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단위변경(Redenomination)의 성공조건 > News 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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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에서 화폐개혁 루머가 떠돌면서 주식시장이 소용돌이를 쳤다. 많은 사람들이 갑작스런 루머에 혼란스러워하였다. 가뜩이나 불경기에 전격적으로 화폐개혁이 실시되면 우리경제가 더욱 나빠질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요즘 택시를 타보면 많은 기사 분들이 지금의 불경기를 걱정하고 있다.   

 

화폐개혁 루머의 진원지는 국회였다. 한국은행 이 주열 총재가 국회업무보고에서 화폐단위변경, 즉 리디노미네이션 (redenomination)에 관한 질문에 대해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하자 이것이 언론에 알려졌고 우리경제에 일파만파의 충격을 주었다. 지금은 전격적인 화폐개혁의 실시가능성은 일단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도 언제나 같은 상황이 재현될 개연성은 여전히 높다.

 

이와 관련, 학계가 짚고 넘어갈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화폐단위변경’과 ‘화폐개혁’은 서로 동일하지 않다. ‘화폐개혁’ 개념은 ‘화폐단위 변경’ 보다 더 포괄적이다. 실제 우리나라의 첫 번째 화폐개혁은 1953년 2월 16일에 있었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여 3년 동안 피폐된 경제를 재건하는 차원에서 100원을 1환으로 바꾸는 화폐개혁을  단행하였다. 두 번째 화폐개혁은 1962년에 있었는데 박정희 군사정부는 과거부패를 척결하고 신경제를 창출하기 위하여 10환을 1원으로 바꿈으로써 화폐단위 변경 즉 리디노미네이션 (redenomination)을 수반하는 화폐개혁을 실시하였다. 이 두번의 화폐개혁은 발표 즉시 실행된 개혁으로 시민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불편을 안겨주었다.

 

리디노미네이션은 아니지만 IMF가 주도하는 고정환율 시대에 우리나라의 원화가치가 하루 밤 사이에 폭락하는 일종의 화폐개혁도 자주 있었다.  미국보다 한국물가가 항상 빠르게 상승하였으니 때가 되면 IMF와 정부 대표가 어렵게 협의하여 대미(對美)원화가치를 평가 절하함으로써 원화의 대외가치를 일격에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끔 원화의 평가절하 비밀이 사전에 누설되어 나라 전체가 어지럽게 된 경우도 있었다.

 

언론에서 논의된 내용을 보면 지난 수년 간 역대 정부와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연구해온 주된 내용은 대미 원화환율에서 동그라미를 몇 개 떼어낼 것 인가였다. 다른 신흥국가처럼 화폐개혁의 목적이 초 고율 인플레를 다스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과거 수년 동안 물가 상승률은 2%에 못 미치고 있다. 지금은 심한 수요후퇴로 오히려 인플레가 역으로 내려가고 디플레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한은총재의 발언을 통해 짐작되는 것은 화폐상의 동그라미 수자를 줄이고 화폐 표면에 있는 인물과 색채와 도안을 바꾸며 고도의 위조방지 장치를 새로 도입하는 것 등이다. 

 

이러한 화폐의 리디노미네이션을 실시할 경우 새로운 화폐인쇄에 따른 직접비용은 물론 정치, 경제,사회에 미치는 간접비용이 엄청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은 리디노미네이션의 장점이 비용보다 훨씬 더 클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최종결정은 문제의 복잡성 때문에 한국은행이 할 수 없는 형편이어서 국회가 내려주기를 바라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 역사를 보면 리디노미네이션을 실시하여 성공한 나라도 있고, 실패한 나라도 있다. 이스라엘, 아프가니스탄, 짐바브웨 등은 미숙한 준비 때문에 그들의 화폐단위 변경은 실패하였다. 그러나 성공한 나라도 있다. 2000년 유럽통화통합을 위하여 EU의 28개 회원 각국이 일시에 단행한 화폐단위변경은 성공이었다. 이것은 여러 나라가 연합한 EU이기 때문에 예외라고 할 수도 있으나, 사실은 유럽통화통합을 위한 준비는 오랜 기간에 걸쳐 계속되어 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유럽의 단일 통화가 지금까지 지탱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화폐개혁의 성공국가로 터키를 꼽고 있다. 터키의 화폐개혁 사례는 다른 나라에 훌륭한 교훈을 준다. 터키는 20세기 말 30년 동안 고(高)인플레로 고통을 많이 겪은 나라이다. 터키가 화폐개혁을 처음 고려한 것은 1998년이었다. 터키 의회가 동그라미 6개를 구 화폐에서 제거하고 신(新)리라 화폐를 만들도록 법을 통과시킨 것이 2003년이었다. 그리고 신(新)화폐를 만들어 유통시킨 것이 2005년 1월 1일이었다. 구 화폐를 제거하여 신 화폐를 만들기 까지 총 7년이 걸린 셈이었다.

