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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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노트>

현재 우리나라에는 1500여 기에 이르는 옛 탑이 있으며 우리나라 문화재 가운데 주류를 이룬다. 국보와 보물의 약 25%가 탑이다. 삼국유사에는 신라의 서울인 경주를 가리켜 '절은 밤하늘의 별처럼 널려 있고 탑은 기러기의 행렬처럼 줄지어 있다(寺寺星張 塔塔雁行)'고 하였다. 중국인들은 백제를 일컬어 '절과 탑이 매우 많은(寺塔甚多) 나라'라고 하였으며, 백제의 사택지적비에는 '황금으로 법당을 짓고 옥으로 불탑을 세웠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각 문화재에 대한 설명은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제목: 여주 고달사지 승탑

촬영장소: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촬영날짜: 2020.10.13

 

고달사터에 남아 있는 높이 4.3m의 고려시대의 승탑이다. 국보 제4. 고달사는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23(764)에 창건된 절로, 고려 광종 이후에는 왕들의 보호를 받아 큰 사찰로서의 면모를 유지하기도 하였으나, 조선시대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은 바닥의 형태가 8각을 이루고 있으며, 꼭대기의 머리장식이 완전하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잘 남아있다. 전체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기단(基壇)은 상··하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대의 각 면에는 내부에 꽃 형태의 무늬가 있는 안상(眼象)2구씩 새겨져 있고 윗면에는 16엽의 연판이 돌려졌다. 중대는 이 승탑에서 가장 조각수법이 뛰어난 부재로써 거의 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용과 같은 얼굴의 거북은 입체적으로 표현되어 사실감이 느껴진다. 가운데 거북을 중심으로 총 네 마리의 용이 보주를 쥐고 있으며, 나머지 공간은 구름무늬를 가득 채웠다. 상대석에는 큼지막한 8엽의 앙련이 조각되어 탑몸돌을 받치고 있다.

탑몸돌에는 문비와 자물쇠, 사천왕상(四天王像), 광창(光窓)이 표현되어 있다. 몸돌을 덮고 있는 지붕돌은 꽤 두꺼운 편으로 아랫면에 비천과 구름을 표현하였다. 지붕돌 윗면 각 모서리를 따라 아래로 미끄러지면 그 끝마다 큼직한 귀꽃이 달려 있는데, 일부는 파손된 상태이다. 상륜부에는 둥글넓적한 복발 위로 보개(寶蓋)와 보주(寶珠)가 올려져있다.

 


제목: 귀꽃, 석탑미술의 백미

촬영장소: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촬영날짜: 2020.10.13

 

고달사지 승탑의 귀꽃이다. 귀꽃은 석등이나 석탑의 지붕돌 윗면 각 모서리를 따라 아래로 그 끝에 있는 큼직한 꽃모양의 장식이다. 우리나라 문화재의 아름다움, 특히 석조미술의 아름다움을 석탑의 귀꽃에서 보게 되었다. 가히 석탑미술의 백미라할 수 있다.

 


제목: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 탑

촬영장소: 서울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촬영날짜: 2022.6.2.

 

탑은 전체가 8각으로 이루어진 기본적인 형태로, 기단(基壇)의 아래와 윗받침돌에는 연꽃을 새겼다. 북모양을 하고 있는 가운데받침돌 표면에는 웅장한 구름과 함께 뒤엉켜 있는 용의 몸체를 생동감있게 조각하였다. 탑신의 몸돌은 8각의 모서리마다 꽃무늬가 장식되어 독특하고, 앞뒤 양면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짝모양이 각각 새겨져 있다. 그 위로 얹혀 있는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과 2중으로 된 서까래가 표현되어 있다. 경사가 완만한 낙수면은 8각의 모서리선이 굵게 새겨져 그 끝에는 높이 솟아있는 꽃조각이 달려있다. 특히 낙수면에는 기와를 입힌 모양의 기왓골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처마 끝에 이르러서는 암막새, 수막새까지도 자세히 조각됨으로써 밑면의 서까래와 함께 당시 목조건축의 일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꼭대기에는 8각의 작은 지붕모양의 머리장식인 보개(寶蓋)가 있다.

 


제목: 솟아오른 꽃조각

촬영장소: 서울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촬영날짜: 2022.6.2.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 탑의 귀꽃이다.

 

문화재는 원래 위치에 있어야 문화재 고유의 분위기, 역사적 의미, 상징성, 아름다움이 빛날 수 있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뜰과 숲에는 제자리를 벗어난 문화재들(주로 석재)이 여럿있다. 사람들의 발길도 많지 않은 뜰 저편에, 숲속의 장식물처럼 조연으로. 언젠가는 제자리를 찾아 주연으로서 바로 서기를 기원한다.

 

폐사지 등 사라진 역사의 빈 터는 어찌보면 스산스울것 같지만 그곳에 서있는 당당한 명작 유물로 인해 역사적 향기가 짙게 풍기는 장소로 현대에 다시 태어나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고달사 절터는 전성기시절 사방 30리가 모두 절 땅이었고 수백 명의 스님들이 도량에 넘쳤다고 한다. 흘러가는 역사속에 잠시 머물다 가는 우리의 인생을 사색해 본다, 폐사지의 그 처연함 속에서 그리고 사색으로 이끄는 화려한 귀꽃의 아름다움을.

 

<작가 소개>


 

이유진 작가는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이 세상의 역사유적들을 자기성찰과 성장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문화유산의 가치를 사색하는 작가이다.

 

“26장의 대통령상”. 이것은 1년간 정부에서 각 전통예술 경연대회에게 주어지는 대통령 상장의 수이다. 다시 말해서 1년에 전통예술 부문 대통령상을 받는 국악인이 26명이란 이야기이다. 또 다시 말하자면 전국의 명인·명창이 한 해에 26명씩 나온다는 말이며, 2년이면 52명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이다. 그것은 무려 3년이면 78. 4년이면 104명이다.

 


대통령상장 마크

 

 

이러한 현실을 기쁘게 생각해야 하나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야 하나. 알지 모를 아이러니에 빠지고. 우선 필자의 고민은 후자에 두고 그러한 이유의 일장일단을 이 글을 읽는 이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지난해 2021년 정부시상 지원 경연대회의 상장을 살펴보면 무용 분야는 총 15개 대회 중 대통령상이 있는 곳은 2, 음악 분야는 총 12개 대회 중 대통령상이 있는 곳은 2, 연극 분야는 총 8개 대회 중 대통령상이 있는 곳이 총 1. 전통예술 분야는 총 86개 대회 중 국립국악원 온나라국악경연대회까지 포함 총 26개의 대통령상을 보유하고 있다.

 

전통예술의 진흥과 인재 등용을 위해선 꼭 정부가 수여하는 상장이 필요하다. 이는 정부의 공신력 필요를 뜻하며 명예에 걸맞은 공정성과 운영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므로 각 지방자치단체의 시군에서는 여러 전통예술 경연대회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을 파악하고, 진흥하며 공정성과 더불어 각 특색있는 지역의 명분을 만들어 경연대회를 장려하고 있다.

 

문제는 그 이후다. 그러한 역사적 좋은 의도의 깊은 뜻을 간직하고 생겨난 각종 경연대회는 전통예술의 진흥과 우수한 국악 인재 등용에 힘써야 하는데 그러한 모습은 후자로 퇴색되고 운영단체나 개인의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황금만능주의 악순환으로 순수성이 사라진 안타까운 과거를 본 적이 있다. 이제 그러한 과거의 아픈 기억은 잊어버리고 소중한 우리 전통예술의 등용문인 전통예술 경연대회를 올곧은 신념과 공정, 가치로 무장하고 감사함과 더불어 소중히 이어나가야 한다.

 


2021 전주대사습놀이 포스터


       2022 온나라국악경연대회 포스터

 

우리나라 최고 정부시상인 대통령상의 수가 무용이나 음악, 연극보다 전통예술 부문에 더 많은 이유는 그 최고의 상이 세계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대한민국의 소중한 가치이며 지켜야 할 우리 선조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특히 호남에서는 전통예술 분야 정부시상 경연대회 총 86개 대회 중 37개의 경연대회가 매년 치러지고 있다. 그것은 43%란 엄청난 전통예술계의 영향력이며 그만큼 전통예술에서의 호남이라는 거점을 중요한 의미로 나타내고 있다.

 

이제 호남을 비롯하여 전국각지의 경연대회에서 등용되어 매년 나오는 26명의 대통령상 수상자들도 존재가치를 더욱 드높여 그러한 숫자의 자존감을 나타내고 우린 민족의 예술성을 높여 정부시상의 취지와 존재가치에 합당한 의미 부여를 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 또한, 상장 수여와 더불어 관리·감독을 면밀히 추진하여 상의 훈격이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노력과 믿음을 이으며 지켜가야 하겠으며 전통문화의 초석인 전통예술이 지나치는 문화의 환류가 되지 않게 관심과 배려로 그 존재감을 높여야 하겠다.

 

 

 

전통문화 칼럼니스트 소개

 

김용호 / 한국학 박사(Ph.D)

사범대학에서 수학교육을 전공하던 중 판소리에 심취되어 전주로 내려가 이날치의 손녀 이일주 명창에게 춘향가를 배웠다. 박종선 기악 명인에게 아쟁을 배워 1999년 춘향제 전국국악대전 기악부 최고상인 대상을 수상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82-4호 남해안별신굿 이수자이며 서울시무형문화재 제39호 아쟁산조 이수자이다. 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창작 및 표현활동지원 대상자전통음악부문에 선정되었으며 2010년 독자적인 '아쟁' 주제 논문으로 한국 최초 아쟁전공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2년부터 수년간 러시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음악원에서 한국 전통음악 Master Class와 연주회를 주도적으로 개최하여 주러시아 한국대사관과 차이콥스키음악원 간 MOU를 성사시켰고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년간 체계적인 국악교육과 연주회를 시행했다. 경북도립국악단 악장, 국립부산국악원 초대 악장, 국립남도국악원 악장, 대구시교육청 대구예술영재교육원 음악감독, 전북도립국악원 교육학예실장을 역임했으며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주대사습청 운영위원, 전북일보 문화칼럼니스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위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심사위원, 예술경영지원센터 정부시상지원 현장평가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논문 / "전통예술공연 예술단체 활성화의 도정과 모색"(국회), "지역문화 균형발전을 위한 국립충청국악원의 역할"(세계음악학회), "거문고 명인 강동일"(완주문화재단) 외 다수

# 저서 / "박종선류 아쟁산조"(은하출판사), "산조아쟁의 이론과 연주"(부산문화재단), "박대성류 아쟁산조 연구"(부산문화재단), "아쟁교본"(전북도립국악원) 외 다수

 

<작가 노트>

사진의 대상물은 우리 주변 즉 다시 말해서 일상의 시간안에 있는 것 같다. 나는 일부러 짬을 내어 출사를 하지 않는다. 가족과 여행시 또는 출장때 아니면 동네 한바퀴 등 때 카메라의 샷을 날렸다. 사진은 중학교 2학년때 아버지로부터 받은 캐논 AE-1 카메라를 시작으로 사진을 배웠다.

50대 중반인 지금 내 책장에는 전공인 토목공학 서적보다 카메라 루시다(사진에 관한 노트)’등 사진관련 서적이 더 많다. 나름 사진에 대하여 혼자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온라인상에서 모 대학교의 사진학 교수님을 만나게 되어 그분을 통해 나만의 사진 장르(심상·흑백)를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평범한 일상에서 순간적으로 사물을 보고 무언가를 느꼈을 때 그 사물(피사체)을 통하여 내 마음(심정)을 표현할려고 노력을 한다.

이번 사진 또한 그러한 사진이다. 이번 테마는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그리움이다. 렸을때의 추억..... 고향,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친구들 등 누구나 마음속 한켠에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는 아련한 이야기를 다 함께 같이 사진을 통해 그 시절로 돌아가 보자.

 

 

제목 : 돌담길 / 촬영 장소 : 충남 아산 외암마을 / 촬영날짜 : 2017624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랐다. 친가나 외가였시 도시였다. 그래서 초등학교 방학때 시골로 가본적이 없다. 그러나 내 30년째 반쪽이는 외가가 시골에 있어 방학때마다 시골로 갔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퇴임 후 전원에서 노후를 보내자고 한다. 마침 맛보기로 세종청사에서 근무를 할 때 영평사 근처 나홀로 전원주택에서 집사람과 코코(진돗개 암컷)와 함께 생활을 했었다. 지금 생각을 해보니 한편으로 그 시절이 그립다.

