산된 부가가치이니 GDP에는 포함될 것 같다. 아! 그렇다. 나는 GDP 증가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도 할 말은 있다.

 

과연 그런 소비가 진정으로 『올바른』 소비일까? 비싼 물건 또는 외제 물건을 사는 것이 건전한 ‘우리나라’의 GDP 증가에 도움이 될까?

 

<< 소비가 미덕인가? >>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절약하라, 검소하라.”는 말을 반복해서 들으며 자랐었다. 그러나 경제가 어느 정도 발전하면서 “소비가 미덕이다.”라고 으스대며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참 희한한 사람들도 있구나.’라고 생각했었다. 

 

지나친 검소는 정말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느 정도의 소비가 있어야 기업이 생산한 물건들이 팔리고, 새로운 기술도 발전한다. 당연히 이런 정도의 건전한 소비는 매우 긴요한 것이다. 자린고비처럼 굴비를 걸어 놓고 쳐다보기만 한다면 어부들은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이 곧 『소비가 미덕이다.』라는 말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언제인가 파리 패션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불리는 실비 그랑박 여사가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강남거리를 돌아보고 난 다음에 “나는 파리에서 평생 동안 볼 프라다와 구찌 핸드백을 오늘 하루 동안 다 봤다.”라는 말을 남겼다. 현제 우리나라는 세계 명품(사치품)이 일본보다 더 많이 팔리는  나라이며, 17년 이상 된 프리미엄 위스키가 미국보다도 더 많이 팔리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조니워커사의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초 프레미엄급 위스키 신상품을 개시회를 가졌다. 약간 자랑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약간 덜 자랑스러운 느낌이 더 든다. 

 

특히 요즈음 신세대들의 행동을 보면 이해하기 곤란한 측면이 많다. 30이 넘어 결혼 한 후에도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을 받아쓰는 사람이 있으며, 집 한 칸 없이 전세, 월세를 살면서도 외제차를 타는 사람도 있다. 돈이 없어 자식 키우기가 힘들 다면서 자식 하나를 키우는 것과 비슷한 돈이 든다는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도 있다. 자기가 벌어 키운다면 당연히 상관이 없겠다. 그러나 나이 들어 직장이 있으면서도 부모님으로 부터 도움을 받고, 그러면서도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생각해 볼 일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나는 교수 시절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반복하였었다. “너희들이 항상 젊은 것이 아니다. 회사는 귀한 자식들의 모임이 아니다. 집에서야 누구나 귀한 자식이다. 그러나 그런 귀한 자식들이 모여 있는 직장이라면 네가 특별히 귀할 이유가 뭐가 있겠느냐? 회사는 이유를 대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성과를 내는 사람이 필요하다. 100명이 입사했다고 하자. 그 중 몇 명이 과장이 되겠는가? 20명 정도일 것이다. 부장되는 사람은 5명을 넘지 않을 것이다. 이사 이상 임원이 되는 사람은 많아야 1명 정도다. 너희들 중에 과장도 못되고, 부장도 못되고, 회사 그만두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 아마 없을 것이다. 너희들 모두 탑 1%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면 탑 1% 답게 행동해야겠느냐? 아니면 99%처럼 행동하고 탑 1%가 되기를 희망해야겠느냐?”

 

나는 소비가 미덕이라고 말했던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그런 소비가 나라를 강하게 만드는 소비인가? 그리고 그런 소비가 젊은이들의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소비인가? 어떤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회사 다니기 힘들면 다니지 말아라. 부모가 번 돈으로 편히 카페나 열면서 살아라.”라고 말하는 부모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빵집, 카페, 고급음식점이 1,2천만 개나 생길 수 있고, 또한 생겼다고 해도 그들이 생존해 나갈 수 있을까? 깊게 생각해 볼 일이다. 

 

가장 간단한 공식이 있다. ‘소비는 소득에서 저축을 뺀 것’이다. 그리고 저축이 있어야 개인이든 기업이든 『미래 투자가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이 보다 간단하고 명확한 공식이 더 있을까? 

 

그리고 그 사람의 회사『내(內)』의 경쟁력은 거의 확실하게 그 사람의 회사『밖(外)』의 경쟁력이 될 것이다.

 

① 정도를 넘는 절약과 ② 적절한 소비 그리고 ③ 과소비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고, 명확한 차이가 있는 개념들이다. 


<< 왜 부자는 3대를 못 간다는 말이 있을까? >>

 

이런 말은 우리 동양에만 있는 말이 아니고 서양에도 있다. 그들은 그것을 『과수원 이론(Orchard Theory)』라고 부른다. 그 내용은 우리와 별 차이가 없다.

 

과수원을 개발한 1대(代)는 큰 고생을 하며 과수원을 일구었다. 그러나 어린 나무는 아직 열매를 매지 못하고, 힘들게 노력만하고 산다. 겨우 말년에 조금 빛을 볼뿐이다. 2대(代)가 주인이 되었다. 과수원의 나무는 풍요롭게 열매를 맺는다. 즐겁다. 돈이 많으니 쓰는 것도 여유롭다. 그러나 부모님이 열심히 힘들게 과수원을 가꾸는 것을 직접 보았다. 그래서 돈을 쓰더라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3대(代)가 되었다. 풍성한 과일은 태어날 때부터 있었다. 과수원은 끝없는 돈을 생산해 내는 존재다. 할아버지가 힘들여 개간했다는 것을 본적이 없다. 당연히 과수원 관리는 안하고, 쓰기만 한다. 결국 과수원은 폐농이 된다. 

