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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시대에 케인즈는 무엇을 이야기했는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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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2월19일 22시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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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들은 기존의 경제학 체계로는 현실의 과제에 더 이상 해답을 낼 수 없을 때마다 J. M. Keynes(1883~1946)에게로 돌아가 암호를 해독하듯이 케인즈가 이야기한 것이 진정 무엇인지를 알고자 했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금융학자들이 찾아낸 대표적인 해석이 바로 케인즈가 우리에게 이야기한 것은 ‘희소성 하의 선택이 아니라 불확실성하의 인간행위의 선택에 관한 논리’라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경제학은 희소성 하의 합리적 선택에 관한 과학으로 정의되어 왔으나, 케인즈는 우리에게 경제학의 과제를 희소성의 문제보다 불확실성의 문제라는 새로운 경제학의 세계로 눈을 뜨게 했으며, 이러한 케인즈의 계시를 초석으로 하여 화폐경제학(Monetary Economic) 또는 재무론(Finance)이 현란하게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화폐경제학과 재무론은 21세기 초반의 세계적인 금융버블을 키우는데 크게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이후 7년이 지나도록 케인즈가 했던 바와 같은 해답을 우리에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Keynes’s vision, which one can trace back to his youth, has to do with the logic of choice, not under scarcity, but under uncertainty; with its daring corollary that the desire for goods is more easily satisfied than the desire for money, or liquidity”, Robert Skidelsky, 『John Maynard Keynes 1920-1937』, p.539.)

<그의 젊은 시절부터 가져 왔던 케인즈의 비전은 희소성 하에서의 선택의 논리에 대한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 하에서의 선택의 논리에 관한 것이었으며, 마찬가지로 재화에 대한 욕망은 돈이나 유동성에 대한 욕망보다 훨씬 쉽게 충족될 수 있다는 것이다.>

 

  2차 세계 대전이후 최장 불황이 계속되고 있음으로 인하여 이른바 대불황 시대(The Great Recession)라고 불리는 오늘날과 같은 절망의 시대에 대하여 케인즈라면 과연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Robert Skidelsky가 쓴 케인즈 평전에 소개하고 있는 여러 가지 해석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케인즈가 케임브리지에서 강의 했던 4년간(1932~1935) 모든 강의를 들은 제자 Lorie Tarshis가 남긴 이야기다. Tarshis에 따르면 놀랍게도 케인즈가 이야기한 것은 한마디로 “희망”이었다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1914. 7~1918.11)의 후유증에 신음하는 절망의 시대에 케인즈는 자본주의의 반영을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이야기했으며, 그것도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라 ‘가능할’ 뿐만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그 무엇을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And finally what Keynes supplied was hope: hope that prosperity could be restored and maintained without the support of prison camps, executions and bestial interrogations... in those years many of us felt that by following Keynes...each one of us could become a doctor to the whole world”(Robert Skidelsky, p.574).

<궁극적으로 케인즈가 이야기한 것은 희망으로, (히틀러가 하는 것처럼) 수용소에 가두고 야만적인 고문을 하고 처형하는 짓을 하지 않고도 다시 번영을 회복하고 지속할 수 있다는 그런 희망이었다. 그 시절 학생들 대부분은 케인즈의 영향으로 우리 각자가 온 세상을 구하는 의사가 될 수 있다고 느꼈다.>

 

 ‘희망’은 그야말로 희망일 뿐이다. 그 자체로는 절망의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대의 과제는 시간이 가면 우리가 그것에 익숙해지거나 새로운 질서로 자리할 수는 있어도 그 자체로는 자동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가격 메카니즘은 언젠 가는 노동시장의 초과공급을 해결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언제?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케인즈는 그야말로 명쾌한 해답을 주고 있다. “ We are all dead in the long-run ”.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 모두 죽는다.) 1930년대 세계대공황 때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이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을 반대하면서 “장기적으로 시장이 균형을 찾아 간다”고 한 데 대해 케인즈가 응수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안고 있는 과제는 보다 구체적으로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따라서 시대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희망’은 ‘가능한 그 무엇’, ‘필요한 그 무엇’을  구체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하며, 그 때 비로소 ‘희망’은 절망의 시대의 먹구름을 걷어내기 시작할 것이다. 케인즈의 위대함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부의 역할, 보다 구체적으로는  확대재정정책을 통해 대공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해답을 제시했다는 점에 있다.

 

/ Keyens did believe that something could, and should, be done about it, and his demonstration is set up in such a way as to show which of the causes of a particular kind of unemployment - ‘demand-deficient’ unemployment – could be favourably influenced by government or central bank action.”(Robert Skidelsky, p.539).

<케인즌는 무엇인가 가능하고, 마땅히 그래야 하며, 그것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가 보여준 것은 ”수요부족 실업“이라는 특별한 형태의 실업의 원인이 정부 또는 중앙은행의 정책에 의하여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그런 방식의 정책의 틀이었다.>

 

  케인즈의 『The General Theory』가 발간된 지 80년이 지난 현재 21세기 세계경제는 1세기 전의 세계경제만큼이나 끝을 알 수 없는 절망의 시대를  헤매고 있다.  ‘Secular stagnation’(장기침체) 주장의 핵심 메시지는 정부가 불황을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은 더 이상 장기침체에 빠진 세계 경제의 역동성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지난 7년간의 실험으로 충분히 입증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선택하는 중앙은행들은 아마도 그것이 해답이기 때문이기보다는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기 때문이 아닌 가 해석된다.

 

  그렇다면 오늘의 한국 경제에 주는 케인즈의 교훈은 무엇인가?  케인즈에게 현재 한국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장기침체를 탈피하고 성장의 역동성을 회복할 수 있는 정책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과연 케인즈는 어떤 대답을 했을까? 필자의 상상으로는 아마도 우리에게 다음 세 가지 질문으로 해답을 대신했을 것 같다.

 

  첫째, 한국 경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둘째, 한국 경제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셋째, 그래서 한국 정부와 기업과 국민들은 무엇을 했는가? 그러면 필자가 이러한 케인즈의 대답을 상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케인즈가 ‘희망’을 구체화하는 방법으로 80년 전 암울한 절망의 시대에 ‘희망’을 보여준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할 수 있고, 해야 할 정책’(예: 구조개혁 정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할 수 있지만 해서는 안 되는 정책’(예: 부채주도 성장정책)도 함으로써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져 있으며, 국회는 ‘해야 할 정책“(예: 구조개혁 지원입법들)을 할 수 있도록 소기의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

 

  케인즈의 ’희망‘ 프레임으로 정리해 보면 해답이 분명해 진다. 한국 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대내외 경제 여건 그 자체를 거론하기 이전에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할 것’을 제대로 하지 않는 또는 그렇게 할 수 없는 경제운영 체제내지는 지배구조 (governance of policy)에 경제위기의 본질이 있다고 할 것이다.

  케인즈의 ‘희망’ 프레임을 세계 경제에 적용해 보면, 해답은 더욱 분명하다.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할 것’을 적극 추진하는 정부(영국, 인도)는 ‘해야 할 것’은 하지 않고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하는 정부(프랑스, 중국)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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