 

어느 초여름날 집사람과 아산 외암마을을 갔을 때 곧게 뻗은 돌담길이 마음에 와 닿았다. 누군가 이 돌담길을 따라 어릴적 추억을 떠올리며 자식을 데리고 그리운 부모님을 뵈러 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정겨운 돌담길의 훈훈하고 정겨운 느낌이 전해저 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제목 : 벗에게 / 촬영 장소 : 소쇄원 / 촬영날짜 : 2008418

 

너는 내 안에서 고운 잇속 드러내며 살짝 웃는다. <중략> 순결한 눈짓 마주하여 피리 불다가 우리는 조용히 하나가 된다.(이해인 수녀님의 벗에게중에서)

 

어느 4월 평일날 지방 출장때 소쇄원을 들렀다. 그 곳은 오래된 우리나라 전통 정원이라 했다. 그 곳에서 대청마루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젊은 커플을 보았다. 마냥 행복해 보였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러면서 내 연애 시절이 떠올랐다. 대학원 다닐 때 만난 4학년 여학생..... 비오는 수요일날 장미꽃을 들고 훗날 내 반쪽이가 될 여학생 집으로..... 여러분들도 아련하고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그리운 사람이 있는지요? 아니면 옆에 계신가요?

 


제목 : 품안에 그리움 / 촬영 장소 : 원주 치악산 소롯길 / 촬영날짜 : 2017616

 

어렸을 때 친가를 가면 장독대가 있었다. 서울 도심이었지만 장독대가 있었다. 친가에 가면 할머니께서 장독대에서 된장이나 고추장을 꺼내 장손주를 위해 음식을 정성것 해주셨다. 장독대를 볼 때마다 할머니 생각이 난다.

 

 



제목 : 그리운 시냇가 / 촬영 장소 : 강원도 봉평 / 촬영날짜 : 2017617

 

 

Le Ruisseau de Mon Enfance(Adamo)/그리운 시냇가(아다모)

 

Parle-moi de mon enfance, mon vieux ruisseau

Du temps ou coulait ma chance au fil de ton eau

내 어린 시절, 옛날 시냇가에 대해 말해주오.

너의 물결을 따라 나의 운이 흐르던 그 시절에 대해

 

Parle-moi des doux delires de mes tendres annees

Les bleuets qui les fleurirent sont-ils a jamais

fanes

내 어린 시절의 감미로운 흥분에 대해 말해주오.

그것들을 장식했던 국화들은 영원히 시들어버릴까?

 

Parle-moi de ces dimanches ou je venais te confier

En timide voile blanche, mes reves de papier

내 꿈들을 종이에 적어, 하얀 돛단배에 수줍은 마음을 담아

너에게 비밀을 말하곤 했던 그 일요일들에 대해 말해주오.

 

Parle-moi tant que j'y pense de mon premier amour

Il etait tout innocence, a-t-il dure toujours ?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만큼 나의 첫사랑에 대해 말해주오.

무척이나 순수했던 그 사랑이 영원히 계속될까?<이하생략>

 

 

초 여름 강원도 봉평 어느 냇가에서 노닐고 있는 아이들을 본다. 냇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통해 어릴적 나의 모습을 바라본다.

 


제목 : 동심 / 촬영 장소 : 충남 아산 외암마을 / 촬영날짜 : 2017620

 

 

동무들아 오너라(작사 윤석중)

 

동무들아 오너라 서로들 손잡고

노래하며 춤추며 놀아보자

낮에는 해 동무 밤에는 달 동무

우리들은 즐거운 노래 동무

동무들아 오너라 서로들 손잡고

노래하며 춤추며 놀아보자

비 오면 비 동무 눈오면 눈 동무

우리들은 즐거운 어깨동무

 

 

어렸을 때 동네 놀이터에는 그네가 있어 서로들 그네를 탈려고 다투었던 기억이 있다. 요즘 동네나 아파트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볼 수 없다. 그 많았던 아이들의 웃음 소리는 다 어디로 갔는지 긍금하다.

 

 


제목 : 아빠하고 나하고 / 촬영 장소 : 수원천 / 촬영날짜 : 2010425

 

어느 4월의 봄날 오후 카메라를 매고 동네 한바퀴..... 손을 잡고 산책하는 아빠와 아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이들의 실루엣을 보면서 어릴적 초딩시절은 일요일 아침마다 아빠하고 남산 약수터에 갔던 추억이 떠올랐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수원이다. 수원에 있는 대학을 다니고 대학원 시절 같은 공대에 다른 학과 4학년 수원 여학생을 만나 결혼도하고 직장도 수원으로 발령을 받아 지금까지 살고 있는데(세종시에서도 살았지만) 요즘 매주 토요일마다 일이 있어 서울을 가고 있다.

서울로 향할 때마다 어릴적 추억이 떠오른다. 경부고속도로에서 한남대교(예전에는 제3한강교)를 건너 남산 1호터널을 지나면 명동에 있던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지금은 강남으로 이전함) 자리를 보면서 초딩 시절이 떠오르고,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수원으로 시외버스를 타고 대학을 다니던 그때의 온갖 많은 추억이 마치 실바람의 느낌으로 스처 지나가고 있다.

이제는 50대 중반을 지나 어느덧 60을 바라보고 있다. 그동안 살아온 날보다 사랑하는 이들을 두고 먼 여정을 위해 서서히 준비를 해야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사실 난 무섭고 두렵다. 그래도 모두 다 가는 그곳에 늙고 초라한 모습으로 가면 꿈에 그리던 분들이 날 알아 볼 수 있을런지........ 보고싶습니다.

 


제목 : 찔레꽃 / 촬영 장소 : 경기도 광주 / 촬영날짜 : 201159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이연실의 찔레꽃 중에서)

 

어머니의 품이 그립습니다.

 


제목 : 아버지 / 촬영 장소 : 대구 / 촬영날짜 : 2007725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께서 본인은 너의 할아버지를 존경한다고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내가 아버지를 존경한다는 것을 알았다. 슬프게도 지금은 빛바랜 사진 속에서나 만날 수 있다.

 

 

 

<작가 소개>

황병철 작가는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사진을 통해 자신의 마음속 메시지를 전할려고 한다. 그의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일반적인 기교보다는 작가가 느끼는 그 감정을 대상물을 통해 전하고 있으며, 그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느낄 수 있다.

 

<경력>

) 공간정보산업진흥원 본부장

) 국토교통부

) 경기대학교 공과대학 측량학 강사

 

<저서>

사진집 표정’, 도서출판 오렌지민트, 2015

 

<주요 수상 및 사진전>

2008 공무원 미술대전 사진부문 입선

2008 국립현대미술관 사진공모전 장려상

2011 The Time 기획전 일상의 시간 단체전 포토텔링

2012 국토해양부 사진동호회 단체전 과천청사

 

<학력>

경기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공학석사)

 

 

관광산업에 대한 재인식 필요성

우리나라는 세계 최대·최고의 갯벌을 가지고 있다. 실로 엄청난 가치의 갯벌을 가지고 있으나 관광자원으로 활용되는 것은 거의 미미하다.

독일의 와덴해의 갯벌은 교육과 문화, 환경보전 등의 다양한 전문영역을 다루며 유럽의 해양과학환경보존의 메카로 인정 받고 있다. 이곳은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특별관리하고 있으며 다양한 교육프로그램과 관광프로그램이 작동되고 있다. 지면상 길게 설명하기 어려우므로 단순히 독일 니더작센주의 몇 개 수치만 비교하면 연간 관광객은 25백만명이 오고 수입은 약 2조원에 이른다. 반면 우리나라는 최고 최대의 갯벌이 있지만 관광 수입이나 관광 결과 수치를 논할 만한 것 자체가 없다. 보령의 머드 축제가 있으나 이도 갯벌 자체를 관광자원화 한 것이 아니라 갯벌의 흙이라는 소재를 활용한 축제이므로 진정한 갯벌 관광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태안 중심으로 갯벌체험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도 갯벌에 들어가 조개잡고 낙지 잡는 정도의 수준이다. 문화와 관광은 어떻게 가공하고 제시하느냐가 중요하다. 국가미래연구원20220514일에 게재했던 전완식의 문화예술정책 고도화 추진 필요성에서 다뤘던 벽화의 경우도 필라델피아는 연간 11조 규모의 경제효과 창출하고 있으나 우리는 환경미화 수준으로 멈추고 있는 안타까움을 지적하였다.


 

우리나라의 관광산업은 보고 즐기는 관광을 중심으로 한다. 이는 세계2차대전 이후 세계 각지에 퍼져있는 미군 주둔지 주변의 유흥 중심의 관광지의 형식과 유사하다. 이는 관광상품중 아주 특수한 경우고 보편적으로 관광은 인간의 이상향 추구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중심이 되어야한다. 우리는 변형된 관광 인식의 굴레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폐해는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군의 휴양지 관광 인식으로 관광사업이 전개되므로 우리는 주로 계절관광이나 축제를 중심으로 하며 부가적으로 유적지와 특수 지형지물을 활용한 관광 등이 주된 관광 자원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한시적인 관광상품이므로 말 그대로 한 철 장사이다. 365일중에서 길게는 60여일, 짧게는 15일 정도만 관광 상품이 제 기능을 한다. 따라서 이런 관광생태계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짧은 기간에 최대의 수익을 창출하지 않으면 고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휴가철 바가지 요금에 대한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다. 한 철 바가지 요금의 횡포나 수익을 얻는 기업 또한 결과적으로는 그 시점이 지나면 찾는 이가 없어서 적자에 허덕이는 구조이며 해가 지날수록 관광지에서 폐업하는 숫자는 늘어나고 있다.

 

관광은 이상향을 찾는 판타지의 과정

우리나라 관광산업은 대체적으로 공급자의 사고에서 진행되는 것이 많다. 특히 특산품 관광은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관광을 근본적으로 살펴보면 공급자가 중심이 아니라 수요자가 중심이 된다. 수요자 즉, 관광객은 그의 이상향을 찾는 과정에서 여행지를 스스로 선정하고 여행지에서 자신이 원하던 삶의 체험을 하기 위해 관광을 떠나게 된다. 젊은이들이 잠깐 놀러가는 홍대앞도 젊은이들의 유토피아적 판타지와 호기심을 확인하기 위한 경우로 볼 수 있다. 이점을 주목하며 관광산업을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관광객의 이상향을 찾는 여정은 4가지의 시점으로 분류가 가능하다.

1단계 관찰자 시점 : 방문객

2단계 체험자 시점 : 단기 체류자

3단계 누적 경험자 시점 : 장기 체류자

4단계 생활인 시점 : 귀화 또는 이주자

 

4단계의 시점별 관광 상품은 한곳의 장소에서 나타날 수도 있고 각기 다른 장소에서 나타날 수도 있다. , 수요자의 입장에서 필요로 하는 상품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1단계의 시점으로 끝날 수도 있고 4단계까지 갈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대체적인 관광지는 1단계 상태에서 그치지만 동남아시아나 유럽의 지중해 지역에 있는 관광지는 1-3단계 까지의 상태가 주로 나타나고 4단계의 상태까지 가는 경우도 많은 편이다. 4단계의 상태가 되었다는 것은 이미 정주성이 매우 높은 수준의 단계임을 알 수 있다.

 

시점별 상품성 특성

1단계 관찰자 시점 : 방문객

1단계 시점의 관광은 패키지 관광과 같이 단시간 동안 체류하는 상품이 주를 이뤄야 하고 단품으로써 자극성이 있고 독창적인 구성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관광상품은 주로 이 시점의 관광상품이 풍성하므로 서비스의 질만 향상시키면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 숙박하지 않으므로 요식업, 숙박업, 쇼핑, 렌트 등등 주변 상품의 확장성이 약하다. 특징은 독립된 관광 상품의 수준만 높으면 성공확률이 높아진다.

 

2단계 체험자 시점 : 단기 체류자

2단계 시점의 관광상품부터는 최소 1주일에서 2주 정도의 체류가 생기므로 관광 수입이 크게 확대된다. 따라서 관광상품의 질적 수준 향상에 역점을 둬야하는데 관광지의 정체성, 독립성, 전문성이 요구된다. 또한 체류 기간의 생활서비스 수준이 높아야 한다. 숙박을 하는 체류기간이 생기면서 타 관광상품으로 확장성이 형성되고 수익이 크게 증대 된다. 관광상품의 확장성이 형성되는 것만큼 상호 연관된 상품의 질적 수준도 균등해야 가치를 발현할 수 있다. 단기 체류 관광상품부터는 지자체나 정부의 종합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3단계 누적 경험자 시점 : 장기 체류자

3단계 시점의 관광 상품은 이전 단계의 수준보다 높은 수준일수도 있으나 성향의 변화가 나타난다. 변화의 첫 번째 요소는 지리적인 위치 변화이다. 단기체류자는 관광지 내에서 체류를 원하지만 장기체류자부터는 관광지 내부가 아니라 근거리 지역에 체류를 원하고 생활편리성과 안전성, 아르바이트 등등 우리가 일반적인 생활을 할 때 고려하는 것과 유사한 관점이 될 수 있다. 직업인으로 장기 파견된 경우나 순수 여행객의 경우도 고려 사항은 비슷하게 나타난다. 이 시점부터는 문화의 우수성과 차별성이 상품성의 핵심이 된다.

