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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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설명한 융복합주의와 사의사색화의 기본 설명은 아래 링크로 대신합니다.

융복합주의(Convergeism) https://url.kr/ke4u1s

사의사색화(寫意思索畵) https://zrr.kr/usAb

 


사의사색 w-02 170 X105cm 거울 위에 아크릴페인팅과 혼합재료2022

 

작품 배경 설명 : 한국에서 미국을 관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중에서도 뉴욕의 맨해튼을 담고 있는데 뉴욕은 잠들지 않는 도시로 유명하고 한때 미국의 수도이기도 했지만 세계의 수도로 불리고 있다. 이는 정치, 경제, 문화가 뉴욕을 중심으로 움직여지고 있음을 강조한 말이다. 우리는 141년의 수교 관계를 맺고 있다. 그중에서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로는 장기적인 강력한 정치, 경제, 군사적 동맹을 형성하고 있다. 기밀한 유대관계만큼 유학생이 가장 많고 미국의 선진문물을 배워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의 귀국 후 활약으로 자연스럽게 우리의 문화 속에는 미국적 문화가 많이 형성되어있다.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지속적인 정치적 대화와 협력, 문화 교류 확대, 학술 및 교육 교류 강화, 경제 및 무역 협력 확대, 안보 협력 강화가 이뤄져야함을 생각하며 제작된 작품이다.

 

사의사색 w-02(부분)

사의사색 w-02(부분)

 

작품 표현 설명 : 근경에 위치한 산은 한국을 나타내는 것이고 원경으로 보이는 건물들을 미국의 상징인 맨해튼이다. 파랑색 계열의 산과 빌딩 중 One World Trade Center를 파란색으로 표현한 것은 서로 각 나라의 문화, 정치, 경제의 정체성은 다르지만 서로 융합하며 강하게 연결되어있고 교류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최근 한류가 미국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고 그 흐름이 연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파동의 형태로 나타내었다. 하늘을 석양빛으로 나타낸 것은 잠들지 않는 도시가 뉴욕과 서울이 닮은 꼴이라고 생각되어 표현하였다. 한국의 산에서 3개의 기념비적인 빛 기둥이 솟아 오르는 것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성장한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것이다.

 


 


전완식 작품. 사의사색 w-01 / 100 X200cm / 거울 위에 아크릴페인팅과 혼합재료​ / 2022년 

 

융복합주의(Convergeism)는 필자가 오랜 시간 대한민국의 장점을 연구하다가 만들게 된 장르이다. 4차산업시대의 대표적인 시대정신이기도 한 융복합주의는 현시대의 예술이 가야 하는 길이라고 생각되어 창안하게 되었다. 처음 연구를 시작할 무렵에는 인류사에 유례없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고 대한민국의 발전 원인과 동력을 알고 싶어하는 외국인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을 설명할 마땅한 내용이 없음이 동기가 되었다. 이를 위해 한국인의 정신과 한국의 문명사를 연구하다가 한국이 동양정신문화(성리학)의 정수를 가지고 있으며 서양의 문화를 스펀지처럼 수용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를 미술작품화하여 대한민국 성장 과정의 원동력인 융복합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본 시리즈 작품의 전체에 흐르는 표현 방식은 동양화의 정신에 입각한 산수화와 서양의 시각에 입각한 풍경화를 결합하여 새로운 산수화를 창안하였다. 명칭은 사의사색화이며, 이미지들이 융합하여 나타나는 결과는 동양의 사의적 표현과 서양의 사색적 표현을 융복합한 것이다. 표현의 기법과 재료는 서양적인 것으로 하며 표현의 대체적인 시각화 형상은 동양적인 것으로 한다.

 

재료는 거울필름(바탕 재질), 아크릴 물감, 디지털 프린팅을 사용하였다.

 

거울필름은 청동기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금속은 문명을 발달시키는 핵심 재료가 되고 있다. 금속의 물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크롬이며 크롬의 특성이 잘 표현되는 일반적인 물질이 거울이다. 거울 필름을 사용한 것은 문명의 발달을 상징하며 거울이 빛을 반사하는 것처럼 작품은 중간중간 빈 공간으로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문명의 발전이 빛나고 있음을 나타낸다.

 

아크릴 물감은 동양화의 번지기효과를 가장 비슷하게 표현할 수 있는 서양화의 재료이다. 수용성이며 덧칠할 수 있어 동, 서양의 기법을 모두 나타낼 수 있는 재료이다.

 

디지털 프린팅은 작품의 최상층에 위치한 선(토기, 웨이브 선)을 표현하는 재료이다. 수작업으로 완성한 작품 위에 동,서양문명의 융복합을 이루는 상징적 체계를 표현한다.

 


전완식 작품. 사의사색 w-01​(부분)

 

작품 설명 : 프랑스와 정식 외교를 한 것은 137년이지만 민간 외교까지하면 188년이 되었다. 프랑스는 대한민국과 외교관계를 맺어왔던 서유럽의 국가 중 사실상 최초로 한국과 외교 접촉을 하였다. 1835년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의 프랑스인 모방 나 베드로 신부가 처음 조선 땅을 밟은 것을 계기로 이후로 앵베르 범 라우렌시오 주교 등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의 프랑스인 사제들이 잇따라 방한하였다. 그러나 척양정책으로 일관했던 흥선대원군의 군대는 1839년 기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때 프랑스 사제들을 죽였고 흥선대원군이 청나라로 끌려가게 되면서 마침내 188664일 조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관계는 좋지 않았다. 그러나 프랑스 최초 유학자였던 홍종우는 대한제국이 지향해야 할 이상국가 모델을 나폴레옹 3세 시기의 프랑스로 보았다. 대한제국 이후 일제강점기 시절 단절되었던 교류는 1949215일에 대한민국과 정식으로 수교했다. 프랑스와 대한민국은 매우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990년대까지는 프랑스에서 정치, 경제, 문화 등의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였고 최근에는 우리의 문화가 전파되고 있다. 프랑스는 문화 대국이기 때문에 프랑스를 매개로 한 한류는 유럽 내에 확산을 주도한다. 20181019일에 파리에서는 2만석 규모의 방탄소년단의 공연이 있었는데, 프랑스는 물론 이탈리아와 독일, 포르투갈, 벨기에 등지에서 모인 팬들은 이어지는 노래의 가사 모두를 외워 따라 불렀고 이들 중에는 심지어 실신한 팬들까지 있었다.

 

전완식 작품. 사의사색 w-01​(부분)

좌측 두 개와 우측의 세로로 길게 뻗은 거울은 모뉴멘트적인 문화 교류 발전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전완식 작품. 사의사색 w-01​(부분)

산의 풍경은 동양화의 기법을 최대한 살려서 표현하였는데 이는 동양의 표현기법과 공기원근법의 서양 표현 방식의 조화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본 작품은 이런 한불관계와 최초의 서양 문화 유입이라는 의미를 담아 동서양의 융복합을 표현한 작품이다. 좌우의 산은 동양(대한민국)을 의미하고 중앙의 에펠탑은 프랑스를 의미한다. 좌우 산의 가운데는 대지이며 바다의 형상인데 이 표현을 거칠고 무겁게 표현한 것은 초기 교류가 산고의 고통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완식 작품. 사의사색 w-01​(부분)

색상은 검정색 위에 노랑과 파랑을 여러번 겹쳐 칠한 것은 채도와 명도 대비의 극단을 보여주어 서로 융합하기 어려운 요소가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 결합하는 현상을 표현하였다전체 화면을 뒤덮고 있는 물결은 문화가 서로 연결되고 확산되며 상호작용을 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서양의 투시 및 공기원근법을 화면 전반에 걸쳐 나타내어 현대의 감각적 시각 분석 체계를 유지하였고 묘사를 하는 방법은 동양화의 기법을 살려 융복합 된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

 

“26장의 대통령상”. 이것은 1년간 정부에서 각 전통예술 경연대회에게 주어지는 대통령 상장의 수이다. 다시 말해서 1년에 전통예술 부문 대통령상을 받는 국악인이 26명이란 이야기이다. 또 다시 말하자면 전국의 명인·명창이 한 해에 26명씩 나온다는 말이며, 2년이면 52명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이다. 그것은 무려 3년이면 78. 4년이면 104명이다.

 


대통령상장 마크

 

 

이러한 현실을 기쁘게 생각해야 하나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야 하나. 알지 모를 아이러니에 빠지고. 우선 필자의 고민은 후자에 두고 그러한 이유의 일장일단을 이 글을 읽는 이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지난해 2021년 정부시상 지원 경연대회의 상장을 살펴보면 무용 분야는 총 15개 대회 중 대통령상이 있는 곳은 2, 음악 분야는 총 12개 대회 중 대통령상이 있는 곳은 2, 연극 분야는 총 8개 대회 중 대통령상이 있는 곳이 총 1. 전통예술 분야는 총 86개 대회 중 국립국악원 온나라국악경연대회까지 포함 총 26개의 대통령상을 보유하고 있다.

 

전통예술의 진흥과 인재 등용을 위해선 꼭 정부가 수여하는 상장이 필요하다. 이는 정부의 공신력 필요를 뜻하며 명예에 걸맞은 공정성과 운영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므로 각 지방자치단체의 시군에서는 여러 전통예술 경연대회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을 파악하고, 진흥하며 공정성과 더불어 각 특색있는 지역의 명분을 만들어 경연대회를 장려하고 있다.

 

문제는 그 이후다. 그러한 역사적 좋은 의도의 깊은 뜻을 간직하고 생겨난 각종 경연대회는 전통예술의 진흥과 우수한 국악 인재 등용에 힘써야 하는데 그러한 모습은 후자로 퇴색되고 운영단체나 개인의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황금만능주의 악순환으로 순수성이 사라진 안타까운 과거를 본 적이 있다. 이제 그러한 과거의 아픈 기억은 잊어버리고 소중한 우리 전통예술의 등용문인 전통예술 경연대회를 올곧은 신념과 공정, 가치로 무장하고 감사함과 더불어 소중히 이어나가야 한다.

 


2021 전주대사습놀이 포스터


       2022 온나라국악경연대회 포스터

 

우리나라 최고 정부시상인 대통령상의 수가 무용이나 음악, 연극보다 전통예술 부문에 더 많은 이유는 그 최고의 상이 세계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대한민국의 소중한 가치이며 지켜야 할 우리 선조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특히 호남에서는 전통예술 분야 정부시상 경연대회 총 86개 대회 중 37개의 경연대회가 매년 치러지고 있다. 그것은 43%란 엄청난 전통예술계의 영향력이며 그만큼 전통예술에서의 호남이라는 거점을 중요한 의미로 나타내고 있다.

 

이제 호남을 비롯하여 전국각지의 경연대회에서 등용되어 매년 나오는 26명의 대통령상 수상자들도 존재가치를 더욱 드높여 그러한 숫자의 자존감을 나타내고 우린 민족의 예술성을 높여 정부시상의 취지와 존재가치에 합당한 의미 부여를 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 또한, 상장 수여와 더불어 관리·감독을 면밀히 추진하여 상의 훈격이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노력과 믿음을 이으며 지켜가야 하겠으며 전통문화의 초석인 전통예술이 지나치는 문화의 환류가 되지 않게 관심과 배려로 그 존재감을 높여야 하겠다.

 

 

 

전통문화 칼럼니스트 소개

 

김용호 / 한국학 박사(Ph.D)

사범대학에서 수학교육을 전공하던 중 판소리에 심취되어 전주로 내려가 이날치의 손녀 이일주 명창에게 춘향가를 배웠다. 박종선 기악 명인에게 아쟁을 배워 1999년 춘향제 전국국악대전 기악부 최고상인 대상을 수상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82-4호 남해안별신굿 이수자이며 서울시무형문화재 제39호 아쟁산조 이수자이다. 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창작 및 표현활동지원 대상자전통음악부문에 선정되었으며 2010년 독자적인 '아쟁' 주제 논문으로 한국 최초 아쟁전공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2년부터 수년간 러시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음악원에서 한국 전통음악 Master Class와 연주회를 주도적으로 개최하여 주러시아 한국대사관과 차이콥스키음악원 간 MOU를 성사시켰고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년간 체계적인 국악교육과 연주회를 시행했다. 경북도립국악단 악장, 국립부산국악원 초대 악장, 국립남도국악원 악장, 대구시교육청 대구예술영재교육원 음악감독, 전북도립국악원 교육학예실장을 역임했으며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주대사습청 운영위원, 전북일보 문화칼럼니스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위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심사위원, 예술경영지원센터 정부시상지원 현장평가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논문 / "전통예술공연 예술단체 활성화의 도정과 모색"(국회), "지역문화 균형발전을 위한 국립충청국악원의 역할"(세계음악학회), "거문고 명인 강동일"(완주문화재단) 외 다수

# 저서 / "박종선류 아쟁산조"(은하출판사), "산조아쟁의 이론과 연주"(부산문화재단), "박대성류 아쟁산조 연구"(부산문화재단), "아쟁교본"(전북도립국악원) 외 다수

 

관광산업에 대한 재인식 필요성

우리나라는 세계 최대·최고의 갯벌을 가지고 있다. 실로 엄청난 가치의 갯벌을 가지고 있으나 관광자원으로 활용되는 것은 거의 미미하다.

독일의 와덴해의 갯벌은 교육과 문화, 환경보전 등의 다양한 전문영역을 다루며 유럽의 해양과학환경보존의 메카로 인정 받고 있다. 이곳은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특별관리하고 있으며 다양한 교육프로그램과 관광프로그램이 작동되고 있다. 지면상 길게 설명하기 어려우므로 단순히 독일 니더작센주의 몇 개 수치만 비교하면 연간 관광객은 25백만명이 오고 수입은 약 2조원에 이른다. 반면 우리나라는 최고 최대의 갯벌이 있지만 관광 수입이나 관광 결과 수치를 논할 만한 것 자체가 없다. 보령의 머드 축제가 있으나 이도 갯벌 자체를 관광자원화 한 것이 아니라 갯벌의 흙이라는 소재를 활용한 축제이므로 진정한 갯벌 관광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태안 중심으로 갯벌체험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도 갯벌에 들어가 조개잡고 낙지 잡는 정도의 수준이다. 문화와 관광은 어떻게 가공하고 제시하느냐가 중요하다. 국가미래연구원20220514일에 게재했던 전완식의 문화예술정책 고도화 추진 필요성에서 다뤘던 벽화의 경우도 필라델피아는 연간 11조 규모의 경제효과 창출하고 있으나 우리는 환경미화 수준으로 멈추고 있는 안타까움을 지적하였다.


