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녀를 중국에서 조용히 빼내 ‘유턴’시키는 학부모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1월26일 17시17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9시59분

작성자

  • 이성현
  • 일본 규슈대 교수 (前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 팬텍펠로우)

메타정보

  • 33

본문

12
# 중국통들 사이에서도 원로로 꼽히는 한 분이 어느날 필자를 조용히 불렀다. 이분 자녀 둘 중 한 명은 베이징대학(北京大学)를 졸업했고 또 한명은 당시 베이징대학에 재학 중이었는데 그에게 영어 토플(TOEFL)을 좀 지도해 달라는 것이었다. “우리 애들을 중국통으로 만들려고 일부러 중국에 데리고 와 중국인들에 다니는 학교에 보내 쭉 컸다. 그런데 내가 좀 잘못 판단했다. 교육은 중국에서 시키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가장으로서 자녀들의 장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결정을 한 것을 해버린 것에 대해 그는 미안해했고,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둘째에게 만이라도 새로운 기회를 주고 싶어했다. 그래 몇개월을 지도해주었고 그 학생은 서울에 있는 한 대학에 편입시험을 봐 합격했다. 나중에 잘 졸업했다. 흥미롭게도 필자는 중국에 있을 때 비슷한 부탁을 그 뒤로도 받았다.  
 
이런 가장들의 특징은 중국에서 10년 이상 오래 사신 분들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부상과 더불어 갈수록 한국사람들이 자녀를 중국대학에 보낼려고 안달인데 막상 중국에서 오래 산 사람들 중에는 자녀를 중국에서 조용히 빼내 ‘유턴’ 시키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중국 최고의 명문으로 뽑히는 베이징대학을 기꺼이 포기하고 말이다. 
 
# 한국 한 TV 방송사의 유명한 시사토론프로램 제작을 담당했던 모 중견 언론인이 베이징의 한 대학원으로 유학을 왔다. 그가 하루는 다음과 같은 경험을 들려줬다. “중국대학생들이 나에게 묻더라. 왜 중국에 유학왔느냐고. 유학은 선진국으로 가야 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나는 모범답안을 줬다. 중국이 부상하고 있으니까 중국을 배우러 왔다고. 그래도 속으로는 조금 멀쭘해지더라. ‘중국사람들도 의아하게 생각하는 중국유학’을 왜 하는가 하고 말이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많은 한국인이 차이나 드림을 꿈꾸며 몰려들었다. 한국사회에 유행처럼 번진 ‘중국붐’ 특수 속에서 중국유학이 시대 교육의 큰 트랜드가 되었다. ‘떠오르는 용’ 중국은 한국 학부모들을 조바심 나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녀의 중국 유학을 ‘당위성’으로 결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 부모들은 ‘왜 중국인가?’하는 질문에 어쩌면 조금더 진지한 고민이 필요했다. 이러한 고민의 누락은 ‘중국의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중국어의 선점적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발생했는지도 모른다. 

 

2015126171614e6zb466246.png
 

#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중국MBA 스쿨에 강의 차 중국을 자주 방문하는데 한번은 필자와의 대화에서 “손녀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자녀들의 미래를 준비시키는 가장 중요한 자산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은 맞을 것이다. 특히 경제적인 면에서 중국의 부상은 이미 현실이 되었고 미래에는 중국어 모르면 비즈니스하기 힘든 시대가 도래할 가능성을 이미 여러 경제 수치가 예시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부상’하는 것과 ‘중국 대학이 부상’하는 것은 조금 더 구별해 자세히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중국이 부상하는 것이지 중국대학이 부상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 인민대학(人民大学)에 재학중인 한 유학생과 담소를 나누다가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학교에서 마오쩌둥 공산당 사상을 공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거 안들으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것이 '필수 과목'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학생이 용감한 학생이었다. 가만히 있지 않고 학교측에 항의를 했단다. “전공과목과 관련이 없는 수업을 내가 왜 듣는가? 더구나 나는 외국인이다. 앞으로 한국에 돌아갈 것이다. 마오쩌둥과 관계가 없다.” 이 당돌한 학생의 항의는 받아들여져서 그는 이 수업을 면제받았다. 다른 유학생들도 면제를 받았느냐?고 물어보니 “그건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정당한 호기심과 의의를 제기할 줄 아는 인격체였다. 당연히 인상에 남았다. 당시 그는 본인이 중국 유학선택을 한 것에 대해 갈등하고 있었다. 
 