 

4단계 생활인 시점 : 귀화 또는 이주자

4단계의 생활인 시점이 되면 우리가 생활하는 것과 동일한 가치관으로 판단하고 우리의 생활문화 안에 귀속된다. 이 상품성이 강하게 나타나려면 문화적 차별성이 강하고 유토피아로 인식되는 점이 있어야한다. 이 상품은 생활문화 자체가 가장 강력한 상품성이므로 특별히 다룰 내용은 없다. , 필리핀의 은퇴 이민의 경우처럼 특별 지역을 두거나 세제혜택을 주는 방식은 있을 수 있다. 이 단계의 관광상품은 국제적인 홍보가 강화되어야 성공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

 

관광상품의 효율을 극대화하면 지역소멸을 막을 수 있다.

관광상품을 단순 즐길거리 볼거리로 생각하면 계절 관광상품처럼 일시적 사업 후 장기간의 휴업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관광상품을 기획할 때 수요자의 관점에서 다각도의 관광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 정주성이 강한 관광 지역을 만든다는 목표로 사업을 기획하여야 하며 도심과 근접한 경우는 1단계와 2단계의 관광상품을 전문화하고 지역에 고립된 형태로 구성되어있는 경우는 3단계와 4단계를 강화되는 것이 필요하다.

 

3단계와 4단계는 기존의 지역민과 융합되는 구조로 하여야 하며 문화적 우월성이 높아야 한다. 쉽게 얘기하면 문화적 차이로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가 있어야 한다. 매력적인 요소는 단번에 이해하고 체험할 수 없는 것이므로 중장기의 체류나 영구 이주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유적지나 특수 환경 관광은 호기심을 자극할 수는 있어도 장기간 체류할 거리는 될 수가 없다. 장기 체류를 유도하는 가장 좋은 경우는 삶의 질을 향상시켜 주는 것이다. 실버타운이나 은퇴자 타운 등은 삶의 질을 일정 수준 이상 보장해 주는 데에 매력이 있다. 이런 형식에 문화관광의 매력을 더하여 즐기면서 삶의 질이 보장되는 구성을 추구하면 관광상품으로의 가치 부여가 충분해 진다.

 

현재 각 지자체에서 진행되고 있는 귀농, 귀촌, 귀임 등의 프로그램은 지역소멸의 문제를 염두한 정책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상향을 가지고 있고 이상향에 대한 동경은 결국 이주를 하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취업을 위해 이주를 하거나 교육을 위해 이주를 하거나 의료 및 삶의 질 향상을 원하여 이주를 하는 등의 다양한 행동 패턴은 나타날 수 있지만 정리하면 불완전함과 불균형이다. 즉 최근에 대두되는 세대갈등, 지역갈등, 남녀 갈등 또한 같은 맥락에서 문제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지역소멸의 원인이 불완전함에서 형성되므로 대다수 사람들은 도시로 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두 도시로 가려하지 않고 반대로 귀향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이들을 포함한 관광정책이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

 

귀촌인과 결합한 정주성 강한 관광타운

관광산업은 외부인을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으므로 이들을 정주하게 하는 방법을 모색하면 지역소멸도 해결될 수 있다. 내국인 외국인에 대한 세밀하고 미시적인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하지만 총체적 방향성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귀촌인과 외지인의 결합이 필요한 이유는 정주성이 강한 관광인프라에는 의료와 교육, 직장 등의 일반적인 생활 환경과 동일한 인프라를 갖춰야한다. 소규모일지라도 구성 요소는 모두 갖춰야 생활이 된다. 이점이 취약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장기체류나 귀화 또는 이주의 관광객이 적다. 귀화나 이주의 경우는 도심 또는 직장이 마련되어지는 지역으로 가는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따라서 이들을 관광객으로 보기는 어렵다.

 

각 지자체에서 관광타운을 만들기 위한 시도들이 있었으나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지 못한 이유는 생활에서 불편함이 크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지자체가 예산을 투입하여 운영하는 것도 한계가 있으므로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병원도 개원하고 마트도 운영하고 기타 생활에 필요한 인프라를 성하게 되어야하는데 관광타운의 소규모 인원을 보고 그런 다양한 인프라를 형성시킨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따라서 관광객과 귀촌인들이 결합되었을 때 정주성 향상을 위한 사회 인프라를 만들 수 있다.

 

관광상품의 경우도 단기간의 계절 관광이나 자연경관 관광으로는 상품성의 지속성을 확립할수 없다. 문화가 결합된 관광상품이 되어야 하므로 한국어, 한류문화, 지역의 특화된 문화 등등 문화상품을 개발하고 체계화시킬 필요가 있다.

 

관광상품으로 개발할 수 있는 우리의 자원은 무궁무진하다.

 

관광산업에 종사하는 기업인들과 정책입안자들에게 영감을 주길 글이 되길 바라는 바이며 다음편으로 이어 구체적인 사례와 방법을 소개한다.

 

<작가 노트>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네가 태어나기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것은 항상 아이로 남아 있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역사를 알아야 성인成人이 될 수 있다. 과거로 떠나는 시간여행은 과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이루는 과거들을 성찰함으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사색의 기회를 준다. 그런면에서 역사이야기가 켜켜이 쌓인 문화유적은 좋은 소재가 된다. 인간의 지성과 감성은 과거에 먹은 지적 양식과 가슴이 과거에 먹은 감성의 양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찍이 읽고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모든 것, 자문자답한 모든 것이 그 사람의 가장 본질적인 현존재를 구성한다. 문화유적 기행 중의 이 모든 것을 겪은 후의 그 사람은 이전과 같은 사람일 수 없다.

 


제목 : 모전석탑

촬영 장소 : 충청북도 제천시 장락동

촬영날짜 : 2020.10.7

모전석탑이란 돌을 벽돌모양으로 깎아 쌓은 탑으로, 흙벽돌을 쌓아 올린 전탑을 모방하였다 하여 모전탑(模塼塔)이라고도 한다.




제목 : 과거와 현재의 대조

촬영 장소 : 충청북도 제천시 장락동

촬영날짜 : 2020.10.7

넓은 들판에 우뚝 솟은 검은색의 탑은 제천시내의 아파트들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숲속과 고즈넉한 폐사지에 있는 여느 탑과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탑을 받치는 한 겹의 바닥돌 위에 벽돌처럼 깎은 회흑색의 점판암으로 7층의 몸돌을 올렸는데, 1층의 네 모서리에는 점판암 대신 화강암 기둥을 세워 그 모습이 특이하다.

 


제목 : 랜드마크

촬영 장소 : 충청북도 제천시 장락동

촬영날짜 : 2020.10.7

온통 평지뿐이 곳에 우뚝솟은 9미터의 탑. 눈을 감고 상상해 본다. 지역의 랜드마크요, 이정표의 역할을 했을 이 탑이 세워졌던 그 시대를...

탑 전체 표면에 석회를 칠한 흔적이 있으며, 남쪽과 북쪽 면에 감실을 설치하여 문을 달았다. 탑을 만든 형식이나 돌을 다듬어 쌓아올린 수법 등으로 보아 통일 신라 말이나 고려 초인 10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제목 : 과거와 이어지는 현재

촬영 장소 : 충청북도 제천시 장락동

촬영날짜 : 2020.10.7.

6·25 전쟁 때 포탄에 맞아 피해를 입었는데, 1967~1968년에 석탑을 해체하고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만들었다.

탑이 서있던 절터는 논,밭으로 변하였다. 수많은 역사의 흐름속에 절은 사라졌지만 탑은 지난한 역사의 풍파를 겪으며 드넓은 들판에 홀로남아 지금까지 이어온 과거를 보여주는 창의 역할을 한다.

 

 

<작가 소개>

이유진 작가는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이 세상의 역사유적들을 자기성찰과 성장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문화유산의 가치를 사색하는 작가이다.


 

 

 

 

지난 스승의 날인 515일 서울 청계광장에서는 국악 관련 저명한 국가무형문화재 예능 보유자, 교육자, 학자, 전문연주가, 학생, 애호가 등 많은 인파가 모인 가운데 특별한 집회가 있었다. 국악교육의 미래를 위한 "전 국악인 문화제"란 주제로 국악교육의 위기를 피력하고 교육의 정상화를 요구했다. 이렇게 국악에 관련된 많은 이들이 거리로 나오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향후 이루어질 국악교육 정책에 대한 이견과 미래 전통문화예술 교육에 관한 소통 때문이었다.

 

 

지난 15일 청계광장 <전 국악인 문화재> 모습

 

현시대 우리 대한민국은 전통문화를 삶의 가치로 삼아 배우고 창작과 융합을 통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등 많은 사업과 정책으로 우리의 생활 수준을 높이고 있다.

 

온라인 콘텐츠로 대한민국 게임 산업을 세계에 알린 기업 넥슨은 지난 511, 12일 이틀간 제1보더리스 공연 : PLAY'이란 주제의 본 공연과 갈라 공연을 개최했다. 과거 넥슨의 비영리 재단은 공모전을 통해 게임과 전통예술의 만남이란 주제로 현대연희 prototype21’ ‘플레이 오케스트라(Play Orchestra)’ ‘보쏘(BOSS5)’ 등 세 팀을 뽑았고 양일간 넥슨의 대표 IP에 씻김굿, 마당놀이, 국악관현악 등 전통예술과 접목한 공연 콘텐츠를 선보이며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한류 게임 문화 콘텐츠 가치를 대내외로 알렸다.

 


넥슨재단 홍보동영상 / 넥슨재단 제공

 

또 다른 기업의 사업을 살펴보자. SK텔리콤은 국립극장과 협력해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에 각종 문화 행사가 가능한 '놀러와 국립극장'를 만들어 전통예술에 기반한 콘텐츠와 함께 디지털화 및 확산, 선도한다는 사업을 추진하였고 지난 429일 개관식을 통해 랜드 오픈식을 성대히 치륐다. 기업의 이러한 혁신적인 시도는 전통예술을 새로운 가치의 세계로 확산시켰고 민족의 정체성과 함께 경제적 창출을 포용한다는 성과를 이뤄냈다.

 


SK텔리콤 홍보사진 / SK텔리콤 제공

 

이러한 전통예술의 가치를 새롭게 융합 창출하고자 하는 민간사업이 있는 반면 국악인들을 거리로 나오게끔 유도한 안타까운 국가 교육정책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올해 말 확정·고시 예정인 <2022 개정 교육과정의 '국악' 전면 배제>라는 문건이다. 지난 421일 전국국악교육자협의회는 가장 먼저 졸속 개정 작업을 즉각 중단하라라는 규탄 성명을 발표했고 한국국악협회 등 130여개 관련 단체가 이어 함께 소신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지난 15일 국악교육 정상화를 위한 대규모 집회로 이어져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교육부가 공개한 문제의 ‘2022 개정 음악과 교육과정 시안을 살펴보면 성취 기준항목에 국악 관련 내용이 하나도 없다. 여기서 '성취 기준'이란 교육 목표를 의미하며 향후 변경되는 학교 수업과 평가, 교과서 편찬의 가이드라인에는 국악이란 단어가 배제되어 있다. 이러한 논란에 교육부는 "서양음악, 국악 등 장르를 구분하기보단 실생활 위주의 교육을 위한 개정 과정에서 국악이란 표현이 빠졌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각 나라에는 특수한 음악 요소와 개념이 내포된 자국의 음악이 존재함인데 그러한 독창성과 별개로 포괄적 수용으로 만들어진 음악교육의 정책은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물이 되어 국악인과 대중들에게 다가왔다. 예견컨데 교육 현장에서 우리 선조의 국악 더늠, 시김새, 간지, 성음 등 전통의 기교를 어떠한 서양음악 방식으로 표현하고 가르칠 것인가? 우리 전통음악의 독창적인 명칭과 표현 방법은 절대적이며 포괄적일 수 없다.

 


러시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음악원 아쟁교육 사진 자료


러시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음악원 단소교육 사진 자료

 

대한민국 미래 원동력인 전통문화는 무한한 잠재력과 창의력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한 사유로 민간기업과 정부는 애정을 갖고 다양한 전통예술 사업과 정책을 통해 특별한 대한민국을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이토록 서로의 방향성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드러내어 창출하고자 하는 의도와 포용하여 준용하고자 하는 의미는 다르다. 문제의 핵심은 어떻게 수용하고 지혜롭게 끌어내며 담아 가느냐가 관건이다. 전통은 불온한 혁신과 수용 속에 본질을 잃을 수도 있고 섣부른 융합과 무관심 속엔 사라질 수도 있는 정서적 매개체임을 잊지 말자. 그러므로 우리는 깊은 애정과 관심을 두고 올곧은 전승과 교육으로 전통예술을 소중히 지키고 이어가야 하겠으며 새로운 정부는 다양한 국민 여론 수렴과 함께 존중과 배려로 정책을 만들고 수립해야 하겠다.

