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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국익과 한국의 플랫폼 전략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3년12월06일 17시01분
  • 최종수정 2023년12월06일 11시26분

작성자

  • 이승주
  •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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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초불확성 시대와 플랫폼 경쟁 

 

지금 세계는 플랫폼 경쟁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과거에도 기술 혁신과 산업 전환 과정에서 기업 간은 물론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21세기 플랫폼 경쟁이 전개되는 세계 질서는 과거의 그것과 비교할 때 매우 상이하다. 플랫폼 경쟁을 얘기하면서 세계 질서에 주목하는 이유는 플랫폼 경쟁이 ‘기업+국가 간 경쟁’이라는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플랫폼 산업 역시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기업이 경쟁과 협력의 주체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플랫폼 산업이 전 지구적 기업 활동과 서비스를 지향하기 때문에, 정부들이 자국 기업의 이해관계를 효과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플랫폼 세계 질서의 수립을 위한 경쟁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또한 플랫폼 산업이 이 분야의 기업뿐 아니라 다양한 연관 산업, 더 나아가 정치, 경제, 사회 일반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에, 플랫폼 산업에 대한 진흥과 규제가 정부의 핵심 정책 가운데 하나가 됐다. 

 

기업과 국가가 혼재돼 경쟁이 전개되기 때문에, 개별 국가들은 국내적으로 자국 기업의 이해관계를 효과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플랫폼 세계 질서의 수립을 위한 경쟁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문제는 플랫폼 경쟁이 전개되는 세계 질서가 과거와 판이하게 다른 상황에 처해 있다는 데 있다. 현시점의 플랫폼 경쟁은 미·중 전략 경쟁이라는 국제정치적 변환기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2018년 무역 전쟁에서 시작된 미·중 전략 경쟁은 공급망과 첨단기술 분야로 빠르게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미래 경쟁력의 원천을 플랫폼 산업에 두고 경쟁 우위를 선제적으로 확보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력할 뿐 아니라, 세계 질서의 주도권 향방을 놓고 경쟁하는 미국과 중국이 플랫폼 산업, 더 나아가 디지털 산업 전반에서 상이한 패러다임을 지향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 플랫폼 기업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이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정책을 지구적 차원의 규칙과 규범으로 수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자유롭고 열린 디지털 공간을 확보함으로써 자국 플랫폼 기업들이 초국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직면할 수 있는 다양한 장벽들을 제거하겠다는 전략이다. 

 

반면, 인터넷 주권을 기치로 내건 데서 알 수 있듯이, 중국은 디지털 무역, 데이터의 초국적 이동, 프라이버시 보호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미국 패러다임의 대척점에 있다. 여기에는 자국 시장 보호를 통한 토착 플랫폼 기업의 육성이라는 중상주의적 동기가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말할 나위도 없다. 또한, 이러한 패러다임에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데이터의 수집과 분석을 통해 국내 사회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중국 공산당 정치체제의 특성이 반영돼 있기도 하다. 이처럼 세계 경제 전반은 물론 플랫폼 산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상이한 패러다임을 추구한다는 것은 플랫폼 산업의 발전을 위한 지구적 차원의 규칙과 규범 수립의 과정이 지난할 것임을 예고한다. 

 

스플린터넷(splinternet)을 넘어 파편화로? 

 