 

우리나라의 관광산업은 보고 즐기는 관광을 중심으로 한다. 이는 세계2차대전 이후 세계 각지에 퍼져있는 미군 주둔지 주변의 유흥 중심의 관광지의 형식과 유사하다. 이는 관광상품중 아주 특수한 경우고 보편적으로 관광은 인간의 이상향 추구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중심이 되어야한다. 우리는 변형된 관광 인식의 굴레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폐해는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군의 휴양지 관광 인식으로 관광사업이 전개되므로 우리는 주로 계절관광이나 축제를 중심으로 하며 부가적으로 유적지와 특수 지형지물을 활용한 관광 등이 주된 관광 자원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한시적인 관광상품이므로 말 그대로 한 철 장사이다. 365일중에서 길게는 60여일, 짧게는 15일 정도만 관광 상품이 제 기능을 한다. 따라서 이런 관광생태계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짧은 기간에 최대의 수익을 창출하지 않으면 고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휴가철 바가지 요금에 대한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다. 한 철 바가지 요금의 횡포나 수익을 얻는 기업 또한 결과적으로는 그 시점이 지나면 찾는 이가 없어서 적자에 허덕이는 구조이며 해가 지날수록 관광지에서 폐업하는 숫자는 늘어나고 있다.

 

관광은 이상향을 찾는 판타지의 과정

우리나라 관광산업은 대체적으로 공급자의 사고에서 진행되는 것이 많다. 특히 특산품 관광은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관광을 근본적으로 살펴보면 공급자가 중심이 아니라 수요자가 중심이 된다. 수요자 즉, 관광객은 그의 이상향을 찾는 과정에서 여행지를 스스로 선정하고 여행지에서 자신이 원하던 삶의 체험을 하기 위해 관광을 떠나게 된다. 젊은이들이 잠깐 놀러가는 홍대앞도 젊은이들의 유토피아적 판타지와 호기심을 확인하기 위한 경우로 볼 수 있다. 이점을 주목하며 관광산업을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관광객의 이상향을 찾는 여정은 4가지의 시점으로 분류가 가능하다.

1단계 관찰자 시점 : 방문객

2단계 체험자 시점 : 단기 체류자

3단계 누적 경험자 시점 : 장기 체류자

4단계 생활인 시점 : 귀화 또는 이주자

 

4단계의 시점별 관광 상품은 한곳의 장소에서 나타날 수도 있고 각기 다른 장소에서 나타날 수도 있다. , 수요자의 입장에서 필요로 하는 상품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1단계의 시점으로 끝날 수도 있고 4단계까지 갈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대체적인 관광지는 1단계 상태에서 그치지만 동남아시아나 유럽의 지중해 지역에 있는 관광지는 1-3단계 까지의 상태가 주로 나타나고 4단계의 상태까지 가는 경우도 많은 편이다. 4단계의 상태가 되었다는 것은 이미 정주성이 매우 높은 수준의 단계임을 알 수 있다.

 

시점별 상품성 특성

1단계 관찰자 시점 : 방문객

1단계 시점의 관광은 패키지 관광과 같이 단시간 동안 체류하는 상품이 주를 이뤄야 하고 단품으로써 자극성이 있고 독창적인 구성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관광상품은 주로 이 시점의 관광상품이 풍성하므로 서비스의 질만 향상시키면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 숙박하지 않으므로 요식업, 숙박업, 쇼핑, 렌트 등등 주변 상품의 확장성이 약하다. 특징은 독립된 관광 상품의 수준만 높으면 성공확률이 높아진다.

 

2단계 체험자 시점 : 단기 체류자

2단계 시점의 관광상품부터는 최소 1주일에서 2주 정도의 체류가 생기므로 관광 수입이 크게 확대된다. 따라서 관광상품의 질적 수준 향상에 역점을 둬야하는데 관광지의 정체성, 독립성, 전문성이 요구된다. 또한 체류 기간의 생활서비스 수준이 높아야 한다. 숙박을 하는 체류기간이 생기면서 타 관광상품으로 확장성이 형성되고 수익이 크게 증대 된다. 관광상품의 확장성이 형성되는 것만큼 상호 연관된 상품의 질적 수준도 균등해야 가치를 발현할 수 있다. 단기 체류 관광상품부터는 지자체나 정부의 종합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3단계 누적 경험자 시점 : 장기 체류자

3단계 시점의 관광 상품은 이전 단계의 수준보다 높은 수준일수도 있으나 성향의 변화가 나타난다. 변화의 첫 번째 요소는 지리적인 위치 변화이다. 단기체류자는 관광지 내에서 체류를 원하지만 장기체류자부터는 관광지 내부가 아니라 근거리 지역에 체류를 원하고 생활편리성과 안전성, 아르바이트 등등 우리가 일반적인 생활을 할 때 고려하는 것과 유사한 관점이 될 수 있다. 직업인으로 장기 파견된 경우나 순수 여행객의 경우도 고려 사항은 비슷하게 나타난다. 이 시점부터는 문화의 우수성과 차별성이 상품성의 핵심이 된다.

 

4단계 생활인 시점 : 귀화 또는 이주자

4단계의 생활인 시점이 되면 우리가 생활하는 것과 동일한 가치관으로 판단하고 우리의 생활문화 안에 귀속된다. 이 상품성이 강하게 나타나려면 문화적 차별성이 강하고 유토피아로 인식되는 점이 있어야한다. 이 상품은 생활문화 자체가 가장 강력한 상품성이므로 특별히 다룰 내용은 없다. , 필리핀의 은퇴 이민의 경우처럼 특별 지역을 두거나 세제혜택을 주는 방식은 있을 수 있다. 이 단계의 관광상품은 국제적인 홍보가 강화되어야 성공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

 

관광상품의 효율을 극대화하면 지역소멸을 막을 수 있다.

관광상품을 단순 즐길거리 볼거리로 생각하면 계절 관광상품처럼 일시적 사업 후 장기간의 휴업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관광상품을 기획할 때 수요자의 관점에서 다각도의 관광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 정주성이 강한 관광 지역을 만든다는 목표로 사업을 기획하여야 하며 도심과 근접한 경우는 1단계와 2단계의 관광상품을 전문화하고 지역에 고립된 형태로 구성되어있는 경우는 3단계와 4단계를 강화되는 것이 필요하다.

 

3단계와 4단계는 기존의 지역민과 융합되는 구조로 하여야 하며 문화적 우월성이 높아야 한다. 쉽게 얘기하면 문화적 차이로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가 있어야 한다. 매력적인 요소는 단번에 이해하고 체험할 수 없는 것이므로 중장기의 체류나 영구 이주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유적지나 특수 환경 관광은 호기심을 자극할 수는 있어도 장기간 체류할 거리는 될 수가 없다. 장기 체류를 유도하는 가장 좋은 경우는 삶의 질을 향상시켜 주는 것이다. 실버타운이나 은퇴자 타운 등은 삶의 질을 일정 수준 이상 보장해 주는 데에 매력이 있다. 이런 형식에 문화관광의 매력을 더하여 즐기면서 삶의 질이 보장되는 구성을 추구하면 관광상품으로의 가치 부여가 충분해 진다.

 

현재 각 지자체에서 진행되고 있는 귀농, 귀촌, 귀임 등의 프로그램은 지역소멸의 문제를 염두한 정책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상향을 가지고 있고 이상향에 대한 동경은 결국 이주를 하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취업을 위해 이주를 하거나 교육을 위해 이주를 하거나 의료 및 삶의 질 향상을 원하여 이주를 하는 등의 다양한 행동 패턴은 나타날 수 있지만 정리하면 불완전함과 불균형이다. 즉 최근에 대두되는 세대갈등, 지역갈등, 남녀 갈등 또한 같은 맥락에서 문제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지역소멸의 원인이 불완전함에서 형성되므로 대다수 사람들은 도시로 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두 도시로 가려하지 않고 반대로 귀향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이들을 포함한 관광정책이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

 

귀촌인과 결합한 정주성 강한 관광타운

관광산업은 외부인을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으므로 이들을 정주하게 하는 방법을 모색하면 지역소멸도 해결될 수 있다. 내국인 외국인에 대한 세밀하고 미시적인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하지만 총체적 방향성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귀촌인과 외지인의 결합이 필요한 이유는 정주성이 강한 관광인프라에는 의료와 교육, 직장 등의 일반적인 생활 환경과 동일한 인프라를 갖춰야한다. 소규모일지라도 구성 요소는 모두 갖춰야 생활이 된다. 이점이 취약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장기체류나 귀화 또는 이주의 관광객이 적다. 귀화나 이주의 경우는 도심 또는 직장이 마련되어지는 지역으로 가는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따라서 이들을 관광객으로 보기는 어렵다.

 

각 지자체에서 관광타운을 만들기 위한 시도들이 있었으나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지 못한 이유는 생활에서 불편함이 크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지자체가 예산을 투입하여 운영하는 것도 한계가 있으므로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병원도 개원하고 마트도 운영하고 기타 생활에 필요한 인프라를 성하게 되어야하는데 관광타운의 소규모 인원을 보고 그런 다양한 인프라를 형성시킨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따라서 관광객과 귀촌인들이 결합되었을 때 정주성 향상을 위한 사회 인프라를 만들 수 있다.

 

관광상품의 경우도 단기간의 계절 관광이나 자연경관 관광으로는 상품성의 지속성을 확립할수 없다. 문화가 결합된 관광상품이 되어야 하므로 한국어, 한류문화, 지역의 특화된 문화 등등 문화상품을 개발하고 체계화시킬 필요가 있다.

 

관광상품으로 개발할 수 있는 우리의 자원은 무궁무진하다.

 

관광산업에 종사하는 기업인들과 정책입안자들에게 영감을 주길 글이 되길 바라는 바이며 다음편으로 이어 구체적인 사례와 방법을 소개한다.

 

대한민국의 문화영토를 무한 확장하는 꿈.

한국어는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전 세계인에게 주목받고 있다. 러시아, 터키, 태국, 인도 등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선정하는 국가는 약 41개국에 이르고 있고 베트남이 전 세계 최초로 한국어를 제1외국어로 선정했다. 한국어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한국어의 표현법인 한글의 우수성이 매우 큰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한글은 세종대왕님이 밝힌 바와 같이 똑똑한 사람은 반나절에도 익힐 만큼 쉽고 합리적이다. 특히 컴퓨터와 모바일의 보급이 늘어나면서 한글의 우수성은 더욱 빛을 발한다. 가까운 나라 중국과 일본의 경우는 자기네 나라말로는 도저히 키보드 자판을 구성할 수 없는 문제가 있으나 한글의 경우는 어떤 디바이스건 간에 쉽게 적용되고 활용된다. 국격의 상승과 한류문화의 확산이 강해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우리의 보물인 한글과 한국어의 수출을 진지하게 생각해본다.

 


 

2외국어로 선정하는 국가는 약 41개국

전 세계 나라 수는 국제표준화기구에 의거한 경우 249개국 그리고 UN에 등록 승인된 국가는 196개국이다. 우리나라의 세계무역 순위는 10~8위 수준이다. 거대 무역국인 만큼 교역을 하는 나라는 거의 전 세계적이다. 그러나 그 비중을 보면 전체 교역 내용의 3/4은 중국, 미국, 베트남, 홍콩, 일본, 대만, 인도, 싱가포르, 독일, 말레이시아가 주요 수출국이고 중국, 미국, 일본, 독일, 베트남, 호주, 대만,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말레이시아가 주요 수입국이다. 중복된 나라를 묶으면 13개 국가로 압축이 된다.

전 세계 나라를 약 200개라고 보고 우리의 주요 교역국이 13개 나라라면 187개국에는 더 많은 교역의 기회가 있다는 단순 계산이 나온다. 물론 교역이라는 것이 국가나 해당 국민의 필요에 의해 성립되므로 무턱대고 접근해서는 안 될 일이므로 국익에 우선한 합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어 수출 방법

우선 한국어를 수출하기 위해서는 수출할 곳이 분명해야 한다. 한국인이 거점을 만든 세계적인 네트워크 중에 태권도가 있다. 태권도는 212개국에서 15천만 명이 즐기는 가장 대중적인 무술이며 1만 여개 이상의 도장이 있다. 다른 형태의 네트워크는 750만의 재외동포로 구성된 한상네트워크다. ‘세계한상대회180여개 국에서 기업활동을 하는 기업인들의 모임으로 활발히 기업을 운영하며 대회에 참가하는 기업수가 5000여개에 달한다. 여기에 국가가 취업준비생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지원금을 결합하면 효과적인 답을 얻을 수 있다.

해외취업준비생에게 국가의 해외정착지원금이 선진국은 400만원, 우대국가에는 800만원의 지원금이 지급되고 있다. 이를 보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이미 태권도 교육은 어느나라를 막론하고 한국어로 교육을 한다. 여기에 사범이 수련 시간 외에 한국어 교육을 하는 코스를 만든다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구체적인 방법은 한국어 교육 자격증을 주고 대한민국이 공인하는 교육시설이라는 인증을 하며 지원금과 관리 제도를 만들면 효과를 거둘 수가 있다. 더불어 해외취업준비생의 인턴쉽을 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여 우리나라 국민의 일자리 창출도 되고 해당 국가의 국민도 한국에 들어와 취업할 기회를 만들 수 있다.

고구려의 유민으로 알려져 있는 라후족과 묘족 등 한국어와 유사도가 높으며 어순이 거의 비슷한 종족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일이다. 그 외에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가 상호교류 및 인력 수급을 위해 진행하는 베트남,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의 기술연수생의 교육에는 한국어 자격 취득 시험이 있는데 이를 더욱 확대한다면 효과적일 수 있다.

 

한국어 수출의 이점

위와 같은 방법들로 한국어를 수출하면 생기는 이점은 당연히 국격이 높아지고 문화영토의 확장으로 기존의 교역내용과는 확연히 다른 교역량과 수준이 높아지게 될 수 있다. 그 이점은 굳이 거론할 필요 없이 많이 알고 있으므로 효과적으로 실천하면 된다고 본다.