 

<김용호 / 한국학 박사(Ph.D) 칼럼니스트 소개>

이날치의 손녀 이일주 명창에게 춘향가 사사. 박종선 기악 명인에게 아쟁을 배워 1999년 춘향제 전국국악대전 기악부 최고상인 대상을 수상. 국가무형문화재 제82-4호 남해안별신굿 이수자. 서울시무형문화재 제39호 아쟁산조 이수자. 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창작 및 표현활동지원 대상자전통음악부문에 선정. 2010년 독자적인 '아쟁' 주제 논문으로 한국 최초 아쟁전공 박사. 2012년부터 수년간 러시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음악원에서 한국 전통음악 Master Class와 연주회를 주도적으로 개최하여 주러시아 한국대사관과 차이콥스키음악원 간 MOU를 성사.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년간 체계적인 국악교육과 연주회를 시행. 경북도립국악단 악장, 국립부산국악원 초대 악장, 국립남도국악원 악장, 대구시교육청 대구예술영재교육원 음악감독, 전북도립국악원 교육학예실장을 역임했으며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주대사습청 운영위원, 전북일보 문화칼럼니스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위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심사위원, 예술경영지원센터 정부시상지원 현장평가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기에 앞서 그의 노트를 먼저 소개한다.

 

‘PAUSE / 황성준 작가 노트

 

고요를 담으려 했다.

고요의 순간,

드러남과 감추어진, 그 정지된 사이,

그 틈 속에 담겨있는 침묵의 의미를 탐색해 본다.

 

오브제들은 천에 씌워져 부분의 흔적만을 드러낸 채 화면에 정지해 있다.

여백에 감추어진 강한 잠재적 에너지는 존재 이전의 카오스의 세계를 암시한다.

손 때 묻은 물건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흔적들은 또 다른 기억이 되어 다가온다.

 

정지의 순간 속에는 측정할 수 없는 또 다른 시간의 흐름이 있다.

그것은 창조의 시간이자 소멸의 시간이다.

모든 것이 다시금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조건이 주어지는 것이다.

은색, 백색 그리고 검정은 그 새로움에 대한 무한한 공간을 은유한다.

 

프로타주로서 화면에 드러나는 흔적은 또 다른 실체와의 경계를 확인시켜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가상과 현실 사이에서 지금껏 상상치 못했던

새로운 존재의 가능성을 예감해 본다.‘ 

 


황성준. 1. PAUSE, mixed media, 2020, 87x67.5cm

 


황성준. 8. PAUSE, mixed media, 2020, 60x40cm

 

모든 만물은 그 정체성을 세상에 드러내고 있고 우리는 그 정체성의 모습이나 현상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인지한다. 그러나 그 만물이 어떤 물리적, 화학적 자극을 받으면 정체성을 잃고 다른 것으로 변하게 된다. 물이 수증기가 되고 항성이 초신성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이라고 강력하게 믿었던 것이 변하게 되는 순간 기존의 관념이나 사고체계가 무너지거나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런 카오스를 겪으면서 나를 돌아보고 새로움을 준비하게 하는 것들로 인간은 성숙되고 문명은 발전되어왔다.

 





황성준.  3,4,5,6 . Breath in Breath, mixed media, 2015

 

황성준 작가의 작품은 인간의 창의력을 고양시키는 작가로 보인다. 고정관념으로 보아왔던 어떤 것들을 다른 어떤 것으로 느끼게 하는 작가의 작품들은 관람자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거침이 없다. 이런 상상 자극을 여러 매체에서 설명할 때 기법이나 색채, 공간성, 여백과 형상의 구성 등등을 미술사적 관점이나 조형언어로 해석하려고 노력하지만 필자는 작가노트에 적시되어있는 흔적은 또 다른 실체와의 경계’ ‘가상과 현실 사이라는 작가의 말에 주목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두 개의 문장은 우리의 삶을 대변하는 말로 보이기 때문에 시사하는 바가 크게 느껴진다. , 황성준 작가의 작품은 조형언어를 넘어간 심리학적으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작품이 되었다는 판단이다. 감상자는 작품을 관람하는 순간에 견딜 수 없는 상상을 요구받는다. 마치 당신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돌아보고 예상하라는 명령과 같다.
 



황성준. 7-1.
7-2. Meta Seed, mixed media, 2019 25x25cm(each)

 

미래는 아니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우리는 늘 희망을 가지고 내일을 바라보며 어제와 오늘을 반추하는 나를 발견한다.

코로나사태, 4차산업혁명 등등 우리는 불확실성 시대에 살고 있지만 반추하는 삶의 진진함이 불확실의 미래를 좀 더 확실하게 대비할 것으로 본다. 

 


황성준. 2. Breath in Breath, mixed media, 2019, 47x40cm

 

114일까지 갤러리 초이에서 진행하는 황성준의 전시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타파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반추하며 상상하는 시간을 증폭시켜주기에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황성준. 10. PAUSE, mixed media, 2020, 144x126cm

 

황 성 준
 

 

1998    1998 San Francisco Art Institute Painting and Sculpture M.F.A

1985    1985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학과 B.A

 

개인전

2020 PAUSE (갤러리초이)

2020 PAUSE (시안미술관)

2019 PAUSE (갤러리 통인)

2019 PAUSE (갤러리 다함)

2016 Breath in Breath (R.Mutt 1917)

2015 Stone taught me to fly (정다방 프로젝트)

2015 Stone taught me to fly (팔레드 서울 갤러리)

2010 PAUSE (세줄 겔러리)

2009 PAUSE (진선 갤러리)

2008 ···경 영상전 (영은 미술관)

2007    2007 Beam in Biim (갤러리 빔)

2007    2007 흔적으로 흔적 (바움 갤러리)

2005    2005 (노암 갤러리)

2003 침묵의 시간 세우기 (경인 미술관)

2001 낮선 꿈 (영은 미술관)

2001 침묵의 시간 세우기 (금호 미술관)

2000 Anchovy 동판화전 (봄 카페 갤러리)

2000 “의 탄생을 위한 부화상자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1998 황성준 작품전(문예진흥원 미술회관)

1997 S.Joon Hwang Solo Exhibition(디에고 리베라 갤러리,샌프란시스코)

1995 2회 황성준 전 (한국갤러리)

1992 1회 황성준 작품전(인데코 화랑)

 

단체전

100여회 참가

 

수 상

1997-1998 캘리포니아 국제 장학금 (San Francisco Art Institute)

1998 David S. McMillan Award , SFAI 졸업전 최고상

1992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1988 중앙미술 대상전 특선

 

창작 스튜디오 프로그램

2003 아오모리 창작 스튜디오 프로그램 작가(일본, 아오모리 미술관)

2001-02 경안 창작 스튜디오 프로그램 작가(영은 미술관)

1999 쥬라시 창작 스튜디오 프로그램 작가(미국, 샌프란시스코)

 

작품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양평군립미술관

포항시립미술관

경인미술관

금호미술관

영은미술관

쥬라시 Sculpture Park(미국, 샌프란시스코) 

 

저번 주 연재에서 거론한바와 같이 현대미술은 신, 왕족, 귀족 등등의 계급사회 체제에 반기를 들면서 발전해왔다. 그 정신의 발전은 거대한 사회 담론에서 분화되고 미세화 되면서 최근의 현대미술은 개인의 사고를 일깨우는데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이번 연재는 현대미술을 통하여 우리는 어떻게 자기를 혁신하는 훈련도구로 삼을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현대미술의 탄생 배경

1789714일부터 1794728일까지 일어난 프랑스 혁명에 앞서 계몽사상은 프랑스의 사회적 변화를 견인하였다. 특히 루소의 문명에 대한 격렬한 비판과 인민주권론이 혁명사상의 기초가 되었다. 몽테스키외, 볼테르, 루소, 디드로 등에 의해 배양된 의식들이 프랑스 혁명을 만들었다면 에두아르 마네1863풀밭위의 점심’, 1865올랭피아의 두 작품으로 특수계층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작품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당시 미술계의 의식은 신, 왕족, 귀족 등등의 대상이나 아름다운 형상들을 전통적인 아카데미 화풍으로 그려야하는데 마네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들로 그림을 제작하였다.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올랭피아' 캔버스에 유화 130х1901863년 오르세미술관

올랭피아는 당시 대중에게 3가지의 충격을 줬다. ‘여신이 아닌 매춘부의 나체, 매춘부가 수치심도 없이 뻔뻔하게 관람객을 응시하는 시선과 표정, 아카데미 화풍과는 너무나 다른 입체감 없는 시체 같은 표현으로 프랑스 시민들에게 분노를 사게 되었다. 이 분노를 창출한 그의 반항적이고 돌출적인 생각들이 미래를 만들었다.

현대미술을 의식적으로 표출하고 조직화한 첫번째 그룹이 인상주의 화가들인데 모네·피사로·르누아르·드가 등등의 작가들이 마네의 의식과 표현법에 자극을 받아 자신만의 새로운 방식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간략하게 말하면 1886년까지 단체 활동을 했던 수십 명의 인상주의 화가들은 제 각기 새로운 표현법이나 소재를 찾았고 결과적인 그림도 다를 수밖에 없었으나 그들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을 수 있는 것은 시대가 원하는 것을 앞장서려는 태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시대와 주변에서 소재를 찾고 그 대상을 자기만의 해석법으로 솔직하게 시각화 하려는 점은 이후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현대미술 화가들은 대중에게 무엇을 묻고 무엇을 말하는가?

인상주의 화가들의 의식은 현대미술의 뿌리가 되었다고 누구나 생각한다. 이점이 매우 중요하다. 보통 얘기하는 100년전, 150년 전의 서양미술사를 말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수천 년간 닫혀있고 금기시되었던 개인의 생각과 권리를 표출한 사람들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뿌린 씨앗은 잘 자라서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 꽃을 피웠다. 특히 1960년대 이후 팝아트의 출현은 재크와 콩나무처럼 엄청난 속도로 자라 대중에게 인식되었으며 현재 미술계의 흐름을 완성시켰다고 볼 수 있다.

 

150년 전 인상주의 화가에서부터 현재의 화가들까지 주장하는 것은 시대가 원하는 것을 앞장서려는 태도이며 그 목적은 모든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전편에서 거론하였지만 우리나라사람들이 미술을 이해하는 주된 방법인 독화(讀畫)의 방법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여 모든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중시한다는 점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현대미술의 최고인기 작가인 제프 쿤스의 작품 가치를 판단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싸구려 고무풍선으로 만들 수 있는 토끼나 강아지를 거대한 스테인레스로 만들고 수천억에 달하는 가치로 인정하는 서구 미술계의 흐름을 파악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의 작품이 인정을 받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심미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우리가 하찮게 생각하는 것들이나 싸구려 물품도 우리의 삶에 모두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일깨워 줌에 있다. 소위 이발소 그림이라는 식의 저급하고 조악한 작품이라는 뜻을 가진 키치(Kitsch)’를 고급문화로 탈바꿈 시킨 점이 그들에게는 엄청난 자극이고 충격이었으며 인류가 가져가야하는 큰 가치로 생각하는 것이다. 


jeff koons with Rabbit 184억원에 낙찰​(왼쪽)

 

현대미술은 고정관념을 혁파하는 훈련의 최상위 도구

현대미술은 계몽사상과 프랑스 혁명에서부터 싹을 틔웠기 때문에 신()이 아닌 인간의 이성(理性)에 의해 의식이 형성되어야한다는 사상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성적 의식은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이 하는 사고법이 아니다. 미자각상태(未自覺狀態)에서 잠들고 있는 인간에게 이성(理性)의 빛을 비춰주는 일이다. 현대미술은 이런 자각을 느끼게 하는 자극제로 작동하고 있다. 현대미술을 설명할 때 과거를 부정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 이유는 잘 설명되지 않고 있다. 새로움의 추구 원인은 자각을 통한 이성적 인간이 되기 위함이다.

신학과 계몽사상이 대비되는 것도 죽음과 삶이다. 계몽사상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실천적 물음을 주되게 한다. 이러한 사상을 줄기차게 이어온 장르가 현대미술이다.

 

현대미술은 자연, 인간, 지혜, 교양, 삶의 태도 등등의 인간이 살아가며 접해야하는 모든 대상과의 교감을 통해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살겠느냐?’라는 물음을 더해서 묻고 있다.

