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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시진핑 시대 북중관계 정의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0년04월25일 17시01분
  • 최종수정 2020년04월24일 16시57분

작성자

  • 이성현
  •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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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세종연구소가 발간하는 [세종논평 No.2020-07](4.24.)에 실린 것으로 세종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하는 것입니다.<편집자>​

 

북미 핵협상이 장기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내 코로나바이러스 퇴치 지원 의사를 밝혔다. 여기에 중국의 딜레마가 있다. 중국은 북한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자 후원국이다. 중국은 돕고 싶겠지만 북한이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한 명도 없다고 공식 입장을 고수하는 한, 중국의 제안 자체가 외교적으로 옳지 않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중국은 난처한 입장에 처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북한은 금년 초 중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급증하자 지난 1월 말 선제적으로 육·해·공 ‘국경 전면 봉쇄’라는 고강도 조치를 취했다. 

 

북한의 김 위원장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018년 3월부터 1년 반의 시간 동안 5차례 정상회담을 가졌다. 짧은 기간에 국가 간 정상회담을 폭풍처럼 몰아서 갖는 것 그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또한 놀라운 것은 당시 정상회담이 2011년 12월 김정은 집권, 2012년 11월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 등극 이후 그들의 첫 만남이었다는 것이다.

 

이제 관심은 김정은-시진핑 체제에서 북한과 중국이 얼마나 가까운지에 대한 진실 여부이다. 정책적인 질문이기도 하고, 학술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정보에 의존하지 않고, 오픈 소스 (open source) 자료를 주의 깊게 읽음으로써 이 문제를 조사해 볼 수 있다. 

 

김정은과 시진핑 체제에서의 북중관계가 김일성과 마오쩌둥(毛澤東)의 북중관계처럼 소위 '新혈맹관계' 시대에 진입했다는 시각이 있다. 냉전시대와 현재의 북중관계를 묘사하는 공식적인 단어를 비교해보면 이 시각을 가능하게 하는 세 가지 증거가 있다.

 

첫째, '혈맹'이다. 이것의 원래 중국어 표현은 '鮮血凝成的'로 직역하면 '선혈이 응고된' 의미를 갖는다. '혈맹'이란 단어보다 중국어 표현이 오히려 더 강렬한 표현이다. 시진핑은 2018년 3월 베이징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북한과 중국의 관계를 '혈맹관계'로 규정했다. 그것은 시 주석이 김 위원장을 처음 만난 자리였다. 첫 만남에서 시 주석은 냉전시대의 북중관계를 상징하던 대표적 어휘를 바로 부활시킨 것이다. 

 

흥미롭게도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기록에는 시 주석의 관련 표현이 누락되어 있다. 그러나 시 주석이 실제로 이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북한 로동신문 정상회담 관련 보도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로동신문에 의하면 시진핑은 정상회담 만찬에서 북중관계를 "피로써 맺어진 친선"으로 썼다. 당연히 중국 측이 시 주석의 이 '중대 발언'을 중국외교부 홈페이지 관련 공식기록에 포함시키지 않은 이유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적어도 중국 관리들은 공개적으로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리진쥔(李鎭軍) 주북한 중국대사는 2016년 10월 중국인민군 6.25전쟁 참전 66주년 기념식에서 이 용어를 사용했다. 리 대사는 중국과 북한의 우정은 "鲜血凝成的共同宝贵财富" (선혈이 응고된 공동의 소중한 재산)이라고 말했다. 

 

둘째, '순치(脣齒)관계'다. 시 주석은 중국 다롄(大連)에서 열린 두 번째 회담에서 중국과 북한은 "변함없는 순치의 관계"라고 말했다. 시 주석은 이어 "정세가 어떻게 흐르든 중조관계를 공고히 발전시키려는 것은 두 나라 당과 정부의 확고부동한 입장이며 유일하게 정확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의 ‘순치 관계’ 발언은 김 위원장이 집권한 이후 처음으로 사용된 계기가 됐기 때문에 주목된다. 

 

셋째, '한 참모부'라는 용어다. 김 위원장은 2018년 6월 베이징에서 시 주석과의 세 번째 정상회담에서 북한과 중국이 "역사적인 여정에서 중국동지들과 '한 참모부'에서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투가 치열하던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은 북한군과 '중조양군연합사령부'(中朝兩軍聯合司令部)1)를 1950년 12월 구성해 미국과 유엔연합군에 대한 전투효율성을 높였다. 한반도에서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전쟁 당시 할아버지 김일성 시대의 단어를 손자 김정은이 다시 부활시킨 것이다. 

 

이런 현상이 북중관계의 '진화'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결론짓기는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판단된다. 최소한 냉전 기간 동안 북한과 중국의 친밀한 관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냈던 어휘들이 21세기 동아시아 지정학 공간으로 회귀하였음을 볼 수 있다. 이런 북중 관계의 상징적 변화는, 향후 실제적 변화로 가시화 여부에 따라 한국의 대 중국 정책에도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최근 미중관계도 1972년 ‘상하이 코뮈니케(Shanghai Communiqué)’ 이전의 냉전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 문재인정부는 남은 임기 동안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함에 있어, 작금의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지각 변동을 면밀히 그리고 정확하게 진단해 봄이 필요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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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또다른 명칭은 中朝联合指挥部(중조연합지휘부). "揭秘:抗美援朝战争 神秘的中朝两军联合司令部 (3)," 人民网, 2010.08.19, http://dangshi.people.com.cn/GB/85039/1248309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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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20년04월24일 16시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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