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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부러진 사회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4년10월14일 22시04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3시45분

작성자

  • 김경근
  •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메타정보

  • 22

본문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부러진 사회

외환위기는 우리 사회에 깊고 뼈아픈 상흔을 남겼다. 날로 심화되는 양극화의 그늘 아래 많은 사람들의 삶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고, 사회 전반에 분노와 불안이 만연하게 되었다. 교육부문에 남겨진 부정적 유산 또한 상당히 심각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계층 간 교육격차가 심화되었고, 이제 대다수 국민들은 교육을 계층 이동의 사다리로 여기지 않고 있다. 왜 이러한 상황이 초래되었고, 어떤 대안이 요구되는지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로 기능하지 못하는 교육

 

주지하듯이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수행해 왔었다. 때문에 저소득층도 빈곤문화에 젖어 무기력한 삶을 영위하기보다는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며 자녀 교육을 위해 눈물겨운 노력과 헌신을 보이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다른 사회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계층을 초월한 교육열이 존재할 수 있었던 배경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의 꿈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서는 통계청 사회조사 결과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 조사에서 ‘본인 세대에 비해 자식 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을 물었을 때 2009년까지는 낙관적 전망이 훨씬 우세했었다(높다 48.4% vs. 낮다 30.8%). 하지만 2011년부터 낙관적 전망보다 비관적인 전망이 많아지기 시작했고(높다 41.7% vs. 낮다 42.9%), 2013년에는 그 격차가 더욱 확대되었다(높다 39.9% vs. 43.7%).

이처럼 국민들이 자녀 세대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갖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교육이 더 이상 계층 이동의 사다리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엄혹한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10년 가까이 계층 간 교육격차를 연구해 온 필자로서는 국민들의 이 같은 인식이 대단히 현실적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외환위기 이후에 부모 경제력이 자녀 성적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기 때문이다. 수능성적 자료를 사용하건 TIMSS 같은 국제학력평가 자료를 사용하건 연구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유수의 대학에서 저소득층 출신 학생들의 비율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기실 우리 사회에 계층 간 교육격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또한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만 목도되는 현상이 아니고 다른 사회에서도 일상화되어 있다. 하지만 계층 간 교육격차가 상당히 심각한 수준에 도달해 있는데 그것이 시간이 흐를수록 우심해지고 있다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부와 신분의 세습이 고착화되어 사회의 활력이 사라지고 사회통합도 난망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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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층 간 교육격차 심화의 배경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에는 계층 간 교육격차를 심화시키거나 완화할 수 있는 구조적 요인들이 병존해 왔다. 계층 간 교육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는 요인으로는 매우 두드러진 교육적 동질혼 경향을 들 수 있다. 교육적 동질혼이란 교육수준이 비슷한 남녀끼리 결혼하는 현상을 가리키는데, 국제비교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에서 이 같은 경향이 가장 강한 국가들 가운데 하나다. 우리 사회에서는 개발연대인 1970년대 중반부터 외환위기 직전까지 이러한 교육적 동질혼 경향이 줄곧 강화되어 왔었다. 그리고 교육수준의 상단과 하단에서 부부 간 학력 상관도가 특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경우에 고학력 부모들과 저학력 부모들 사이에는 자녀에게 물려주거나 지원할 수 있는 물질적, 비물질적 자원에서 현격한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재 목도되고 있는 계층 간 교육격차의 일정 정도는 우리 사회의 두드러진 교육적 동질혼에 기인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문민정부 이래 우리 교육을 지속적으로 지배해온 신자유주의 교육정책도 계층 간 교육격차 심화에 일조를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간 한국의 교육정책은 큰 틀에서 문민정부 시절 도입된 5․31 교육개혁의 핵심 기조를 꾸준히 유지해 왔다. 기본적으로 5․31 교육개혁은 교육현장에 시장원리를 적용하려는 시도였다. 우리 사회에 복지 인프라가 상당히 미비한 상태였음에도 교육정책에서 이러한 기조가 지속적으로 유지됨에 따라 계층 간 교육격차에는 어떤 행태로든 부정적 영향이 초래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앞서 언급했던 계층을 초월한 교육열은 우리 사회에서 교육격차를 완화해 왔던 핵심요인으로 볼 수 있다. 저소득층도 자녀의 교육에 대해 열정을 갖고 온갖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계층 간 교육격차가 일정 정도 억제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에 소득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저소득층의 경우 자녀의 교육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거의 사라져버렸다. 반면 고소득층은 증가한 소득을 자녀 교육에 좀 더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연간 가계 동향’에 따르면 2013년 소득 상위 20% 가구의 월평균 교육비 지출액은 50만 4300원으로 하위 20% 가구 7만 6600원의 6.58배에 달했다. 전체 지출액 중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소득 상위 20% 가구는 13.2%인 반면, 하위 20% 가구의 경우 6.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교육비 지출액 총량에서 계층 간에 현격한 차이가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전체 지출액에서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 또한 고소득층이 저소득층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이는 고소득층 자녀가 저소득층 자녀에 비해 공교육과 사교육 모두에서 훨씬 양질의 교육기회를 향유하고 있을 개연성을 시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계층 간 교육격차의 심화와 부의 세습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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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로 기능할 수 있으려면