 

필자는 이런 물음들이 현시대의 문제를 관통한다고 본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살면서 4차산업혁명이 가져오는 변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피해의식을 피력하는 경우가 많은데 4차산업혁명 또한 같은 맥락에서 발전한 현상의 호칭일 뿐이다.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살겠느냐?’라는 물음의 앞에는 이성(理性)적 인간이 원하는이라는 말이 생략된 것이고 이런 가치가 4차산업혁명의 산업으로 나타나는 것이라 본다. 그렇다면 4차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가치는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혁신이라고 바로 답을 낼 사람이 많을 것이다. ‘혁신의 원인은 산업을 발전시키고 돈을 벌기위한 수단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살겠느냐?’라는 질문 때문에 있다고 본다. 결국 질문과 답은 돌고 돈다.

 

혁신은 나를 인정하고 이해한 상태에서 남을 또는 외계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자세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다. 현시대를 잘 살기 위해서는 타자(他者)의 관점을 이해하려는 훈련이 필요하다. 현대미술은 이런 훈련의 도구로는 안성맞춤이다. 미술이론적 배경이나 미학적 판단력이 전혀 없어도 된다. 편안한 마음으로 현대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그 작품이 나에게 어떤 자극을 주는지만 받아들이면 된다. 그리고 그 자극에 의해 내가 무엇을 생각해봐야하는지를 따져보면 충분하다. 이런 경험이 누적되다보면 자연스럽게 이성적 인간이 되고 현시대가 가고 있는 방향과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계속> 

 

 

Kai Jun, 희망의 창NO.1​​, Oil on Canvas, 116.7cm X 72.7cm, 2011년 작

 

 

정진은 진진한 태도로 말하기 시작했다.

우선 우리나라가 포지티브 법체계로 발전한 것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광복이후에 할 일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세계에서 3번째의 극빈국이 경제적인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죠. 자원도 없고 힘도 없는 나라는 선택지가 별로 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정치, 행정에 있어 자율성보다는 국가의 발전방향성에 국민이 맞추는 형국이었습니다. 국가는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철저하게 규정 지었으며 그 방법 안에서 국민들은 성실히 자기 업무에 최선을 다하여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의 상황으로 보면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세상이 변하여 지금은 이 방법이 적합도가 떨어진 것이 문제입니다.”

정진은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시민운동가들이 국회의원의 활동을 통제하면서 규제문제는 더 확대 되었습니다. 저도 규제문제를 확대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아픕니다. 규제국가, 규제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이유 중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국회의원의 활동이 너무 적극적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정진의 말에 대부분의 참석자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국회의원이 일을 적극적으로 해서 문제가 생겼다는 말이 도대체 이해가 안 갔다. 숱한 날들을 국회에서 싸움만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언제 무슨 일을 그렇게 적극적으로 했다는 말인지 말이다.

미영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정진에게 질문을 했다.

좀 더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 부탁드립니다. 국회의원이 적극적으로 일을 해서 문제가 생겼다는 말이 뭔가요?”

 

그때 전 국회의원을 지낸 도호진씨가 일어섰다.

저는 국회의원을 한번 한 사람으로서 지금은 국회를 떠났지만 애국심은 변함이 없습니다.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청년들이 모였다는 말을 듣고 작년부터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저의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장내는 다시 진지한 분위기가 흘렀다.

 

도호진 전 국회의원은 용어부터 정리해주었다. 포지티브 제도(Positive System)이것만 해라식의 규제우선 제도이며 네거티브 제도(Negative System)이것만 하지 마라식의 자유우선제도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이것만 해라의 제도이므로 자율성이 떨어지는데 이것만 해라제도가 문제가 된 이유는 규제가 너무 많아서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규제가 현재 13천개를 넘어섰다.

 

규제가 많아진 이유는 크게 3가지이며 첫째는 획일화된 국회의원 평가방법이라고 한다. 국회의원이 재선을 위해 선거에 다시 출마하려면 공천을 받아야하는데 일반적인 평가방법이 계속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의 업무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본회의 출석률, 상임위 출석률, 대표 발의건수, 가결건수 등등이 적용된다. 이 정량적 평가의 허점이 문제를 키웠다는 것이다. 국민에게 얼마나 필요한 법안이냐를 신중하게 따지는 정성적 평가가 아닌 수치상으로 얼마나 일을 했냐를 따진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임기 중 마지막 해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법안이 발의된다. 그중에서 가결이 쉬운 것이 공업·규격·계량 분야가 대안반영 포함 80%되는데 이런 산업에 관련된 세부 규정들이 많아지면서 현재 산업의 융복합 자율성과 어긋난다는 문제다.

 

두 번째로는 산업이 융복합적으로 이루어지다보니 정부의 주무부서 모호성으로 이중적 기준이나 규제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현재는 각 산업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가 나눠져 있지만 앞으로는 모든 산업에 5G 이동통신,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등이 결합되어야하는데 자율주행차, 무인점포, 인공지능 의료, 증강현실 패션 등등 현재 산업이 4차산업혁명의 기술과 결합하여 진화된 산업에서는 주무 부서를 구분할 수 없다는 문제이다. 즉 과도기인 현재는 4차산업혁명에 관련된 산업 대부분은 위법한 상태로 노출된다는 것이다. 아니라면 우리나라의 모든 산업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관리해야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국민의 관심분야라고 지적한다. 입법부의 담당자가 국회의원이므로 국회의원을 뽑을 때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 일을 할 사람을 뽑아야하는데 국민의 관심이 이념이나 사상이 자신의 관심사와 같은 사람을 뽑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회의원이 하는 일중에서 언론에 주로 비춰지는 내용은 이념이나 사상적 바탕을 둔 사건들이 주로 방송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민의 삶을 좌우하는 것은 경제적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산업을 일으킨 국회의원은 방송에 조명되지 못하고 이념적으로 잘 싸운 국회의원이 부각된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산업을 일으킬 법안을 잘 만들어야 국민의 삶이 좋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을 평가하고 심판하는 국민이 국회의원의 평가를 잘못한다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도호진 전 국회의원의 발언이 끝나자 장내는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국회의원의 잘잘못을 성토하는 사람, 정부의 무능을 성토하는 사람, 자기를 비판하는 사람 등 여러 가지의 이야기가 장내를 웅웅거리게 만들었다.

 

장내가 소란스러워지자 의장인 태성이 발언자를 다시 지목했다. 사업가인 최영석 대표가 발언을 했다.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저도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IMF사태 이후에 벤처를 시작하여 지금까지 사업을 하고 있는데 빚만 엄청나게 많습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강남의 건물을 팔아 10억 정도 마련하여 사업자금으로 활용했습니다. 만약 그 건물을 팔지 않았다면 지금 몇 백억 원은 되었을 겁니다. 사업을 하면 할수록 빚이 많아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사업의 환경이 참 안 좋습니다. 2000년대 이후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규제개혁을 외쳤지만 한 번도 해결된 적은 없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기대감이 있었고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서 일을 하면서도 정부에 기대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오늘 알게 되었습니다. 정부에게 바랄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태 정부 탓만 했습니다. 정부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가 바로 서려면 국회의원을 잘 뽑아야하는군요. 저는 기업을 다시 반석위로 올려야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 회사의 직원들과 관련 기업들의 직원들에게 오늘 들은 내용을 알리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선거에서는 기업과 경제를 살리는 후보를 지지하겠습니다. 그동안 뽑은 국회의원들 생각하니 후회가 많이 됩니다.”

 

최대표의 발언이 끝나자 도호진 전 국회의원이 다시 발언하였다.

최대표님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이런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비관만 할 것은 아닙니다. 최근 우리 단체 외에도 국회의원의 의정활동 평가를 혁신적으로 만들어 진행하는 청년단체가 있습니다. 그들이 만든 의정혁신 평가 방식은 4차산업혁명시대 경쟁력 강화 등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한 혁신 법안, 국회의원의 대국민 성실도, 국민의 질적인 삶과 밀접한 민생 혁신 법안, 각 분야의 혁신 관련 법안 발의 현황, 국민과 국가를 위해 매우 필요한 법안임에도 제반 여건 미비로 통과되지 못한 폐기 법안, 기타 정량평가, 기타 정성평가 등 7대 부문과 하위 10개 항목, 80개 세부지표를 평가해, 최고평점 국회의원, 창의력우수평점 국회의원, 최우수평점 국회의원 등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 순위를 매긴다고 하는데 과거의 의정평가보다 정성적 평가를 하므로 많이 개선되었다고 봅니다. 이런 청년 단체의 움직임은 더욱 활성화 되어야 하며 구체적으로 경제를 혁신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인허가 요건의 구체화 및 명확화, 중복규제의 금지, 국민불편해소적 규제로의 전환, 협력적·자율적 규제방식의 적극 활용, 규제비용의 명확한 반영, 현실적 규제로의 전환, 의원입법의 사전규제영향분석 및 규제일몰제 도입, 규제총량제를 넘어 규제감량제 도입, 청부입법의 원칙적 금지 등을 제안 해야합니다.”

 

도호진 전 국회의원의 발언 이후로 국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국민들이 어떻게 노력해야하는지 국민의 실천사항은 무엇인지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4부 끝-

그들이 만들어 갈 희망의 나라. 다음편도 기대해 주세요.

 

 

Kai Jun(전완식)

30여 년간 인물화를 중심으로 회화 작업에 열중하였다. 인물화에 많은 관심을 둔 것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 또한 인물을 그리기 위해 대상의 정신세계를 그림 안에 투영하려 노력하였다. 인물화를 넘어 진정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간의 감정과 감성을 다룬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주요 미술경력은 국내외 개인전 27회 단체전 80여회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위치에 따른 형상 변화 신비510년 만에 재현 -대한민국 7번째 대통령 인물화 작가(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소장 / 문재인, 트럼프 대통령 청와대 소장) -Redwood Media Group 글로벌 매거진(뉴욕 발행) ‘아트비즈니스뉴스표지 작가 및 뉴트랜드 작가 15인 선정 -미국 행정/정책학 대학원 석,박사 과정 강의 자료로 작품 선정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운영위원, 기획위원 -대한민국 미술인의 날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장 -광복70주년 국가 행사 대표작가(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및 서울도서관 전시)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기원 전시행사 대표작가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학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산업대학원 졸업하였다.

현재 한성대학교 ICT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미술협회 이사, 설치미디어아트분과 부위원장, 국가미래연구원 문화예술체육 연구위원이다. 

 

Kai Jun, 희망의 창NO.3​​, Oil on Canvas, 116.7cm X 72.7cm, 2011년 작

창수가 네거티브 법체계 전환의 의견을 내었고 참석자들은 대체적으로 동의를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나라의 법체계는 포지티브 법체계로 되어있다. 법으로 허락된 것만 할 수 있는 방식이어서 법 환경이 산업보다 선제적인 구성이 되어야하는데 산업의 발달 속도가 더뎠던 과거에는 이 방식이 효과적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이뤄지고 있는 융복합적인 산업과 4차산업 혁명에 포함되는 산업들은 법이 선제적 환경을 만든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입법에 관련된 사람들은 국가적 대 혼란을 운운하며 반대를 한다.

 

행정학을 전공한 제훈이 반대 의견을 내었다.

대한민국은 이미 70여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이며 기존 법체계로 모든 국민이 익숙해져 있는데 갑자기 법의 기본 개념까지 바뀌는 변화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인데 이런 큰 변화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또한 우리가 논의하고 결정한다고 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제훈의 말에 회의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네거티브 법체계 전환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동의하던 분위기에서 회의장은 순간적으로 무기력해졌다.

이유는 이미 수년 전부터 많은 경제인들이 네거티브 법체계 전환에 대한 의견 개진이 있었고 이에 대하여 규제 샌드박스 등의 개선안을 냈지만 결과적으로 일부의 변화만 있었지 큰 틀은 변함이 없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전반적으로 팽배되어있는 의욕상실의 국가적 분위기였다. 회의장에 나온 사람들조차 의욕이 많이 상실 된 상태였다.

 

술렁이는 회의장 분위기를 의장인 태성이 다시 잡으려 애썼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방금 말씀 주신 내용은 많은 분들이 우려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개선을 위한 깊은 고민이 이 자리에서 일어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해야 합니다.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직 힘은 없지만 지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혜를 통해 힘을 만들면 됩니다. 지혜를 모아 주십시요!”

태성의 말에 이번에는 미영이 발언을 했다.

 

어려움은 있겠지만 이미 4차산업혁명에서 상당히 밀려있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합시다. 유전공학이나 크리스퍼 기술에서 세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데 생명윤리법으로 사업화 하지 못하는 회사가 한둘이 아니며, 선점한 드론 기술이 각종 규제로 사그라든지 오래되었으며 공유경제는 발도 못 붙이는 상태입니다. 청년실업의 문제도 이와 연관이 있습니다. 대학에서 최첨단의 학문을 연구한 학생들이 취업할 기업이 없습니다. 모두 규제로 인해 연구소의 범위를 넘어가지 못하니 어떻게 취업을 하겠습니까? 중소기업들은 기술을 사업화하지 못하여 결국 해외로 나가고 있습니다. 말기 암 환자와 같은 우리 경제 상황 속에서 못할게 뭐가 있나 싶습니다.”

