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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빠리 구석구석 돌아보기 (23)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0년01월06일 13시19분
  • 최종수정 2020년01월06일 14시10분

작성자

  • 김도훈
  •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전 산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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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어쩌면 오늘이 이곳에 갈 수 있는 마지막 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곳을 가보기로 했습니다. 일전에 가본 북쪽의 벼룩시장이 그 이름이 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저마다 버젓한 가게들을 열어놓고 영업을 하는 모습이라서 혹시 길거리 벼룩시장은 없을까 하면서 빠리 남쪽 끝 Portes de Vanves 근처에서 주말 아침에 열리는 방브 벼룩시장 (Marche aux Puces de Vanves)을 가기로 한 것이지요. 거기로 가는 직통 버스노선이 있어서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또 실패했네요. 구글지도는 버스노선과 정해진 배차시간표에 따라 버스 도착 예상시간을 알려줄 뿐 실시간 상황변화를 반영해 주지 않는 가운데, 구글지도에서 예상한 도착시간이 훨씬 넘어도 버스는 올 생각을 하지 않아서 할 수 없이 공기나쁜 지하철을 갈아타고 갔습니다. Porte de Vanves 역에서는 벼룩시장 가는 안내판이 잘 설치되어 있어서 무난히 도착. 여기는 예상했던 대로 이곳  Didot 공중수영장과 이웃한 Raspail 고등학교 담장을 따라 연해진 긴 길인 Avenue Marc Sangnier와 Avenue Maurice D'Ocagne 두 길 (두 길 합쳐 약 1Km)의 넓은 보도 양쪽으로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 보도는 넓기도 하지만 그 넓은 보도에 심어진 키큰 회화나무들이 풍성한 그림자를 드리워주어 시장을 열기에 참으로 좋은 곳이었네요. 시장을 여는 사람들은 도로변에 주차를 해 두고 때로는 차 뒷편도 물품 전시용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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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생각으로는 앞으로 이 시장이 북쪽 생투앙 벼룩시장보다 더 번성할 가능성이 크다고 느꼈는데 그것은 진열된 물건들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거리낌없이 다가가 들여다보며 만져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되었지요. 보도 양쪽의 가게들을 구경하며 다니는 세계 각국 말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 부딪쳐가며 오고 갔습니다. 한국사람들 그룹도 5-6개를 스쳤습니다.
네이버 블로그 꼴라쥬는 열 장으로 한정되어 있어서 두 번에 나누어서 싣습니다.
네이버 블로그 꼴라쥬는 열 장으로 한정되어 있어서 두 번에 나누어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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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상을 취급하는 곳을 사진 찍다가 우연히 주인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부처님의 탄생지를 놓고 각각 인도와 네팔 출신인 두 사람이 가벼운 언쟁을 벌이기도 해서 재미있었네요. 정면으로 보고 있는 사람이 네팔 사람, 돌아선 사람이 인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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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이렇게 매력적인 벼룩시장을 주말에만 열까요?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 사람들의 비즈니스와 관련된 일은 물건 파는 데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주중에는 각자 자신들이 전공으로 하는 물건들을 수집하러 다녀야 할 것 같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다니는데 저희 생각을 입증하는 차가 보였습니다. 우리 식으로 치면 '못쓰는 물건 다 치워드립니다.'라고 써붙여놓고 (불어로는 TOUS DEBARRAS) 곳곳을 다니며 중고물품을 수집하는 차를 그대로 몰고와서 뒷문을 열어놓고 그 앞쪽으로 물건들을 펼쳐놓은 사람들을 보았으니까요. (우리나라에서도 간혹 이사를 가는 아파트에 와서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차의 물건들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그냥 물건들을 쏟아놓은 채로 골라가라는 식의 배짱장사를 하는 곳도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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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재미있는 사진을 찍었습니다. 하나는 장사는 뒷전이고 카드놀이에 여념이 없는 장사꾼들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아프리키 수공예품인데 물레를 축소해서 정교하게 만들어 놓았네요. 가격을 100유로부터 불렀는데 저희는 살 생각이 없어서 그냥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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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 초반에 '마음을 열면 세계 어느 곳에서  온 사람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호기롭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여행의 후반에 이른 지금은 저희가 조금 지쳐서인지 마음껏 마음을 열지 못했나 봅니다. 빠리를 돌아보다가 만난 사람들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지 못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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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희가 이곳으로 온 이후로 처음으로 두번째 찾은 빵떼옹 근처의 식당 (이곳에서 프랑스인 커플과 사진을 찍었지요.)에서 점심을 마치고 뤽상부르 공원으로 휴식을 위해 갔습니다. 그곳 그늘에 들어서자마자 키오스크라고 부르는 정자 안에서 빨간 상의를 입은 젊은이들이 노래를 부르는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너도나도 의자를 끌어다놓고 구경을 하고 있었지요. 당연히 저희도 합류했습니다. 공연은 줄곧 영어노래로 진행되었기에 공연이 끝나자마자 공연단에 다가가 어디 영국에서 왔냐고 묻자 반갑게 웨일즈 바로 가까이 있는 Wyrdran School에서 온 학생들이라고 답해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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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또다른 아시아 계통 난민 (이 분은 1975년 크메르루즈의 압박을 피해 온 캄보디아 난민이니까 세월로 보아 이미 프랑스인이 되신 분이지요.) 한 분을 만났습니다. 의자를 얻으러 저희에게 다가와서 저희가 의자를 나누어주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었네요. 서양 나이로 86세가 된 이 분은 소르본느 대학에서 불어를 전공하고 캄보디아에서 불어를 가르치다가 그만 무서운 인종청소 폴포트 정권을 만나 남편과 아들을 다 잃고 겨우 나라를 빠져나와 그때 난민으로 프랑스로 들어온 이후 UNESCO에서 일하는 동안 프랑스인과 결혼도 하여 Voisin이란 프랑스 이름도 얻게 된 (불행히도 이후 이혼했다고 합니다만.) 이름이 Sayeun인 할머니였습니다. 이 분이 저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한국은 어떻게 50년이란 짧은 시간에 최저개발국에서 오늘의 번영을 이루었냐고 궁금해 하기에 제가 그만 오랫동안 이 할머니께 한국의 초기 기업가정신과 그를 살리려는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어우러졌던 결과라는 식의 설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거의 30분 동안) UNESCO에서 근무하면서 한국을 접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런 한국의 발전상과 캄보디아의 현실 사이에 너무나 큰 괴리가 있음에 매우 깊이 궁금해 왔었나 봅니다. 마지막으로 자기 집 이웃에 있는 한국식당에 가보고 싶은데 무엇을 시켜야 하느냐 해서 불고기와 비빔밥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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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eun 할머니도 보내고 키오스크에서는 다른 공연이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일부 관객들이 키오스크 안에 준비된 의자로 올라가고 한 사람이 일종의 시/산문 낭송회를 하는데 오로지 기타 하나가 그 낭송회를 뒷받침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키오스크 밖에서, 그리고 안에서 그 낭송회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물론 저희들처럼 자리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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