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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과 한국경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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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7월26일 16시06분

작성자

  • 이정우
  •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명예교수,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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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년도 최저임금을 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의 논의가 노사간의 현저한 입장 차이로 난항을 겪다가 결국 시간당 6,470원으로 결말이 났다. 노동자 대표는 표결에 퇴장하는 것으로 불만을 표시했고, 소상공인연합회에서는 이 수준이 너무 높다고 반발하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사측은 올해 최저임금인 시간당 6.030원으로 동결하자고 주장했고, 노측은 1만원으로 인상하자고 주장했다. 6,030원 동결은 말이 안 되고, 그렇다고 갑자기 1만원으로 인상하는 것도 과하다. 정답은 그 중간의 어딘가에 있을 것이고 그 적정 수준을 찾는 것이 최저임금위원회의 임무인데, 석 달 동안 회의를 하면서 그 범위를 조금도 못 좁히다가 결국 마지막 주에 돌발 결정했다. 

 

그런데 이런 패턴은 올해만 그런 것이 아니고 거의 연례행사인양 반복되고 있는데, 이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가 협상하는 태도나 기술이 많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언제쯤 합리적이고 온건한 협상 방식을 볼 수 있을까. 

 

  과거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최저임금제도 때문에 노동자의 임금이 올라가면 기업에 추가적 인건비 부담을 주기 때문에 기업 측의 노동수요를 감소시켜 실업을 일으키는 부작용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었다. 최저임금이 올라감으로써 노동자의 처지가 개선되는 반면 일부 노동자들은 실직이라는 큰 대가를 치르게 되므로 일장일단이 있는 제도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이런 논리에 입각해 한국 재계와 보수 학계의 최저임금 혐오가 심해서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늦은 1987년에야 비로소 이 제도를 도입했다. 이때 최저임금을 도입해서 시행중인 나라는 벌써 70개국을 넘었으니 한국은 그 국력 수준에 비해 상당히 늦게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셈이다. 

 

  그 뒤에도 최저임금에 대한 정부 당국의 관심은 낮았고, 재계의 반대도 심해서 최저임금 수준은 계속해서 매우 낮았다. 그 수준이 너무 낮아서 경제학 책에서 말하는 소위 ‘구속력 없는’(non-binding) 수준이었다. 노동시장에서 저절로 결정되는 균형임금 수준에 비해 최저임금이 높으면 그것은 구속력이 있는 것이고, 노동시장에 어떤 변화를 일으킨다. 반대로 최저임금이 균형임금보다 낮으면 노동시장에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않으므로 그런 최저임금은 구속력이 없는 것이 된다. 한국이 뒤늦게 도입한 최저임금은 너무 낮은 수준이어서 구속력이 없는, 다른 말로 하면 ‘있으나 마나 한’ 제도였다는 뜻이다. 다른 나라들이 모두 하니 체면상 우리도 따라 한다는 ‘거름 지고 장에 가는’ 식이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1990년대 이후 최저임금을 보는 경제학계의 시각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미국의  Card and Krueger(1995)의 기념비적 연구에서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실업이란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부정적 효과의 크기는 아주 작아서 걱정할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밝혔고, 그 뒤 나온 후속 연구들에서도 이런 사실이 거듭 확인된 것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경제학자인 로버트 솔로(Robert Solow)도 "이론적으로 최저임금은 저소득 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고용에 위협이 되지만 이러한 현상을 증명할 실제적인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이런 학계의 연구결과는 바로 정치에 영향을 주었다. 클린턴은 1996년 대통령 재선 공약으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내걸었고, 그것이 공화당의 공격을 받는 바람에 큰 선거 쟁점이 되기도 했다. 결국 재선에 성공한 클린턴은 최저임금 대폭 인상의 약속을 지켰다. 그 뒤 오바마 역시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최저임금을 크게 올린 대통령은 클린턴과 오바마 두 사람이다. 

 

  최저임금은 정권의 영향을 받는다. 미국에서 민주당 대통령 때는 최저임금이 많이 올랐고, 공화당 대통령 때는 거의 오르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실질 수준으로 따져서 최저임금은 김영삼(연평균 3.3% 인상), 이명박(연평균 1.4% 인상) 대통령 때는 최저임금은 조금밖에 오르지 않았고, 김대중(연평균 5.5% 인상), 노무현(연평균 7.7% 인상) 대통령 때 많이 올랐다. 친기업적 이명박 대통령이 등장하자 재계에서는 호기를 만났다는 듯이 최저임금의 삭감(즉, 마이너스의 인상률)을 주장하기도 했으니 최저임금이 정권에 따라 얼마나 좌우되느냐를 알 수 있다. 

 

피케티의 책 <21세기 자본>을 보면 프랑스와 미국의 최저임금을 비교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2차 대전 직후에는 미국이 프랑스보다 훨씬 높았고 1980년까지는 그런 추세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1980년 이후 프랑스는 꾸준히 최저임금을 인상해온 반면 미국에서는 최저임금이 실질 가치로 따질 때 오히려 하락해왔고 그런 경향은 공화당 대통령 때 두드러졌다. 다만 클린턴과 오바마 집권기에 반등되긴 했으나 1980년 최저임금의 실질 수준을 아직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 있다. 