미영은 강하게 발언을 했다. 미영은 어려서부터 사회 시스템이 국민을 편안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강했던 사람이다. 그녀는 로펌에 근무하며 접했던 문제들을 더 열거하였다.

산업의 지형이 변하였습니다. 한 가지만 잘해서 되는 시절은 지나 간지 오래되었으며 융복합이 기본입니다. 또한 누구를 막론하고 사회적 이익을 발생시킬 수 있는 것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 시스템으로 변한지 오래되었습니다. 이런 변화가 자연스럽고 편안한 환경인 해외 선진국에 비하여 우리나라는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사업화 할 수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기업지형도에서 허가를 받기위해 몇 개월에서 몇 년을 기다려야하는 우리나라는 뒤쳐질 수밖에 없습니다.”

미영은 작심한 듯 성토를 하였다.

 

창수도 다시 발언하기 시작했다.

제가 몇 년간 국회의 입법 현황을 분석해보니 접수된 것이 15대국회 1951, 162507, 175024, 18대 국회 13,913, 19대 국회 17,822, 20대국회 23,048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많은 입법 내용 중에서 공업·규격·계량 분야가 대안반영 포함 80%의 가결률을 보였습니다. 그중에서 20대 국회의 경우 규제 법안 발의 건수는 3773건으로 하루에 3개꼴로 규제 법안이 발의됐고, 이 가운데 1개는 통과되었습니다. 모든 법이 규제를 위한 것은 아니겠지만 규제안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산업은 발목을 잡히는 꼴이 되겠지요. 어찌 15대 국회의 총 입법 발의 건수보다 20대 국회의 규제법안 발의가 2배로 많은지 이해가 안 됩니다.”

 

창수의 발언에 미국에서 기업을 하는 종석이 거들었다.

저도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기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유학을 어려서 갔기에 미국식으로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미국에서 배우고 느낀 것들을 한국에서 펼쳐보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특히 제가 가진 신기술을 한국에서 실현시키기 위해 귀국하여 조그만 기업을 일으켰는데 앞서 말씀하신 분들의 얘기처럼 규제 장벽에 막혀서 3년간 고전하다가 결국 실리콘밸리로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이라도 부모님이 계시는 한국에서 기업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돌아오고 싶은 마음입니다.”

 

종석의 말은 현실을 말하는 것이었다. 종석의 말이 끝나자마자 재희도 일어나 얘기하기 시작했다.

저는 어려서 생명공학자로 살겠다는 결심을 하고 수십대일의 경쟁률을 뚫고 대학을 입학하여 성실히 공부했으나 지금은 학원에서 생물과 수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학생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도 속으로는 대학가면 뭐하나 취직할 곳도 없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한 마음이 강하게 듭니다. 어서 현실적인 국가 운영의 방안이 나오지 않으면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의장 열기는 다시 뜨거워졌다. 다소 흥분한 사람들도 보였고 골똘히 생각하는 사람들도 여럿 보였다.

나이가 조금 많아 보이는 중년의 사나이가 일어나더니 발언하기 시작했다.

저는 상당기간 국회에서 보좌관 일을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법안 발의 건수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와 관련 있는 주요국 중에서 법안 발의 건수는 한국이 23048건으로 가장 많고, 미국 115대 의회는 13556, 영국은 2010~2015년까지 890, 일본 3차 아베내각은 626건입니다. 가결 건수 역시 우리나라가 6527건으로 가장 많고, 미국 443, 일본 250, 영국 182건 순입니다. 이 많은 법은 생활환경에 큰 지장을 줍니다. 법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개인이나 기업가들은 환경이 바뀌는 것과 같습니다. 변경되는 대학 입시법으로 학생들이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계시는 모든 분들이 이미 경험을 해보셨을 겁니다. 그런 환경 변화가 기업에게 주어지면 기업은 새로 기업환경을 조성해야하니 어려움이 있겠죠. 선진국일수록 법을 바꿈에 있어 신중하게 법을 다룹니다. 그 신중해야 할 법에 규제까지 더해지니 어려움은 심각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지금까지 발언하신 분들의 얘기 모두 공감하고 있습니다.”

보좌관 출신의 정진이 말을 끝내자 태성이 정진에게 질문을 했다.

정진님께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태성의 질문에 정진은 숨을 고르며 발언하기 시작했다.

 

-3부 끝-

그들이 만들어 갈 희망의 나라. 다음편도 기대해 주세요.

 

 

Kai Jun(전완식)

30여 년간 인물화를 중심으로 회화 작업에 열중하였다. 인물화에 많은 관심을 둔 것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 또한 인물을 그리기 위해 대상의 정신세계를 그림 안에 투영하려 노력하였다. 인물화를 넘어 진정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간의 감정과 감성을 다룬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주요 미술경력은 국내외 개인전 27회 단체전 80여회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위치에 따른 형상 변화 신비510년 만에 재현 -대한민국 7번째 대통령 인물화 작가(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소장 / 문재인, 트럼프 대통령 청와대 소장) -Redwood Media Group 글로벌 매거진(뉴욕 발행) ‘아트비즈니스뉴스표지 작가 및 뉴트랜드 작가 15인 선정 -미국 행정/정책학 대학원 석,박사 과정 강의 자료로 작품 선정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운영위원, 기획위원 -대한민국 미술인의 날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장 -광복70주년 국가 행사 대표작가(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및 서울도서관 전시)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기원 전시행사 대표작가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학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산업대학원 졸업하였다.

현재 한성대학교 ICT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미술협회 이사, 설치미디어아트분과 부위원장, 국가미래연구원 문화예술체육 연구위원이다.

 

작품 소개

정조 이산이 살던 시대에 대한 궁금증으로 그 시대의 실상을 보여주는 신윤복의 그림을 여러 번 살폈던 적이 있다. 신윤복은 정조의 할아버지인 영조때 태어나서 정조때에 왕성한 활동을 했던 화원이다.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 김홍도, 김득신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 풍속화가로 지칭된다. 특히 양반층의 풍류와 남녀 간의 연애, 기녀와 기방의 세계를 보여주는 그의 그림은 현시대에서 당시를 이해하는데 매우 큰 자료가 된다. 그의 아버진 신한평도 조선시대 대표적인 화원이다. 영조, 정조, 순조 초년까지 활동했으며 특히 초상화와 속화에 빼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는 신한평의 이름이 정선강세황김홍도심사정등과 나란히 기록되어 있다.

 

신윤복의 그림을 통해 정조 시대의 생활상을 알고 기뻐했던 감흥을 그에 대한 오마주로 미인도를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하였다. 

  

 

화가: Kai Jun/ 제목 : 한국인 시리즈 NO.8- 신윤복 미인도 재해석/ 유화/ 162.2cm X 130.3cm/ 2018

 

신윤복 [申潤福]

1758 ~ ?

"신윤복(申潤福). 자 입보(笠父), 호 혜원(蕙園), 고령인(高靈人). 첨사(僉使) 신한평(申漢枰)의 아들, 화원(畵員). 벼슬은 첨사다. 풍속화를 잘 그렸다."는 오세창(吳世昌)[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에 기술되어있는 것이 신윤복에 대한 문헌상 기록 내용 전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에 와서 그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아마도 유교 사회였던 조선에서 춘화와 기생 그리고 양반의 이탈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해학적 표현을 거침없이 했다는 틀에 박힌 조선시대를 깨보려는 그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림의 수준은 그 누구와도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잘 그렸으며 다른 화원들과 다르게 색채의 다양성과 표현의 섬세함이 두드러지기도 한다.

신윤복은 아버지 신한평과 김홍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친척들이 중인이어서 다양한 계층의 일을 한 것도 영향을 받은듯하다. 특히 구하기 어려운 채색 안료를 사용한 점도 친척들의 지원이 있었다는 방증이다.

과거보다 오히려 현대적 감각이 넘쳐나는 그의 표현은 해학적 구성으로 더욱 빛을 발한다. 가늘고 유연한 선과 원색의 산뜻하고 또렷한 색채사용, 현대적인 구도와 독특한 상황 설정으로 조선시대 풍속화의 격과 영역을 크게 확장하였다. 

 

제작 방식

신윤복의 미인도를 좌측 벽면에 배치하고 방안에 미인이 환생한 것과 같은 형상으로 표현하였다. 신윤복의 미인도에서 보이는 복식과 포즈를 동일하게 하였으나 인체 비례의 안정감을 만들기 위하여 두상의 크기는 일반적인 서양화 방식과 유사하게 7등신으로 하였다. 얼굴 내부의 눈코입 비례도 가능한 선에서 동일 비율로 구성하였으나 모양의 마무리는 현재 인기 아이돌들의 눈코입 모양을 활용하였다.

배경인 방은 중인 가정의 방을 상상하여 표현하였다. 화려함이 없이 수수한 방안 가구 등으로 배치하였으며 핵심인 신윤복의 미인도와 환생한 여인의 모습이 크게 부각되도록 구성하였다. 


미술 용어의 이해

화원 : 도화서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에 종사하는 잡직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도화서의 화원들이 실제로 맡아서 그려낸 일들은, 감계화(鑑戒畵교민화(敎民畵장식화(裝飾畵사대의례도(事大儀禮圖제례도(祭禮圖의장도(儀仗圖세화(歲畵경직도(耕織圖지도(地圖불화(佛畫포응견본도(捕鷹見本圖초상화(肖像畵지형실경도(地形實景圖실경산수사생도(實景山水寫生圖감상화(鑑賞畵모사(摹寫사생(寫生) 등이다.(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가의 대소사를 기록하는 업무를 담당하였으며 그들을 현재와 비교해보면 다큐멘터리 작가나 사진가 등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인 시리즈 NO.8- 신윤복 미인도 재해석작품의 부분

 

Kai Jun(전완식)

르네상스시대부터 신고전주의 시대까지 활동했던 유럽 궁정화가들의 기법을 연구하였으며 그들이 만들어 냈던 화려한 기법을 활용한 독특한 인물화의 표현법을 개발하였다.

이에 대한 평가는 20094월 미국 최대 미술 산업 그룹 Redwood Media Group의 글로벌 매거진(뉴욕 발행) ‘아트비즈니스뉴스표지 작가 및 뉴트랜드 작가 15인에 선정되었다. 또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위치에 따른 이미지 변환에 대한 표현을 510년 만에 재현한 화가이다.

 

201512월에는 광복 70주년 국가 행사의 대표작가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전시를 했었다. 현재 한성대학교 교수이며,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학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산업대학원을 졸업하였다.

 

2018314일부터 20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Kai Jun의 인물전'을 한다. 본 연재 작품도 포함된 전시이다. 

작품 소개

인물화를 그리며 우리나라 미녀에 대한 생각을 했었다. 우리는 미녀를 논할 때 남남북녀(강계·회령·함흥미인)라는 속설을 말한다. 그런데 전래되어 내려온 속설과는 별개로 현대적 미의 기준으로 보면 대구미인이 으뜸으로 뽑히고 있다. 근대 이후 연예계나 미의 사절 역할을 휩쓸고 있다.

? 속설과 다르게 대구미인이 주목받는지에 호기심이 생겼다. 과학적 검증이나 역사적 검증이 안 된 시절에는 사과를 많이 먹어서 사과 미인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역사서를 보면 다른 이유가 있어 보인다. 신라의 자장이 중국유학시절 문수보살에게 불법을 전수받을 때 문수보살이 한 말을 보면 신라의 왕족은 인도의 왕족이라는 말이 나온다. 문수보살이 황룡사에 9층 석탑을 지을 것을 권유하여 자장이 이를 전하고 선덕여왕이 건설한 일화는 삼국유사황룡사찰주본기에 자세히 나와 있다. 또한 KBS방송으로도 널리 알려진 신라인은 흉노족의 후예인가?’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신라인의 지배계층이 스키타이인과 매우 흡사한 DNA구조를 가졌다고 방영하기도 했었다. 페르시아의 대서사시 쿠쉬나메의 중심 내용은 멸망한 페르시아의 왕족이 망명생활을 하다가 연관성이 있는 신라로 와서 신라공주와 결혼하고 그의 아들이 지금의 이란으로 돌아가 전쟁을 일으켜 다시 왕권을 회복한다는 내용이다. 쿠쉬나메를 연구하는 한양대 이희수교수의 경향신문 기고를 보면 매우 흥미롭다. 이뿐만이 아니라 삼국사기를 보면 서기 342년 흉노족의 일파인 선비족 모용황55천의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북쪽으로 침공 15천 남쪽으로 침공한 4만 중 북쪽 부대가 남하하여 신라의 김씨 왕조를 만들었다는 가설도 제기되고 있다.

