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국회법 개정안, 위헌이 아니라 ‘법치주의의 회복’이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6월21일 20시26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7일 22시29분

작성자

  •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메타정보

  • 27

본문

국회법 개정안, 위헌이 아니라 ‘법치주의의 회복’이다

 

 지난 15일에 우여곡절 끝에 국회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정부로 이송되었다. 국회의장의 중재에 따라, 국회가 행정명령에 대해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는 표현이 '요청'으로 완화되었다. 필자는 기존의 ‘요구’라는 표현을 존치해도 위헌이 아니라고 보지만, ‘요구’를 ‘요청’이라고 바꾼 것은 행정부의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국회의 성의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본다. 


행정부의 행정명령 제정권은 국회가 부여한 권한

 우리 헌법 제75조는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에 대해 행정부가 대통령령 등의 행정명령을 제정할 수 있게 했다. 현대 복지국가의 복잡다기하고 가변적인 행정환경 하에서 국회가 모든 세세한 사항에 대해 이를 법률에 규정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따라서 많은 현대 민주국가들이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사항은 법률에 정하지만 지엽적이고 가변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이를 대통령령 등의 행정입법에 위임할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행정부의 행정명령 제정권은 국회가 부여한 권한에 따른 것이므로, 국회가 자신들이 만든 법이 위임한 취지에 맞게 행정명령이 만들어졌는지를 살필 수 있고 국회가 만든 법률의 취지나 내용에 어긋나는 행정명령에 대해 수정변경을 요청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 있다. 따라서 이를 두고 행정부의 행정입법 제정권을 침해해 헌법상의 삼권분립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행정부의 행정명령 제정권은 국회가 부여한 권한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201562120262316904q6hkq.png
 

시행령이 모법인 법률을 무력화한 사례들

 이 대목에서 이번에 국회법 개정안 발의의 계기가 된 것도 행정부가 만든 행정명령인 시행령이 모법인 국회의 법률을 무력화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최근의 예만 보더라도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은 모법의 취지에 어긋나게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독립성을 침해했다는 논란을 낳았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에는 모법인 국가재정법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하게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획재정부가 국가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해  4대강 사업에 있어서는 예비타당성 조사 없이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했다. 이 모두가 법률의 취지나 내용에 합치되지 않는 위헌·위법한 행정명령 제정권 남용의 예들이다. 

 

국회법 개정안, 위헌이 아니다

 어제 정부에 이송된 국회법 개정안은 현행 국회법의 같은 규정과 크게 다르지도 않다. 현행 국회법 규정이 대통령령 등의 행정명령이 모법인 법률의 취지나 내용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경우 국회 상임위원회가 이런 사실을 소속 행정기관의 장에게 ‘통보’하고 소속 행정기관의 장은 통보받은 내용에 대한 ‘처리계획과 그 결과’를 상임위원회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는 반면에, 개정안은 ‘통보’를 ‘수정·변경 요청’으로 바꾸고 ‘처리계획과 그 결과 보고’를 ‘처리’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는 것으로 바꾸어 표현만 다소 강화했을 뿐이다. 이제껏 현행 국회법 규정에 대해 침묵하며 행정명령을 국회의 통보에 따라 개정하기도 했던 행정부가, 갑자기 표현만 다소 강화된 개정안에 대해 위헌 주장을 들고 나온다면 국민적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청와대는 국회가 행정명령에 대한 수정·변경 요청을 하면 행정부의 기능이 마비된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국회가 행정명령을 사사건건 걸고넘어질 것이고 야당이 정부와 대통령의 발목을 잡을 우려가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그러나 국회 상임위원회 위원들 중엔 여당의원들도 많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국회 상임위원회의 행정명령에 대한 수정·변경 요청이 있으려면 여야 합의가 있어야 하므로, 야당에 의한 당리당략적 목적의 수정·변경 요청은 여야 합의가 되지 않아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다. 국회 상임위원회가 행정명령을 사사건건 걸고넘어질 수도 없고 따라서 행정부 기능의 마비도 기우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201562120263994883l5cfm.png
 국회법 개정안, 오히려 ‘법치주의의 회복’이다

 국회의 행정명령 수정·변경 요청으로 그 행정명령의 효력이 정지되거나 상실되는 것도 아니다. 행정부는 이러한 국회의 수정·변경 요청에 이의가 있으면 여전히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해서 사법부의 판단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국회의 행정명령에 대한 수정·변경 요청이 사법부의 사법심사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국민 입장에서도 행정명령이 상위규범인 법률에 위배될 때 법원에 위헌명령심사를 청구하거나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사후적으로 이러한 소송을 통해 행정명령을 바로 잡으려고 하면 시간과 비용면에서 비효율이 크기 때문에 국회가 국회법 개정안에서 이러한 비효율과 국민적 혼란을 막기 위해 사전적 조치로서 행정명령의 수정·변경을 요청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번의 국회법 개정안은 위헌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의 편익을 도모하는 입법이며, 행정권의 위헌·위법한 행정명령 제정의 관행을 바로 잡아 ‘행정명령에 의한 지배’에서 ‘법에 의한 지배’를 회복시키는, ‘법치주의의 회복’이라고 믿는다. 

 

27
  • 기사입력 2015년06월21일 20시26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7일 22시29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