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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동의 문화시평 <10> ‘미술 한류 원년’이란 구호를 생각하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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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6월12일 17시10분

작성자

  • 김찬동
  • 전시기획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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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K-문화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정도를 넘어서 K-팝을 필두로 영화, 드라마, 전통음악, 복식, 음식문화, 문학 등의 분야가 약진하고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미술 분야의 국제적 위상은 아직도 미약한 느낌이다. 정부는 올해를 “케이-아트(K-Art) 도약의 원년”으로 삼고 있고, 국립현대미술관 역시 2022년을 “미술 한류의 원년”으로 선언하고 한국미술의 정체성 구축과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작년 LA 카운티뮤지엄에서 <사이의 공간:한국근대미술>전의 개최와 올해 가을 개최될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의 <한국의 6~70년대 실험미술>전은 그 대표적 사례가 될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작가 백남준, 이우환의 개인전이 열린 바 있고 해외에서 단색화 작가들이 부분적으로 소개된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뉴욕의 주류미술관에서 집단적으로 한국현대미술이 소개된 적은 없었다. 성급한 예단이긴 하지만 한국미술에 대한 관심이 일고 있다는 청신호로 보인다. 이것은 아마도 타 분야에서의 한류의 영향도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한 나라의 문화적 위상은 경제적 수준과는 다른 차원의 국격을 가늠한다. 우리는 세계 10위의 경제력을 자랑하지만, 아직도 문화적 선진국을 자처하기엔 자신이 없다. 문화적 수준을 함께 갖추지 못한 부자들을 졸부라 부르는 점을 생각한다면 국격에서 문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반만년의 문화를 자랑하는 우리가 자신감이 없는 이유는 우리에게 문화적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것의 진가를 스스로가 모르거나 외부로부터 온전히 평가받지 못하는 이유가 더 크다고 본다. 외부로부터의 평가는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경우보다는 보이지 않는 엄청난 내부의 투자와 노력, 전략이 따라야 한다.

 

  전후 냉전 시대 미국이 CIA의 자금을 풀어 가장 미국적인 미술을 작위적으로 만들어 냄으로 전후 세계미술의 중심을 유럽으로부터 옮겨온 것은 유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소련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 맞서는 추상미술을 클레멘트 그린버그라는 평론가를 동원하여 이론화하고 , 작가 잭슨 폴록을 가장 미국적인 작가로 만들어 낸 일이라든지, 국가적으로 라우젠버그와 같은 신예 작가를 베니스비엔날레에 참여시켜 최고상을 받도록 프로모션했던 일, 앤디 워홀과 같은 팝아트 등 새로운 미술을 지속적으로 상품화하는 등 정교한 문화전략을 통해 미국의 미술을 전후 미술의 중심축으로 옮겨 놓았다. 

 

그뿐만 아니라 80년대까지 세계미술계의 주변부이던 영국 미술을 정부와 대학, 기업가와 미술관이 공조하여 국제적 미술로 부상시킨 전략도 중요한 사례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골드스미스 대학의 졸업반 학생들의 작품을 기업인 사치가 프로모션하고 이를 테이트모던을 중심으로 터너프라이즈와 같은 수상 제도를 통해 키워낸 영국의 yBa(young British Artists)의 작가들의 사례가 그것이다. 

 

두 개의 사례에서 보듯 그 결과는 미국과 영국 미술의 위상을 세계미술의 정점으로 끌어올렸고, 세계미술 시장 역시 이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효과를 거두었다. 아시아에선 화교들의 구매력을 기반으로 중국 작가들의 작품을 프로모션함으로써 젊은 작가들을 대가의 반열에 올려놓고 한동안 세계미술 시장의 중심 상품으로 그리고 미국과 유럽에 버금가는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였던 일들도 자국 미술의 위상을 높인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한국미술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위의 사례에서처럼 국가가 정책적으로 정교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소가 뒷걸음치다 우연히 개구리를 잡는 일은 불가능하다. 전술한 바와 같이 한국미술은 우수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도 주변부의 미술로 치부된다. 그 사이 미술관의 건립이나 국제적인 비엔날레, 세계적인 아트페어 중 하나인 프리즈의 수용 등 많은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요한 미술시장인 프리즈나 세계적인 화랑들 지점의 한국진출이 늘어나고 있다. 이를 계기로 해외 손꼽히는 화랑들이 앞다투어 한국에 진출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마치 한국미술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한국 작가들에 관한 관심보다는 한국 컬렉터들의 구매력에 관심을 가진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부수적으로 한국 작가들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생긴 것은 사실이지만, 자칫 해외 화랑들이 다루는 외국 작가들의 작품만 국내에 팔고 가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 

 

  ‘미술 한류의 원년’이 단순한 수사로 끝나지 않으려면, 정교한 문화 정책적 전략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이를 짧은 글에서 그 복잡한 문제들을 다 다룰 수는 없지만, 미술계의 중심 주체들을 전문화하고 활성화하는 일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작가와 기획자, 미술관과 시장을 전문화하며 이들의 시너지가 선순환되도록 정부의 정책을 펴는 일이다. 

 

우선 미술관과 미술시장을 국제적 수준으로 전문화하는 일이 필요한데, 여기에는 인프라보다는 인프라를 움직이는 시스템과 국제적 전문가들의 확충이 필요하다. 이들 전문가는 작가들의 작품을 평가하여 미술계와 시장에 새로운 가치를 생산, 소통시키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미술관과 현장에는 많은 비평가나 큐레이터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이들이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여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이들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안정적 연구를 위한 시간과 재원이 필요한데, 이들은 차분하고 심층적인 연구보다는 코앞에 떨어진 과제에 급급한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비평가나 큐레이터들의 연구를 위한 지원이 확대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해외 전시를 위해서는 한국미술의 다양한 내용들을 범주화하여 유수한 국제미술관이나 미술시장에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개척해야 하는데, 해외미술관들도 국내와 마찬가지로 재정 상태가 넉넉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콘텐츠가 좋고 재정을 부담할 수 있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이러한 기회는 우수한 전문인력들의 활동을 견인해 내는 좋은 동기가 될 것이다. 해외 전시를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뿐만 아니라 기업의 투자도 필요하다. 전시나 행사를 위한 기업의 협찬은 한국기업의 문화적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 사이 해외미술관이나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전문인력이나 지한파 전문인력들이 많이 늘어났는데 이들과의 좀 더 긴밀한 네트워크를 통해 한국미술을 국제무대에 접맥시키는 일도 병행되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미술의 대표적 브랜드나 아이콘이 되는 경향이나 작가들에 관한 집중적인 연구와 전시, 사업개발과 홍보를 통해 한국미술의 특성을 강화해가는 방안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백남준과 같은 세계적인 아이콘을 활용하여 국내 작가들의 전시나 사업개발 등이 가능할 것이다. 기존의 백남준 미술상과 같은 수상 제도도 국제적으로 강화하여 그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일도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국미술계의 제도적 정점이라 할 수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위상과 활동을 획기적으로 국제수준화하는 일이 급선무일 것이다. 필요하다면 체제도 정비하고 국제교류 프로그램의 비중을 높이도록 하며 학예직들의 연구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의 강구가 필요하다.

 

  한국미술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끄집어내어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며 이를 국제무대에 공유하는 일은 당연히 미술 내적인 노력과 연구가 기반이 되어야 하지만, 해외의 사례들에서 보듯 정교한 정책적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K-아트 도약 원년’은 단순한 소망이나 구호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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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6월12일 17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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