 

각설하고 현재 경상도에 미인이 많고 빼어남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법 한데 이런 저런 이유를 생각하여 신라의 미인 설화 중 선덕여왕을 사모한 지귀전설을 모티브로 신라의 미인을 그려보았다. 골격과 기본적인 인체 구조는 대만 고궁박물원 소장 당염립본왕회도의 신라 사신도를 참고하였다. 신라사신의 모습은 다른 사신보다 젊고 오뚝한 코와 큰 눈, 두상 및 골격 구조가 조금은 서양인스럽다. 지귀설화의 등장하는 선덕여왕의 나이는 50세이지만 매우 뛰어난 미모로 지귀가 짝사랑했다는 내용을 바탕으로 동안으로 제작하였다. 배경 및 전체적인 색상은 지귀가 불의 화신이 된 모습을 연결하여 표현하였다.

 


화가: Kai Jun/ 제목 : 한국인 시리즈 NO.6-신라의 미인/ 유화/ 90.9cm X 72.7cm/ 2018

 

선덕여왕과 지귀 설화

선덕여왕은 너무나 많은 자료가 나와 있으므로 생략하고 본 작품의 모티브인 지귀 설화만 요약한다.

 

지귀가 서라벌에 갔다가 지나가는 선덕여왕을 보았다. 그런데 여왕이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그는 단번에 여왕을 사모하게 되었고, 끝내 미쳐버렸다.

어느 날 여왕이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가는 도중 지귀가 쫓아오고 여왕은 지귀가 자신을 사모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귀를 절에 함께 가도록한다. 여왕이 절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동안 지쳐있던 지귀는 탑 아래에서 잠이 들고 만다. 기도를 마치고 나오던 여왕은 지귀의 잠자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며 자신의 금팔찌를 지귀의 가슴에 놓고 간다.

잠에서 깬 지귀는 여왕의 금팔찌를 발견하고 더욱 더 사모의 정이 불타올라 불귀신으로 변한다. 지귀가 불귀신이 되어 선덕여왕의 지나간 자리를 떠돌아다니다가 온 세상이 불바다가 되고 사람들은 두려워하게 되었다. 이에 선덕여왕이 불귀신을 쫓는 주문을 지어 문에 붙이도록 하였다. ‘지귀는 마음에서 불이 일어 몸을 태우고 화신이 되었네. 푸른 바다 밖 멀리 흘러갔으니 보지도 말고 친하지도 말지어다.(志鬼心中火, 燒身變火神, 流移滄海外, 不見不相親)’ 이후 선덕여왕의 뜻을 따른 지귀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당염립본왕회도>에 나타난 신라 사신도와 신라의 미인 작품 부분

 

 

Kai Jun(전완식)

르네상스시대부터 신고전주의 시대까지 활동했던 유럽 궁정화가들의 기법을 연구하였으며 그들이 만들어 냈던 화려한 기법을 활용한 독특한 인물화의 표현법을 개발하였다.

이에 대한 평가는 20094월 미국 최대 미술 산업 그룹 Redwood Media Group의 글로벌 매거진(뉴욕 발행) ‘아트비즈니스뉴스표지 작가 및 뉴트랜드 작가 15인에 선정되었다. 또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위치에 따른 이미지 변환에 대한 표현을 510년 만에 재현한 화가이다.

 

201512월에는 광복 70주년 국가 행사의 대표작가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전시를 했었다. 현재 한성대학교 교수이며,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학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산업대학원을 졸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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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소개

 의로운 한국여성을 생각했다. 여러 여성인물 중 과거 진주성 방문에서 느꼈던 논개가 가장 강열하게 떠올랐다. 논개의 심리를 표현하기 위한 다양한 표현을 하던 중에 우리나라의 역사를 되짚어봤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의병의 활동이 매우 많은 의병의 역사이다. 논개가 의로운 여인의 대표격이라면 그와 함께한 사람의 정신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논개를 그리다말고 논개의 남자를 떠올렸다. ‘최경회대단한 업적과 인품을 가진 사람이다. 작품은 최경회 장군의 의병 시절 무주대첩을 승리로 이끌어내려는 강한 의지가 있었던 상황을 상상하여 그렸다. 관군이 아니기 때문에 사복으로 만든 군복이었을 것으로 생각했고 그의 나이가 60이었지만 평소 활쏘기에서 능하여 선조 앞에서 활쏘기 시합을 할 때 장원을 한 사례와 진법에도 능했던 것을 보면 신체 단련도 상당히 열심히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외모를 강인하고 조금은 젊은 느낌으로 제작하였다.

 

1편에서 이순신 장군을 간단하게 설명했는데 이순신 장군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최경회 장군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 못하여 좀 더 자세히 설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경회와 같은 의로운 사람들이 있어 우리가 있다는 고마움을 느낀다. 

 


화가: Kai Jun/ 제목 : 한국인 시리즈 NO.4- 논개의 남자. 최경회/ 유화/ 72.7cm X 60.6cm/ 2017

 

최경회 소개

최경회에 관한 기록은 많이 있으나 논개에 대한 문헌적 기록은 매우 미흡하다. 그 부족한 부분을 해주 최씨 승지공파의 17세손 최경회의 부실(副室)로 기록 된 족보와 최경회에 대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논개의 구전 내용을 결합하여 구성하였다.(논개의 구체적인 설명은 다음 편에)

 

최경회(崔慶會) : 선우, : 삼계, 별호: 일휴당

1532년 화순 삼천리 태생/1561년 신유 식년시 생원 급제/1561년 신유 식년시 진사 급제/1567년 정묘 식년문과 을과 급제/1574년 성균관 전적, 사헌부 감찰, 형조좌랑, 옥구현감(송덕비 건립)/1577년 장수현감(선정비 건립)/1579년 무장현감(송덕비 건립)/1582년영암군수(송덕비 건립)/1584년 호조정랑, 형조정랑, 영해부사(영해고을민이 생사당을 세움)/1587년 사도시정, 담양부사(선정비 건립)/1590년 모친상으로 관직 사직/1592년 임진왜란 전라우의병장/1593년 경상우도병사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

최경회는 문신이며 의병장이다. 그의 생은 백성을 위한 삶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옥구현감 시절부터 고을민들이 자진하여 송덕비와 생사당을 지을 만큼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다. 국난이 나자 나라를 구하기 위한 사명감으로 목숨을 바쳐 싸웠으며 혁혁한 전과를 이룬 대장군이다. 그의 충의에 대한 신념과 실천은 주변인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함께 동참 할 수 있는 큰 믿음을 주었던 훌륭한 리더임이 분명하다.

 

그의 업적과 관련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590년 모친의 상으로 낙향하여 지내던 중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난다. 그는 이제 부모님이 다 돌아가셨으니 내 몸을 나라에 바쳐도 된다. 부모에게 하던 효도를 나라에 충성으로 바치리라.“하며 형 최경운, 최경장, 아들 최홍기, 조카 최홍재, 최홍우 6명이 힘을 합쳐 화순 삼천리에 의병청을 설치하고 각 고을에 격문을 띄워 의병을 모집하고 전라우의병이라 칭하였다. 조카 최홍재를 금산의 고경명(高敬命. 문인·의병장) 휘하로 보냈으나 고경명장군이 이미 전사한 후로 그의 휘하였던 남은 병력 800여명을 수습하여 전라우의병에 편입시켰다.

전라우의병은 한양으로 가서 근왕하려하였으나 전라감사 권율으로부터 전라도 방어를 책임져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전라우의병은 장수를 주둔지로 하여 금산, 무주 등지에서 왜군과 싸워 큰 승리를 거둔다. 금산전투에서는 짙은 밤안개를 이용하여 볏짚을 병사로 위장하고 적의 화살과 탄환을 소비하게 했다. 어둠이 개이고 날이 밝아올 때 공격하여 크게 승리한다. 그는 탁월한 감각과 현감 시절 고을의 안녕을 위한 노력으로 각 고을을 샅샅이 살피고 있었던 경험으로 지리에도 밝았다. 그는 장사진, 어관진, 조운학익진 등의 진법을 지리적인 이점을 활용하여 기습작전 및 매복 작전으로 적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1592년 왜군이 진주방향으로 진격한다는 첩보를 받고 의병을 매복시켜 공격하며 큰 타격을 입힌다. 이 전투를 무주대첩이라 한다. 이 승리 이후 장수에서 남원으로 주둔지를 옮긴다. 남원에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을 때 영남의병장 김면과 경상우도관찰사 김성일이 원군을 요청하였다. 이 요청에 그의 부장들과 고을민들은 적군의 기세가 사방으로 뻗치고 있는데 호남을 버리고 멀리 영남으로 간단 말입니까라는 말을 하였다. 이에 영호남의 마음을 하나로 잇는 위대한 말을 남긴다. “嶺右我國之地 湖南我國之地 영남도 우리 땅이요, 호남도 우리 땅인데 의로써 일어난 사람들이 어찌 영호남을 가리겠는가.' 라며 영남으로 출병하여 159210월 진주성 1차 전투 외곽 지원담당을 맡는다. 왜군 2만 여명을 상대로 진주목사 김시민과 진주성 군사(38백명) 주민(수만명), 정유경(300), 조응도/최강/이달(500), 정기룡(300), 상대승/정언충(200), 최경회/임계영/김준민(2000)의 관군과 주민 의병이 힘을 합쳐 진주성 1차 전투(진주대첩)를 대승리한다.

 

전라우의병은 거창에 주둔하며 영남의병장 김면과 합동 작전으로 개령에서 왜군을 몰아내고 1593115일에 성주성을 탈환한다. 이후 고령의 김면과 김성일이 전염병으로 죽자 조정에서는 421일 조정에서는 최경회를 경상우도병사로 임명한다. 선조실록 371593421일의 기록을 보면 비변사가 말하기를 최경회는 무신이 아니지만 이미 여러 번 전공을 세워 명성이 크게 드러나고 재능도 책임을 감당할 만합니다. 그리고 그가 거느리고 있는 호남의 의병이 이미 그와 친숙해 있으니 사변이 안정될때가지 직을 맡겨도 되겠습니다.“ 라는 기록이 있다.

 

이 무렵 조선에서는 구원군인 명나라와 1년간 전쟁으로 피폐해진 왜군사이에 화의가 성사된다. 그 결과 왜군은 북부 및 수도권 지역에서 철수, 남해안까지 물러나게 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 과정에서 왜군 전군에 진주성을 공격할 것을 명령한다. 1차 전투에서 참패로 위신이 손상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36월 가토 기요마사, 고니시 유키나가, 우키타 히데이에 등에게 복수전을 하도록 특별히 명령을 내렸다. 왜군은 615일부터 작전을 개시하여, 18일까지 경상남도 함안, 반성, 의령 일대를 점령하고, 19일에는 37000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진주성을 공격한다.

 

거의 모든 왜군 병력이 진주성 한 곳에 집중 공격을 가했기 때문에, 진주 근처 대구에 주둔하고 있던 명군은 진주성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왜군 측에서도 고니시 유키나가가 히데요시의 의지가 확고하여 진주성만은 함락시키지 않을 수 없으니 차라리 자신들이 공격하기 전에 민간인들을 모두 내보내라고 권고할 정도였다. 곽재우, 선거이, 홍계남 등 조선군도 진주성 근교까지 갔다가 절대적인 병력차를 확인하고 진주 구원을 포기했다. 그러나 진주성에 주둔하고 있던 조선군은 진주는 전라도로 넘어가는 길목이기에 진주만 공격하고 돌아간다는 왜군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며 성을 포기하라는 명군과 왜군의 권고를 거부했다.

 

진주성을 향해 총공세를 전개하려는 왜군에 대항하기 위해 관군으로는 창의사 김천일, 경상우병사 최경회, 충청병사 황진, 김해부사 이종인, 사천현감 장윤 등이 진주성으로 들어 왔고, 고종후, 강희열, 이계련, 변사정, 민여운 등이 의병들을 거느리고 진주성에 들어왔다.

 

불행한 것은 당시 진주목사 서예원은 원병으로 와있던 명나라 장수를 접대하다가 급히 전투에 참가하느라 진주성을 지휘할 채비를 갖추지 못하였다. 진주성의 대대적인 공격을 막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군 22백여 명, 의병 6백여 명 그리고 주민도 6만여 명이 되었지만 모두 의기로 뭉쳤을 뿐 잘 훈련된 왜군에 대항하기는 처음부터 열세적인 입장에 있었다.

 

621일부터 627일까지 전투는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621일 왜군 기마병 2백여 기가 출몰하여 진주성을 살피고 돌아갔다.