플랫폼 경쟁의 무대인 세계 질서의 불확실성을 촉진하는 것은 비단 미·중 전략 경쟁만은 아니다. 플랫폼 산업의 가능성을 다소 늦게 인식한 개도국 정부들 역시 자국 플랫폼 산업의 육성 또는 자국 데이터의 보호를 위한 조치들을 잇달아 취하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의 인구를 가진 인도는 자국민과 산업의 데이터에 대한 보호의 강도를 빠른 속도로 높이고 있다. 구체적으로 인도는 2018년 강력한 데이터 국지화 정책을 도입했다. ‘주요 개인 데이터’의 보호에 초점을 맞춘 「개인 데이터 보호법(Personal Date Protection Bill)」을 계기로 데이터 보호의 대상이 획기적으로 확대됐다. 여기에는 500만 이상의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는 온라인 업체, 모든 전자상거래 업체, 해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기업, 국제 금융 결제 정보 제공 기업 등이 망라돼 있다. 인도 정부는 프라이버시의 보호와 모니터링 향상을 표면적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그 속내가 데이터 국지화를 통한 시장 접근의 제한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인도 정부의 문제 인식의 일단은 ‘인도의 데이터는 인도에 의해 관리돼야 한다’는 데서 확인된다.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이 인도의 데이터를 수집, 분석, 활용하면서 누리는 이익이 공정하게 배분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림 1]을 살펴보면, 클라우드 인프라가 주로 선진국에 위치한 반면, 정작 세계 최대의 인구를 가진 인도에는 16개에 불과한 상황이다. 인도는 이를 ‘데이터 식민주의’(Data Colonialism)로 규정하고, 데이터에 대한 강력한 통제를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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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세계 주요국들이 자국 플랫폼 산업과 디지털 산업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독자적인 규제의 틀을 만들면서 플랫폼 기업의 입장에서는 규제 순응 비용이 매우 빠르게 증가하는 현상에 직면하게 됐다. [그림 2]의 OECD 자료에 따르면, 플랫폼 산업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디지털 무역을 제약하는 강도는 국가별로 매우 상이하다. 캐나다, 영국, 미국 등에서 디지털 무역 제약 지수가 비교적 낮게 나타나는 반면, 인도, 중국 등의 디지털 무역 제약 지수는 매우 높다. 결국 이러한 차이는 플랫폼 기업의 입장에서는 규제 순응 비용의 증가로 이어진다. 

 

지정학적 리스크의 획기적 증대 또한 플랫폼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단순히 국지적 전쟁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충격과 파급력이 너무도 크다. 지정학적 리스크의 증가는 세계 주요국들이 플랫폼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단일한 세계 질서를 수립하기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우선 추구하고자 하는 유혹을 배가시킨다. 미·중 전략 경쟁은 플랫폼 산업을 둘러싼 세계 질서가 스플린터넷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높여 놓았다. 이를 통해 지정학적 리스크가 증가했고, 이는 플랫폼 세계 질서가 파편화(Fragmentation)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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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증대와 지정학적 리스크의 증가는 세계 질서의 안정적인 유지를 위해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하는 국가들마저 자국 이익을 우선 추구하도록 하는 예기치 않은 변화를 초래했다. 미국과 서구 선진국들은 전통적으로 ‘규칙 기반의 세계 질서(Rules-Based International Order)’를 설계하고 관리하는 데 리더십을 발휘해 왔다. 그러나 초불확실성은 이 국가들마저 자국 우선주의의 유혹에 굴복하게 만들었다.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리더십의 공백’이 발생한 것이다. 

 

그동안 우려했던 세계 질서의 파편화가 더 이상 가능성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현실화되고 있다는 시그널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지난 1월 다보스에 열린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에서 세계 주요국의 지도자들과 전문가들이 ‘파편화된 세계의 협력(Cooperation in a Fragmented World)’의 필요성을 환기한 것은 이러한 배경이다. 특히 WEF는 2023년 발간한 백서에서 플랫폼 경제의 인프라라고 할 수 있는 데이터의 초국적 이동을 위한 제도적 메커니즘을 수립해야 할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창했다. 

 

WEF는 ‘파편화에서 조정으로(From Fragmentation to Coordination)’ 보고서에서 기존과 같이 개별 국가들이 저마다 차별화되고, 심지어 상충되는 디지털 패러다임을 추구하는 현상이 지속될 경우, 신뢰를 유지하는 가운데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이동하려는 목표를 달성하기 요원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의 모색은 기존의 국가 간 협력에 더해, 국가 및 비국가 행위자들을 포괄하는 다중이해관계자들(Multistakeholders)이 참여하는 대화와 협상의 장을 마련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열린 국익과 한국의 플랫폼 전략 

 