 

효과적인 실천이 필요한 것을 조금 더 서술하겠다.

 

위에서 거론한 코트라의 경우 전세계 84개국에 10개 지역본부, 129개 무역관을 운영중인 한국 경제의 대외 경쟁력 진흥기관이다. 코트라 해외무역관의 고유 업무는 수출상품의 홍보와 현지 정보수집 및 활용 등 국내 기업과 상품, 서비스의 현지 진출 지원이 중심이지만 해외 취업을 위한 업무도 추진하고 있는데 이 업무의 필요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요구되고 있으나 취업 효과는 크지 않다. 이런 문제의 원인은 현지 기업인과 한국인과의 소통문제이다. 물론 해외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은 현지어를 능숙하게 익혀서 진출하지만 현지 기업인의 인식은 다를 수 있다. 그가 만약 한국문화와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한국인과 한국 상품에 대한 가치 측정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미 진행하고 있는 정책이라도 종합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한국어와 한류문화보급이 직접적으로 연계된 프로그램으로 재구성하는 필요성이 있다.

 

대한민국의 문화영토를 무한 확장하는 꿈을 꿔야 한다.

 

지난 스승의 날인 515일 서울 청계광장에서는 국악 관련 저명한 국가무형문화재 예능 보유자, 교육자, 학자, 전문연주가, 학생, 애호가 등 많은 인파가 모인 가운데 특별한 집회가 있었다. 국악교육의 미래를 위한 "전 국악인 문화제"란 주제로 국악교육의 위기를 피력하고 교육의 정상화를 요구했다. 이렇게 국악에 관련된 많은 이들이 거리로 나오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향후 이루어질 국악교육 정책에 대한 이견과 미래 전통문화예술 교육에 관한 소통 때문이었다.

 

 

지난 15일 청계광장 <전 국악인 문화재> 모습

 

현시대 우리 대한민국은 전통문화를 삶의 가치로 삼아 배우고 창작과 융합을 통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등 많은 사업과 정책으로 우리의 생활 수준을 높이고 있다.

 

온라인 콘텐츠로 대한민국 게임 산업을 세계에 알린 기업 넥슨은 지난 511, 12일 이틀간 제1보더리스 공연 : PLAY'이란 주제의 본 공연과 갈라 공연을 개최했다. 과거 넥슨의 비영리 재단은 공모전을 통해 게임과 전통예술의 만남이란 주제로 현대연희 prototype21’ ‘플레이 오케스트라(Play Orchestra)’ ‘보쏘(BOSS5)’ 등 세 팀을 뽑았고 양일간 넥슨의 대표 IP에 씻김굿, 마당놀이, 국악관현악 등 전통예술과 접목한 공연 콘텐츠를 선보이며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한류 게임 문화 콘텐츠 가치를 대내외로 알렸다.

 


넥슨재단 홍보동영상 / 넥슨재단 제공

 

또 다른 기업의 사업을 살펴보자. SK텔리콤은 국립극장과 협력해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에 각종 문화 행사가 가능한 '놀러와 국립극장'를 만들어 전통예술에 기반한 콘텐츠와 함께 디지털화 및 확산, 선도한다는 사업을 추진하였고 지난 429일 개관식을 통해 랜드 오픈식을 성대히 치륐다. 기업의 이러한 혁신적인 시도는 전통예술을 새로운 가치의 세계로 확산시켰고 민족의 정체성과 함께 경제적 창출을 포용한다는 성과를 이뤄냈다.

 


SK텔리콤 홍보사진 / SK텔리콤 제공

 

이러한 전통예술의 가치를 새롭게 융합 창출하고자 하는 민간사업이 있는 반면 국악인들을 거리로 나오게끔 유도한 안타까운 국가 교육정책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올해 말 확정·고시 예정인 <2022 개정 교육과정의 '국악' 전면 배제>라는 문건이다. 지난 421일 전국국악교육자협의회는 가장 먼저 졸속 개정 작업을 즉각 중단하라라는 규탄 성명을 발표했고 한국국악협회 등 130여개 관련 단체가 이어 함께 소신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지난 15일 국악교육 정상화를 위한 대규모 집회로 이어져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교육부가 공개한 문제의 ‘2022 개정 음악과 교육과정 시안을 살펴보면 성취 기준항목에 국악 관련 내용이 하나도 없다. 여기서 '성취 기준'이란 교육 목표를 의미하며 향후 변경되는 학교 수업과 평가, 교과서 편찬의 가이드라인에는 국악이란 단어가 배제되어 있다. 이러한 논란에 교육부는 "서양음악, 국악 등 장르를 구분하기보단 실생활 위주의 교육을 위한 개정 과정에서 국악이란 표현이 빠졌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각 나라에는 특수한 음악 요소와 개념이 내포된 자국의 음악이 존재함인데 그러한 독창성과 별개로 포괄적 수용으로 만들어진 음악교육의 정책은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물이 되어 국악인과 대중들에게 다가왔다. 예견컨데 교육 현장에서 우리 선조의 국악 더늠, 시김새, 간지, 성음 등 전통의 기교를 어떠한 서양음악 방식으로 표현하고 가르칠 것인가? 우리 전통음악의 독창적인 명칭과 표현 방법은 절대적이며 포괄적일 수 없다.

 


러시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음악원 아쟁교육 사진 자료


러시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음악원 단소교육 사진 자료

 

대한민국 미래 원동력인 전통문화는 무한한 잠재력과 창의력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한 사유로 민간기업과 정부는 애정을 갖고 다양한 전통예술 사업과 정책을 통해 특별한 대한민국을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이토록 서로의 방향성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드러내어 창출하고자 하는 의도와 포용하여 준용하고자 하는 의미는 다르다. 문제의 핵심은 어떻게 수용하고 지혜롭게 끌어내며 담아 가느냐가 관건이다. 전통은 불온한 혁신과 수용 속에 본질을 잃을 수도 있고 섣부른 융합과 무관심 속엔 사라질 수도 있는 정서적 매개체임을 잊지 말자. 그러므로 우리는 깊은 애정과 관심을 두고 올곧은 전승과 교육으로 전통예술을 소중히 지키고 이어가야 하겠으며 새로운 정부는 다양한 국민 여론 수렴과 함께 존중과 배려로 정책을 만들고 수립해야 하겠다.

 

<김용호 / 한국학 박사(Ph.D) 칼럼니스트 소개>

이날치의 손녀 이일주 명창에게 춘향가 사사. 박종선 기악 명인에게 아쟁을 배워 1999년 춘향제 전국국악대전 기악부 최고상인 대상을 수상. 국가무형문화재 제82-4호 남해안별신굿 이수자. 서울시무형문화재 제39호 아쟁산조 이수자. 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창작 및 표현활동지원 대상자전통음악부문에 선정. 2010년 독자적인 '아쟁' 주제 논문으로 한국 최초 아쟁전공 박사. 2012년부터 수년간 러시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음악원에서 한국 전통음악 Master Class와 연주회를 주도적으로 개최하여 주러시아 한국대사관과 차이콥스키음악원 간 MOU를 성사.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년간 체계적인 국악교육과 연주회를 시행. 경북도립국악단 악장, 국립부산국악원 초대 악장, 국립남도국악원 악장, 대구시교육청 대구예술영재교육원 음악감독, 전북도립국악원 교육학예실장을 역임했으며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주대사습청 운영위원, 전북일보 문화칼럼니스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위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심사위원, 예술경영지원센터 정부시상지원 현장평가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화예술계는 새롭게 출발하는 윤석열 정부에 대하여 거는 기대가 크다. 특히 기초 예술 분야는 정부의 리더쉽에 대한 요구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요구가 가능한 것은 이미 한류의 열풍으로 우리나라 문화가 전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는 자신감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한류콘텐츠는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데 한류콘텐츠 수출 100달러가 늘면 연관 소비재 248달러 증가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에 좀 더 관심을 둬야하는 이유는 현재 한류 콘텐츠로 수출되고 확산하는 분야는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오천년의 역사만큼 다양한 문화의 결이 있으며 이를 현시대에 맞게 고도화 재가공하면 엄청난 수익을 창출하는 문화 자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황금알을 낳는 벽화와 환경미화 벽화

우리나라는 현재 높은 치안 수준을 인정받고 있으나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밤거리를 다닐 때 불안해했었다. 특히 좁은 골목길로 이어진 오래된 동네에는 부녀자 성범죄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이에 대하여 주민 자치 방범대를 조직하여 운영하기도 하고 경찰관이 수시로 순찰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도 했었으나 근절되지는 않았다. 이런 우범지대의 불안감을 개선하기 위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마을미술 프로젝트이다. 외부로 알려진 프로젝트의 성격은 예술뉴딜정책의 일환으로 작가들의 일자리 창출과 작품활동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되어있으나 사회적 기능은 낙후된 지역을 공공미술로 지역재생과 정주성 향상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현재 전국 100여 군데의 낙후지역이 대상이 되었고 이중 예술가들의 열정이 담긴 지역은 국내 유명 관광지로 변모되는 성과를 나타내었고 낙후된 지역의 치안과 지역재생이라는 목적을 달성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조차도 환경미화의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필라델피아 벽화 사례

 


한국의 벽화 사례

 

환경미화의 수준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수준의 우수한 화가들이 많다. 우수 인재들이 참여하였다면 우리나라의 벽화도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각지의 벽화마을의 작품 수준은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하기 곤란하다. 이는 종합적인 관리 시스템의 부재에서 출발한다.

 

세계적인 벽화 관광지 필라델피아의 사례-연간 11조 규모의 경제효과 창출

캐나다의 슈메이너스, 미국의 필라델피아는 벽화만으로 황금알을 낳고 있다. 필라델피아의 경우도 우리와 비슷한 입장에서 출발하였다. 1996년 필라델피아시는 도시의 환경미화와 정체성 확립 주민갱생의 목적으로 The City of Philadelphia Mural Arts Program(MAP)을 가동하였으며 교육적 사회적 활용을 위해 시의 산하기구로 발족하였다. 이는 그래피티 아티스트들(갱단이 자기 구역을 표시하는 행위)이 불법적으로 도시미관을 해치는 낙서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률을 제정함과 동시에 시 산하의 독립되고 전문화된 관할기구로 편성하여 수준 높은 벽화를 그리도록 기획하였다. 시는 관활기구를 통하여 지역재생, 환경미화, 관광, 교육, 인구감소, 인종차별 등등의 종합적인 목적을 달성하도록 권한을 주고 적극적인 활동을 독려하였다.

수준 높은 벽화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지역민들이 원하는 스토리, 수준 높은 화가의 참여, 이를 뒷받침하는 자금과 벽화를 그릴 벽면의 확보가 필요한데 이중 자금 확보를 위해 필라델피아시의 합리적인 지원과 비영리법인인 필라델피아 벽화회는 연방정부, 시정부, 시티즌은행, 골드만 자산 등과 각종 기업의 참여, 비영리재단 등의 지원, 개인 기부금, 프로그램 운영 수입 등을 활용하여 수준 높은 작품으로 완성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런 정부의 지원과 관리 결과로 필라델피아는 지역 갱생, 도시미화, 어린이 계몽, 범죄 및 인종 차별 반대의 사회 화합, 치유, 관광자원의 확대로 수입 창출이라는 다양한 긍정적 결과를 만들어 냈다. 특히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하는 지역소멸에서도 필라델피아는 급속도로 줄어들던 인구 감소를 막을 수 있었고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2010년 한 해 동안 374백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였으며 112천억원의 경제효과를 발생시켰다. 방문객의 국가는 70개국이 넘는다. 이는 문화체육관광부 2022년 예산 74천억원 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다.

 


필라델피아 도로의 공공미술 사례

필라델피아 도로의 공공미술 사례


필라델피아 도로의 공공미술 사례


필라델피아 건물 전체를 활용한 공공미술 사례

멕 샐리그먼의 필라델피아 뮤즈

 

앤 노스럽의 여름의 맛


앤 노스럽의 여름의 맛.(부분)

 

이런 결과가 생길 수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벽화는 대리석이나 금속 등의 재료를 이용한 공공미술보다 비용이나 제작기간이 적게 소요된다. 또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변색되거나 벽화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서 보수를 해야하는 시기가 도래한다. 이런 장점과 단점을 모두 장점화 시킨 관할기구의 현명함인데 비용이 적게드는 것을 활용하여 스케일이 큰 작품을 만들도록하였고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건물이나 도로 담장을 선정하였다. 또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보수를 해야하는 단점을 활용하여 인기가 없는 벽화는 현시대에 걸 맞는 스타일과 스토리로 다시 제작할 기회를 획득하였다. 따라서 보존과 유지가 필요한 벽화와 새로운 우수작품들이 지속적으로 생산되므로 외지인들에게는 신선한 광광상품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결과가 생긴 것이다.

 

현재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원하는 마을미술프로젝트는 종합적인 기획의 부재로 인해 필라델피아와 출발선은 비슷하지만 결과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는 종합적 고도화 전략의 부재로 인하여 예술가들에게 제작비를 통한 지원금과 마을의 환경미화 정도의 목적으로 시작하였기에 결과 또한 그 정도에서 머물고 있다. 지금이라도 전면적으로 개편하여 우리의 높은 문화 수준을 보여줘야하지 않을까 한다. 지역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지역에 필요한 종합적인 문화산업으로 변모시켜야한다. 현재는 단순히 벽화를 그리고 관리를 위한 점검을 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역민에게는 지역재생, 경제적 이익, 교육, 환경개선, 자긍심을 올리는 기획이 필요하며 관광자원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벽화의 수준이 높아야하는 것은 당연하고 연계되어있는 다양한 관광상품(숙박, 기념품, 요식업, 투어 가이드 등등)의 종합적인 설계의 전문화가 필요하다. 당장이라도 문화체육관광부의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시간을 끌게 되면 전국에 볼품없는 그림들만 넘쳐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뿐이다.

 

다음편에서는 비엔날레, 박람회 등의 고도화를 다룰 예정이다.

 

전통을 현대적 재료와 기법으로 재해석한다.