622일에는 처음 교전이 일어나 왜군 30여 명을 쏘아 죽이니 퇴각을 하였다가, 초저녁과 2, 3경에 다시 공격을 해왔다가 퇴각을 하였다. 조선군은 남쪽에는 남강이 흐르기 때문에, 침입이 예상되는 서북쪽에 해자를 파고, 물을 흘려 호를 만들었으나, 왜군은 해자에 흙을 메워 길을 만들었다.

623일 낮에 3, 밤에 4회를 공격을 하였다.

624일에는 적의 증원군 1천여 명이 동서로 진을 쳐서 포위하였다.

625일 왜군은 동문 밖에 흙을 쌓아 언덕을 만들고, 흙으로 만든 대를 세워 성안으로 사격을 퍼부었다. 이에 충청병사 황진도 성안에 다시 높은 언덕을 쌓아 대처를 하였으며, 낮의 세 차례 공격과 밤의 네 차례 공격을 모두 격퇴하였다.

626일 왜군은 방책을 만들어, 탄환과 화살을 막으면서 화전 공격을 하여 성내의 초옥을 불태우면서,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고 다시 전서를 보내 항복을 독촉한다. 이 날도 밤낮으로 일곱 차례를 싸워 적을 격퇴하였다.

627일 왜군은 동문과 서문 밖에 다섯 군데의 언덕을 축조하고 거기에 공성용 대나무 대를 세워 하향 조준으로 사격을 하여 조선군 300여 명을 죽였고, 철갑을 입고 사륜거라는 장갑차를 끌고 와, 철추로 성문을 뚫으려 했다. 장사였던 김해부사 이종인이 연거푸 적을 베어 물리치고, 조선군은 기름과 횃불을 던져 왜군에 대항하여 격퇴시켰다.

628일 야간 경비가 소홀하여 적이 몰래 와서 성을 뚫으려하는 것을 힘들게 방어를 했으며, 1천여 명의 적이 죽었는데 황진도 적이 쏜 탄환을 맞고 전사를 하였다.

629일 전사한 황진을 대신하여 목사 서예원이 경비대장을 맡았으나, 겁을 먹고 사기를 떨어뜨리는 행동을 하자 경상우병사 최경회가 직을 파하고, 장윤에게 그 직을 맡겼으나 장윤도 탄환에 맞아 죽게 된다. 오후에 비가 내려 동문의 성이 무너지자 일본군은 노도와 같이 밀려왔는데, 활과 화살로 대응을 하지 못하므로 창과 칼로 육박전이 일어나게 되고, 이종인도 왜군의 탄환을 맞고 죽게 된다.

 

성이 함락되자 최경회는 조복 한벌과 무주대첩에서 왜장에게서 빼앗았던 보검과 공민왕의 그림을 조카 최홍우에게 맡기면서 고향으로 돌아가 둘째형 최경장에게 전하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둘째 형님이 내가 죽었다는 말을 들으면 반드시 의병을 일으킬 것인데 이것으로 표지를 삼고 이 옷으로 내가 죽은 후 장례를 치러 달라.”고 말한다.

 

이후 끝까지 저항하던 최경회, 김천일, 고종후와 함께 촉석루에 오른다. 최경회는 시 한 수를 읊는다.

 

촉석루 위에 올라 있는 세 장사

한 잔 술에 웃으면서 장강 물을 가리키네.

장강 물은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흘러가니

저 물이 마르지 않는 한 우리 넋도 죽지 않으리.

 

마지막으로 최경회는 북쪽을 향해 4배하고 외로운 성이 포위당했는데 밖에서 지원군은 오지 않고 형세도 불리하고 힘도 다했으니 한 번 죽음으로 나라의 은혜에 보답할 뿐이다.”라고 말하고 인장과 병부를 가슴에 안고 남강에 투신을 한다. 이때 함께 있던 여러 장군도 남강에 투신하여 죽게 된다.

 

이후 159377일 일본군 장수들은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촉석루에서 주연을 벌이는데 논개는 최경회 장군의 원수를 갚기 위해 기생으로 위장하여 참석한다. 논개는 깍지를 끼었을 때 빠지지 않게 열손가락 마디마다 가락지를 끼고 술에 취한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유인해 끌어안아 함께 남강에 투신하여 죽게 된다. (논개에 관한 내용은 다음 편에 좀 더 자세히 다룹니다.)

 

진주성 2차 전투는 조선군이 패한 전투이지만 결코 패전이라 할 수 없다. 왜군에게도 엄청난 피해를 주어 진주성 전투이후 왜군은 이렇다 할 전적 없이 부산으로 후퇴하게 되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 막부 몰락의 시작을 알리는 전투였다.

이 전투는 지방의 성 하나를 놓고 싸운 전투가 아니라 상당히 많은 가치가 남은 전투였다. 진주성 전투는 조선인이 얼마나 강인하고 충, 의가 있는 사람들인지를 보여준 전투였다. 고립된 성 안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맹하게 싸웠다. 최경회와 의병들은 1년간 노숙을 하며 국가를 위해 헌신했으며 과거부터 있었던 호남과 영남의 간극을 없애는 모범을 보였다.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왜군이 호남이나 한양으로 다시 진군하지 않도록 사수하겠다는 생각은 국가와 백성을 사랑하는 깊고 큰마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모든 것을 예측하고도 감행했던 그들은 우리역사에서 소중히 생각해야하는 위인이다.

 

 

참고문헌

선조실록 40, 26(1593710)(1593715)(1593716)

선조실록 42, 26(159396)

김세곤 http://blog.daum.net/segon53/15860230

위키백과 제2차 진주성 전투https://ko.wikipedia.org/wiki/%EC%A0%9C2%EC%B0%A8_%EC%A7%84%EC%A3%BC%EC%84%B1_%EC%A0%84%ED%88%AC

최경회 후손 기록 https://blog.naver.com/yschoimd/20137770329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633741&cid=51942&categoryId=54817

세계일보 기사 http://www.segye.com/newsView/20120807022391

 

제작 방식

방식은 빛과 어둠을 극적으로 배치하는 테네브리즘적인 표현으로 제작되었다. 키아로스쿠로 기법을 사용하였으며 유화물감을 두껍게 칠하여 질감 효과를 내는 임파스토 기법을 주된 방식으로 활용하였다. 조선시대의 초상화 표현 특징인 전신사조(傳神寫照)로 표현하였다.

 

미술 용어의 이해

테네브리즘’, ‘키아로스쿠로’ ‘임파스토1편 이순신장군 설명 참고

전신사조(傳神寫照)’2편 별을 바라보는 염근리 설명 참고 



한국인 시리즈 NO.4- 논개의 남자. 최경회작품의 부분


Kai Jun(전완식)

르네상스시대부터 신고전주의 시대까지 활동했던 유럽 궁정화가들의 기법을 연구하였으며 그들이 만들어 냈던 화려한 기법을 활용한 독특한 인물화의 표현법을 개발하였다.

이에 대한 평가는 20094월 미국 최대 미술 산업 그룹 Redwood Media Group의 글로벌 매거진(뉴욕 발행) ‘아트비즈니스뉴스표지 작가 및 뉴트랜드 작가 15인에 선정되었다. 또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위치에 따른 이미지 변환에 대한 표현을 510년 만에 재현한 화가이다.

201512월에는 광복 70주년 국가 행사의 대표작가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전시를 했었다. 현재 한성대학교 교수이며,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학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산업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작품 소개

염근리(廉勤吏)를 생각하며 그린 작품이다. 상징적인 대상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맹사성을 생각하며 그렸다. 평소 소를 타고 다니길 좋아해서 그가 재상인줄 알지 못했고 남루한 행색으로 수령의 야유를 받은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평소 음악을 즐겼으며 스스로 악기를 만들기도 했었다. 품성이 어질고 늘 차분했으나 정사를 논할 때에는 과단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강호사시가에 나오는 탁료 계변(濁醪溪邊), 초당(草堂), 소정(小艇), 삿갓, 누역 등의 단어를 보면 그가 세속을 벗어나 한가로운 생활 속 모습조차 너무나 검소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대 최고의 재상이었으면서도 청백의 모범이 되었던 맹사성과 조선의 염근리들은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해야하는 위인이며 영웅이라 생각한다.

 


화가: Kai Jun/ 제목 : 별을 바라보는 염근리/ 유화/ 72.7cm X 60.6cm/ 2017

 

염근리(廉勤吏)

고려시대부터 청백리제도는 시행되었었다. 관직 수행 능력과 청렴, 근검, 도덕, 경효, 인의 등의 덕목을 겸비한 이상적인 관료에게 주어진 호칭이다. 조선시대에는 총217명의 청백리가 있었다. 조선 초기에는 의정부(議政府육조(六曹)2품 이상 당상관과 사헌부(司憲府사간원(司諫院)의 수장이 천거하고 임금의 재가를 얻어서 의정부에서 염리(廉吏)를 뽑았다. 훌륭한 관료에게는 염리라고 호칭을 주었고 사후에는 녹선(錄選 추천하여 관리로 삼음)하여 청백리를 주었으나 조선 명종 대부터 살아 있는 자는 염근리라는 명칭을 붙여 선발했고, 특별한 과오가 없는 한 사후에는 청백리로 녹선(錄選)하였다.

 

제작 방식

방식은 빛과 어둠을 극적으로 배치하는 테네브리즘적인 표현으로 제작되었다. 키아로스쿠로 기법을 사용하였다. 조선시대의 초상화 표현 특징인 전신사조(傳神寫照)로 표현하였다.

 

미술 용어의 이해

전신사조(傳神寫照) : 동양화의 초상화, 인물화를 그릴 때 그 인물의 정신세계를 전하려는 목적으로 외형의 묘사에 그치지 않고 대상이 살아온 삶과 고매한 인격 등 내면세계까지 표출해야한다는 초상화론이다. 동진의 고개지에 의해 전신론(傳神論)’이 시작되었다. 4세기 후반 당시에는 대상을 외형적으로 닮게 그리는 것이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했었으나 고개지에 의해 정신이 담기 그림이 더 좋은 것이라는 알려졌다. 고개지에 의해 중국미술사가 전환점을 가졌으며 이후 남종화는 사실보다 정신을 묘사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즉 대상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대상의 내면에 있는 어떤 것을 끄집어내어 의미를 담아야한다는 것이다. 서양화에서도 비슷한 개념이 있는데 종교화나 19세기 이후의 인상주의나 표현주의 , 캐리커쳐와 같은 형식이 의미를 중요시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고개지의 방식과 서양화의 방식과 차이가 있다. 19세기 이후 서양방식에서는 외형의 변형을 적극적으로 나타냈다면 고개지는 골법(骨法)이라하여 대상의 골격과 근원적인 것에 변형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 차이가 난다. 고개지가 만든 동양미술의 관념은 우리나라와 일본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테네브리즘’, ‘키아로스쿠로1편 이순신장군 설명 참고

 

Kai Jun(전완식)

르네상스시대부터 신고전주의 시대까지 활동했던 유럽 궁정화가들의 기법을 연구하였으며 그들이 만들어 냈던 화려한 기법을 활용한 독특한 인물화의 표현법을 개발하였다.

이에 대한 평가는 20094월 미국 최대 미술 산업 그룹 Redwood Media Group의 글로벌 매거진(뉴욕 발행) ‘아트비즈니스뉴스표지 작가 및 뉴트랜드 작가 15인에 선정되었다. 또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위치에 따른 이미지 변환에 대한 표현을 510년 만에 재현한 화가이다.

 

201512월에는 광복 70주년 국가 행사의 대표작가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전시를 했었다. 현재 한성대학교 교수이며,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학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산업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칼럼리스트 Kai Jun(전완식) 소개

30여 년간 인물화를 중심으로 회화 작업에 열중하였다인물화에 많은 관심을 둔 것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또한 인물을 그리기 위해 대상의 정신세계를 그림 안에 투영하려 노력하였다인물화를 넘어 진정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간의 감정과 감성을 다룬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주요 미술경력은 국내외 개인전 27회 단체전 80여회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위치에 따른 형상 변화 신비를 510년 만에 재현 -대한민국 7번째 대통령 인물화 작가(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소장 문재인트럼프 대통령 청와대 소장) -Redwood Media Group 글로벌 매거진(뉴욕 발행) ‘아트비즈니스뉴스표지 작가 및 뉴트랜드 작가 15인 선정 -미국 행정/정책학 대학원 석,박사 과정 강의 자료로 작품 선정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운영위원기획위원 -대한민국 미술인의 날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장 -광복70주년 국가 행사 대표작가(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및 서울도서관 전시)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기원 전시행사 대표작가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학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산업대학원 졸업하였다.

현재 한성대학교 ICT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미술협회 이사설치미디어아트분과 부위원장국가미래연구원 문화예술체육 연구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