몇개월 후 서울에 한 국제 컨퍼런스에 참석했는데 그 학생을 또 그곳에서 조우했다.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중국대학을 휴학하고 한국에서 경험을 쌓고 있다고 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는 한국으로 아예 ‘유턴’한 것이라고 했다.  
 
유학도 상품이다. 교육 상품이다. 중국은 대국이다. 대국(大国)이 다 대국적인 상품을 파는 것은 아니다. 경제대국인 중국은 아직 교육강국은 아니다. 중국대학은 아직 품질좋은 ‘교육 상품’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교수진 역량의 문제도 있지만 사회주의 국가제도 영향을 많이 받는다. 특히 정치적 영향을 많이 받는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가 그렇다. 보시라이가 만든 '충칭 모델'이 사회주의적 균형 발전의 가능성을 보인다는 논문을 쓴 박사과생 학생이 보시라이가 실각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논문을 다시 쓰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에 유학하는 한국 유학생도 이런 정치적 기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중국의 대학교육은 소위 ‘당성’ (黨性)이라고 하는 것이 학술성의 우위에 있다. 암만 학술적으로 뛰어난 이론이라도 하더라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중국공산당이 해석하는 기본방침과 일치하지 않으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중국대학에선 최근 ‘보편적 가치’ (普世價值)를 부정했다. 허용하면 ‘인권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데 중국은 왜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가?’라는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대학에서 페이퍼를 쓰더라도 대개 이미 정해진 ‘모범 정답’이 있다. 그것에 맞추어 쓰게 된다. 특히 국가기관에 나중에 근무하기를 원하는 학생들은 더욱 신중하다. 채용과정에서 이전에 대학기간에 숙제로 제출한 페이퍼들이 종종 사상검증을 받기 때문이다. 이것도 한 중국교수가 알려주어서 알게되었다. 
 
필자가 아는 미국의 한 대학은 웹사이트에 소개되어 있는 ‘교육목표’에 ‘비판적인 사고능력 양성’ (cultivate critical thinking ability)라고 적혀 있기도 했다. 중국 교수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여기선 그렇게 했다간 감옥가기 딱 좋다”라고 했다. 그랬다가 학생들이 공산당을 비판하게되면 어떻게 하나 당국이 우려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비판적으로 사고 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교육을 ‘체제 위협’으로 본다는 것이다. 중국의 정치현실은 중국이 품질좋은 교육상품을 제공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  
 

2015126171658s1nqb1g891.png
 

중국의 한 기자는 중국대학을 ‘공장’이라고 비유했다. “중국대학의 목표는 창조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의 양성이 아니라 ‘숙련된 노동자’ (skillful worker)를 생산하는 곳이다”라고 했다. 언중유골이다.  
 
한국사람들은 ‘중국사람들도 의아하게 생각하는 중국유학’을 왜 하는지 대답을 해야 한다. 필자도 중국 유학을 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중국에 갔더니 한 중국대학생이 물었다. 왜 하필이면 중국에 유학왔는냐고? 미국이 더 좋지 않는냐고? 나도 그때 어떨결에 모범답안을 주었다.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 중국을 배우러 왔다.” 그 중국학생이 날카롭게 바로 반박했다. 
 
“거짓말! 당신은 중국을 관찰하러 온거야!” 
 
뒤통수를 망치로 한 대 크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아마 나를 간첩으로 본 모양이다. 그런데 그의 말을 곰곰이 씹어 생각해 볼수록 그 말속에 중국 유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담겨져 있는 것 같았다. 그래 그 중국인학생 말대로 나는 중국 유학하는 동안 중국을 열심히 관찰했다. 깨달음을 준 그 중국학생에게 지금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33
  • 기사입력 2015년01월26일 17시17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9시59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