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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동의 문화시평<23> 빌바오 효과(Bilbao Effect), 다시 생각하기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3년12월12일 10시07분
  • 최종수정 2023년12월12일 10시08분

작성자

  • 김찬동
  • 전시기획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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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스페인의 빌바오에 구겐하임 미술관의 분관이 들어서며 낙후되었던 도시가 국제적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지 벌써 26년이 흘렀다. 그동안 전 세계적으로 도시들마다 빌바오를 모델로 한 ‘문화 주도형 도시 재생(Cultural-led Urban regeneration)’ 담론을 적용한 프로젝트들이 하나의 유행이 되기도 하였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실제로 부천시 같은 경우 빌바오처럼 구겐하임을 유치하겠다는 구체적인 의지를 보인 바 있지만, 지역의 경제적 여건상 성사되지는 못하였다. 이후에도 창조도시나 창조경제와 관련된 논의들이 한바탕 휘몰아쳤고 최근에는 유럽의 ‘문화 수도(cultural capital)’ 제도를 벤치마킹한 국가 지정 ‘문화도시’ 프로그램이 지역 활성화를 위한 중심 사업으로 대두되기도 하였다. 

 

도시의 경쟁력을 위해 문화를 통한 개발, 재생의 논의가 한 흐름을 이루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빌바오 효과(Bilbao Effect)’라는 용어가 공유되면서 문화를 통한 도시의 혁신이 국가의 경제 유발효과에 지대한 역할을 한다는 인식이 통념화되었다.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색다른 대형 문화기반시설을 구축하였다. 하지만 문화 주도형 문화 재생이나 개발을 위해서는 문화는 물론 정치, 사회, 경제, 환경 등 다양한 외적 요인들과 시민들의 참여와 공감이 함께 어우러진 지속 가능한 것이 되어야 함을 간과한 채 단기적으로 졸속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최근에는 문화 주도형 도시개발이나 도시 재생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 폐해와 문제점들을 들어 기조성된 프로젝트들을 중단하거나 없애는 사례들도 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빌바오 효과’를 다시 재음미해 보는 것은 어떨까?

 

  1980년대만 하더라도 스페인의 바스크지역 빌바오시는 도시 중심에 있는 철강 공장과 조선소에서 나오는 연기와 폐수로 인해 대기와 네르비온 강의 오염이 극에 달하는 더러운 도시였다.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이 산업 도시가 쇠락하며 정체성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1983년에 발생한 파괴적인 홍수에 이어 수년간의 경제적 격변이 이어졌고, 이에 따라 도시 중공업의 대부분이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일부는 구조 조정에 성공했지만, 전반적으로 그렇지 못해 노동분규가 끊이질 않았다. 빌바오를 전통적인 경제 기반으로부터 다각화할 필요성을 인식한 바스크 당국은 오염된 하구와 새로운 지하철 네트워크를 복원하기 위한 10억 유로 규모의 프로그램을 포함하여 도시를 정비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빌바오를 산업 기반에서 서비스 기반 경제로 전환하려 노력하던 중, 구겐하임 재단이 유럽에서의 입지 강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991년 바스크 정부와 지역 당국은 구겐하임의 유명 ​​컬렉션을 소장할 미술관 건립을 위한 계약을 체결하고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디자인한 새로운 미술관 건립에 들어갔다.

 

  그러나 실제로 이 프로젝트의 추진은 그리 평탄치 않았다. 당시는 ‘문화 주도형 도시 재생’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던 상황이었기에, 투입되는 막대한 예산을 위기에 처한 기업을 지원하거나 의료나 인프라에 사용해야 한다는 비판적 주장이 제기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구겐하임의 진출에 대해 제국주의적 개입이자 원주민 바스크 문화에 대한 심각한 모욕으로 느낀 문화계의 반발도 심했다. 하지만 도심과 강어귀를 연결하는 개념의 게리의 건물이 올라가고 1992년 바르셀로나와 세비야에서 치른 올림픽과 엑스포의 성공적 개최를 보면서 시민들이 빌바오 프로젝트에 대한 자신감도 커졌다. 미술관 개관은 성공적이었지만 바스크 테러리스트 그룹 에타(Eta)가 잔학 행위를 저질렀다. 젊은 인민당 의원을 납치 살해하고 구겐하임 개장 일주일 후엔 미술관에 수류탄 공격을 저지하던 경찰관이 에타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26년이 흐른 지금 통계를 보면, 구겐하임은 개관 이후 약 2,50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을 유치했으며, 바스크 지방에 약 65억 유로(56억 파운드) 이상의 수익을 가져왔고 관광산업은 이제 도시 GDP의 6.5%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러나 도시변화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빌바오 효과’에 기인하는 것일까? 프랑크 게리의 티타늄 미술관 건물이 가장 큰 촉발제가 된 것임엔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 그 효과의 전부를 말할 순 없다. 빌바오 효과는 허구라는 비판적 연구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빌바오 효과는 이 지역의 구겐하임이라는 운영 주체가 기획하는 참신한 전시 내용과 멋진 요리, 바스크 특유의 문화 등 콘텐츠와 소프트웨어가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지하철과 대학 등 주변 인프라, 도시의 다른 지역과의 연결을 신중하게 계획하고 고려했다. 도시 계획에 대한 이러한 사려 깊은 접근 방식은 빌바오 활성화에 대한 미술관의 영향을 극대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빌바오 효과가 단순히 하나의 상징적인 건물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재생을 위한 포괄적인 비전을 창출하는 것임을 입증한 것이다.