‘21세기 정신을 전통의 산수화에 담기프로젝트 NO.1

 

Kai Jun  등용문01  150호M 227.3cm X 145.5cm  Acrylic on Canvas  2020년

 

프로젝트를 왜 시작하였는가?

현대미술은 우리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매우 효과적인 장르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현대미술에 대한 인식은 어려운 것이다.’ 또는 나는 문외한이다.’라는 식으로 기피하려한다. 전시장에서 보이는 감상의 상태도 매우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깊이 있는 사색의 시간이 적음은 작품을 통해 자신의 관념 변화를 꾀하려는 시도를 안 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 사회는 대체적인 나라가 자본주의의 사회 구조 안에서 살고 있다. 자본주의는 근본적인 정의로 볼 때 사유재산을 인정한 상태에서 이윤획득을 위해 상품의 생산과 소비가 이뤄지는 경제체제이다. 따라서 생산과 소비의 원활한 흐름을 만들기 위해서는 공감과 소통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공감과 소통은 남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데 일반적인 생활환경에서는 자기의 경험과 관습적인 사고의 고착화로 남의 생각을 받아들이는데 거북함이 많다.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는 좋은 장르가 현대미술이다.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트리고 남의 생각을 받아들이기 좋은 환경 제공 말이다.

 

미국은 자본주의와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국가이다. 현대미술이 미국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현대미술의 꽃을 피운 작가의 대부분은 미국 출신이거나 미국 거주인들 이다.

 

Kai Jun  등용문12  100호F 162.2cm X 130.3cm  Acrylic on Canvas  2020년

 

현대미술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충격적인 것이다.

1863년 에두아르 마네는 풀밭위의 점심이라는 작품을 발표하며 봉건주의적, 관습적 표현에서 탈피하여 모더니즘을 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후 인상주의, 큐비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등 다양한 이즘들이 나타나며 작가들은 당시의 사회에 필요한 정신적 요소를 작품에 녹여 넣는 실험적 경향을 띠게 된다. 수많은 작가들은 스스로 전위예술가(아방가르드avant garde)를 자처하며 시대정신과 문명의 방향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제시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모더니즘에서 나타난 두 가지의 흐름은 조형적 순수 예술사회적 담론으로써의 예술로 정리할 수 있는데 두 흐름 모두 신, , 귀족 등의 봉건적 사고에서 탈피하여 자기 본연의 가치관을 갖게 하려는 목적이다. 그 누구도 누군가에게 귀속 될 수 없고 스스로 완전하며 자기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스스로의 모색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일깨우려는 태도의 산물이다.

19세기까지 사회전반에 깊이 물들어 있는 봉건주의적 사고의 혁명 또는 혁신을 위하여 기존 이념을 개선하기 위한 시도가 매우 많았다. 당시 유럽에서 활동이 많고 잘 알려진 화가들의 대부분은 기존의 사회질서를 개선하기 위하여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이념적 배경을 두고 작품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참여도가 낮은 피카소의 경우도 프랑스 공산당의 당원이었다. 당시 유럽의 대체적인 철학, 문학, 미술, 과학 등등의 창작자들은 이념적 활동을 하였다. 그러던 활동의 변화가 세계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 승전국인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수많은 창작자들과 자본주의 결합이 사회적 이념이 아닌 개인의 사고에 초점이 맞춰지며 자유로운 사고의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때부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추상표현주의 잭슨폴록, 팝아트의 앤디워홀, 색면추상의 마크로스코, 미니멀리즘의 프랭크 스텔라 등등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나타난다. 이 작가들의 출현은 감상자 대상이 다수의 대중을 타겟으로 하는 경향을 띤다. 이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한동안 지속되다가 1989-1991년 인터넷 보급, 천안문 사태, 소련붕괴 등의 대규모 사건과 냉전이라는 이슈의 소멸로 인하여 작가들은 더욱 소규모의 개인으로 타겟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 작가는 개인의 가치관과 삶을 지탱하고 있는 기본 요소들을 일깨우기 위한 충격의 마지막 지점까지 밀어붙이는 실험을 단행하게 된다. 이러한 압박적 충격의 시대가 현재의 미술이라고 볼 수 있다.

 

서양미술은 위에서 거론한 방향으로 작가와 대중이 함께 호흡하며 발전하고 흘러왔으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미술은 그렇지 못하다.

서양미술, 동양미술, 한국미술이라는 지역적인 성향을 말하거나 가치의 차별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효용성을 말하려한다.

 

현재 우리의 삶은 어디까지가 한국적이고 어디까지가 서양적이라고 규정하기 어렵다. 정신적인 관념은 지극히 한국적인 것이 많이 나타나지만 삶을 지탱하는 경제 활동은 자본주의 체제안에 있으니 미술의 문화적 활용에서도 취사선택이 되어야하는데 현대미술은 어려운 것이라는 편견으로 접근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큰 문제로 보인다.

 

세계적으로 학습 수준이 뛰어난 우리는 왜? 현대미술이 어렵다고 하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높은 아이큐와 학습 상태를 보이고 있는데 웬만한 나라 사람들은 다 즐기는 현대미술을 어렵다고 한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몇 가지의 이유가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정보의 단절이라고 본다. 봉건주의를 자체적으로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었고 이는 왜곡된 정보와 일부 사람을 중심으로한 정보 공유의 비대칭이 이뤄지기 시작하였다. 또한 광복 후 나라는 공산, 민주 양대 진영으로 나누어지고 사상적 자유는 억압되거나 박탈되었다. 당시 유럽에서 발전하고 있는 모더니즘(현대미술)은 사상을 바탕으로 발전하였기에 우리나라에 유입되는 미술의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며 사상의 바탕을 배제한 작품의 표현적 결과물만 알게 되었다. 더불어 6.25 전쟁 후 극빈국이라는 가난한 시절에 당장 배워서 생계를 이어갈 기술을 익히고 배우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에 정보의 차단은 별 문제로 부각되지 않았다.

 

사상적 가치를 판단 할 겨를이 없던 당시에는 부각되지 않던 문제들이 유신체제에서는 사회적으로 이슈화 되었으나 반공법이라는 벽에 막혀 미술의 사회적 기능은 배울 수가 없었다. 


196969일 경향신문 기사

 

당시 초중고 미술교과서에도 현대미술은 탄생배경이나 이념적 내용은 모두 제거되고 대표작가와 표현법을 소개하는 정도로 교육하였다.

이런 왜곡된 교육의 시간이 꾀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는 문제가 있다. 이 정보의 왜곡과 단절은 2000년대 들어오면서 서서히 회복되는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문제는 대중의 전통에 기댄 나름의 해석이다. 우리나라는 한문 문화권으로 시서화(詩書畵)는 동일하다는 관념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래서 양반은 누구나 시서화를 하였고 특히 그림은 자기를 정화하고 단련하는 방법으로 활용하여 그림 속에 의미를 담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독화(讀畫)의 방법인데 그림 속에 스토리를 정해 놓고 그 스토리를 상징하는 사물을 배치하여 그림이 하나의 이야기 책이 되도록 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일로연과(一路連科), 한 걸음에 향시와 전시 두 번의 과거에 연속 등과하다.

 

독화의 역사는 오래되어서 서양미술의 가치와 의미가 전달되지 않은 빈 공간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통적인 해석법으로 그림을 이해하려 애를 썼다.

, 서양화를 감상 할 때 서양화의 본질적 가치를 모르니 동양화의 독화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현재까지도 나타난다.

 

수없이 많은 전시를 하며 감상자에게 무엇을 느꼈냐고 물으면 대체적으로 독화의 기법으로 대답을 한다. 형상이 어떻고, 색상이 어떻고, 배치가 어떻고, 뜻하는 바가 뭐고... , 그림을 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형상이나 색상이 분명하지 않은 그림은 해석이 안 되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

 

효용성 있는 미술의 감상법은?

서두에 언급하바와 같이 현대미술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어렵고 쉬울 수가 없다. 동일한 대중문화인 영화를 보면 사건의 크기에 따라 감동의 충격이 차이가 난다. 종결에서 해피엔딩이던 아니던 간에 사건의 크기와 전개의 기발함이 감상자에게 충격을 주기도하고 아니기도 한다. 현대미술도 똑같은 구조 안에 있다.

영화에서 사건과 주인공 그리고 감상자는 동일시되는 현상이 있다. 그리고 그 사건을 통해 전달하려는 주제의식이 감상자의 마음을 바꾸기도 한다.

현대미술은 작가가 감상자의 삶을 근간이 되는 의식을 흔들어 놓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는 질문을 던지는 형식이 많다. 데미안 허스트로 잘 알려진 영국의 YBA그룹의 작가들은 대체적으로 끔찍한 소재를 이용하여 작품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 끔찍한 소재로 만들어지고 그려진 작품들이 현대미술 작품가격에서 탑을 경신하는 경우가 많은데 독화의 방식으로 이 현상을 해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대미술의 가치는 내가 가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젖어 든 어떤 관습이나 편견을 깨고 새로운 나로 탈바꿈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의 정신을 혁신하는 기회를 많이 제공한 작가의 작품이 우수한 작품이다. 따라서 작품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에 따라 내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된다. 마치 멜로영화를 보고 과거에 하지 못했던 사랑을 하겠다고 맘먹거나 액션 영화를 보고 힘을 키워야겠다 거나 나쁜 짓을 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는 것처럼 현대미술을 보고 삶을 돌아보거나 미래를 상상해보는 계기를 만들면 된다.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고 싶으면 내가 가진 철학적 개념과 작가의 철학을 비교 하며 좀 더 따져보면 충분하다.

 

이런 사고의 전환이 있다면 현대미술을 어려워하는 현상은 사라지고 나를 완성해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

 

전시장에 가서 발가락으로 그려도 이것보다는 잘 그렸겠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좋은 현상이다. 그렇다면 발가락으로 그린 것 같은 그림은 무엇을 나에게 질문하기 위함인지를 따져보고 스스로 자기의 과거를 또는 미래를 생각해보면 된다.

또 전시장에 가서 아주 혐오스러운 소재로 그려지거나 만들어진 작품을 보고 무엇을 나에게 질문하기 위함인지를 따져보고 스스로 자기의 과거를 또는 미래를 생각해보면 된다.

 

작가는 아주 예민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사회현상의 재해석을 통해 이 사회를 살아가는 현명함의 힌트를 많이 받아야한다.

 

‘21세기 정신을 전통의 산수화에 담기프로젝트 NO.1은 왜 하는가?

위에서 거론한 것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이 매우 우수한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미술에 있어 매우 위축된 현상을 보인다. 나는 이런 현상이 일단 유감이고 두 번째는 전 세계의 트랜드를 예측하는 힘을 얻는데 중요한 현대미술을 기피한다는 것은 국력이 새 나간다는 것과 동일하다는 견해 때문이다. , 한발 앞선 기업의 탄생이 더뎌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전 세계의 우수 기업들은 혁신을 하기위해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혁신은 사고의 전환에서 나타나는데 고정관념에 얽매여있는 사람이 혁신을 주도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현대미술은 고정관념을 혁파하는 훈련의 최상위 도구라고 본다.

 

나는 이런 신념을 가지고 오랜 기간 작업을 해왔다. 개인적인 성과는 많았지만 본래 가지고 있던 대중에게 혁신의 기회를 주는 큰 효과를 얻지는 못했다. 이런 문제에 대하여 수년간 고민을 하다가 나름의 체계를 잡은 것이 단계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사고의 혁신 수준을 접근이 용이한 것부터 진행해야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프로젝트 NO.1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독화의 해석법에서부터 벗어나는 단계를 느끼게 하기 위함이고 프로젝트 NO.2는 현대미술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기법을 알게 하는 구성으로 되어있다.

 

프로젝트 NO.1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열정을 전통의 산수화를 도구 삼아 표현한 작품들이다. 코로나사태로 처진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좋겠다. 또한 작가의 의도가 자신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 느껴보면 좋겠다.

 

작품은 624일부터 30일까지 안국역에 있는 고도갤러리에서 볼 수 있다. 

 

 

Kai Jun, 희망의 창NO.1​​, Oil on Canvas, 116.7cm X 72.7cm, 2011년 작

 

 

정진은 진진한 태도로 말하기 시작했다.

우선 우리나라가 포지티브 법체계로 발전한 것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광복이후에 할 일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세계에서 3번째의 극빈국이 경제적인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죠. 자원도 없고 힘도 없는 나라는 선택지가 별로 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정치, 행정에 있어 자율성보다는 국가의 발전방향성에 국민이 맞추는 형국이었습니다. 국가는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철저하게 규정 지었으며 그 방법 안에서 국민들은 성실히 자기 업무에 최선을 다하여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의 상황으로 보면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세상이 변하여 지금은 이 방법이 적합도가 떨어진 것이 문제입니다.”

정진은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시민운동가들이 국회의원의 활동을 통제하면서 규제문제는 더 확대 되었습니다. 저도 규제문제를 확대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아픕니다. 규제국가, 규제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이유 중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국회의원의 활동이 너무 적극적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정진의 말에 대부분의 참석자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국회의원이 일을 적극적으로 해서 문제가 생겼다는 말이 도대체 이해가 안 갔다. 숱한 날들을 국회에서 싸움만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언제 무슨 일을 그렇게 적극적으로 했다는 말인지 말이다.

미영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정진에게 질문을 했다.

좀 더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 부탁드립니다. 국회의원이 적극적으로 일을 해서 문제가 생겼다는 말이 뭔가요?”

 

그때 전 국회의원을 지낸 도호진씨가 일어섰다.

저는 국회의원을 한번 한 사람으로서 지금은 국회를 떠났지만 애국심은 변함이 없습니다.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청년들이 모였다는 말을 듣고 작년부터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저의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장내는 다시 진지한 분위기가 흘렀다.

 

도호진 전 국회의원은 용어부터 정리해주었다. 포지티브 제도(Positive System)이것만 해라식의 규제우선 제도이며 네거티브 제도(Negative System)이것만 하지 마라식의 자유우선제도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이것만 해라의 제도이므로 자율성이 떨어지는데 이것만 해라제도가 문제가 된 이유는 규제가 너무 많아서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규제가 현재 13천개를 넘어섰다.