세계 질서의 불확실성은 플랫폼 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데 결코 우호적인 환경은 아니다. 특히, 한국과 같이 대외 의존도가 높고 토착 플랫폼 기업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환경이 더욱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열린 국익에 기반한 플랫폼 전략을 수립·추구할 필요가 있다. 열린 국익이란 자국의 이익과 타국의 이익 사이에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호혜적인 발전을 모색하는 것을 말한다. 자국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추구할 경우, 그 궁극적 결과가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주의가 될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이는 한국은 물론 어느 국가에게도 유리한 결과가 아니다. 현재와 같이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있는 상황에서는, 최선이 아니더라도 차선을 찾는 노력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그 출발점은 열린 국익에 기반한 해결책의 모색이다. 

 

열린 국익에 기반한 플랫폼 전략을 구성하는 데는 몇 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 모범 관행(Best Practice)의 수립과 공유이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개방성을 유지하면서도 토착 플랫폼의 발전에 성공한 모범 사례이다. 대대수 국가들이 플랫폼 산업을 규제하는 이유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이 선발 효과를 누리며 자국 플랫폼 기업의 성장을 억압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험은 개방성과 토착 플랫폼 기업의 성장이 언제나 상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한국의 경험에 기반한 모범 사례를 구축하고, 개도국들과 적극 공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국가별 또는 기업별 상호보완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이다. 플랫폼 기업은 선발의 이점을 활용해 무한 확장하는 것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보면, 플랫폼 산업 내에서도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활용한 이합집산이 매우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플랫폼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동남아시아의 경우, 역내 국가의 기업들이 합병하는 ‘역내 확장 모델,’ 역외 국가의 플랫폼 기업과 연계를 통해 성장을 추구하는 ‘역외 연계 성장 모델,’ 해외 투자와 역내 시장을 결합한 ‘투자+시장 이중 연계 모델’ 등 매우 다양한 협력 모델을 추진해왔다. 역내 확장 모델의 경우,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된 플랫폼 기업이 초기 성장 단계에서 인프라와 자본 동원에 유리한 싱가포르 또는 시장 규모가 큰 인도네시아로 이동하거나 시장을 공유하는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모델이다. 

한편, 역외 연계 성장 모델은 서비스 초기 단계에서 한국, 중국, 일본 등으로부터 자본을 유치하는 방식이다. 이처럼 개도국의 플랫폼 기업들은 성장 단계에서 외국 기업 또는 정부들과 다양한 파트너십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들의 선호를 체계적으로 검토·분석한 협력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상대의 수요와 필요를 반영한 전략이 열린 국익 기반 플랫폼 전략의 한 축이 될 수 있다. 

 

셋째, 사회적 도전 과제의 포용이다. 플랫폼 산업은 수많은 이용자와 공급자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변화를 발 빠르게 수용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이점을 갖고 있다. 과거의 산업화 모델이 주로 공급자 또는 생산자 관점에서 추진됐다면, 플랫폼 산업 전략은 이러한 점에서 차별화를 추구할 수 있다. 특히, 다양한 사회적 도전 과제들이 대두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플랫폼 산업을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모색·제시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한국, 일본, 중국은 고령화에 따른 생산 인구의 감소, 보건의료 비용의 기하급수적 증가, 복지비용의 증가 등 다양한 사회적 도전 과제에 공통으로 직면하고 있다. 

플랫폼 산업을 이러한 문제해결 방안에 적극 활용할 때, 플랫폼 산업 자체의 성장은 물론, 사회적 도전 과제 해결의 주체로서 플랫폼 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개선될 수 있다. 모빌리티 혁명을 노인 운전의 증가에 따른 교통사고 증가와 원거리 소외 지역에 대한 교통 서비스 등에 활용하는 방안이 일부 국가에서 진행 중이다. 이처럼 사회적 도전 과제의 해결과 플랫폼 산업의 성장을 연계하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국제협력 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ifsPOST>

 ※ 이 글은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가 발간한 [월간 SW 중심사회 11월호] ‘포커스’에 실린 것으로 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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