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 달리, 원종국(2)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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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국의 ‘믹스언매치’ 연작은 첫 소설집 <용꿈>에 수록된 「믹스언매치」, 「욕망의 수수께끼,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슬픈 아열대」에 이어 두 번째 소설집 <그래도>에 실린 「두 사람이 보이는 자화상」, 「나는 달리다」, 「다시, 살아가는 일」 등 6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작의 기본 구도는 이미 「믹스언매치」에 상당 부분 형성되어 있다. 그 단초는 살바도르 달리의 운명에서 비롯된다. 살바도르는 너무나도 서둘러 지상에서 육신을 거두어 간 형의 이름이었다. 사망신고와 출생신고의 번거로움을 덜기 위함이었는지, 일찍 아들을 보낸 참척의 고통을 다소나마 덜기 위해 그 이름을 없애지 않은 것인지, 살바도르 달리 부모의 속마음을 헤아릴 길 없다. 어쨌든 이름을 재활용한 것, 살바도르라는 이름을 지속시킨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가족 사건은 달리 개인에게도 커다란 심리적 사건이었으리라. 나 고유의 삶이라는 기원의 해체, 그 주체의 뿌리가 뽑히는 그런 사건이 아니었을까. 「거울을 통해 입체적으로 표현한 달리와 갈라」나 「나르시스의 변모」 등에서 보이는 실험적 자아 해체 양상은 그런 심리적 사건의 예술적 표현과 관련되는 것이 아닐까.
작가 원종국 역시 달리처럼, 달리를 닮은 운명적 인물을 형상화한다. 원종국의 이야기에서 달리의 부모는 사이좋은 잉꼬 부부였지만 10년이 넘도록 자식을 얻지 못한다. 그러다가 체외수정으로 아이큐 200이 넘는 천재아들 명주를 얻는다. 고전적 영웅소설의 이야기 패턴과 왠지 닮아 있다. 그러나 그 닮음은 오래 가지 않는다. 급전직하 위반을 경험한다. 월반을 거듭하던 천재는 불세출의 물리학자를 꿈꾸며 일찌감치 미국 유학을 갔지만, 얼마 안 되어 총기 사고로 사망한다. 그의 부모는 이 엄혹한 참척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하다가, 복잡한 절차와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면서, 복제 인간을 만들어 그대로 명주라고 부르며 천재 물리학자의 재현을 기원한다. 영웅소설의 플롯이 이어지기를 소망했던 것이다. 그러나 복제된 명주는 천재가 아니었다. 물리학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유치원 선생님으로부터 살바도르 달리의 이야기를 들은 다음부터 ‘나는 달리다’는 강력한 자의식 속에서 달리처럼 그림 그리기를 욕망한다. 즉 부모로부터 각인처럼 호명되는 이름은 명주이고, 스스로 환기하는 이름은 달리다. 명주와 달리가 호환될 수 없는 이름이듯이, 부모와 복제 아들 달리 사이의 욕망은 소통되기 어렵다. 부모는 천재적 물리학도였던 원본-아들 명주처럼 복제-아들도 천재 물리학자가 되기를 욕망한다. 그러나 복제-아들 달리는 살바도르 달리를 모방하여 화가로 살기를 욕망한다. 이렇듯 욕망들이 상충하는 가운데 그의 현실 직업은 복제사이다. 그것도 단순 업무를 반복하는 평범한 인물일 따름이다. 자신을 일컬어 스스로 천재라 불렀던 살바도르 달리와 달리 원종국의 달리는 천재성과는 거리가 멀다. 원본-아들과 멀어진 복제-아들로 인해 부모는 매우 불안하다. 처음엔 근심하고 걱정하다가 당황해 하고 이내 불안에 빠져 더 이상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들은 새로운 복제를 욕망한다. 1차 복제의 실패를 수긍하고, 자식을 결혼시켜 손자 대에서 다시 한 번 영광을 보려하는 부모에게 달리는 결혼을 안 할 것이고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그러면 체세포를 떼어내 복제를 하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아버지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사망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이 사건으로 달리는 파렴치한 패륜범죄자가 된다. 이 사건이 언론에 비상한 관심을 끄는 것까지가, 첫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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