 

규제가 많아진 이유는 크게 3가지이며 첫째는 획일화된 국회의원 평가방법이라고 한다. 국회의원이 재선을 위해 선거에 다시 출마하려면 공천을 받아야하는데 일반적인 평가방법이 계속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의 업무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본회의 출석률, 상임위 출석률, 대표 발의건수, 가결건수 등등이 적용된다. 이 정량적 평가의 허점이 문제를 키웠다는 것이다. 국민에게 얼마나 필요한 법안이냐를 신중하게 따지는 정성적 평가가 아닌 수치상으로 얼마나 일을 했냐를 따진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임기 중 마지막 해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법안이 발의된다. 그중에서 가결이 쉬운 것이 공업·규격·계량 분야가 대안반영 포함 80%되는데 이런 산업에 관련된 세부 규정들이 많아지면서 현재 산업의 융복합 자율성과 어긋난다는 문제다.

 

두 번째로는 산업이 융복합적으로 이루어지다보니 정부의 주무부서 모호성으로 이중적 기준이나 규제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현재는 각 산업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가 나눠져 있지만 앞으로는 모든 산업에 5G 이동통신,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등이 결합되어야하는데 자율주행차, 무인점포, 인공지능 의료, 증강현실 패션 등등 현재 산업이 4차산업혁명의 기술과 결합하여 진화된 산업에서는 주무 부서를 구분할 수 없다는 문제이다. 즉 과도기인 현재는 4차산업혁명에 관련된 산업 대부분은 위법한 상태로 노출된다는 것이다. 아니라면 우리나라의 모든 산업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관리해야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국민의 관심분야라고 지적한다. 입법부의 담당자가 국회의원이므로 국회의원을 뽑을 때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 일을 할 사람을 뽑아야하는데 국민의 관심이 이념이나 사상이 자신의 관심사와 같은 사람을 뽑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회의원이 하는 일중에서 언론에 주로 비춰지는 내용은 이념이나 사상적 바탕을 둔 사건들이 주로 방송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민의 삶을 좌우하는 것은 경제적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산업을 일으킨 국회의원은 방송에 조명되지 못하고 이념적으로 잘 싸운 국회의원이 부각된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산업을 일으킬 법안을 잘 만들어야 국민의 삶이 좋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을 평가하고 심판하는 국민이 국회의원의 평가를 잘못한다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도호진 전 국회의원의 발언이 끝나자 장내는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국회의원의 잘잘못을 성토하는 사람, 정부의 무능을 성토하는 사람, 자기를 비판하는 사람 등 여러 가지의 이야기가 장내를 웅웅거리게 만들었다.

 

장내가 소란스러워지자 의장인 태성이 발언자를 다시 지목했다. 사업가인 최영석 대표가 발언을 했다.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저도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IMF사태 이후에 벤처를 시작하여 지금까지 사업을 하고 있는데 빚만 엄청나게 많습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강남의 건물을 팔아 10억 정도 마련하여 사업자금으로 활용했습니다. 만약 그 건물을 팔지 않았다면 지금 몇 백억 원은 되었을 겁니다. 사업을 하면 할수록 빚이 많아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사업의 환경이 참 안 좋습니다. 2000년대 이후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규제개혁을 외쳤지만 한 번도 해결된 적은 없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기대감이 있었고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서 일을 하면서도 정부에 기대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오늘 알게 되었습니다. 정부에게 바랄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태 정부 탓만 했습니다. 정부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가 바로 서려면 국회의원을 잘 뽑아야하는군요. 저는 기업을 다시 반석위로 올려야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 회사의 직원들과 관련 기업들의 직원들에게 오늘 들은 내용을 알리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선거에서는 기업과 경제를 살리는 후보를 지지하겠습니다. 그동안 뽑은 국회의원들 생각하니 후회가 많이 됩니다.”

 

최대표의 발언이 끝나자 도호진 전 국회의원이 다시 발언하였다.

최대표님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이런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비관만 할 것은 아닙니다. 최근 우리 단체 외에도 국회의원의 의정활동 평가를 혁신적으로 만들어 진행하는 청년단체가 있습니다. 그들이 만든 의정혁신 평가 방식은 4차산업혁명시대 경쟁력 강화 등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한 혁신 법안, 국회의원의 대국민 성실도, 국민의 질적인 삶과 밀접한 민생 혁신 법안, 각 분야의 혁신 관련 법안 발의 현황, 국민과 국가를 위해 매우 필요한 법안임에도 제반 여건 미비로 통과되지 못한 폐기 법안, 기타 정량평가, 기타 정성평가 등 7대 부문과 하위 10개 항목, 80개 세부지표를 평가해, 최고평점 국회의원, 창의력우수평점 국회의원, 최우수평점 국회의원 등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 순위를 매긴다고 하는데 과거의 의정평가보다 정성적 평가를 하므로 많이 개선되었다고 봅니다. 이런 청년 단체의 움직임은 더욱 활성화 되어야 하며 구체적으로 경제를 혁신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인허가 요건의 구체화 및 명확화, 중복규제의 금지, 국민불편해소적 규제로의 전환, 협력적·자율적 규제방식의 적극 활용, 규제비용의 명확한 반영, 현실적 규제로의 전환, 의원입법의 사전규제영향분석 및 규제일몰제 도입, 규제총량제를 넘어 규제감량제 도입, 청부입법의 원칙적 금지 등을 제안 해야합니다.”

 

도호진 전 국회의원의 발언 이후로 국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국민들이 어떻게 노력해야하는지 국민의 실천사항은 무엇인지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4부 끝-

그들이 만들어 갈 희망의 나라. 다음편도 기대해 주세요.

 

 

Kai Jun(전완식)

30여 년간 인물화를 중심으로 회화 작업에 열중하였다. 인물화에 많은 관심을 둔 것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 또한 인물을 그리기 위해 대상의 정신세계를 그림 안에 투영하려 노력하였다. 인물화를 넘어 진정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간의 감정과 감성을 다룬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주요 미술경력은 국내외 개인전 27회 단체전 80여회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위치에 따른 형상 변화 신비510년 만에 재현 -대한민국 7번째 대통령 인물화 작가(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소장 / 문재인, 트럼프 대통령 청와대 소장) -Redwood Media Group 글로벌 매거진(뉴욕 발행) ‘아트비즈니스뉴스표지 작가 및 뉴트랜드 작가 15인 선정 -미국 행정/정책학 대학원 석,박사 과정 강의 자료로 작품 선정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운영위원, 기획위원 -대한민국 미술인의 날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장 -광복70주년 국가 행사 대표작가(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및 서울도서관 전시)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기원 전시행사 대표작가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학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산업대학원 졸업하였다.

현재 한성대학교 ICT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미술협회 이사, 설치미디어아트분과 부위원장, 국가미래연구원 문화예술체육 연구위원이다. 

 

Kai Jun, 희망의 창NO.3​​, Oil on Canvas, 116.7cm X 72.7cm, 2011년 작

창수가 네거티브 법체계 전환의 의견을 내었고 참석자들은 대체적으로 동의를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나라의 법체계는 포지티브 법체계로 되어있다. 법으로 허락된 것만 할 수 있는 방식이어서 법 환경이 산업보다 선제적인 구성이 되어야하는데 산업의 발달 속도가 더뎠던 과거에는 이 방식이 효과적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이뤄지고 있는 융복합적인 산업과 4차산업 혁명에 포함되는 산업들은 법이 선제적 환경을 만든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입법에 관련된 사람들은 국가적 대 혼란을 운운하며 반대를 한다.

 

행정학을 전공한 제훈이 반대 의견을 내었다.

대한민국은 이미 70여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이며 기존 법체계로 모든 국민이 익숙해져 있는데 갑자기 법의 기본 개념까지 바뀌는 변화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인데 이런 큰 변화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또한 우리가 논의하고 결정한다고 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제훈의 말에 회의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네거티브 법체계 전환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동의하던 분위기에서 회의장은 순간적으로 무기력해졌다.

이유는 이미 수년 전부터 많은 경제인들이 네거티브 법체계 전환에 대한 의견 개진이 있었고 이에 대하여 규제 샌드박스 등의 개선안을 냈지만 결과적으로 일부의 변화만 있었지 큰 틀은 변함이 없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전반적으로 팽배되어있는 의욕상실의 국가적 분위기였다. 회의장에 나온 사람들조차 의욕이 많이 상실 된 상태였다.

 

술렁이는 회의장 분위기를 의장인 태성이 다시 잡으려 애썼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방금 말씀 주신 내용은 많은 분들이 우려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개선을 위한 깊은 고민이 이 자리에서 일어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해야 합니다.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직 힘은 없지만 지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혜를 통해 힘을 만들면 됩니다. 지혜를 모아 주십시요!”

태성의 말에 이번에는 미영이 발언을 했다.

 

어려움은 있겠지만 이미 4차산업혁명에서 상당히 밀려있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합시다. 유전공학이나 크리스퍼 기술에서 세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데 생명윤리법으로 사업화 하지 못하는 회사가 한둘이 아니며, 선점한 드론 기술이 각종 규제로 사그라든지 오래되었으며 공유경제는 발도 못 붙이는 상태입니다. 청년실업의 문제도 이와 연관이 있습니다. 대학에서 최첨단의 학문을 연구한 학생들이 취업할 기업이 없습니다. 모두 규제로 인해 연구소의 범위를 넘어가지 못하니 어떻게 취업을 하겠습니까? 중소기업들은 기술을 사업화하지 못하여 결국 해외로 나가고 있습니다. 말기 암 환자와 같은 우리 경제 상황 속에서 못할게 뭐가 있나 싶습니다.”

미영은 강하게 발언을 했다. 미영은 어려서부터 사회 시스템이 국민을 편안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강했던 사람이다. 그녀는 로펌에 근무하며 접했던 문제들을 더 열거하였다.

산업의 지형이 변하였습니다. 한 가지만 잘해서 되는 시절은 지나 간지 오래되었으며 융복합이 기본입니다. 또한 누구를 막론하고 사회적 이익을 발생시킬 수 있는 것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 시스템으로 변한지 오래되었습니다. 이런 변화가 자연스럽고 편안한 환경인 해외 선진국에 비하여 우리나라는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사업화 할 수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기업지형도에서 허가를 받기위해 몇 개월에서 몇 년을 기다려야하는 우리나라는 뒤쳐질 수밖에 없습니다.”

미영은 작심한 듯 성토를 하였다.

 

창수도 다시 발언하기 시작했다.

제가 몇 년간 국회의 입법 현황을 분석해보니 접수된 것이 15대국회 1951, 162507, 175024, 18대 국회 13,913, 19대 국회 17,822, 20대국회 23,048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많은 입법 내용 중에서 공업·규격·계량 분야가 대안반영 포함 80%의 가결률을 보였습니다. 그중에서 20대 국회의 경우 규제 법안 발의 건수는 3773건으로 하루에 3개꼴로 규제 법안이 발의됐고, 이 가운데 1개는 통과되었습니다. 모든 법이 규제를 위한 것은 아니겠지만 규제안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산업은 발목을 잡히는 꼴이 되겠지요. 어찌 15대 국회의 총 입법 발의 건수보다 20대 국회의 규제법안 발의가 2배로 많은지 이해가 안 됩니다.”

 

창수의 발언에 미국에서 기업을 하는 종석이 거들었다.

저도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기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유학을 어려서 갔기에 미국식으로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미국에서 배우고 느낀 것들을 한국에서 펼쳐보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특히 제가 가진 신기술을 한국에서 실현시키기 위해 귀국하여 조그만 기업을 일으켰는데 앞서 말씀하신 분들의 얘기처럼 규제 장벽에 막혀서 3년간 고전하다가 결국 실리콘밸리로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이라도 부모님이 계시는 한국에서 기업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돌아오고 싶은 마음입니다.”

 

종석의 말은 현실을 말하는 것이었다. 종석의 말이 끝나자마자 재희도 일어나 얘기하기 시작했다.

저는 어려서 생명공학자로 살겠다는 결심을 하고 수십대일의 경쟁률을 뚫고 대학을 입학하여 성실히 공부했으나 지금은 학원에서 생물과 수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학생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도 속으로는 대학가면 뭐하나 취직할 곳도 없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한 마음이 강하게 듭니다. 어서 현실적인 국가 운영의 방안이 나오지 않으면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의장 열기는 다시 뜨거워졌다. 다소 흥분한 사람들도 보였고 골똘히 생각하는 사람들도 여럿 보였다.

나이가 조금 많아 보이는 중년의 사나이가 일어나더니 발언하기 시작했다.

저는 상당기간 국회에서 보좌관 일을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법안 발의 건수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와 관련 있는 주요국 중에서 법안 발의 건수는 한국이 23048건으로 가장 많고, 미국 115대 의회는 13556, 영국은 2010~2015년까지 890, 일본 3차 아베내각은 626건입니다. 가결 건수 역시 우리나라가 6527건으로 가장 많고, 미국 443, 일본 250, 영국 182건 순입니다. 이 많은 법은 생활환경에 큰 지장을 줍니다. 법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개인이나 기업가들은 환경이 바뀌는 것과 같습니다. 변경되는 대학 입시법으로 학생들이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계시는 모든 분들이 이미 경험을 해보셨을 겁니다. 그런 환경 변화가 기업에게 주어지면 기업은 새로 기업환경을 조성해야하니 어려움이 있겠죠. 선진국일수록 법을 바꿈에 있어 신중하게 법을 다룹니다. 그 신중해야 할 법에 규제까지 더해지니 어려움은 심각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지금까지 발언하신 분들의 얘기 모두 공감하고 있습니다.”

보좌관 출신의 정진이 말을 끝내자 태성이 정진에게 질문을 했다.

정진님께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태성의 질문에 정진은 숨을 고르며 발언하기 시작했다.

 

-3부 끝-

그들이 만들어 갈 희망의 나라. 다음편도 기대해 주세요.

