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세종의 정치리더십 - 외천본민(畏天本民) <43> 국토를 제대로 지켜라 (IV) 제1차파저강전투⑥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2년10월28일 17시10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메타정보

  • 0

본문

<작전 개시 일자와 필요 병력>

 

야인들의 정황을 염탐하고 겸하여 그 지역의 지형을 세밀히 조사하기 위해 박호문과 박원무를 적진 깊숙이 들여보냈다(세종 15년 2월 10일). 이들이 돌아와 임금께 보고하기를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산 속으로 숨어 버린 것을 보니 이쪽이 토벌전쟁을 일으킬 것을 짐작하고 있는 것 같다고 보고했다. 세종은 대신들에게 대책을 물었다. 

 

먼저 황보인 등이 나서 제안했다. 일단 도절제사를 보내어 그 쪽 사람들을 위로하고 안심시키며 토벌에 관한 유언비어를 금지하도록 하여 철저히 토벌을 숨기자는 것이다. 그러나 허조는 이에 반대했다. 피차 왕래하다보면 듣고알게 될 것이며 더욱이 부교와 배를 만드는데 어찌 그들이 모르게 할 수 있냐는 것이다. 그러니 얼음이 얼 때까지 기다렸다가 간단히 습격해버리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성억은 황보인을 거들었다. 음식과 술로 대접하면 진정으로 알고 속아 넘어가지 않겠냐는 것이다. 맹사성과 조계생은 야만인들이 절대로 속지 않을 것이므로 기습타격이 가장 좋은 계책이라 말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황희가 나섰다. 먼저 이번 전쟁은 지형과 적의 특성으로 봐서 토벌하기 만만치 않고 승리가 보장되는 것이 아님을 상기시켰다. 그리고는 도절제사로 하여금 그들이 잡아간 인마를 돌려보내라고 꾸짖고 그럼에도 응하지 않으면 죄를 선언하고 토벌을 할 것이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얼음이 얼 때까지 기다림이 어떠냐고 물었다. 대신들의 논의가 또 다시 얼음 얼 때까지 토벌을 미루자는 쪽으로 토론이 흘러갔다. 세종은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이번 사월 풀이 길 때 병력을 발동하여 토벌한다.

    (當四月草長時 宜發兵討之 : 세종 15년 2월 28일)”

 

박호문은 군사 3천이 부족하며 1만명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세종께 말하였다. 대신들의 의견은 어떠냐고 물었다. 하경복 등은 5백명을 추가하자고 했고, 정연 등은 1천명을 증원하자고 했다. 그러나 황희를 비롯한 대부분의 신하들은 현장 상황은 현지 장수가 가장 잘 알 것이므로 그에게 물은 다음에 의논함이 좋겠다고 건의했다. 세종은 그렇게 하기로 하고 사람을 급파하여 적정병력의 수를 평안도 도절제사 최윤덕에게 물어보게 하였다.  

      

<첩자투입 문제>

 

세종은 얼른 다음 의제로 넘어갔다. 적진으로 간첩을 보내는 문제였다. 첩자가 들어가 저 쪽의 동향과 지형을 파악하는 것은 전쟁의 필수적인 요소이긴 하다. 그러나 만약 잡혀 포로가 된다면 이 쪽 정보를 상세히 알게 되어 미리 대비하거나 혹은 역공을 해 올 것이 우려되었다. 대신들의 의견을 물었다. 그러니까 안 잡힐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한쪽에서는 대답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장수가 알아서 처리할 문제라고 대답했다. 황희를 포함하는 대부분의 대신들은 야인과 본국인이 용모나 언어나 의복이 판이하게 달라 잡혀서 정보가 누설될 위험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그러니 현지 장수로 하여금 정탐꾼을 보내는 것이 정보누설 위험이 덜하지 않겠는가라고 제안했다. 세종은 정보누설의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였다. 아예 첩자 송출을 즉각 정지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이 일은 매우 위험하다. 중단하라. 

    (此事甚危 姑停之 : 세종 15년 2월 28일)”      

    

그리고는 도절제사에게 비밀지령을 내렸다.

     

     “다시 첩자를 보내고 그들이 돌아 온 후에 군사를 일으키는 것이 

      어떤가. 도내 탁월한 전략가들과 비밀리에 상의한 뒤에 보고하라. 

      (更送人探候 此人己還家 然後發兵何如 與道內有權略者 密議以啓

      : 세종 15년 2월 28일)”


<부교문제 재의논>

 

이번에는 부교문제를 다시 상의했다. 강 물살이 매우 빠르고 급하므로 부교를 설치하기가 어렵다는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대신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여기서는 물살이 얼마나 빠른지, 부교설치가 얼마나 힘든지를 알 수 없으니 모든 권한을 현지 장군이 편리한대로 하는 게 옳다는 것이다. 임금도 그게 옳겠구나 생각했다. 