 

터키의 신 화폐와 구 화폐 간의 교환비율이 조정되는 경과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터키의 신 화폐 1리라는 구 화폐 1백만 리라와 같게 설정되었으며, 2009년 1월 1일 에는 새로울 ‘신(新)’이란 단어를 화폐에서 빼내고 예전의 ‘터키리라’라는 이름으로 되돌아 왔다. 그런 후 터키는 다음과 같은 5가지 좋은 결과를 얻었다. 

첫째, 터키화폐에 대한 일반인의 신뢰도가 높아졌다. 

둘째, 회계기장 처리가 간소화 되었다. 

셋째, 신화폐의 명목가치가 유로화나 달러 등의 주요화폐와 같은 선상에 있게 되었다. 예컨대 1달러 = 1.6361 리라, 1유로 = 1.3448 리라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넷째 화폐단위변경 이후 터키의 인플레율은 한 자리 수에 머물게 되었다.

다섯째, 화폐단위변경 실시 후 그 이듬해 2006년 인플레율 목표제를 채택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에 근거하여 많은 전문가들은 터키의 화폐단위변경 조치는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다른 신흥국들과는 달리, 한국은 다음 해의 물가상승률을 공표하는 ‘인플레율 타게팅’ 정책을 실시해왔으며, 지난 10년 이상 물가 안정을 유지해왔다. 소비자물가지수 기준으로 연간 인플레율은 오랫동안 2% 이하 수준에 머물러왔다. 대미 원화 환율도 달러당 1,100원 - 1,200원 범위 내에서 안정세를 유지해왔다. 다만 문제는 대미 환율에 숫자 동그라미가 두 개나 있어서 선진국 형 환율제도로 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만일 화폐단위변경을 시행하고자 한다면, 달러당 1.1원 또는 1.2원으로 표시해도 무방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강남을 비롯하여 번화한 서울 지역 카페의 메뉴 판 메서는 동그라미는 이미 없어졌고, 자연스럽게 소수점을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준비기간 없이 바로 화폐단위변경을 시행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그동안 눌려 있던 부동산 가격이 다시 급등할 수 있다. 현금자산을 많이 가진 큰 손들이 재빨리 부동산 사재기를 시작하면 강남의 부동산 가격은 금방 천정부지로 올라갈 수 있다.

 

지금 우리경제는 너무나 많은 도전을 직면하고 있다. 정부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매우 낮으며, 높은 실업률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또 가계소비가 지속적으로 하강 추세에 있으며, 국내투자환경이 투자자들에게 매우 불리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교하지도 않은 ‘화폐개혁’을 전격적으로 실시하면 시장기능이 정지되고 투자자들이 ‘멘붕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국내 경제에서 외국인투자의 비중이 아직은 작지만 그러더라도 이들이 해외로 일시에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우리경제의 버팀목이 차례로 쓰러져서 한국경제는 결단날 수밖에 없다. 

 

북한의 경우, 지난 2009년 김정일 집권 말기에 화폐개혁을 시도하였으나 처참하게 실패하였다. 우리와 정치 체제가 다르고 경제시스템이 크게 다르다. 따라서 그들의 상황을 우리의 상황과 비교하거나 그들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 철저한 계획과 준비가 부족해서 실패한 것으로 이해하면 크게 틀리지 아니한다.

 

어떤 정책이든지 새로운 정책은 편익과 비용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전에 비용과 편익을 정확하게 추정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 이 아니다. 당장 일어나는 비용은 바로 측정이 되나, 미래에 일어날 편익과 비용을 추정하기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미래 불확실성을 계량화하기가 쉽지 않으며, 위험에 대한 각자의 대응이 서로 달라서 미래가치를 현재화 한 결과는 전문가 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지적한대로 터키가 7년 기간을 거쳐 용의주도하게 단계별로 추진한 화폐단위변경은 글로벌 전문가로부터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터키의 화폐개혁의 경험은 한국에게 귀중한 교훈이 될 것이다. 이에 의거하여 한국이 화폐단위변경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서는 다음의 사항을 유념해야한다. 

첫째 화폐단위변경은 철저한 사전계획과 준비가 있어야 성공한다. 

둘째, 화폐단위변경의 시기는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하여 결정해야 한다. 

셋째, 정부당국은 화폐단위변경을 전후로 하여 불필요한 규제를 지속적으로 철폐해 가야한다.

넷째, 화폐단위변경은 이미 공표한 추진시기일정표에 따라 단계적으로 실시해나가야 한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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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4-22 17:05:00 최종수정 2019-04-25 09: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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