 

 

Kai Jun(전완식)

30여 년간 인물화를 중심으로 회화 작업에 열중하였다. 인물화에 많은 관심을 둔 것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 또한 인물을 그리기 위해 대상의 정신세계를 그림 안에 투영하려 노력하였다. 인물화를 넘어 진정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간의 감정과 감성을 다룬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주요 미술경력은 국내외 개인전 27회 단체전 80여회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위치에 따른 형상 변화 신비510년 만에 재현 -대한민국 7번째 대통령 인물화 작가(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소장 / 문재인, 트럼프 대통령 청와대 소장) -Redwood Media Group 글로벌 매거진(뉴욕 발행) ‘아트비즈니스뉴스표지 작가 및 뉴트랜드 작가 15인 선정 -미국 행정/정책학 대학원 석,박사 과정 강의 자료로 작품 선정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운영위원, 기획위원 -대한민국 미술인의 날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장 -광복70주년 국가 행사 대표작가(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및 서울도서관 전시)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기원 전시행사 대표작가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학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산업대학원 졸업하였다.

현재 한성대학교 ICT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미술협회 이사, 설치미디어아트분과 부위원장, 국가미래연구원 문화예술체육 연구위원이다.

 

 

Kai Jun, 희망의 창NO.9​​, Oil on Canvas, 135cm X 135cm, 2011년 작

창수는 태성이네 포장마차에서 미영이를 소개받는다. 미영이는 태성이네 학교의 법대를 다니는 수재인데 태성과 같이 국가의 미래를 발전시키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만나서 반가워. 태성이에게 얘기 많이 들었어. 마초 같은 남자라고 하하하

미영이는 창수에게 인사를 하는데 창수는 왠지 부끄러웠다. 하지만 자신이 남성미가 있다는 뜻으로 생각하고 인사를 받아들였다.

나도 태성이에게 얘기 들었어. 생각이 무척 깊고 현명한 사람이라고. 반가워.”

~.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는데 우선 뭐라도 먹고 얘기하자. 어머니 여기 가락국수 맛있게 세 그릇 주세요.”

태성이 어머니가 말아주는 국수를 먹고 세 사람은 진지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우리 평소에 많이 얘기했듯이 우리가 국가의 미래를 발전시키기 위해 뭘 해야 할지 방향을 잡을 논의를 하자. 각자 하고 싶은 얘기 해봐.”

태성은 본격적으로 논의를 하자고 제안했다.

 

얘기를 하기 전에 내 얘기를 먼저 하는 것이 좋겠어. 나는 너희들처럼 깊이 있게 생각해보지 않았었거든.”

창수가 먼저 말을 꺼냈다. 창수도 뭔가 사회적 변화를 위해 노력을 하고 싶지만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는 것을 솔직하게 얘기하고 싶었다. 그래야 이 두 사람과 호흡을 맞출 수 있다고 느꼈다. 창수는 다시 말을 꺼냈다.

 

나는 태성이 만나기 6개월 전까지는 사실 사회에 불만만 많았지 어떻게 개선해보겠다는 생각은 없었어. 그때 태성이가 지금 있는 어떤 일 때문이 아니다.’라는 말을 했지. 내가 어떤 감정과 태도를 보이는 것이 이미 누적된 어떤 다른 문제와 결합되어 나타난다는 것을 느꼈고, 어릴 때 나는 매우 능동적이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따지고 보니 정 반대의 경우라고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객관적인 입장으로 세상을 보려고 노력했는데 아직도 잘 안 되는 것을 느껴. 나 하나도 통제가 잘 안되고 판단이 안 서는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불편한 마음이야. 그러나 열정은 있어.”

창수는 처음 보는 미영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조금 자존심이 상했지만 솔직하게 다가가는 것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말했다.

 

창수의 말이 이해되는 부분이 많아. 아마 미영이도 비슷한 경험이 있을 거야. 미영이도 나처럼 이런 고민을 하게 된 동기가 있고 그 이후에 생각하게 되었겠지. 창수하고는 처음이니 미영이가 네 얘기부터 해봐.”

태성은 미영이가 왜 이런 고민을 하게 되었는지를 말하게 하였다.

 

나는 어릴 때 발레리나가 되는 것이 꿈이었어. 우리 집은 이름난 고기집을 하고 있었는데 광우병 사태가 나면서 망했지. 나는 발레를 더 이상 할 수가 없었고 집안 식구들도 예전처럼 생활 할 수가 없었어. 당시에는 어려서 뭐가 문제인지 몰랐고 꿈을 포기하게 된 것에 대한 아쉬움과 불만이 많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우리 집이 망한 것은 단지 수입소고기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로 이렇게 됐다는 것에 분노를 느꼈지.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는 정치인이 되어야겠다. 나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정치인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래서 법대에 가게 된 거야.”

창수는 자기만 황당한 일이 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태성이나 미영이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놀라웠다.

 

미영은 감정을 추스르며 말을 이어갔다.

밤마다 엄마와 아빠가 손님이 없어서 식재료 구입한 것을 팔지 못하고 버리면서 우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그렇게 팔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지자 식당에는 직원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결국 아빠와 엄마만 남아있다가 망했지. 나는 지금도 엄마가 식재료를 버리면서 우는 모습이 눈에 선해.”

미영의 말이 끝나자 태성이가 제안을 했다.

 

우리는 공통점이 있는 사람들이야. 우리 부모님 격은 일들은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었다고 생각해. 그런데 이런 일들이 재발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어. 우리가 사회 생활하다가 또 그렇게 될 수도 있고 자식들이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져야해. 그런데 우리는 아직 이런 문제를 해결할 만한 능력도 지혜도 없으니 우선은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우리가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보자. 의견들 줘봐.”

태성이의 말이 끝나자 미영이는 큰 틀을 먼저 짜야한다고 제안을 했다.

 

큰 틀의 기본 골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국가의 주인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 만큼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이 뽑은 대표자가 국민의 권리와 이익을 위하여 국정을 운영하는 나라이니 스스로가 국민이면서 대표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창수는 미영의 얘기를 듣고 생각이 깊어졌다.

맞아. 내가 예전에는 피해의식만 가지고 있었지... 문제를 해결하려는 주체성이 없었어. 돌아가신 어머니도 피해를 호소하기만 했었지. 적극적인 자세가 중요하구나. 의식의 변화가 있어야한다. 의식의 변화...’

창수는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 의무, 의식의 중요성을 생각하였다.

 

태성이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을 몇 가지 제시했지만 창수는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조금은 어려운 말들이었다. 창수는 태성의 얘기가 끝나자 진지하게 제안을 했다.

태성이 얘기가 좋을 것 같긴 한데... 나는 사실 그런 방안을 실천할 능력이 안 돼. 두 사람은 이미 어른스러운 태도로 생각한지 오래되었겠지만 나는 6개월 전부터였고 그것도 태성이를 만나서 가능해졌지. 아마 내 또래 친구들 대부분은 나와 비슷할 거야. 뭔가 진입단계를 만들어 주면 좋겠어.”

창수의 얘기에 태성과 미영도 동의하였다. 세 사람이 고민하는 문제의 핵심은 더 이상 피해자를 만들지 말자는 것인데 그것은 뛰어난 정치인이 나타나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국가 운영의 수준이 높아져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여러 가지의 의견이 나오다가 온라인카페를 만들어서 글도 올리고 의견도 모으고 동영상도 만들어서 가능한 많은 사람들의 의식의 수준을 높이는 것부터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창수의 얘기가 큰 도움이 되었어. 나와 미영이는 주도적으로 뭔가를 하겠다는 생각이 강하다보니 참여자의 범위를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 우리뿐만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생각을 해본적은 없었던 것 같아. 각 분야별로 연구하는 소모임을 결성하자. 그리고 그것을 확대한다면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

태성은 창수의 의견이 틀을 잡는데 기여했다고 칭찬 비슷하게 말해주어 창수의 기를 살려주었다.

 

온라인 카페는 그렇게 만들어졌고 경제학과를 다니는 태성은 경제문제를 미영은 법률적인 문제를 창수는 역사적인 사실들을 통해 배울 점을 찾는데 주력하기로 했다. 창수는 수능성적에 맞춰 대학을 정하고 학과를 정하여 본인 재능과 상관없이 역사학과를 다니고 있다. 그런데 태성이를 만나서 역사학과를 다닌 것이 잘 한 일이 되었다. 창수는 학교에서 배운 역사를 이해하는 법을 통해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느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서 카페에 참여자들 중에서 자발적으로 과학, 기술, 교육, 문화, 행정, 의료, 사회 복지, 외교 등등의 각 파트별로 연구 모임 담당자가 구성되었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고 대학도 다양했으며 지역도 제각기였다. 온라인으로 운영하다보니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참여하는 확장성이 있어서 좋았다.

 

몇 년 뒤 온라인 카페가 활성화되었다. 회원수가 10만 명을 넘어가면서 연구의 결과물들도 엄청나게 많아졌다. 온라인 카페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며 좋은 아이디어를 내 놓았다.

그 사이 창수는 역사연구소 연구원이 되었으며 태성은 사업을 하게 되었고 미영은 로스쿨 졸업과 동시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여 로펌에 다니고 있다. 온라인 카페는 많은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 시키며 확장되다가 회원 수가 줄고 연구물이 안 올라오는 위기가 생겼다.

 

세 사람은 과거와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었지만 나라는 그렇지 않았다. 늘 이념 대립이 생겨서 좌우의 충돌이 많았고 세계 경기의 악화로 국내 경기도 인공호흡을 해야 할 지경에 달하고 있었다. 경제성장률은 2%대를 밑 돌기 시작한지 몇 년 되었고 국민 전반적으로 살림살이가 좋지 않았다.

더 문제가 심각한 것은 성장 동력으로 작용해야하는 중소기업들이 해외법인 설립 후 대거 이주했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문제들로 온라인카페의 회원들도 의욕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유는 연구 결과물들이 반영되지도 않았고 자기 자신도 먹고 사는 문제가 심각해지기 때문에 참여가 쉽지 않았다.

온라인 카페의 각 분야 리더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임을 가졌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모두 모인 것은 카페의 운영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전반적인 문제를 논해보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탄없는 의견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태성이 의장으로서 회의를 시작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지만 그 중에서 특별했던 것은 창수의 의견이었다.

창수는 역사를 전공한 사람답게 생각이 깊어졌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뛰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터전이 없다는 것이 문제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현재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정조대왕 때입니다. 만약 정조대왕이 의도했던 일들을 모두 마쳤다면 조선말기의 혼란도 없었고 일제 강점기도 없었으며 한국전쟁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평시에는 내려오던 법률과 국정운영 방식을 활용하여 진행하면 되지만 세계적인 변화의 시기에 변화를 못하면 고립되는 것과 같은 현상이 생깁니다. 즉 변화하지 못하면 의도치 않게 쇄국하는 것 이라는 말입니다. 서론이 길었는데 본론으로 말씀드리면 우리나라는 법에 명시된 것만 가능하게 하는 포지티브(positive) 규제가 4차 산업혁명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전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데 우리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어려운 환경이어서 참신하고 역동성 있는 아이디어를 가진 중소기업은 활로를 찾지 못하고 해외로 이주하게 되는 것이죠. 정조대왕도 당시에 그런 세계적 변화를 감지하고 법과 규제를 새롭게 만들어 새로운 세상에 맞는 정치를 하려했는데 아쉽게 꿈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돌아가셨죠. 우리나라의 법체계로는 4차산업혁명을 수행할 수가 없습니다.”

창수의 의견에 많은 사람들은 동의하였고 네거티브 법체계의 전환을 위한 방안 모색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밝게 만든다는 생각으로 회의는 계속 되었다.

 

-2부 끝-

그들이 만들어 갈 희망의 나라. 다음편도 기대해 주세요.

 

 

Kai Jun(전완식)

30여 년간 인물화를 중심으로 회화 작업에 열중하였다. 인물화에 많은 관심을 둔 것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 또한 인물을 그리기 위해 대상의 정신세계를 그림 안에 투영하려 노력하였다. 인물화를 넘어 진정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간의 감정과 감성을 다룬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주요 미술경력은 국내외 개인전 27회 단체전 80여회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위치에 따른 형상 변화 신비510년 만에 재현 -대한민국 7번째 대통령 인물화 작가(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소장 / 문재인, 트럼프 대통령 청와대 소장) -Redwood Media Group 글로벌 매거진(뉴욕 발행) ‘아트비즈니스뉴스표지 작가 및 뉴트랜드 작가 15인 선정 -미국 행정/정책학 대학원 석,박사 과정 강의 자료로 작품 선정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운영위원, 기획위원 -대한민국 미술인의 날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장 -광복70주년 국가 행사 대표작가(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및 서울도서관 전시)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기원 전시행사 대표작가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학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산업대학원 졸업하였다.

 

현재 한성대학교 ICT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미술협회 이사, 설치미디어아트분과 부위원장, 국가미래연구원 문화예술체육 연구위원이다.

 

 

Kai Jun, 들꽃처럼 다시 피어난다​​, Oil on Canvas, 90.9cm X 72.7cm, 2019년 작

명동 성당의 종소리.

 

9년 전 철없던 내가 들었던 그 소리가 같은 시각에 울려 퍼지고 있다.

오후 6시에 울리는 만종,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에 울리는 종소리는 경건하게 나의 하루를 돌아보게 한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전화 드렸던 한국동물보호협회 미스 김입니다.”

~! 전화 목소리로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미녀네요. 반가워요

명동 성당 바로 앞에 있는 카페에서 미스김과 나는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이번에 저희 협회에서 대표님의 공로를 인정하여 공로상을 드리려고 하는데 대표님의 봉사에 대한 기사도 나가요. 대표님이 봉사하게 된 계기를 말씀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미스김의 요청에 나는 조금 당황 했다. 나의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고 계기가 좋아 보일수도 없어서였다.

우물쭈물하는 나에게 미스김은 말하기 어려운 뭔가가 있나?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다 이렇게 얘기했다.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그냥 편하게 말씀하시면 제가 걸러서 기사로 내면 되니까요.”

미스김은 사람을 안정시키고 신뢰감을 주는데 재능이 있었다. 그녀는 인터뷰보다 일상적인 얘기를 꺼내며 나를 안심 시켜주었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한 뒤에 나에게 다시 질문을 했다. 나도 마음이 편안해지니 어떤 얘기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뭐부터 얘기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두서없이 막 얘기하더라도 미스김이 잘 정리 해주세요.”

나는 괜히 손에 힘이 들어가고 식은땀이 살짝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대표님이 동물보호에 앞장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미스김은 미소로 나를 계속 안정시켰다. 그녀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녹음기와 메모지를 연신 쳐다보았다.