 

계층 간 교육격차의 해소를 통해 교육이 희망의 사다리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시대적 과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실현은 지난한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계층 간 교육격차의 대부분은 가정배경에 기인하고 있는데, 이는 인위적 개입을 통해 변화시키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로서 기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사안에 대한 적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대단히 전략적이고도 적실성 있는 접근을 취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먼저 저소득층 아동들이 성적 경쟁에서는 구조적으로 매우 불리한 여건에 처해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이 점을 고려하지 않고 저소득층 아동들을 지금과 같은 성적으로 한 줄 세우기 경쟁에만 내모는 것은 승산이 거의 없는 경쟁에서 ‘실패할 권리(right to fail)’를 부여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따라서 교육이 희망의 사다리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저소득층 아동들 가운데 교과 성적에서 우위를 가진 집단과 교과 성적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뛰어난 잠재력을 가진 집단 모두에게 동일한 관심과 지원을 제공하는 자세와 교육적 실천이 필요하다. 아울러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입시에서 성적이 일반 학생들에는 다소 못 미치더라도 잠재력이 충분한 소외계층 학생들을 배려하고 사후적으로 적절히 관리하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먼저 학업에 열정이 있고 성적이 우수한 저소득층 출신 아동들에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범주에 해당하는 아동들은 갈수록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때문에 저소득층 아동들로서는 주위에서 적절한 역할모델을 찾기 어려워 동기부여가 여의치 않은 고충을 경험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따라서 지속적이고 충분한 지원을 통해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아동들을 지역사회에서 닮고 싶은 역할모델로 키워내는 것은 교육이 희망의 사다리로서 기능하도록 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다음으로 교과 성적은 뛰어나지 않지만 다른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과 소질을 지닌 저소득층 아동들에게도 가정형편 때문에 그러한 재능이나 소질을 사장시키는 일이 없도록 충분한 관심과 지원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금 승자독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화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세계화시대에는 어떤 분야에서건 평범한 경쟁력을 가진 사람은 이전에 비해 시장에서 자신의 입지가 현저하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전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크게 끌지 못했던 재능이나 끼라 할지라도 보기 드문 독특성이나 수월성만 담보된다면 세계화를 통해 크게 확대된 시장에서 새롭게 각광을 받게 될 개연성이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B급 문화 코드로 유튜브 조회 수에서 공전의 대기록을 세운 가수 ‘싸이(Psy)’의 성공사례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교과 공부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저소득층 아동들에 대해서는 성적 향상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들이 가진 끼나 재능 가운데 특별히 경쟁력이 있는 것을 발굴하고 계발하여 진로를 개척해주는 것이 좀 더 의미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교육적 실천이 원활하게 수행되기 위해서는 교사들이 배전의 관심과 열정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열악한 가정형편으로 인한 중첩적 핸디캡 때문에 잠재력의 발현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한 소외계층 학생에 대한 사회적 배려도 계층 간 교육격차 해소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서울대학교는 2017년부터 정원의 25%까지 지역균형선발전형으로 신입생을 뽑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지역균형선발전형은 소외계층 출신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일반고와 지방 학생들에게 유리한 제도라는 점에서 이를 확대하는 것은 계층 간 교육격차 해소에도 일정 정도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서울대 입시가 교육이 신분 세습의 핵심기제로 기능하는 문제점을 바로잡는 데 좀 더 가시적인 기여를 할 수 있으려면 저소득층 학생들에 대한 기회균형 선발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단순히 저소득층 학생들에 대한 문호를 확대하는 데만 그치지 말고 세심하고 체계적인 사후 관리 및 지원을 통해 이들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면서 학업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기존의 사회적 약자 배려 전형은 대부분 미흡하고 부절적한 사후 관리 및 지원 때문에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측면이 있다.

 

마지막으로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조기 개입이 무척 중요하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취학 전 교육경험이나 취학 후 부모의 교육적 관여에 기인한 생애초기 기본학습능력의 차이는 학교교육을 받는 동안에 점차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생애초기 교육경험 및 지원에서의 계층 간 격차를 줄이지 못하면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도 그만큼 낮아지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내년 예산에서 누리과정(만 3∼5세 보육사업)이나 초등학교 돌봄교실에 투입될 교부금이 대폭 삭감된 것은 상당히 우려할 만한 일이라 하겠다. 어차피 재원이 한정되어 있다면 우선순위를 잘 설정하는 것이 무척 중요한데, 국가와 사회의 미래에 대한 심고원려가 결여된 단견적 의사결정이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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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3시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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