  60년에 걸친 미국, 프랑스 두 나라의 최저임금의 ‘X자’ 교차 현상을 보면 최저임금이 국가와 정권의 성격에 직결됨을 알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 중 꼭 이루고 싶어 한 소원이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 그리고 소득세 최고세율의 40% 돌파였는데, 둘 다 공화당의 반대 때문에 결국 소원성취를 못하고 대통령 임기를 마치게 될 것이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도입 초기에는 평균임금의 25%를 오르내리는 수준으로서 OECD에서 멕시코를 제외하고는 제일 낮았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상당히 인상된 현재까지도 평균임금의 30% 수준으로서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낮은 편이다. 바꾸어 말하면 한국의 최저임금은 상당한 인상 여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좀 오래 전 연구이지만 이시균은 ‘최저임금의 고용효과’(<노동리뷰> 2007년 6월호, 한국노동연구원)라는 논문에서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자료 및 사업체 패널조사 자료를 사용하여 분석한 결과, 한국에서 최저임금의 고용효과는 거의 없거나 오히려 (+)의 효과를 보인 바 있다. 이는 한국의 최저임금이 워낙 낮은, 소위 구속력이 없는 수준이므로 나타난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경제학계의 새로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최근 ILO와 OECD는 ‘최저임금제도는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있더라도 미미하며 일반적으로 저임금계층 일소, 임금격차 해소, 소득분배구조 개선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임금격차가 OECD에서 가장 큰 나라이고, 저임금계층(중위 임금의 2/3 미달자)의 비중도 전체 노동자의 1/4 수준으로서 OECD에서 가장 많은 나라이다. 따라서 한국은 최저임금을 적극적으로 높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더 중요한 것은 지난 20년간 세계적으로 불평등 현상이 심해지면서 중산층, 서민이 소득이 없어 상품을 사지 못해 불황이 더욱 장기화하는 터라 최근 여러 나라에서 경제위기 타개책으로 최저임금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최저임금 2배 인상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하고는 집권 이후 그대로 실천했고, 그의 임기 8년 동안 상대적 고성장과 분배 개선, 빈곤 축소라는 큰 성과를 올렸는데, 그 중 상당 부분은 최저임금 인상에 기인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들어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주의 최저임금 인상이 화제가 됐는데, 2022년까지 시간당 15달러까지 시간당 최저임금을 인상하겠다고 나섰다. 2012년 시급 15달러 요구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불가능’이라는 평가가 우세했지만 4년이 흐른 지금 불가능은 어느새 현실로 바뀌었다. 

영국도 시간당 6.7파운드였던 최저임금을 올해 7.2파운드, 2020년에는 9파운드(약 15,000원)까지 올릴 예정이다. 러시아 역시 올해 7월부터 최저임금을 20% 가까이 인상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단체협약 효력확장에 따라 별도의 최저임금제도를 두지 않았던 독일도 2008년 7월 기민당-기사당-사민당의 합의에 따라 제도를 도입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따라 그간 최저임금에서 소외됐던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과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 소매상 등 360만명이 최저임금을 적용받게 됐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최저임금을 매년 3%씩 올려 1천 엔(약 1만 원)까지 인상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여러 나라에서 이렇게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태도가 바뀐 이유는 세계적 장기 불황 속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올라가면 상품을 살 구매력이 생겨 경기가 살아나는 선순환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세계노동기구(ILO)에서 권장하는 포용적 성장, 혹은 임금주도 성장의 원리다. 과거 한때는 부자, 대기업이 먼저 돈을 벌면 중산층, 빈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소위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가 유행한 적이 있으나 최근에는 뒷전으로 사라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젊은 신부 시절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낙수효과를 비판해 왔다. 낙수효과와 포용적 성장, 두 원리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 한국에서는 어느 쪽이 타당성을 갖는가? 

 

지금 한국 재벌들은 700조원이 넘는 사내유보를 쌓아둔 채 투자를 기피하고, 장기간의 소득 양극화로 중산층, 서민의 허리가 개미처럼 가늘어져 시장에는 냉기가 감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는 낙수효과를 기대해서 부자감세, 규제완화 등 각종 정책을 추진해왔지만 그 효과는 부정적이다. 그러므로 재계에서도 최저임금의 비용적 측면만 보고 최저임금 인상에 손사래를 칠 것이 아니라 임금이 갖는 수요적 측면, 즉 경제활성화 효과를 생각해서 발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물론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은 고용 감소를 일으키므로 금물이지만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은 아직 낮으므로 앞으로 몇 년간 최저임금의 적극적 인상을 고려할만하다. 

 

  끝으로 올해뿐만 아니라 최저임금위원회의 연례적 파행적 운영을 생각할 때, 최저임금의 결정 방식을 바꾸는 것도 검토할만하다고 본다. 혹자의 주장대로 국회에서 심의, 결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고, 유럽 몇몇 나라에서 시행하듯이 평균임금(혹은 중위임금)의 50%, 혹은 60%(그 수준은 물론 적당한 논의기구에서 심사숙고해서 결정할 일이다)로 한번 정해 놓으면 최저임금은 매년 자동적으로 결정되므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지루하고 소모적인 줄다리기를 연례행사처럼 반복하는 살풍경은 더 이상 안 봐도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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