. . ..”나는 목이 메어오는 것을 참아가며 말을 이어 보려했다.

저는 심각한 우울증이 있어서 한때 자살을 생각했었어요. 자살을 하려고 건물 옥상에 올라갔는데 한걸음 땔 때마다 온몸이 떨리더군요. 난간을 붙잡았는데 다리가 떨려서 발을 난간 위로 올릴 수가 없었어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데 반대편 옥상에서 길고양이 두 마리가 생선 머리 하나를 두고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것을 보았어요. 날카로운 비명 소리처럼 들리는 고양이의 울음소리와 쉭쉭 소리를 내며 서로 달려드는 격한 모습에서 저는 충격을 받았죠. 저는 갑자기 나는 온 힘을 다해서 살아본 적이 있나? 저 고양이들은 한 끼 식사도 되지 않을 조그만 생선토막 하나에도 목숨을 거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죠.” 나는 말을 이어가기가 힘들었다.

그러셨군요. 힘든 일이 있으셨네요.”

미스김은 자기도 이런 얘기가 나올 줄은 몰랐다는 듯한 당황한 눈빛이었지만 담담한 목소리로 계속 이어가라는 느낌을 줬다.

저는 고양이들이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거는 싸움을 보며 나는 온 힘을 다해 살아본 적이 없다라는 결론에 도달하자 비참했습니다.” 나는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이쯤에서 멈추고 싶었다.

미스김은 열심히 받아 적다가 나를 다시 쳐다봤다.

... 대표님 계기는 알았는데 좀 더 사연을 말씀해 주시면 좋겠는데요. 기사라는 것이 어느 정도 스토리가 구성되어야 독자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에... ... 제가 동생이다 생각하시고 지금 성공하신 대표님의 과거를 거울삼아 배울 수 있는 내용을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문장 구성이나 정리는 제가 최선을 다해 해볼테니 대표님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편하게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미스김이 동생이라고 생각하고 말해주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내가 만약 동생이 있었다면 말해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커피를 한모금 넘기며 나는 진정을 찾아 다시 얘기를 시작했다.

저는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여기 바로 앞에 있는 계성여고를 나왔죠. 종교를 갖지는 않았지만 계성여고를 다니는 동안 천주교의 교리나 우리학교 이사장님인 고 김수환 추기경님의 말씀들이 참 좋았습니다. 대학은 한성대학교를 나왔고요. 저는 강북 시내에서 자라며 명동과 대학로가 저의 보편적인 놀이터였죠. 저는 늘 그랬던 것처럼 9년 전 가을 친구와 오랬만에 이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어요. 친구 미영이는 오랜만에 만났기에 보통 여자 친구들의 만남이 그런 것처럼 그동안 있었던 사는 이야기와 아이들 이야기 남편 이야기를 하며 공통점을 확인하고 아직도 우정이 변하지 않았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미영이는 가락동시장 청과 경매사에게 시집을 가서 경제적으로는 풍족한데 경매시간이 저녁부터 새벽까지 있어서 낮 밤이 바뀐 삶을 살고 있었지요. 그런데 새벽에 들어오는 남편과 아이 등교 준비로 진짜 낮 밤이 바뀌어 아침 9시나 되어야 잠을 잔다고 하며 푸념 아닌 푸념을 한참 들어주고 내 얘기도 풀어 놨었습니다.”

친한 친구분이셨나 보죠?” 미스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얘기를 흥미있게 듣고 있었다.

. 미영이와는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고 잘 통하는 사이였죠. 지금 생각해보면 철없기는 똑같았는데 그 친구와 저는 남편의 직업이 달랐죠. 저에 전 남편은 의사였습니다.”

미스김은 내가 전 남편이라는 말에 눈을 다시 동그랗게 뜨고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상하게 그 순간부터 말이 잘 나오기 시작했다. 큰 사건 두 가지를 얘기하니 못할 말이 없다는 배짱이 생겼다.

저의 삶은 사실 단순했어요. 남편은 개원의 생활을 하다가 병원을 접고 페이 닥터로 큰 병원에 다니고 있었고 딩크족처럼 어떤 이유로 인해 아이를 미루거나 낳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안 생겨서 없었죠. 생활에 특별할 것이 없었어요. 그래서 인지 삶이 매우 무료했습니다. 어제도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을 것이라는 예상이 되는 삶 말이죠. 미영과 달리 저는 너무 평범하여 재미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미영이는 반응이 달랐어요. 제 손까지 잡아가며 흥분해서 말했었죠.”

미스김에게 말하는 사이 나는 타임머신을 탄 듯이 과거의 그 시간에 돌아가 있었다.

 

어쩜 너와 나는 이렇게 공통점이 많을까? 나도 그래. 낮 밤이 바뀌어 살다보니 만나는 사람도 적어지고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더라고... 특히 아이 학교 다니고 나서부터는 낮에도 애 챙겨야하니까 잠을 쪼개서 자야해. 그러다보니 하루가 남편 챙기고 애 챙기고 남는 시간 잠자고 나면 끝이야. 어떤 날에는 왜 사나 싶기도 해. 우리 말이야 예전에 폼 좀 났잖아. 길 가다보면 남자들이 연락처 달라고 쫓아다니고 호호호. 한번 사는 세상, 재미있게 살아야하는데 이게 뭔지 모르겠다.”

미영의 말에 나도 괜히 흥분 되었었다. 나는 계성여고 다닐 때 명동을 지나다 보면 길거리 캐스팅 제안을 여러 번 받았었고 미영은 한성대 퀸카였다. 우리는 옛날 생각에 온몸이 후끈했다.

그렇지. 나도 요즘 참 재미없어. 우리 다시 명동 좀 누며 볼까? 하하하, 호호호

나와 미영은 손뼉까지 쳐가며 서로 좋아했다.

 

그때 미영과 나는 어릴 적 버릇을 못 고친 상태였는데 둘이 다시 만나게 되니 과거로 돌아가 버렸다. 우리는 멋 부리길 좋아하고 백화점을 구경 다니길 좋아하며 명품을 누가 더 좋은 것 가지고 있나를 경쟁하고 그랬었다.

미영을 오랜만에 만났을 당시까지는 보통 1년에 한번 만날까 말까 했는데 그 다음 주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었다.

다시 만난 우리는 영화를 봤고 노래방도 갔고 백화점을 여기 저기 돌며 결혼이후에 안 해본 것들을 둘이서 신나게 했었다. 미영이와 나는 왠지 대학생 때의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 같아 신이 났었다. 1주일에 한 번씩 만나게 되었고 그동안 안 가본 곳이, 안 먹어본 것이, 안 해본 것이 이렇게 많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사는 것 같고 활력이 넘쳤고 즐거웠다. 미영이와 신나게 노는 시간이 몇 개월 지났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서로 해보고 싶은 일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만나도 뭐하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또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미영을 다시 만났다.

미영은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

이제 신나게 놀았으니 다시 집안일 신경 쓰자. 우리 그만 놀자. 이렇게 너와 몇 달 놀으니 속이 다 시원하다. 역시 격 없는 친구가 최고야. 네가 나와 함께 해주어서 참 좋았다.”

미영은 웃으면서 말했지만 왠지 무거웠다. 그러면서 아이 학교생활 얘기를 했다. 아들이 학교에서 회장이 되었고 자기가 이제 뒷바라지를 열심히 할 생각이라고 했다.

미영의 얘기를 듣는데 나는 우리의 만남을 중지해야하는 특별한 계기가 없었다. 그런데 미영이에게 가끔씩은 만날 수 있지 않냐?는 식의 얘기를 꺼내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마음속으로는 , 누구 만날 사람도 특별히 없고 놀 사람도 없어. 미영아 그러지 말고 우리 가끔 보자.’라는 말이 혓바닥 위에까지 올라와 있었지만 나는 엉뚱한 말을 했다.

그래. 우리가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다 보니까 정말 옛날 생각하며 신나게 잘 놀았다. 나도 뭔가 새로운 일을 해볼까 궁리 중이었는데...”

말꼬리를 흘리는 내말을 미영이 잘라가며 말했다.

그렇지! 너도 뭔가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구나. 역시 우리는 호흡이 잘 맞아. 뭔데? 어떤 일을 생각하는데?” 미영은 뭐가 그리 궁금한지 재차 물었다.

. 아직 정한 건 없고, 고민 중이야. 나중에 정리되면 얘기 할게나는 진짜 계획된 일이 없었기에 해줄 말도 없어서 그냥 막 둘러댔다.

 

미영과 헤어지고 집으로 오는데 헛헛한 기분이 가슴속에 꽉 찼다. 친구를 잃어버린 기분 같은 묘한 느낌까지 들었다.

 

대학 졸업하고 선배가 소개해준 남편과 6개월 남짓 연애하고 결혼했으니 내 인생은 너무 단순하다는 생각이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여자는 너 위하는 착실한 남자 만나서 사는 것이 최고다.’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서 인지 내 인생의 설계나 재능을 따져 본 적이 없다. 그냥 학교 열심히 다니고 대학은 성적에 맞춰 적당한 곳에 다녔고 남들 한두 번 받는 장학금도 받았다. 그 정도가 인생의 성적표다. 따져보니 내가 원했던 것이 있었나 싶었다. 어려서 나는 과학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던 것이 고등하교 다니면서 대학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재능도 꿈도 아닌 성적에 맞는 인생을 살게 되었다. 쉬운 인생만 쫒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도 부모님이 말하던 조건과 부합되기에 특별한 고민 없이 선택했고 그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겉으로만 화려한 나를 선택한 것 같았다. 우리는 열애라는 것이 없었다. 결혼하고 수년이 지났지만 가슴 뛰게 보고 싶고 좋고 하는 기분을 가져본 날이 있었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 삶의 무미건조함에서 탈출 시켜준 미영이 떠나버린 뒤 나는 평생 생각해보지 않았던 를 생각하게 되었다. ‘는 누구인가? ‘는 어떤 목적으로 살고 있는가?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나는...

 

사춘기에도 가져본 적이 없는 자문자답을 수없이 많이 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나는 초라해졌고 한심했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니 중국식 공갈빵이었다. 텅 비어있는 내면에서 나를 찾으라는 울림이 메아리 쳤다.

 

내가 나를 찾는 시간에 남편을 바라보니 예전에는 평범해 보였던 일상이나 그의 태도가 이젠 달라보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조건으로 그를 보았기에 그가 어떤 일을 하던, 언제 귀가를 하던, 누구를 만나던 나는 아무 상관이 없게 보였다. 그저 정해진 날 생활비주고 가끔 보너스 개념의 어떤 것들이 주어지면 나는 불만이 없었다. 그러던 관점이 나를 찾아가고 자기애가 커지며 그와 나의 관계를 따지게 되었다. 나는 남편을 좋아하지만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았고, 남편은 나를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특별히 내가 일찍 오라고 부탁하지 않으면 남편은 집에 일찍 들어오지 않는다. 와서도 나와 대화하거나 뭔가 공통 관심사를 논하기보다는 서재에 들어가서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갖는다. 얼마 전까진 남편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처럼 나 또한 좋아하는 드라마 방해받지 않고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지금은 나를 혼자 있게 하는 그가 야속했다. 그리고 그가 뭘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도 궁금했다. 남편이 남긴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켜놓고 끄지 않은 컴퓨터, 그의 카드영수증, 차에 남은 흔적들. 굳이 묻지 않아도 남편은 친구와의 만남이 많았고 취미생활도 다양했으며 나 외에 다른 여자도 만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남편에게 묻고 싶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혹시 내가 생각하는 어떤 것들이 진실이라면 어떻게 하나?’라는 두려움이 더 커서 물을 수가 없었다.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남편에게 더 관심을 갖고 잘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고 즐거워 할 수 있는 일들을 함께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실천했다. 일찍 들어오라고 부탁하고 함께 뭘 하자고 제안하고 그랬다. 그렇게 몇 달간 노력하였다. 초기에는 남편도 성의를 봐서 그렇게 따라줬는데 지금은 식탁위의 차려진 음식을 도로 랩으로 싸서 냉장고에 넣는 날이 더 많아졌다.

몇 달이 지난 후 남편은 예전처럼 친구들과 술자리, 취미생활 등등의 시간을 다시 찾아 갔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러나 내 생활은 여전히 편했다. 엄마가 남편에게 노래를 부른 것처럼 손끝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고 키웠으니 힘들게 하면 안 된다.’는 말을 잘 지켜주고 있었다.

그 무렵부터 엄마의 말들을 고분고분 들었던 그리고 그렇게 살아야한다고 생각했던 어린 나의 사고가 원망스러웠다. 편하게 사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해서, 힘든 일 하는 것이 싫어서 만들어진 나의 삶은 그저 화초 같았다. 이렇게 길들여진 시간이 길어서 인지 나는 남편에게 어떻게 우리의 관계를 개선하자고 제안하기도 따지기도 힘들었다. 점점 무기력해지면서 우울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돌아올 때까지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멍하니 앉아있는 날들도 많았다. 마음속으로는 이런 내가 싫었고 이런 날들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구가 컸지만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더욱 정신적으로 힘든 날들이 많아졌고, 남편의 출근을 챙기는 것도, 퇴근 후에 챙기는 것도 건너뛰는 날들도 많아졌다.

나는 우울했고 남편은 날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내가 힘들어 하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고 길어지자 남편은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말로는 새로 연구를 시작했다고 하지만 며칠씩 밤새워 할 만큼 연구를 해야 하는 것은 없었다. 남편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면서도 그냥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렇게 무미건조하고 무기력한 시간이 지나자 남편은 이혼하자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이때는 그동안 숨겨온 이야기를 모두 했다. 사귀는 여자도 있고 나와의 삶이 불행하고 그냥 시간만 죽이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것도 지겹고... 그는 나를 엄청나게 싫어했다. 미워하지는 않는 것 같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나를 싫어했다.

그의 말을 듣는 동안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부족하고 못난 내가 더 미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남편은 통보하듯이 나에게 이혼하자며 위자료와 내가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 생활여건을 제시하였다.

돌이켜보니 나는 남편에게 잘해준 것이 없어서 따지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그냥 고개만 끄덕였고 그렇게 단순하게 나의 편한 인생은 정리되었다.