 

   “그 의견이 심히 타당하다. 도절제사 장군이 편리한대로 시행케 하라. 

    (此意甚然 宜令都節制使從便施行 : 세종 15년 2월 28일)”

 

평안도도절제사 최윤덕이 경력 최치운을 보내 급한 편지를 임금께 올렸다. 현지 지형이 매우 험조하여 수비군을 여러 곳으로 나누어야 하고 또 군사짐수레(輜重)를 지켜야 하며 또 군사를 한 길은 만포, 또 한길은 벽동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동으로 나누어 출병할 것이므로 군사가 만 명은 되어야 하는데 3천으로 결정되어 심히 걱정된다는 최윤덕의 보고였다. 세종은 안 그래도 병력이 적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신하들은 7, 8백 혹은 천 등 분분하다가 3천으로 정하긴 했지만 박호문의 이야기를 듣고는 내심 늘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세종은 병력 만 명을 더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렇다. 군의 숫자는 당연히 1만을 더해야겠다.

    (然.軍數當加一萬 : 세종 15년 3월 7일)”

    

세종은 최치운에게 최윤덕은 언제 쯤 병력을 출병할 생각이더냐고 물었다. 최치운은 단오 때 저들이 나와서 먹고 즐기고 또 말먹일 풀도 길기 때문에 좋을 것이나 물이 크게 불어날 염려가 있어 4월 24, 25일 경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토벌할 도적들에게 선포할 죄목을 최윤덕장군이 부탁하더라는 말씀을 드렸다. 세종은 이미 그걸 생각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방의 초본은 내 당연히 글로 써 보낼 것이다.

   (牓草 吾當書送 : 세종 15년 3월 7일)”      

     

<성죄방목(聲罪榜目)>

 

세종이 안숭선으로 하여금 준비하여 최윤덕에게 보낸 성죄방목, 즉 야인들의 죄를 성토하는 방목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세종 15년 3월 10일).

 

“조선국 평안도 병마도절제사 최윤덕은 공경히 왕명을 받들어 이 지방의     분란을 제어하고자 한다. 너희 파저강 올량합 무리들은 그동안 본국의 

 호의에도 불구하고 올적합을 가장하고 강계여연 고을을 침략하여 인민과    마소를 죽이고 약탈하여 그 참혹한 피해가 크다. 장차 군마를 동원하여 

 도적의 소굴에 닿아 적괴를 사로잡고 죄를 처치하고자 한다.”

 

그리고는 올량합을 토벌해야하는 12개 이유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i) 그 동안 여러 차례 납치하여 복수하겠다는 올량합의 말을 볼 때

      올적합이 그랬다는 것은 가장에 불과하다.

 

   (ii) 알목하 주민들도 올적합은 40여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다 올량합 

      이만주의 사람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iii) 도적 3명이 거짓으로 죄수인양 자형자국을 쓰고 있다가 지웠다.

 

   (iv) 알목하 범찰의 집에 있는 사람이 말하기를 “파저강 사람들이 올적합을 선두로 도적질 하다가 중국관원에 들켜, 돌려주라는 명을 받아서 어리고 약한 사람만 돌려주었다는 말을 알타리 올량합으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v) 도적들이 파저강에 이르니 올량합 2인이 나와서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 돌아와서 기쁘다고 했다.

 

   (vi) 중국관원(장대인) 말에 수염이 있고 반 쯤 희며 조선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vii) 임합라의 아내가 말하기를 우리 집 종 6명이 도망갔는데 조선이 

      돌려주지 않아 괴롭더니 올적합이 조선에 사람을 죽이고 약탈하니 

      기쁘고 감사하다고 했다.

 

   (viii) 도적들 말이 송춘부는 대접을 잘 하지만 이춘부는 홀대하므로 

      이춘부 집을 태워야 한다고 떠들어 댔는데 과연 이춘부 집이 불탔다.

 

   (ix) 도적 중 올량합 심아랑합이 처들어 왔을 때 군의 한 사람이 항시     

     간장을 주었건만 어찌 노략질을 하냐고 꾸짖자 황급히 말머리를      

      돌려 도망갔다. 

  

   (x) 우리통사가 여진말로 안탑고답노를 부르자 도적이 말하기를 

      고답노는 안 오고 그 장인이 왔다고 했다.

 

   (xi) 중국인으로서 잡혀 있다 도망 나온다면 원적지로 보내겠다.

   (xii) 본국 변민으로서 도망 나온다면 죄를 묻지 않고 원적지로 보내겠다.  

(계속)

 

785bdc2d2067aaa49aa80327da61e014_1659771
785bdc2d2067aaa49aa80327da61e014_1659771
785bdc2d2067aaa49aa80327da61e014_1659771
785bdc2d2067aaa49aa80327da61e014_1659771

 

 

0
  • 기사입력 2022년10월28일 17시10분
  • 검색어 태그 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