 

  그럴 뿐만 아니라 바스크 정부, 민간단체, 그리고 구겐하임 재단 간 재원과 전문 지식 차원에서의 공공-민간 파트너십은 대규모 프로젝트의 자금 조달, 개발 및 관리를 촉진하는 빌바오 효과의 또 다른 필수 요소가 되었다. 또한 문화 프로그램과 지역사회 참여는 새로운 개발이 지역 주민들에게 혜택을 주고 시민의 자부심을 고양하는 빌바오 효과의 중요한 구성 요소이다. 문화 프로그램과 지역사회 참여를 도시 재생 프로젝트에 통합함으로써 도시는 주민, 방문객 및 건축 환경 간의 지속적인 연결을 구축하여 빌바오 효과의 전반적인 영향을 더욱 강화할 수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강력한 도시 인지도의 창출은 빌바오 효과의 또 다른 중요한 요소인데, 독특하고 매력적인 정체성을 개발함으로써 도시는 관광객, 투자자, 주민을 유치하고 문화적, 경제적, 사회적 자산을 홍보할 수 있었다. 이러한 도시의 브랜드는 빌바오시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산업 중심 도시에서 활기찬 문화 중심 도시로 탈바꿈시키는 데 중추적인 역할과 미래 성장과 발전을 위한 강력한 기반을 제공한 것이다.

 

   수많은 도시가 빌바오 사례를 벤치마킹했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위에 예거한 다양한 장점을 살려내지 못한 이유이거나 아니면 빌바오 사례가 가지고 있는 몇 가지 비판적 내용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단기적인 계획 속에 사업을 추진한 것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우선 다양성과 창의성이 부족한 유사한 건축물에 치중하여 도시가 글로벌 건축의 균질화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인데 이러한 함정을 피하고자 도시는 상징적인 건축물에 대한 욕구와 고유한 문화유산 및 건축 전통을 보존하고 기념하려는 필요성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대규모 개발로 인한 부동산 가치와 임대료 상승, 이로 인한 저소득층 주민들에게 나타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폐해 문제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사회적 영향을 고려하고 공평한 개발을 촉진하고 취약한 지역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구현해야 한다. 

 

빌바오 효과의 또 다른 잠재적인 단점은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 건설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다. 이러한 개발은 상당한 양의 에너지와 자원을 소비하고 도시 확장에 이바지하며 지역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개발 선택이 장기적으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또 다른 문제는 경제 발전의 수단으로 관광을 너무 강조하여 잠재적으로 다른 중요한 부문을 무시하고 관광 수익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관광에 대한 심한 의존성은 도시를 경기 침체나 여행 추세의 변화에 ​​취약하게 만들 수 있으며 교육, 의료, 기반 시설과 같은 다른 분야에 대한 투자를 저하할 수 있다. 도시 재생에 대한 균형 잡힌 접근 방식을 보장하기 위해 도시는 지속 가능한 성장과 회복력을 육성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과 산업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빌바오는 여전히 자신들의 경쟁력을 지속 유지하기 위해 각각 1991년과 1992년 설립된 ‘빌바오 메트로폴리 30’과 ‘빌바오 Ría 2000’을 운영한다. 전자는 빌바오시와 지역은행, 전력회사, 대학, 적십자 대표 등 130여 개의 지역 민간단체 대표와 공공 기관들로 구성된 기획, 연구조직이며, 후자는 도시 계획, 교통 및 환경을 통합하는 조치를 조정하고 실행하는 공공기구이다. 이는 창립 이래 재개발 지역에 대한 중앙 정부의 토지 기부 및 자본 이득 확보 등 전통적인 공공 예산 밖에서 자금 조달의 출처와 메커니즘을 찾는 일을 담당해 오고 있다. 양자 모두 시장이 대표를 맡고 있다. 빌바오시는 이들을 통해 여러 차례 시점마다 업데이트된 중장기 계획을 세워 도시의 지속 발전 계획을 추진해 왔다. 현재도 2016년 마련된 2035년까지의 장기발전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빌바오 효과’의 속살은 매우 치밀하고 조직적이며 장기적이다. 민관이 공동으로 주도하며 시민들의 의견이 실제적이면서도 다각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이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조급하고 근시안적이며 관 주도적이다. 이러한 생리에 익숙한 정치 성향 교수들이나 관변 인사들이 새로운 과제에 관여하며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고 빠지는 구조의 연속이다. 정부가 바뀌거나 지자체장이 바뀌면 계획 대부분이 중지되거나 폐지된 이유가 여기 있다. 충분히 검토된 마스터플랜이 아니고 정치권의 생색내기용 단발성 계획이 주종을 이루다 보니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은 프로젝트임에도 용두사미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에겐 늘 새로운 경향을 피상적으로 흉내 내다 마는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다. 좀 더 기본적인 자세로 우리 실정에 맞게 추진되는 ‘문화 주도형 도시 재생’이나 ‘빌바오 효과’는 여전히 유효한 가치를 가진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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