 

저 대표님. 하시던 말씀 계속 해주시죠. 미영씨를 만나고 어떻게 되셨나요?”

미스김이 멍하니 회상에 잠겨있던 나에게 말을 걸었다.

. 제가 잠시 옛날 생각에... 미영이 만나서 철없이 놀았죠. 그렇다고 사회적으로 문제 될 정도의 이탈이나 방황은 없었어요. 그냥 허세가 많아서... 그러다보니 남편과 안 좋아졌고 또한 철이 없었기에 그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이 없었죠. 그렇게 우울증이 왔었어요.”

나는 미스김에게 단순하게 말을 했다. 그때 미스김이 전화를 받는다고 잠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또 회상에 젖어들었다.

 

남편과 이혼 후 나는 변두리의 작은 원룸으로 이사를 했고 한동안 집안에만 있었다.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죽고만 싶었고 괴로운 날들을 보내며 자살을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용기가 없었다. 뭘 할지를 몰라서 그냥 산송장처럼 그러고 있었다.

몇 날 며칠을 나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다 결국 죽을 마음을 정하고 옥상으로 올라갔을 때 길고양이 두 마리가 생선 머리 하나를 두고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것을 보았다.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거는 두 마리의 고양이를 보며 나는 충격을 받았다. 온힘을 다해 살아본 적도 없는 사람이 죽는다고 누가 애통해 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를 수습하기 위해 또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서도 남에게 도움이 안 되고 죽어서도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왜 이렇게 나약하고 쓸모없는 인간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 보다 못난 나는 그날 잠이 오지 않았다. 온힘을 다해 살아봐야겠다는 생각 외에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평생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생각이 들자 실천할 일이 생각났다. 그렇게 하기 싫었던 몸으로 하는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생각도 한 적이 없는 낮선 곳에서 육체노동으로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도전하다보면 내 삶의 방향이 잡힐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기술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니 제주도에 가서 귤 따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TV에서 본적이 있어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못해도 도전해보고 싶었다.

 

미스김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죄송합니다. 협회에서 다음 행사에 대한 얘기가 있어서... 하시던 얘기 계속 해주시죠.”

나는 정리해서 다시 말을 이었다.

. 그렇게 철없이 무기력하게 우울증을 앓고 있는데 남편은 제가 많이 싫었나봐요. 제가 생각해도 그랬겠다는 생각이 지금은 들어요. 당시에는 몰랐지만 겉멋만 알고 할 줄 아는 것은 없으면서 허세나 부리고 요구하는 것도 많고 하니...그렇게 이혼하고도 우울증으로 고생하다가 아까 말씀드린 고양이의 싸움으로 깨우침이 생겨서 평생 해보지 않았던 육체노동을 하게 되었어요.”

내 말을 미스김은 열심히 메모하고 있었다. 나는 육체노동으로 선택했던 제주에서 있었던 일들을 말해주었다.

 

제주에 도착하여 일력사무소를 찾아 귤 따는 일을 찾았다. 제주도에서 재배하는 귤의 종류가 다양하다보니 수확시기가 종자마다 달랐다. 그래서 귤 따는 일은 1년 내내있었다.

 

얼굴이 새까맣게 타고 여리여리하던 몸이 근육으로 변해가면서 마음에도 근육이 붙었다. 우울한 기분도 거의 사라지고 사람들과의 대화도 자연스러워졌으며 하루하루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예전에 편한 삶을 살겠다고 고집할 때는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무의미하게 살았다.

제주생활 이후로는 매일 똑같은 일을 해도 하루하루가 다르게 느껴지고 내일 있을 일들에 대한 긴장감과 기대감이 있었다. 그리고 내손으로 돈을 버니 돈에 대한 의미도 달라졌다.

 

제주에서의 1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며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붙었고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런 경험이 있으셨군요. 어려움을 잘 극복하셨네요.”

미스김은 뭔가 계속 신기한 얘기를 한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리엑션을 했다.

. 제주생활에서 목표도 생겼죠. 일차적으로는 내 재능을 살려보는 것이었고 그 다음은 의미있는 삶을 살자는 것이었어요.”

나는 다시 제주 생활 이후의 삶을 얘기했다.

 

결혼 생활 11년 동안 하루도 안 빼고 TV를 시청한 덕에 보편적인 여자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에 매력을 느끼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제주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로 돌아와서 남편이 준 위자료와 제주에서 번 돈을 합쳐 집 근처에 멀티숍을 차렸다. 무언가 내 상품을 만들고 싶었지만 지식이 없으니 가진 능력을 활용하는 것으로 일단 방향을 잡았다. 나는 TV를 많이 보며 익힌 감각도 있었지만 명품을 고르는 감각이 좋았다.

 

변두리라서 값비싼 물건을 팔아 서는 곤란했다. 그러나 물건의 수준이 떨어져도 곤란했다. 나는 발품을 팔아 남대문 시장, 동대문 시장 등을 누비며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멋진 물건을 값싸게 사들여 진열했다. 의상, 패션잡화, 침구 등등 여자들의 감성에 부합하는 물건이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구해서 진열했다. 처음엔 매상이 거의 없었지만 동네에 소문이 나고 인터넷 매장을 개설하면서 장사는 사업으로 확장되었다. 물론 중간에 사업이 휘청거릴 때도 있었지만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니 이겨낼 수 있었다.

명동에 내 숍을 열고 내 이름으로 된 제품을 팔며 내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당당한 내가 되었다.

 

미스김은 내 얘기를 다 듣더니 질문을 했다.

그럼, 대표님은 지금 목표 중에 어떤 단계이신가요?”

. 저는 지금 일차목표는 이뤘다고 보고 이차목표를 향해서 가는 중이죠. 저의 재능을 발휘해서 이만큼 이뤄냈고 동물보호단체에 기부도하고 있으니 말이죠.”

나는 고양이를 위해 기부하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최근에 하는 일중에서 가장 보람된 일이였다.

그럼 이차 목표. 즉 앞으로의 포부를 말씀해주시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치죠.”

미스김은 이제 정리해도 되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오랜 시간 생각했던 일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길고양이들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끼고 있어요. 앞으로 남은 인생은 세계적인 고양이 용품과 식품 사업을 일으키는 것으로 목표를 삼았어요. 그리고 수익은 동물 보호하는데 활용할 생각입니다. 목적과 목표가 있으니 뭘 해도 의욕이 넘쳐요. 앞으로는 이 일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할 생각입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철없던 내가, 무기력한 내가 세상에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며 자긍심과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미스김이 메모를 모두 마치더니 한마디를 더 한다.

저 이건 개인적인 부탁인데요. 오늘 인터뷰하며 대표님을 존경하게 되었어요. 제가 동생이다 생각하시고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있으면 한 말씀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제주에서 깨우친 얘기를 해주었다.

제가 제주에서 육체노동을 하다 보니 삶의 가치나 방법이 모두 변하더군요. 나를 확인하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그때 인생을 살아가는 세 가지를 구분하게 되었어요. ‘, 재능, 책임저는 재능은 있었는데 꿈과 책임이 없었죠. 왜 사는지도 없었고 뭘 책임지는 것도 없었어요. 부모님이 저를 책임졌었고 남편이 책임졌었기에 저는 책임 질 일이 없었죠. 저는 , 재능, 책임하고 싶은 것, 잘 할 수 있는 것, 꼭 해야만 하는 것으로 구분 지을 수 있게 되면서 저를 완성 할 수 있었어요. 참 단순한 명제인데 제주에 가기 전까지 한 번도 생각을 깊이 있게 안했더군요. 그저 어떻게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미스김은 이미 알고 계시고 생각해봤을 것으로 보이는데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얘기는 이것뿐이네요.”

미스김은 내 얘기를 곰곰이 생각하며 듣는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저도 하고 싶은 것, 잘 할 수 있는 것, 꼭 해야만 하는 것을 인생에 대입하여 어떻게 살아야지 되는지 생각 많이 하겠습니다. 좋은 말씀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미스김은 갔고 나는 명동 성당을 다시 찾았다. 마음먹은 사명을 다 하기 위한 다짐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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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 Jun(전완식)

30여 년간 인물화를 중심으로 회화 작업에 열중하였다. 인물화에 많은 관심을 둔 것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 또한 인물을 그리기 위해 대상의 정신세계를 그림 안에 투영하려 노력하였다. 인물화를 넘어 진정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간의 감정과 감성을 다룬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주요 미술경력은 국내외 개인전 27회 단체전 80여회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위치에 따른 형상 변화 신비510년 만에 재현 -대한민국 7번째 대통령 인물화 작가(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소장 / 문재인, 트럼프 대통령 청와대 소장) -Redwood Media Group 글로벌 매거진(뉴욕 발행) ‘아트비즈니스뉴스표지 작가 및 뉴트랜드 작가 15인 선정 -미국 행정/정책학 대학원 석,박사 과정 강의 자료로 작품 선정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운영위원, 기획위원 -대한민국 미술인의 날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장 -광복70주년 국가 행사 대표작가(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및 서울도서관 전시)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기원 전시행사 대표작가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학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산업대학원 졸업하였다.

 

현재 한성대학교 ICT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미술협회 이사, 설치미디어아트분과 부위원장, 국가미래연구원 문화예술체육 연구위원이다.

 

상징

제주를 그리겠다고 생각하며 다양한 실험을 하던 중에 다시 길을 걸었다. 당시 길 위에 던져진 질문은 너의 상징은 무엇이냐?’였다. 작가를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자주하는 말이지만 나 또한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며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좌)georges braque-violin and candlestick   (우)Pablo Picasso-Man with a Violin


피카소를 통해 널리 알려진 큐비즘(입체파)은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에 의해 창안되었다. 브라크는 엄청난 실험 정신을 가진 작가이다. 그는 회화, 조각, 판화, 무대미술까지 두루 섭렵한 재주꾼이다. 근대 프랑스 회화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1909년부터 1914년까지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는 함께 작업하며 분석적 입체주의를 만들었고 이 당시 제작 되었던 작품은 누구의 것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비슷하다. 브라크의 실험성과 창의력은 1948년 제24회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회화 부문 1등상을 수상했고, 1961년에는 살아 있는 화가로서는 처음으로 루브르 박물관에 그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그러나 동일한 업적을 가진 피카소와 비교하면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피카소는 초등학생도 알 정도로 명성이 높은 반면 브라크는 미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른다. 그 차이를 길을 걸으면 생각했다.



작가: Kai Jun 제목제주의 아름다움NO.9 크기: 116.8cm X 91cm 재료: Acrylic & Mixed Media 제작년도: 2018

 

작가는 대중에게 감동을 주고 생각의 기회를 주며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의 역할도, 시대의 대변인의 역할도 해야 한다. 이 외에도 작가의 사회적 책무는 더 많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책무가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한다면 미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는 동일한 개념으로 작업하였기에 미술적 가치는 같다고 볼 수 있다. 단 대중에게 전해줘야 하는 작가의 책무가 파급력있게 작용하였느냐와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가 아닌가 한다.

 


 

진주 같은 사람들

제주를 그리겠다고 마음먹었을 때의 초심을 생각해봤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힐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제주를 찾았고 걸었으며 사색으로 답을 얻었다. 이런 답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비슷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초심에서 얻었던 답을 생각하며 힐링하는 작품을 만들자.’라는 추상적이지만 간결한 답을 얻었다. 그리고 상징을 찾았다. 상징을 진주라고 정했다. 진주는 조개껍데기에 외부 자극에 의해 상처가 나게 되면서 생성 된다고 한다

 

한국인도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은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민족이다

 

우리는 자극에 굴복하지 않고 더 훌륭한 결과를 만들어 낸 역사적 경우가 많다. 진주처럼 아픔을 딛고 아름다운 광채를 내는 보석이 되는 존재, 한국인의 민족성을 잘 표현하는 진주를 상징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난의 근대사, 현재의 경제 난국도 한국인이기에 모두 타개하고 보석처럼 다시 빛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작가: 이유진 촬영지: 제주도-성산일출봉​ 제작년도: 2015년

 

지금은 힘들어도 당신은 진주처럼 빛나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것을 사명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길에서 답을 얻고 사명을 얻어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당신이 지금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당신은 진주와 같이 빛 날것입니다.”

당신은 진주 같은 보석입니다.” 


 

Kai Jun(전완식)

 

르네상스시대부터 신고전주의 시대까지 활동했던 유럽 궁정화가들의 기법을 연구하였으며 그들이 만들어 냈던 화려한 기법을 활용한 독특한 인물화의 표현법을 개발하였다.

이에 대한 평가는 20094월 미국 최대 미술 산업 그룹 Redwood Media Group의 글로벌 매거진(뉴욕 발행) ‘아트비즈니스뉴스표지 작가 및 뉴트랜드 작가 15인에 선정되었다또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위치에 따른 이미지 변환에 대한 표현을 510년 만에 재현한 화가이다.

201512월에는 광복 70주년 국가 행사의 대표작가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전시를 했었다. 2018년 3월 세종문화회관에서 국내최대규모의 인물화전을 열었으며 ‘KOREA Renaissance Art’를 선언하였다.

현재 한성대학교 교수이며前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학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산업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칼럼리스트 Kai Jun(전완식) 소개

30여 년간 인물화를 중심으로 회화 작업에 열중하였다인물화에 많은 관심을 둔 것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또한 인물을 그리기 위해 대상의 정신세계를 그림 안에 투영하려 노력하였다인물화를 넘어 진정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간의 감정과 감성을 다룬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주요 미술경력은 국내외 개인전 27회 단체전 80여회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위치에 따른 형상 변화 신비를 510년 만에 재현 -대한민국 7번째 대통령 인물화 작가(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소장 문재인트럼프 대통령 청와대 소장) -Redwood Media Group 글로벌 매거진(뉴욕 발행) ‘아트비즈니스뉴스표지 작가 및 뉴트랜드 작가 15인 선정 -미국 행정/정책학 대학원 석,박사 과정 강의 자료로 작품 선정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운영위원기획위원 -대한민국 미술인의 날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장 -광복70주년 국가 행사 대표작가(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및 서울도서관 전시)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기원 전시행사 대표작가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학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산업대학원 졸업하였다.

현재 한성대학교 ICT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미술협회 이사설치미디어아트분과 부위원장국가미래연구원 문화예술체육 연구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