 

우리나라 부자 3대 못 간다는 원리와 너무나 일치한다. 내가 알고 있는 집안이 있다. 우리 모두가 ‘어디가면 무엇을 먹어야 한다.’는 바로 그 집안이다. 정말 그 부모는 남의 머슴살이, 새경살이를 하며 어렵게, 어렵게 살았다. 그러나 솜씨 좋은 아내 덕에 고기장사를 시작하였다. 잘되었다. 너무 잘 되었다. 전국적으로 이름이 날릴 만큼 잘 되었다. 때부자 정도가 아니라 큰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자기는 너무 어렵게 살았다. 그것이 한(限)이었다. 그래서 자식들에게는 ‘나처럼 고생하지 말고, 너희들은 하고 싶은 대로 해라.’하며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는 너무 참담하였다. 아마추어 또는 남의 말만 믿고 하는 사업은 하는 사업마다 실패하였다. 다음은 더 길게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부모님들 중 상당수는 이런 과수원 이론대로의 실수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고속성장에 따른 부동산 가격의 상승에 의해 부(富) 축적인 경우에는 더욱 그런 케이스가 많은 듯하다. 매우 조심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경제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생각만 김 교수는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맞는 것 같다. 나는 뭔가 질문이 생기면 그것을 때로는 십년도 더 넘게 끈질기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중 몇 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고등학교 때 주기율표를 배우면서 비소(As, 원자번호 33)라는 극독물을 배웠다. 그런데 그 화학 시간이 오후 햇볕이 뉘엿뉘엿 지는 시간이어서 그랬는지, 엉뚱하게 ‘어떤 이상한 세계에서는 비소가 생물들이 마시는 공기이고, 산소(O2)가 오히려 독극물이 되는 세상은 없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또 같은 해가 지는 오후 시간이었다고 생각된다. 물리 시간에 갑자기 ‘물체 내(內)에서 자유롭게 회전하려면 당연히 원(기둥)의 형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느 이상한 세계에서 사각형처럼 생겨야 우리세계에서 처럼 부드럽게 회전할 수 있다면 과연 그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를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엉뚱한 생각은 나만 한 것이 아니었다. 한참 후 그런 세계는 수학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논리가 증명되었다는 글을 읽고 한참 웃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좀 더 실용적인 차원의 고민도 있었다. ‘화장지를 가장 적게 사용하면서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은 무엇일까?’를 정말 오랫동안 고민하였다. 그리고 수십 년의 연구결과(??)로 근사한 방법을 알아냈다. 얼마나 기뻤던지.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비데’라는 신기술의 설치로 너무 좋은 절약 방법이 곧바로 생겨났기 때문이다.

 

아! 신(新) 기술이여...

 

나는 교수 시절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 자식 결혼 시에도 상조금을 신청하지 못했던 사람이다. 참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러고도 경제학을 가르쳤다니...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 중 하나는 지하철 손잡이의 움직임에 대한 예측이다. 여기에는 작용하는 물리법칙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지하철이 바로 출발했을 때는 정지력과 운동방향 그리고 손잡이의 저항력 등으로 손잡이는 예측 가능한 움직임(패턴)을 보인다. 그러나 1분 정도만 지나면 손잡이는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측이 되지 않는 랜덤 운동이다. 분명히 거기에 숨어있는 물리법칙이 있고, 그것을 계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터인데 그 분에게 이 궁금함을 묻고 싶다. 

 

그러나 나의 이런 한심한 면을 지적하는 친구에게 당당하게 나를 변호하였다. 나만 이런 것이 아니다. 나 말고도 엉뚱한 일을 하는 사람이 많다. 나와는 비교도 안 되게 훌륭한 사람이지만 아담 스미스도 그런 이상한 짓을 잘 했다. 규칙적인 생활로 유명한 스미스가 하루는 집에 도착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하여 길을 역으로 따라 갔더니 스미스가 버킹검 궁전 앞에서 우산을 총검 삼아 근위병들이 하는 행동을 열심히 따라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왜 그랬느냐?”고 물었더니 “신기해서.”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신기해서 그냥 생각해 보는 것에 불과하다. 돈 되지 않는 것에 신경을 쓴다고 나를 너무 나무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 친구는 논문도 나보다 많고, 재산도 나보다 많다. 그래서 정말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조용히 말하고 싶다. “케인즈도 주식투자에 실패해서 파산했다.”라고.

 

나는 사람들에게 곧잘 이런 말을 한다. 호기심과 신기한 것을 관찰하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리고 많은 위대한 발견은 이런 작은 관심에서 시작되었다. 우리정도의 사람은 ‘이상하다.’라는 수준에서 끝나지만, 위대한 학자들도 처음 시작은 우리와 비슷하다. ‘사과가 왜 떨어지는가? 바닷물이 왜 들고 나가느냐?’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보였지만 그런 최고의 지성들에게는 만유인력의 법칙과 지동설을 찾아내는 동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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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경제발전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너무 나무라지 말라. 내 능력이 그것밖에 안 되는 것을 어찌하란 말인가? 아으 동동다리...

 

‘신은 공평하다.’라고 말하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내 친구 경우처럼 불평등하시기도 하는가 보다.

 

그러나 “나는 당당하다. 나는 나다.” 그러나 괜히 등 뒤가 쪼끔 시려운 느낌이 든다. 나보다 잘난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부족한 사람들도 대동단결해 보자. 찾아보면 남보다 나은 면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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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9월10일 21시06분
  • 최종수정 2023년09월10일 20시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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